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6화
그래도 그들의 가슴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한테도 자랑을 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야 ‘우리가 이런 사람과 같이 다닌다’고 광고라도 달고 싶을 정도!
그러나 태현은 사람들 눈에 띄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명예욕이나 과시욕과는 거리가 먼 게 태현이었다.
“왜, 저기 플레이어들한테 우리가 간다고 광고라도 하고 싶냐?”
“…….”
속마음을 들킨 김지산은 얼굴을 붉혔다. 태현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런 거 할 시간에 장비나 하나 더 만져라. 그런 관심 받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태현 님은 안 신나세요?”
“신나기는 무슨…….”
태현을 견제할 놈들만 늘어난 셈! 태현은 정확히 현실을 보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그러는 사이 길 멀리서 한 무리의 상인 일행이 나타났다. 길을 가다 보면 저런 식으로 길을 가는 상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일 때도 있었고 NPC들일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대장장이들과 케인은 상인 일행에게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응?’
태현은 장비를 만지는 스킬을 사용하느라 <신의 예지>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MP가 팍팍 감소하고는 있었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원래 실력에서는 나올 수 없는 뛰어난 결과!
태현의 스킬 레벨 성장 속도가 높은 이유는 행운과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스킬 덕분이었다.
문제는 지금 저 멀리서 다가오는 놈들이 흰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지?’
일단 흰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이상 좋은 NPC들일 가능성은 없었다.
“야.”
“예?”
“내가 폭탄 집어 던지면 전부 공격해라.”
“???”
루포, 에드안, 케인이나 다른 대장장이들까지 ‘???’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
“아니, 태현 님! 일반인을 공격하시면 안 됩니다!”
“사디크 교단도 그러던데 나도 할 수 있지. 왜 안 돼? 같은 교단인데.”
“…….”
“게다가 난 백작이잖아. 난 더 해도 되지.”
“안 ㄷ…….”
루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현은 품속에서 멋진 솜씨로 폭탄 2개를 꺼내 집어 던졌다.
깡!
그리고 그 폭탄은 가장 앞에서 오던 상인의 머리에 명중!
[정확한 솜씨로 상대의 급소에 맞췄습니다. 투척 스킬이 오릅니다.]
[급소 노리기 스킬을 얻었습니다.]
<급소 노리기>
투척 시 정확한 목표를 지정합니다. 그 명중률이 올라갑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폭탄이 불발합니다. 터지지 않습니다.]
“??”
폭탄이 터지지 않자 다들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날아가고 있는 폭탄은 한 개 더!
콰콰콰콰쾅!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가자!”
“으아아아……! 이러시면 안 되는데……!”
루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검을 뽑고 태현의 뒤를 따랐다. 케인도 일단 달렸다. 괜히 가만히 있었다가는 한 대 맞을 테니까.
“이 하찮은 필멸자들이 감히!”
“?!”
뒤에서 듣던 대장장이들은 깜짝 놀랐다. 저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사디크의 저주를 받으리라!”
상인 복장을 하고 있던 NPC들이 겉옷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안에서 사디크 교단의 갑옷과 사제복이 나왔다.
상인으로 위장한 사디크 교단의 암살자들!
“위대한 사디크시여! 저를 받아주소서!”
“포악한 사디크시여! 저를 받아주소서!”
“……!”
사디크 성기사 같아 보이는 놈들은 폭탄을 맞아 엉망이 된 겉모습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디크 사제들은 뒤에서 뭔가 불길한 주문을 외우며 신성 마법을 걸고 있었다.
태현은 직감했다.
‘저건 맞아서 좋을 게 없겠군!’
판타지 온라인 2의 인공지능은 강력했다. 사람처럼 학습하고 성장했다.
즉 태현과 몇 번 부딪힌 사디크 교단은 태현을 어떻게 상대할지 방법을 고민하고 온다는 것이었다.
“막아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놈을 묶어라!”
우르르 뛰어드는 사디크 성기사들!
정예 사디크 성기사들 중에서도 정예만 모은 것 같았다. 검을 몇 번 부딪히자 바로 느낌이 왔다. 힘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나한테 데미지를 줄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태현한테 데미지를 주려면 회피율과 상관없는 회피 불가능한 강력한 스킬을 쓰거나, 아니면 계속 저주를 중첩시켜 상태를 내려야 했다.
그러나 사디크 성기사들은 폭풍처럼 밀어붙였다. 방어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태현의 손을 묶으려는 것처럼.
“받아라! 이것이 사디크의 분노일지니!”
-사디크의 왼손!
사디크 사제들이 동시에 앞으로 쓰러지며 위에서 거대한 붉은 왼손이 나타났다.
그리고 태현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
쏘아지기 전부터 태현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사제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피를 믿고 피하기에는 워낙 위험해 보였다. 반격의 원을 쓰고 싶었지만 사디크 성기사들이 목숨을 걸고 달라붙어 있으니 반격의 원을 쓸 수가 없었다.
사디크 성기사들은 이걸 노린 것이었다. 공을 들인 암살!
그러나 언제나 태현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케인이시여! 나를 지켜주소서!”
“??”
순간 루포는 귀를 의심했다. 아키서스가 아니라 케인이라니. 그건 뭔 잡신?
“으허헉?!”
옆에서 싸우던 케인은 기겁했다. 태현이 그를 재빨리 잡아서 허공으로 집어 던진 것이다.
“뭐하는 짓이야 이 미친 자…… 크아아아아아악!”
날아오는 거대한 붉은 왼손이 케인에게 작렬했다. 그러자 마치 케인의 몸이 타오르는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케인! 고맙다!”
“너 진짜 개…….”
태현은 듣지도 않고 남은 사디크 성기사들을 상대했다. 사제들이 전부 쓰러진 이상 사디크 성기사들을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크악!”
“사디크 신이시여!”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중급 검술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가타콰 검법의 <회피의 원>을 쓸 수 있습니다.]
<회피의 원>
검으로 원을 만들어 일시적으로 회피율을 높인다.
‘……?’
태현은 새로 나온 스킬에 잠시 멈칫했다.
이건…….
‘쓰레기잖아?’
태현 같은 직업은 쓸 일이 전혀 없는 스킬!
“태현 님. 회피의 원을 깨달으셨군요! 그 스킬은 정말 좋은 스킬입니다. 제가 한 번은 어떤 일이 있었냐면…….”
“안 써. 차라리 반격의 원이 낫겠다.”
“?!”
쓸 곳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기껏 쓴다고 하더라도 태현이 행운으로 회피할 수 없을 때 회피할 정도?
물론 그때도 그냥 반격의 원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루포야 반격의 원은 쓰기 힘든 스킬이라고 했지만 태현은 반격의 원 스킬의 까다로운 타이밍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추는 괴물이었으니까.
“야 이 자식아!”
케인은 씩씩대며 태현에게 달려왔다. 태현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안 죽었냐?”
“…….”
사디크 고위 사제 몇 명이 자기 목숨을 바쳐가면서 쓴 마법을 맞았는데 멀쩡하게 살아있다니.
케인이 한 때 랭커를 꿈꾸던 플레이어였지만 레드존 길드가 망할 때 몇 번 죽고 경쟁에서 뒤져진 탓에, 이제는 랭커 축에도 들지 못했다.
요즘 퀘스트 몇 개를 깨고 다시 성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준!
그런데 견디다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케인은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말했다.
“이럴 때는 보통 미안하다고 하지 않냐? 응?”
“네가 삥 뜯고 다니던 놈들한테 사과를 하고 다녔나?”
“……안 했지.”
“그렇지? 그러면 나도 할 필요 없네. 그런 거 할 생각도 없는 놈이 뭘 그런 걸 바라고 그래? 됐고 상태나 말해봐. 왜 안 죽은 거야?”
누가 들으면 죽길 바란 것 같은 말투!
“HP나 MP가 깎인 게 아니다.”
[사디크의 왼손에 당했습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저주입니다.]
[행운이 0으로 고정됩니다.]
“행운이 0으로 고정됐다고?”
“그래.”
케인은 씩씩댔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피해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행운은 쓰지도 않은 스탯. 20도 찍어놓지 않은 스탯이었다.
그러나 태현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사디크 교단이 제대로 독이 오른 것 같은데.’
하긴,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는 교단 건물을 날려버리고 그렇게 공을 들인 불의 마수를 폭주시킨 다음 심지어 그 지역까지 태현이 갖고 있었다.
원한을 안 가지면 이상할 수준!
게다가 태현은 짚이는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사디크의 성물 반지:
내구력 1/1
신성 제한 5000, 사디크를 믿지 않을 경우 저주를 받을 수 있음.
사디크 교단의 성물, 봉인된 사디크의 힘이 담겨 있는 반지다. 조건을 갖춘다면 사디크를 불러낼 수 있다.
딱 봐도 불길한 느낌을 풀풀 풍기는 강력한 아이템!
문제는 그런 걸 태현이 갖고 있는데 사디크 교단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어떻게든 회수하려고 할 것이다.
‘내 위치를 바로 찾은 것도 좀 수상한데. 혹시 이거 위치 추적되는 거 아니야?’
태현은 이런 면에서 특히 감이 좋았다.
하도 온갖 적들과 PK를 하며 지낸 세월이 길다 보니 상대를 쫓거나 도망치는 데에 이골이 난 것이다.
판타지 온라인에서는 상대를 쫓는 방법이 수십 가지는 넘었고 그중에서는 태현이 모르는 방법도 꽤 있을 것이다.
안 밝혀진 직업의 안 밝혀진 스킬 같은 건 당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으니까.
‘일단 추적된다고 생각해야 하나?’
태현은 힐끗 케인을 쳐다보았다.
‘만약 나중에 위험하게 되면 저놈한테 몰래 넣어놔야겠군.’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결정하는 사악함!
상단의 아이템을 꽤 많이 갖고 왔으니, 그중 아무 평범한 상자에다가 반지를 넣은 다음 짐에 섞어서 케인한테 들라고 하면 감쪽같을 것이다.
‘어쨌든 사디크 교단이 날 어떻게 상대할지 알게 됐다는 거고…… 더 조심해야겠는데.’
재수가 없으면 아키서스의 권능 퀘스트를 깰 때 사디크 교단과 만날 수도 있었다.
“태현 님. 그런데 저들이 사디크 교단이라는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냥 수상해 보여서.”
“그냥 수상해 보여서 폭탄을……?”
“이런 말도 있지 않나? 일단 죽인 다음에 생각하자고.”
“그런 말 없습니다!”
루포가 옆에서 땍땍댔지만 태현은 무시하고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은 에랑스 왕국 남서쪽에 위치한 마르덴 고성(古城).
주인 없는 낡은 성에, 그 주변에는 꽤 강력한 몬스터들이 나왔기에 고수급 플레이어들도 파티 사냥으로 도전하는 곳이었다.
에드안이 왕궁에서 얻은 정보는 이 던전 어딘가에 아키서스의 권능이 숨어 있다는 정보였다.
“어딘가에?”
“지하…… 일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루포와 태현이 동시에 에드안을 쳐다보았다. 에드안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태현 님, 저걸 믿어야 합니까?”
“나도 지금 그 생각 하고 있었다.”
이미 일을 벌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선배님. 선배님.”
“……?”
“제가 싸운 거 보셨습니까?”
“어? 너도 있었냐?”
“…….”
“농담이다. 덩치도 산만한 게 그런 표정 짓지 마.”
정수혁은 크게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가 태현의 말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태현에게 몇 가지 조언을 받은 정수혁이었다. 물론 딱 거기까지였다.
태현은 기본적으로 남을 붙잡고 시시콜콜하게 조언을 해주는 타입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봐. 못 한다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넌 거기까지인 거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몰라. 알아서 잘 해봐라.
태현은 애초에 재능이 없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태현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태현이 정수혁에게 한 조언은 딱 한 가지였다.
-그냥 다른 건 모두 포기하고 하나만 집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