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4화
태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 중에서는 가장 좋은 아이템!
그렇게 모아놓았던 공적 포인트를 거의 써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프기는 했지만, 용용이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걸로 하겠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백작님.”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NPC를 보니 플레이어들이 왜 다들 작위를 갖고 싶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지 알 수 있었다.
대번에 달라지는 대접!
‘아버지 생각나는데.’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 김태산이 적 길드들과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 전, 사람을 섭외해서 그들이 모이는 PC방 회선을 전부 잘라버리게 한 것이다.
그러고는 그날 밤 신이 나서 태현을 잡고 외쳤었다.
-캬! 권력 맛에 취한다!
물론 지금은 말만 하면 부끄러워하는 흑역사가 되었지만…….
‘남은 공적 포인트는 300 정도인가. 이거 또 성장시키려면…… 애매한데.’
태현이 이렇게 공적 포인트가 높은 건 빌려 간 기사들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꽤 많이 성장시켜서 돌려보낸 덕분이었다.
물론 지금 있는 300으로는 기사들을 다시 빌리는 건 어림도 없는 일!
돈이 있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듯이, 공적 포인트도 마찬가지였다.
공적 포인트가 어느 정도 있어야 더 크게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태현은 지금 공적 포인트를 올리자고 왕궁 퀘스트를 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한 상황!
‘일단 이번 권능만 찾고 생각해 보자.’
-주인이여. 그걸 꼭 내가 먹어야 하는 것인가? 불길한 색깔이다.
“원래 몸에 좋은 건 다 입에 쓴 법이야.”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
용용이가 가방에서 튀어나와 날개를 파닥거렸다. 태현이 들고 있는 원기 회복 비약을 꺼려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흠. 용용아.”
-왜 그러나, 주인이여?
“저기 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보이냐?”
-보인다. 주인이여.
“저 구름 뒤에는 뭐가 있는지도 보이고?”
-잘 안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봐봐. 거기에 뭐가 있지?”
-아무것도…… 커헉!
용용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태현은 바로 비약을 들고 용용이의 목구멍 속으로 쑤셔 넣어버렸다.
“어허. 물지 마라.”
-나를 속였다! 나를 속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속인 건 아니지. 내가 약을 안 먹인다고 했었나?”
-무슨 그럴듯한 말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교훈을 하나 얻었구나. 인간을 믿지 말라는 교훈. 다른 드래곤 만나면 전해줘라.”
[라그아비의 원기 회복 비약을 사용했습니다.]
[신수 용용이의 상태가 회복됩니다.]
용용이의 몸에서 밝은 빛이 나며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태현은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용용이를 쳐다보았다.
[비약을 사용한 종족이 드래곤입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소모가 너무 심해 라그아비의 원기 회복 비약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습니다.]
“이거 사기 아냐?”
태현은 불평했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용용이는 사람 정도 크기로 커진 상태에서 멈췄다.
-주인이여!
“그래. 힘은 좀 돌아왔냐?”
-내 힘이 그래도 꽤 많이…… 우윽…… 우으으윽…….
“흠. 케인! 케인!”
태현은 빠르게 케인을 불렀다. 멀리서 멍하니 있던 케인은 태현이 부르자 달려왔다.
“왜 불러?”
“얘 좀 안고 있어라.”
“뭐? 내가 그래도 돼?”
케인은 깜짝 놀랐다. 딱 봐도 귀해 보이는 펫이었다. 태현 정도 되는 놈이 데리고 다니는 걸로 봤을 때 보통 퀘스트로 깨서 얻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한테 안고 있으라니!
‘설마 이 자식도 이제 나를 인정해주는 건가?’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용용이를 안았다.
그 순간!
-구아아악, 구아아악.
촥!
그대로 토해버리는 용용이!
[강한 산성 공격을 맞았습니다. HP가 빠르게 깎입니다.]
[아이템들이 부식됩니다.]
“…….”
엉망진창이 된 케인은 태현을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저런 능력도 있었네.”
* * *
“좋아. 이제 준비가 얼추 다 됐으니 출발을 할 건데. 그 전에.”
“……?”
“넌 빠지고.”
“아이고, 태현 님! 왜 저를!”
“시끄러운 놈은 에드안 하나만 있으면 돼. 나중에 퀘스트에 끼고 싶으면 다른 권능의 위치를 찾아오라고.”
태현은 냉정하게 펠마스를 발로 밀어냈다. 시끄러운 놈은 하나면 됐다.
“너희 셋은…….”
“잡일을 맡겨주십쇼!”
“잡템도!”
“뭐든 간에 잡 붙은 거면 다!”
“점점 잡스러워지는구나. 알겠다.”
이제 세 대장장이도 알고 있었다. 무슨 구박을 받고 무슨 고난을 겪어도 일단 태현을 따라다니는 게 개이득이라는 것을!
“그러면 저 셋이 따라올 테니 우리 케인도 따라올 거고.”
“…….”
“왜, 싫어? 하. 나 기분 상하려고 하네.”
“아, 아니다. 따라가게 해줘…….”
“크게 말해! 저기 대장장이들이 열렬하게 말하는 게 안 보여?”
“따, 따라가고 싶다……!”
피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케인의 표정!
“인원이야 이렇게 간다지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게 뭡니까?”
“우리가 적이 좀 많다는 거지.”
태현은 케인을 ‘네 탓 아니냐’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케인은 움찔했다.
“나, 나는 이제 쫓아오는 놈도 별로 없…….”
“사실 네 적보다는 내 적이 많아.”
“…….”
케인은 울컥했지만 참았다. 김지산이 손을 들며 물었다.
“태현 님. 적이 많다는 게 무슨 소리십니까? 사디크 교단도 사라졌는데…….”
“아. 맞다. 생각해 보니 사디크 교단도 적이지.”
“…….”
“사디크 교단 말고도 나 싫어하는 놈이 꽤 있단 말이야.”
판타지 온라인 1과 그를 엮는 사람은 아직 없었지만, 판타지 온라인 2에서 한 것만으로도 태현은 벌써 견제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방송이 나가고 인기를 얻자 태현한테 직접적으로 컨택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길드에 들어올 생각 없으십니까? 들어오신다면 전폭적 지지와…….
-우리 길드에 들어와라. 안 들어오면 널 부숴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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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드들은 그냥 흔한 섭외, 협박이었지만 <파워 워리어>길드는 뭔가 미묘하게 기분이 더러웠다.
‘나중에 만나면 패야지.’
어쨌든 이런 협박, 섭외, 권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졌다.
에랑스 왕국은 워낙 플레이어들이 많으니 태현이 발견될 경우 몇몇 길드들이 몰려올 수도 있는 것.
싸우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싸우다가 퀘스트가 꼬이는 게 문제였다.
태현은 누군가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에 훼방을 놓고 튀는 게 얼마나 쉬운지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제일 자주 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변장한다. 전부 다 겉모습을 좀 바꾸고 가자고.”
태현은 맥크레니 상단에서 꺼낸 망토 아이템들을 휙휙 던졌다.
짙은 갈색 망토:
내구력 15/15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릴 수 있는 망토. 쓰는 순간 '나 수상한 사람이에요'라고 전신으로 어필할 수 있다!
아이템 설명이야 이랬지만 원래 저렇게 겉모습 숨기고 다니는 플레이어들은 많았다.
태현 파티도 저렇게 하면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다.
* * *
“이야. 진짜 인기 좋네. 내가 반년 넘게 쌓아 올린 걸 그냥 한 번에…… 응?”
최상윤은 판타지 온라인 2 게시판에서 태현의 반응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뜨거울 정도!
물론 지금 방송이 나오고 있었기에 그런 관심을 받는 것이었겠지만, 이세연이나 스미스 같은 최상위권 랭커보다 더 관심을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들은 잘 안 알려진 것에 대해 더 크게 흥미를 가지는 법이었다.
-김태현 직업 대체 뭐냐?
-김태현 길드 없지? 같이 다니는 거 보면 길드 있는 거 같은데.
-거기 케인도 같이 다닌다며?
-내가 알기로는 그 성질 더러운 놈을 참교육시켜서 데리고 다닌다던데. 그게 가능한 거냐?
-내 친구가 직접 봤다는데 그렇다는데?
-뭐 어떻게 해야 그런 교육이 가능해?
온갖 정보들과 헛소문들이 돌아다니는 곳!
그 사이에서 최상윤은 눈에 띄는 리플들을 발견했다.
-야, 근데 김태현 있잖아. 혹시 판타지 온라인 1에서 김태현 아니냐?
-무슨 헛소리야? 그냥 이름 같은 거겠지.
-직업도 다르잖아.
방송에서 태현이 대장장이 기술을 쓰는 장면은 편집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현이 이렇게 잡캐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거기 섬에 직접 간 사람이거든? 근데 김태현이 대장장이 기술도 엄청 뛰어나다는 거야.
-뭐? 진짜?
-와, 판타지 온라인 1 김태현이 여기 김태현이면 진짜 대단한 건데?
-근데 그걸 숨길 이유가 있나? 그거 밝히면 팬들이 엄청 모일 텐데.
-몰라. 김태현 속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 어쨌든 그럴듯하지 않냐?
위험한 분위기!
원래 한 번 헛소문이 퍼지면 수습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이건 헛소문도 아니었다. 진짜였지.
최상윤은 머리를 굴렸다. 과연 이걸 어떻게 해야 수습할 수 있을까?
-야. 그거 내가 암.
-?
-뭔데. 알면 빨리 말해. 잘난 척하냐?
-김태현이 원래 판타지 온라인 1 김태현 빠였거든? 그래서 판타지 온라인 2도 닉을 김태현으로 짓고 대장장이 테크트리로 시작했나봐. 그런데 하다 보니까 대장장이가 너무 안 맞았던 거지.
-그럼 김태산이라는 가명은?
-원래 이름이 김태산이고 닉을 김태현으로 지은 거지. 대장장이 직업은 포기하고 다른 직업으로 갈아탔나 봐. 그래도 대장장이 기술 스킬은 남아 있는 거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거였어?
-김태현 따라 해서 지었는데 대장장이 접은 게 쪽팔려서 이름도 다시 김태산 쓰고 다닌 거라고 하더라고.
-어쩐지!
-김태현이면 지금도 대장장이 할 거야. 김태현 하면 대장장이. 대장장이 하면 김태현 아니냐.
헛소문의 양산!
최상윤은 몇 마디 말로 그럴듯하게 여론을 바꿔놓고 있었다.
-야,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아냐?
불리한 건 무시하고 도망!
어차피 헛소문은 퍼뜨리면 계속 돌아다니게 되어 있었다.
* * *
“오크를 위하여!”
[오크의 함성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명성이 150 오릅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길마님!”
“충성충성충성!”
“하하. 뭘 이런 걸 가지고.”
김태산은 기분 좋은 얼굴로 망치를 어깨에 댔다.
<최강지존무쌍> 길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고대 정령의 오크 지휘관>, <서리를 다루는 오크 주술사>, <전쟁 북의 오크 사제> 등 온갖 강력한 오크 전용 직업은 다 갖고 있었다.
길드원 전원이 오크에, 강한 직업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돈 많고 시간 많은 아저씨들이라는 점!
김태산은 예전 리X지를 할 때 느꼈던 활력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거 같아.’
직접 경험하는 것과 마우스와 화면으로 경험하는 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 들이마시는 신선한 공기를 컴퓨터로 느낄 수는 없었으니까!
“성주님!”
“…….”
“길, 길마님.”
“그래. 좀 외워라!”
“저기 야생 오크 전사들한테 쫓기는 거 플레이어 아닙니까?”
길드원의 말에 김태산을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야생 오크 전사들한테 쫓겨서 도망치는 플레이어 셋이 보였다.
“도와줄까요?”
“상관없겠지. 가자!”
“역시 길마님이십니다!”
“충성충성충성!”
“너희 나 놀리는 거 아니지?”
김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망치를 들고 앞장섰다. 태현만큼이나 김태산도 게임 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