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3화
이 퀘스트는 한마디로,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그거 확인해야 한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너는 좋은 경험을 한 거야!’였다.
‘아니, 그릇이 아니라 직업이나 캐릭터를 성장시켜야지! 없으면 그냥 끝이냐?’
가장 짜증 나는 건 이게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아키서스의 권능에 대한 정보가 나와도 진짜인지 헛소문인지 다 파악을 해야 한다는 것!
전설 직업이 괜히 전설 직업이 아니었다.
‘이럴 거면 강제 전직이나 시키지 말던가!’
강제 전직만 안 시켰어도 태현은 행복하게 백수 직업으로 잘 먹고 잘살았을 텐데!
태현은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평해봤자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불평하는 시간에 하나라도 더 확인해서 성장해야 했다.
“태현 님!”
“……?”
“제안이 있습니다!”
에드안이 치고 올라오자 자기 자리가 위험하다는 걸 느꼈는지, 펠마스가 적극적으로 손을 들었다.
“무슨 제안이지?”
“이 골짜기에 신전을 건설하는 겁니다!”
“……?”
신전.
상인이 상점에서 장사를 하듯이, 교단은 신전에서 활동을 했다.
세력이 강한 교단일수록 더 크고 많은 신전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잊혀진 신 아키서스는 신전이 하나도 없었다.
“언젠가는 만들 생각이기는 했는데 벌써 만들자고?”
태현은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다른 교단들 때문이었다.
아키서스의 권능을 얻을 때마다 마치 경고하듯이 뜨는 메시지창들!
-다른 교단이 널 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노골적으로 위험 신호였다.
여기 교단들이 새로 나타난 교단한테 ‘하하 우리는 같이 신을 믿는 동지 아닌가, 친하게 지내세’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괜히 받지도 않을 견제를 먼저 받고 싶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이제 견제를 꽤 받을 텐데…….
‘방송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지.’
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태현의 특집 방송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태현은 그 뒤의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었다.
‘길드도 없는 랭커는 가장 견제받기 쉬우니까.’
플레이어들은 서로 위로 올라가려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당연히 태현처럼 갑자기 튀어나온 랭커(물론 레벨은 아니지만!)는 견제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대형 길드 소속도 아니니 견제하기는 더 좋은 상대!
물론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태현도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공개한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판타지 온라인 1의 김태현이 그라는 게 알려지는 것이었다.
알려지는 순간 견제가 아닌, 원한을 해결하기 위해 몰려올 원수들!
태현이 판타지 온라인 1에서 워낙 강한 플레이어들을 쓰러뜨렸으니, 그들이 다 판타지 온라인 2에서 한 자리씩은 갖고 있었다.
‘설마 그렇게 감이 좋은 사람이 있지는 않겠지.’
김태현은 흔한 이름이었고, 더군다나 태현 덕분에 판타지 온라인 2에서 ‘김태현’이라는 닉네임으로 시작한 사람은 훨씬 더 많아졌다.
판타지 온라인 1의 김태현과 지금의 태현을 연관시킬 고리는 거의 없었다.
직업도 달라졌고, 거기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도 자연스럽게 달라졌고…….
* * *
-길마님. 방송 보셨어요?
-MBS 특집? 응. 재밌더라. 드래곤 소환하는 스킬이 뭔지 궁금했는데 그거까지는 안 나와서 아쉬웠어.
-방송국에서 길마님한테도 안 알려줬어요?
-그러면 안 되지. 방송국에서 알려줬으면 내가 화를 냈을걸? 그건 예의에 어긋나잖아.
이세연은 길드원에게 귓속말로 대답했다.
MBS와 전속 계약을 하지 않았지만, 이세연의 이름값은 어마어마했다.
당연히 방송국에서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상!
-나도 드래곤 하나 갖고 싶은데. 본 드래곤은 언제쯤 만들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뭐든지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이세연은 귓속말을 끊고 다음 퀘스트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거 같은데…….’
방송을 보고 나서부터 뭔가 희미하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방송 때문은 아니었다.
방송은 정말 재밌고 유익했다. 새롭게 나타난 랭커, 김태현.
퀘스트를 깨고 게임을 하는 방식도 흥미로웠고 실력도 대단했다. 도중에 길가에서 만난 그 플레이어였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이유 때문에 이렇게 신경이 오래 쓰일 리는 없었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뭘까, 뭘까…….’
희미하게 떠오를 거 같으면서 떠오르지 않는, 마치 재채기 나오기 직전의 그런 답답함!
* * *
저 멀리서 상상치도 못한 위협이 깨어나는 걸 눈치도 채지 못하고, 태현은 펠마스에게 말했다.
“벌써부터 신전 만들어도 되나? 괜히 다른 교단한테 공격받는 거 아냐?”
“몰래 만들면 됩니다!”
“…….”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가 점점 이상한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맥크레니 상단의 밀수품을 보관하는 것을 모자라서 이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신의 신전까지.
‘여기 터가 안 좋나?’
태현이 이 지역의 영주가 되기 전에 있었던 게 사교도인 사디크 교단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여기 터에는 뭔가 있었다.
“지금 밀수품 창고로 쓰는 것도 걸리면 한 소리 들을 텐데, 몰래 신전을 만들자고?”
“신전이라는 걸 밝히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
“여기 오는 모험가들은 태현 님을 매우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야 내가 싸게 팔아주니 그렇겠지. 그게 존경이면 사육사도 원숭이한테 존경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네.”
“……어쨌든,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펠마스는 열정적으로 그의 계획을 말했다. 계획을 듣던 태현의 표정이 점점 기묘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상점 건물을 신전으로 쓰자고?”
체면이라고는 전혀 없는 계획!
펠마스의 계획은 이랬다.
-임시로 쓰고 있는 상점들을 개조해서 나름 쓸 만한 건물로 만든다.
-그 건물을 아키서스의 신전으로 지정한다.
-상점 입구에 태현의 동상을 세워놓고 사람들에게 거기에다 대고 감사하게 한다.
“한 마디로 사기네.”
“어허. 말 조심해!”
에드안의 말에 펠마스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상점 건물을 신전으로 해놓는 건 좋다고 치자고.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런데 내 동상에다가 감사한다고 그게 되나?”
“태현 님. 태현 님은 특별하십니다.”
“……?”
“태현 님은 아키서스의 화신! 그러니까 태현 님에게 믿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 그건 바로 아키서스 신 자체에게 힘이 돌아가는 겁니다!”
“흠.”
펠마스는 열정적이었지만 태현은 아직까지 회의적이었다.
굳이 그렇게 건물까지 지어가면서 신전(임시)를 만들어야 할까?
펠마스 같은 추종자들이야 워낙 신 찾아다니면서 보낸 세월이 기니 한시라도 빨리 신전을 갖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아니었다. 신전을 세우고 세력을 모으는 것보다는 스스로 성장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
가치관의 차이!
“태현 님. 참고로 신전을 세우고 사람들의 기도를 받으면 신성이 오릅니다.”
“그래? 지금 당장 짓자.”
* * *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아직도 플레이어들이 꽤 보였다.
아니, 오히려 늘어난 편이었다.
단점이었던 마을의 부재가 태현 덕분에 해결된 것이다.
맥크레니 상단에서 상인들을 불러와서 싸게 아이템들을 팔아주고 잡템들을 사가니 플레이어들은 마음 놓고 주변을 돌 수 있었다.
“어? 건물이 생겼네?”
“이야. 빠르다. 이러다가 마을 생기는 거 아냐?”
“마을 생겼으면 좋겠다. 퀘스트 좀 나오게.”
잡담을 하며 상점 안으로 들어간 플레이어들. 안에 있던 후덕한 인상의 상인 NPC가 그들을 반겼다.
“어서들 오시게! 들어오기 전에 영주님의 동상에 인사를 하고 들어오게나.”
“네?”
“여기는 영주님의 땅. 우리가 장사를 해서 먹고살 수 있는 것도 다 영주님 덕분 아니겠는가? 거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어…… 네.”
“인사 정도야…….”
플레이어들은 얼떨떨했지만 태현의 동상에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였다.
닳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고맙기도 했으니까.
“저 동상은 언제 만들었대?”
“그보다 누가 만든 거야? 뭔가 좀 허접한…….”
상점에 들른 플레이어들마다 동상에 인사를 하니 그 숫자가 꽤 됐다.
[허름한 하급 신전에서 14명이 기도를 했습니다. 신성이 1 오릅니다.]
[허름한 하급 신전에서 23명이 기도를 했습니다. 신성이 1 오릅니다.]
“……너무 적게 오르지 않나?”
말 위에서 태현은 중얼거렸다. 물론 이렇게라도 오르는 게 어디냐, 싶기도 했지만.
‘더 높게 올리려면 더 좋은 신전을 짓고 더 많은 사람을 모아야 한다 이거지?’
왜 대륙의 교단들이 큰 신전을 짓고서 신도들을 모으는지 알 것 같았다.
‘뭔 클릭할 때마다 1원씩 주는 광고도 아니고…….’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일단 맥크레니 상단에게 맡겨놓고, 태현은 일행을 데리고 에랑스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에랑스 왕국. 대륙 중앙, 잘츠 왕국의 서쪽에 위치한 넓은 대국.
마탑은 물론이고 여러 시설이 많아 초보자들이 시작하기 좋은 나라였다. 그만큼 플레이어들의 숫자도 많았다.
‘가서 직접 확인을 해야지…….’
“태현 님. 에랑스 왕국으로 가려면 바로 배를 타고 가도 되고, 아니면 계속 북쪽으로 가도 되는데 왜 이렇게 가는 겁니까?”
“왕궁에 잠시 들리려고.”
대규모 토벌 퀘스트를 끝내고, 태현이 공적치 1위로 생각지도 못한 영지와 작위를 받았지만, 그래도 왕궁 내의 공적 포인트는 아직도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그걸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다. 왕국군 병사들을 빌리거나 아이템을 요구하거나…….
일단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아껴뒀지만, 태현은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한동안 영지는 버려둘 테니까.’
영지를 버려 두기로 결정한 이상 굳이 아껴둘 필요가 없었다.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공적 포인트는 얼마나 있지?”
“예. 백작님. 백작님의 공적 포인트는 현재 5208입니다.”
“성장을 촉진시키거나 힘의 회복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아이템 있나?”
“따라오십시오. 왕궁 창고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태현이 선택한 건 용용이의 회복이었다.
행운을 그렇게 많이 써넣어서 소환을 했으니 어떻게든 써먹을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쉬워서 밤에 잠을 못 잘 것!
-주인이여. 현명한 선택이다. 내 힘이 회복된다면 다른 하찮은 것들보다…….
“지금 저 세 얼간이도 너보다는 더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
따라다니면서 잡일과 짐꾼을 맡는 세 대장장이!
용용이는 매우 굴욕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된다! 하다못해 저놈과 비교해다오!
용용이가 가리킨 건 케인이었다. 그래도 레벨은 더 높아서 고른 것 같았다.
“저 얼간이들 싫어서 고른 게 저 멍청이냐?”
태현은 떠드는 걸 멈추고 왕궁의 창고에서 아이템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급속 경험치 성장의 비약:
몸에 좋은 것들을 골라서 넣어 만든 경험치 성장의 비약이다. 이걸 만든 마법사 산수뉴는 ‘이게 모험가한테는 참 좋은데~ 설명할 수는 없고~’라고 왕 앞에서 말했다가 처벌받았다.
사용할 경우 72시간 동안 경험치 300%.
[공적 포인트 1200]
‘좋긴 좋은데…… 지금 용용이를 빠르게 회복시키려면 내가 경험치 비약을 먹고 사냥하는 걸로는 무리일 거 같은데. 한 번에 크고 강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게 필요해.’
태현은 아이템 하나하나를 확인해 봤다. 왕궁 창고에 있는 만큼 효과 하나는 탁월했지만, 지금 쓰기에 애매하거나 공적 포인트에 비해 아까웠다.
그러던 도중 발견한 한 아이템!
라그아비의 원기 회복 비약:
마법사 라그아비는 수많은 비술로 몸이 약해지자, 원기를 회복할 방법을 고민했다.
이 비약은 그 결과물이다.
사용할 경우 사망 페널티 100% 회복. 각종 저주로 인한 스탯, 스킬 감소 회복.
[공적 포인트 49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