§ 나는 될놈이다 148화
“괜찮은 겁니까?”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쟤 혼자서 이 주변 못 돌아다니니까. 곧 돌아올 거야.”
걱정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는 태현! 정수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무슨 퀘스트인데?”
“아. 이런 퀘스트였습니다.”
<아농 백작의 의뢰>
저주받은 마르덴 고성은 언제나 불길한 곳이었다. 아농 백작은 그의 영토와 맞닿은 곳에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싫어했다.
백작의 친구가 영지에 방문하기로 하자 아농 백작은 모험가들을 고용해서라도 마르덴 고성을 토벌하려고 한다.
백작의 친구가 영지에 도착하기 전에 마르덴 고성 던전을 클리어해라.
보상:?, ??, ??, 아농 백작과의 친밀도 상승.
“아농 백작은 에랑스 왕국 귀족이잖아. 보상을 뭘 약속했는데 사람들이 모이는 거지?”
우정식의 물음에 태현이 대답했다.
“백작과 친해지려고 하는 거겠지.”
각 왕국의 귀족과 친해지는 건 언제나 좋은 기회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얻을 수 없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태현은 속으로 의아해했다. 귀족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해도 이렇게 사람들이 오는 건 신기했던 것이다.
사실 이건 태현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공식 백작 작위를 받은 태현!
카테란드 섬 퀘스트와 같이 연속으로 특집 방송을 공개하니 안 그래도 많은 관심이 폭발했다.
언제나 제일 처음으로 무언가를 한 사람은 주목을 받기 마련.
정작 태현은 영지를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방치 상태로 내버려 뒀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와, 영지라니. 정말 부럽다!
-저렇게 상인들 부르고 상점 건물 한두 개씩 짓는 거 보니까 차근차근 마을 만들려고 하는 거구나!
겉으로만 보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오해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태현이 영지에 관심을 갖고 발전을 시작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제대로 불이 붙은 경쟁심!
-김태현이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지금 가장 친밀도 높은 귀족을 찾아! 가능한 퀘스트를 전부 깨라. 어떤 방법을 써서든 왕한테 접근을 해!
-다른 길드 놈들이 작위와 영지를 얻으려고 퀘스트를 깨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도 지면 안 돼!
한 번 경쟁이 시작되면 멈출 수 없었다.
정작 영지를 가진 사람은 별생각이 없는데 없는 사람들은 환상을 갖고 불타오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뭐, 우리가 알 바 아니지.”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정리했다. 플레이어들이 예상한 것보다 많은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건 태현에게 사소한 수준의 문제!
“주변 시선 안 받게, 조용하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자.”
“네!”
태현이 지시를 내리는 사이 케인이 터덜터덜 힘 빠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시선을 피했다. 그게 케인에게 더 서러웠다.
‘차라리 비웃어라!’
어중간한 배려가 더 상처!
“가자!”
태현은 위풍당당하게 앞장섰다. 그 뒤를 다른 일행들이 뒤따랐다.
* * *
마르덴 언데드 창병과 마르덴 언데드 갑옷전사. 이 주변에 나오는 언데드 몬스터 중 하나였다.
마르덴 고성 주변은 언데드 몬스터들의 소굴이었다.
몬스터의 레벨도 낮지 않았으니 당연히 파티들은 기본적으로 사제나 성기사들을 한두 명 정도 끼고 있었다.
언데드를 상대할 때의 기본!
그래도 싸움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파티원들은 싸우기 전 성수 같은 대(對) 언데드 아이템을 쓰거나 언데드용 장비를 착용했다.
-너희도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라!
-마르덴 후작님을 위해!
“야! 나 힐! 힐!”
“잠깐만 기다려! 여기도 위험해!”
사제가 급하게 신성 마법으로 파티원을 지원했다. 워낙 몬스터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마르덴 고성 주변이 까다로운 점은, 몬스터가 어디서 튀어나올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분명히 뒤를 확인하고 싸웠는데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는 언데드 몬스터들!
일단 한 번 들어서면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 저 파티 뭐야?”
“새로 왔나 보네. 곧 알게 되겠지.”
몬스터들을 일단 몰아내고 잠깐 쉬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저 멀리서 달려가는 태현 파티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 마르덴 고성 주변에서 저렇게 빨리 움직이다니. 멍청한 짓이었다.
“우리도 여기 처음 왔을 때 당했었지?”
“그래. 말해줄까?”
“뭐가 좋다고 말해줘? 야. 우리도 당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당해야지!”
태현이 들었다면 훌륭한 정신이라고 손뼉을 쳤을 소리였다.
* * *
-마르덴 고성 주변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면 안 된다!
이 주변에서 뛰고 있는 파티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처음 오는 파티들은 모두 빠르게 돌파해서 바로 고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움직일수록 언데드 몬스터들이 주변에서 많이 생겨나고, 동시에 길을 막는 것!
이 파티도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변을 보니 먼저 와있던 다른 파티들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치사한 자식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이런 정보는 공유해 주는 게 아니었다.
마르덴 고성 던전을 가장 먼저 클리어하면 백작의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었다. 당연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지만…….
끝까지 급하게 서두른 파티들은 빠르게 전멸했다.
덕분에 이 주변에 남은 파티들은 참을성 있게 퀘스트를 깨고 있는 파티들이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간단했지만 끈기가 필요했다.
-마르덴 고성 주변을 천천히, 언데드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들어가서, 고성 안으로 들어가 지하 던전에서 길을 찾는다.
-길을 찾으면서 내려가다가 아이템을 다 써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할 것 같으면 위로 올라와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
고성 지하 던전이 워낙 복잡해서 한 번에 클리어가 불가능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밖으로 나가 가까운 마을에 들러야 했다.
주변에 있던 상인 플레이어들은 바로 이런 플레이어들을 노리고 찾아온 것!
상인 플레이어들은 골드를 팍팍 쓰는 파티들을 보며 싱글벙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목숨을 걸고 이런 곳까지 찾아와서 장사를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 * *
태현 파티가 빠르게 돌격하는 걸 보고 몇몇 파티들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중 성질 고약한 몇몇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들이 겪었던 것처럼 태현 파티도 고생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래 남도 똑같이 고생을 하는 게 통쾌한 법!
그러나 태현은 먼저 전멸한 플레이어들처럼 멍청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처음 가기 전, 태현은 이 주변 필드에서 위화감을 눈치챘다.
곳곳에서 보이는 파티들이 너무 느리게 움직였던 것이다.
뭔가 이상할 때에는 이유가 있는 법!
태현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까지 5초.
‘아. 몬스터가 빨리 움직이면 더 덤벼드나 보군.’
10초도 지나기 전에 이 필드의 비밀을 눈치채버리는 태현이었다.
다른 파티원들이 봤다면 기가 막혀서 말도 못 했을 정도의 빠르기!
그러나 태현에게는 간단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할 파티들이 뭐 잘못 먹은 것처럼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에 맞는 이유가 어딘가 있을 거라고 추측한 것이다.
저 앞에 언데드 몬스터가 얼쩡거리는데 시선을 피하고 산책하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어색하게 걷는다면?
태현에게는 너무 뻔한 문제였다.
‘어떻게 할까…….’
태현은 잠시 고민하며 이 주변 몬스터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빠르게 돌진!”
* * *
[냉정한 지휘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일행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중급 전술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뛰어! 굼벵이냐? 아니, 굼벵이도 너보다는 빠르겠다!”
“저, 저는 지금 아이템을 들고 있어서…….”
“변명할 시간에 뛰라고! 더 뛰어!”
[가혹한 채찍질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일시적으로 HP와 MP가 내려갑니다. 다른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태현의 지시에 맞춰서 일행은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앞에서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적들!
파스슥!
-마르덴 후작님을 위해!
-산 자가 밉다! 산 자가 미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보고 대장장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공포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생생함!
게다가 이건 실제로 경험하고 있으니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정말로 공포스러웠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고성 쪽으로 발을 디디자 순식간에 어둡고 음침한 안개가 맴도는 것이다.
[마르덴 고성의 안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공포가 올라갑니다.]
[공포를 모르는 자 칭호 때문에 공포가 무효화됩니다.]
“으아아! 저리 가! 저리 가라고!”
김지산은 그렇게 외치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여기서 만약 발목이라도 잡히면 태현은 그냥 놓고 갈 사람!
다행히도 마르덴 언데드 창병들은 이동 속도가 비교적 느렸다. 멀리서 다가오는 사이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멍청한 짓들을 하네.”
멀리서 보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지금 태현 파티가 시도하고 있는 방식은 이미 다른 파티가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처참하게 실패!
사람들이 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렇게 빨리 달려서 몬스터들한테 포위당하기 전에 고성 안으로 들어가는 건 겉으로 보면 그럴듯했지만, 해보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느려서 만만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숫자가 불어나서 주변을 아예 포위해 버리면 그때부터는 속도가 빠르다고 뚫을 수가 없었다.
무조건 싸워서 뚫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몇 대 맞게 되어 있었다.
-망자의 손아귀!
-울부짖는 영혼!
그렇게 부딪히게 되면 저 마르덴 언데드 몬스터들의 주특기가 발휘되었다.
이동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각종 스킬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 이상 스킬. 돌파하려던 플레이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해서 뚫으려고 해도 이미 빠르게 달린 탓에 적은 많이 생겨났고, 이동 속도도 느려진 탓에 제대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점점 맞을수록 더 느려지는 악순환!
그렇게 되면 어지간해서는 전멸이었다.
태현 파티도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뚫고 있었지만 점점 몰려오는 몬스터들 덕분에 포위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멍청하기는.”
지켜보던 플레이어는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 * *
‘이런 방법으로 들어가는 파티가 없는 걸 보니 뭔가 문제가 있나 보군. 여기 몬스터들이 발이라도 묶나?’
그러나 태현은 이미 그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뭐, 상관없지.’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우기기, 행운의 일격.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의 축복으로 일행에게 행운이 공유됩니다!]
지속 시간이 짧다는 단점만 제외한다면 사기나 다름없는, 태현의 행운을 일행에게 공유해 주는 아키서스의 축복 스킬!
태현 일행의 몸이 순간 은은하게 빛나더니 그대로 돌아왔다.
-후작님의 성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어. 그래.”
태현은 대답 대신 무기를 꺼내 들었다. 롱소드 <유성>이 아니었다.
꺼내 든 것은 활활 타오르는 고대의 망치!
마치 신의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신성한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속성은 없었지만!
-어…… 잠…….
콰직!
묵직한 풀스윙에 그대로 날아가는 언데드 창병!
[강력한 힘으로 적을 날리는 데에 성공합니다. 힘이 1 오릅니다.]
아까 시선을 돌린 플레이어가 봤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저 몬스터를 일격에 죽이다니!
-못 간다! 이 야만스러운 모험가 놈들!
-후작님의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