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1화
-김태현 플레이어, 정말 대단합니다. 여기서 보면 불의 마수가 몸을 낮춰서 달리잖습니까? 영상으로 보면 쉬워 보이지만 이게 직접 하는 거다 보니까 균형을 맞춰야 하거든요. 그 상황에서 공격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진짜 계속 말하고 있지만, 몇 번을 말해도 모자라네요. 타고난 센스입니다!
정수혁이 영상을 보며 눈을 끔벅이자, 태현은 영상을 멈췄다.
“자. 여기서 나온 플레이어 이름은?”
“김태현……?”
“내 이름은?”
“김태현 선배님……?”
“여기서 뭐 연상되는 거 없냐? 이 둘 얼굴이 뭔가 비슷하지 않냐?”
“헉, 허어어어억!”
정수혁은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그 김태현이 이 김태현이었다니!!
“선, 선배님!”
“달라붙지 마라. 더우니까.”
“제발! 저를 가르쳐주십시오!”
정수혁은 무릎을 꿇었다. 사정을 모르고 보면 정말 간절하고, 비장한 모습이었다.
태현마저 흔들릴 정도로!
그러나 태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게 지금 다 인기 있으려고 하는 짓이라 이거지?’
한심의 극치!
태현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정수혁을 쳐다보았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선배님과 비교한다면 많이, 아니 엄청나게 부족하다는 건 압니다! 그래도 하라는 모든 걸 할 테니 따라다니면서 배우게 해 주십시오!”
“넌 아무리 봐도 체대를 갔어야 했어. 하긴, 아까 몸 놀리는 거 보니 체대도 안 맞기는 했겠지.”
태현은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정수혁은 반짝이는 눈망울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좋아. 네 문제점이 뭔지는 봐주지. 같은 과 선배의 정이다.”
“선배님……!”
“야. 야. 떨어져.”
정수혁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태현을 껴안으려고 들었다.
대낮에 과 캠퍼스 내에서 껴안으려고 하는 두 덩치 큰 사내들!
‘어머, 어머…….’
‘고백한 거 아냐?’
“안 떨어지면 집어 던진다.”
“옙.”
* * *
태현은 노력하고 열심히 하려는 사람한테 약했다. 그 이유가 불순하고 한심해도 말이다.
정수혁은 태현한테 빌붙으려는 게 아니라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뭔가 하고 싶어 했다. 그런 점이 태현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선배님! 어디 계십니까!”
약속 장소인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도착한 정수혁은 목청껏 외쳤다.
“선배님?”
“선배님??”
김지산과 박성찬은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한숨을 쉬며 정수혁에게 다가갔다.
“눈이 달렸으면 눈을 좀 써라. 내가 여기 주인인데 어디 있겠냐?”
“네, 넵! 죄송합니다!”
정수혁은 바짝 군기가 들어 있었다. 그걸 본 김지산과 박성찬이 건들거리며 다가갔다.
새로 들어온 경쟁 상대의 예감!
게다가 태현과 현실에서 아는 사이 같았다.
‘기선 제압을 해야 해!’
‘그렇지? 우리가 먼저 왔다고!’
물론 자기들 딴에는 건들거리려고 다가간 거였지만, 태현 눈에는 술 먹고 다리 풀린 걸로 보였다.
“흠, 흠흠. 새로 온 사람 같은데 우리가 누군지 아나?”
“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
순진한 정수혁은 그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우리가 바로 그 대장ㅈ…….”
“헛소리하지 말고 비켜. 저리 가서 저 갑옷이나 손질 끝내.”
“예?! 오늘분 다 했는데요?”
“그래. 원래 일은 빨리 끝내면 또 생겨나는 법이거든. 몰랐지? 그렇다고 천천히 할 생각은 하지 마. 내가 너희 속도 기억해 놨으니까.”
“……!”
태현은 이 대장장이들을 그냥 놀려먹지 않았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는 현재 상단의 간이 상점만 있었다. 거기서 파는 무구들의 손질이나 강화는 전부 대장장이들의 몫이었다.
거기에다가 찾아오는 플레이어들이 수리나 버프를 걸어달라고 하면?
태현은 바로 대장장이들을 시켰다.
덕분에 태현의 인기는 매우 치솟았지만 대장장이들은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레벨 60대라고 했나? 장비는 그게 다고?”
“네!”
정수혁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로브를 입고 자수정이 박힌 스태프를 들고 있는 정수혁은 그럴듯한 마법사였다.
덩치만 빼고!
“60이면 아주 약하지는 않겠지. 지금 플레이어들 수준에서 중수와 고수 사이 어디쯤이겠고. 직업은?”
“에랑스 마탑 마도사입니다.”
“잠깐. 그거 일반 직업 아닌가?”
일반 직업-희귀 직업-영웅 직업-전설 직업으로 나눠지는 직업 구분.
물론 위로 올라간다고 무조건 더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희귀 직업 중에서는 영웅 직업보다 더 좋은 직업들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사람들은 일반 직업보다는 희귀 직업을, 희귀 직업보다는 영웅 직업을 갖고 싶어했다.
당연히 전직을 한다면 얻기 어려운 걸 택하는 게 사람의 마음!
판타지 온라인 2가 막 시작했을 때면 모를까, 지금 일반 직업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는 오히려 보기 드물었다.
희귀 직업 전직 퀘스트는 공개된 게 꽤 많았기에 그걸 찾아서 깰 수 있었던 것이다. 난이도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일반 직업 맞습니다.”
“에랑스 왕국은 플레이어들 엄청 많지 않나? 마탑 주변에서 퀘스트도 엄청 많이 나올 거고. 희귀 직업 퀘스트 안 찾아봤냐?”
“저는 이 직업을 좋아합니다. 처음 얻어서 애착도 가고…… 그리고 중요한 건 제가 어떻게 키우느냐 아니겠습니까?”
마치 면접을 보기 위해 태현이 마음에 드는 대답만 외워서 온 것 같은 기특한 태도!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뒤에서 요령 피우려고 눈치를 보는 대장장이들과는 전혀 다른 성실함이었다.
‘이래서 성실한 놈이 좋다니까!’
메시지창이 있다면 태현의 호감도가 +5 정도 올라갔다는 창이 떴을 것이다.
“어…… 별롭니까? 지금이라도 퀘스트 찾아볼까요?”
“아주 좋은 태도야. 기특하군. 좋아. 테스트 몇 개 해볼까?”
“네, 넵!”
“간단한 테스트야. 케인! 이리로 와봐라.”
태현은 케인을 불렀다. 역시 이런 실험을 할 때 가장 편하게 굴릴 수 있는 게 케인이었다.
“난 또 왜…….”
“이 마법사 친구한테 마법사 상대하듯이 덤벼봐. 진짜 공격하지는 말고.”
그렇게 말한 다음 태현은 정수혁에게 눈을 돌렸다.
“마법사가 근접 공격하는 직업 상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냐?”
직업마다 일종의 공식 같은 게 있었다. 전사로 마법사를 상대하기, 궁수로 전사를 상대하기, 도적으로 전사를 상대하기…….
물론 태현은 그 공식을 역이용하다 못해 아예 파괴해서 유명해진 경우였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런 공식을 외웠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스킬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태현이 묻자 정수혁은 바로 대답했다.
“일단 저한테는 방어 마법 걸고 상대한테는 디버프 건 다음 그 두 개가 끝났으면 가장 빨리 걸 수 있는 공격 주문으로 넘어가서 거리를 벌려야 합니다!”
“B- 주지. 너무 평범하잖아. 어쨌든 괜찮은 방법이니 한 번 해보라고. 이놈 상대로.”
태현은 정수혁의 센스가 어떤지 테스트를 해 볼 생각이었다.
과연 얼마나 센스가 없길래 그한테 찾아와서 엉엉 울면서 부탁을 할 정도일까?
‘그러고 보니 유지수 걔는 뭐 하고 있으려나?’
* * *
“유지수는 우리의 대장! 유지수는 우리의 대장!”
“찬양의 노래를 부르자!”
“제발…… 좀 조용히 해…….”
유지수는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렸다.
파이드 길드는 좋은 길드였다. 소규모 인원에, 길드원들도 모두 친절했다. 최상윤이 추천해 줄 만한 길드였다.
파이드 길드에 들어간 유지수는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했다. 원래부터 잠재력이 있었다.
뛰어난 사격 실력에, 강력한 영웅 직업인 타이럼 레인저.
거기에 본인이 각오하고 엄청나게 집중을 하자, 성장 속도는 미친 듯이 빨랐다.
아직도 레벨 50대에서 머무르고 있는 태현이 들었다면 억울해서 가슴을 쳤을 사실!
파이드 길드원들의 지원을 받으며, 타이럼 레인저 직업 퀘스트를 연속으로 해결해나가며 레벨을 올린 유지수는 더 이상 초보가 아니었다.
문제는…….
“타이럼 만세!”
타이럼 레인저는 타이럼과 연관이 깊은 직업.
직업 퀘스트를 깨면 깰수록 타이럼에서의 평가가 높아지고 타이럼 사냥꾼 사이에서 위치가 높아졌다.
그리고 타이럼 사냥꾼들은 같이 다니면 부끄러운 NPC 순위에서 무조건 순위권에 위치할 NPC들!
유지수는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부끄럽다고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던전 지하 3층까지 오늘 뚫고…… 이번 주 안까지는 클리어해야지.’
태현의 요즘 활약은 방송으로 찾아서 보고 있었다.
무시무시할 정도의 활약!
그녀도 나름 많이 레벨이 올랐지만, 지금 태현이 깨고 있는 퀘스트를 보면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발목을 잡지 않고 같이 대등하게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는 더 올라가야 했다.
‘이걸 깨면 <잊혀진 요새의 비밀>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어. 그러면 타이럼 사냥꾼들을 데리고 다음 퀘스트로 갈 수 있고…….’
물론 유지수는 태현의 레벨이 아직도 50이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 * *
“좋아, 준비하시고. 시작!”
쾅!
케인은 태현이 말하자 바로 뛰어들었다. 정수혁은 허둥지둥 스태프를 꺼내 겨눴다.
먼저 자기한테 방어막 마법을 걸어야 했다. <하급 고속 방어막> 같이 빨리 걸 수 있는 방어막 마법이 좋았다.
그다음은 상대방의 접근을 막는 마법을 걸어야 했다. <이동 속도 감소>나 <하급 혼란>, <미끄러지기> 같은 디버프 마법이 좋았다.
여기까지 한 다음에는 이제 공격에 들어가야 했다. 거리를 벌리거나 상대방을 먼저 쓰러뜨리거나, 그건 선택이었다.
그러나 정수혁은…….
“?!”
달려오던 케인은 뜨는 메시지창을 보고 놀랐다.
[중급 방어막을 부여받았습니다. 일시적으로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왜 나한테 거냐?”
대답도 하기 전에 정수혁은 넘어졌다. 자기한테 디버프 마법을 건 것!
그걸 본 태현은 감탄했다.
“상대방한테는 버프를 걸어주고 자기한테는 디버프를 건다…… 대단한데. 이런 컨셉으로 방송을 하는 건?”
“다,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좋아. 다시 해보라고.”
그러나 몇 번을 해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태현은 정수혁이 센스가 없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스킬 여러 개를 동시에 써야 하는 순간이 오면, 정수혁은 바로 손이 꼬였다.
자기한테 공격을 하거나 상대방한테 버프를 걸어주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스킬을 쓰거나…….
보통은 손이 느려도 이런 걸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좀 익숙해지게 되어 있는데, 정수혁은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
절망적일 수준의 둔재!
정수혁은 무릎을 꿇고 털썩 앞으로 주저앉았다. 케인마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정수혁을 쳐다보았다.
“저런 놈은 어디서 데려온 거냐?”
“오다가 주웠지. 도와달라고 하는데 저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닌데.”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봐도 정수혁은 도와줄 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저걸 어떻게 도와줘? 중급 방어막 마법을 자기한테 거는 게 아니라 나한테 걸더라.”
“그래. 나도 봤거든? 중급 방어막 마법을…… 잠깐, 중급 방어막을 너한테 걸었다고?”
“왜?”
“하급 고속 방어막이나 그런 게 아니라?”
태현은 멈칫했다. 정수혁은 일반 직업이니 갖고 있는 마법도 그렇게까지 특별한 마법은 아닐 것이다.
“아니, 중급 방어막 맞는데.”
“중급 방어막이면 너무 빨리 걸었는데?”
“설마 지금 그걸 잰 거냐?”
“일부러 잰 건 아니고, 내가 워낙 잘난 놈이라서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그게 구분이 되네.”
“…….”
케인은 입을 다물고 속으로 꿍얼거렸다.
‘재수 없는 놈!’
타고난 재능이란 게 이렇게 불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