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40화
“아주 좋아.”
그리고 그걸 태현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 병사들은 맥크레니 상단이 고용한 용병들!
“쟤네들 떠나면 맥크레니 상단 이름으로 장사를 시작해. 포션이나 그런 거. 던전 앞에서 하는 것처럼. 무슨 소리인지 알지?”
“당연히 압니다. 이윤은 얼마나 낼까요? 50%? 100%?”
“너 바보냐? 밀수용으로 만드는 곳에 그렇게 쥐어짜면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거 아냐. 관심 살 일 있어? 이윤은 안 내도 상관없으니까 구색만 갖춰.”
겉으로 보기에는 이 영지의 백작인 태현이 주변에서 사냥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위해 간이 상점들을 몇 개 설치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속사정은 전혀 달랐다.
몰래 만든 비밀창고를 위장하기 위한 겉모습!
‘골짜기 안 동굴이 구불구불한 게 비밀창고 만들기는 딱 좋겠네.’
밀수로 나오는 골드는 태현과 맥크레니가 사이좋게 나눠 가지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영지를 잘 경영해서 수입을 올리는 걸 꿈꿀 때, 태현은 영지를 비밀 창고로 만들어 수입을 올리는 걸 꿈꿨다.
발상의 전환!
* * *
“어? 새로 상점 들어왔네? 여기서 장사를 해? 신기한 NPC도 다 있네.”
“이번에 퀘스트 깨고 백작 자리 받은 김태현 있잖아. 그 김태현의 영지가 여기라는데? 그래서 상점을 갖다 놓은 거 같더라.”
“어휴. 얼마나 뜯어가려고…….”
굳이 플레이어들이 오가는 곳에 상점을 새로 설치하는 데에는 이유가 하나밖에 없었다.
돈!
“왜 줄이 있지?”
“몰라. 새로 나온 템이 많나 보지.”
조금 기다리자 그들도 상인 NPC를 만날 수 있었다.
“체력 회복 포션 10개 묶어서 얼마…… 헉?!”
충격적인 가격표!
순간 그들은 그들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이, 이거 진짜로 이 가격에 팔아요?”
“물론입니다. 손님.”
“살게요! 주세요!”
상인 플레이어들이 와서 팔던 것보다 거의 절반 수준의 가격!
그제야 그들은 왜 줄이 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소문이 퍼진 것이다.
이렇게 싸고 좋은 상점이라니……!
“와. 플레이어가 영주 자리 얻으면 솔직히 더 세금 뜯을 줄 알았는데. 대단하지 않냐?”
“진짜. 세금도 안 뜯고, 여기 상점도 봐. 거의 거저 아니냐? 그냥 원가로 파는 거 같은데?”
태현이 세금을 걷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걷는 순간 다른 사냥터 갈 테니까.’
이 골짜기는 세금 내가면서 싸울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에게는 태현이 그들을 배려해 준 것으로 느껴졌다.
-와. 김태현 쩔더라. 이번에 영주 자리 받은 거 어떻게 쓰는지 봤냐? 세금도 안 걷고 상인들 데려와서 원가에 아이템 팔더라.
-진짜? 욕심이 없나?
-나도 세금 좀 때리면서 그럴 줄 알았는데 아예 안 때려. 진짜 대단하지 않냐? 다른 대형 길드도 좀 본 좀 받았으면 좋겠다.
순식간에 게시판에서는 태현을 찬양하는 이야기가 퍼졌다.
물론 태현을 좋아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거 다 속임수야. 지금이야 사람들 적으니까 친절하게 구는 거지, 나중에 사람들 모이면 세금 걷는다. 백 퍼센트임.
-맞아. 지금은 그냥 참는 거지.
-ㄴ이 자식 김태현한테 쫓겨난 상인임.
-ㄴㄴ그러게 작작 남겨 먹었어야지!
그러나 태현을 비판하는 순간, 순식간에 몰려서 구박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태현의 평가가 하늘을 치솟을 정도로 솟구치려고 할 때, MBS 방송국에서 첫 특집이 시작되었다.
카테란드 섬 퀘스트 독점 방송!
김수아가 진행하고 유명 게스트들이 참가해 태현의 영상을 보며 해설하는 게임 방송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송인들이 아닌, 특집 제목을 보고 몰려왔다.
-진짜 카테란드 섬 퀘스트임?
-골드 드래곤 다시 볼 수 있는 거?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반응은 뜨거웠다.
그리고 방송이 나가자…….
그야말로 반응은 폭발적!
-진짜 대단하다! 봤냐?
-제발 한국인이라면 김태현 응원합시다!
-내가 말했지? 김태현 랭커라고. ㅇㅈ? 어 ㅇㅈ?
-나 남자인데 김태현한테 반할 거 같다. 말하는 거 봤냐? 그냥 말하는데 분위기 나오는 거 봐.
정작 본 영상을 본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저런 말을 했었나?”
분명 다른 플레이어들을 버리려다가 퀘스트 때문에 구하러 간 거였는데, 방송에서는 뭔가 좀 많이 착하게 나와 있었다.
‘상관없나?’
태현은 관심을 껐다. 방송사와 계약한 건 어머니한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어떻게 포장을 하든 태현과는 상관없는 일!
* * *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의 선행(?), 그리고 연속으로 이어진 방송. 태현의 인기가 한껏 치솟은 이때.
태현은 대학교에 와있었다.
‘대학생이 가장 기쁠 때는 역시 휴학할 때지!’
지금 시대에 휴학하려고 대학교까지 직접 와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지만, 워낙 기뻐서 별로 신경도 안 쓰였다.
이걸로 게임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선배!”
뒤에서 들리는 걸걸한 목소리.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
처음 보는 얼굴이 뒤에서 있었다. 태현처럼 험상궂은 얼굴에 덩치까지.
뭔가 체육 계열 느낌이 물씬 나는 모습!
“사람 잘못 본 거 아냐?”
“김태현 선배 맞으시죠?”
“맞는데…… 나는 국문과거든?”
“예? 저도 국문괍니다.”
“뭐? 체대가 아니라?”
“…….”
“하하. 뭐 착각할 수도 있지. 그래서 내 후배라고?”
“예! 국어국문학과 정수혁이라고 합니다!”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
‘아무리 봐도 체육계인데?’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험상궂게 생긴 거라면 태현도 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후배님. 나는 왜 불렀지? 혹시 과 OT, MT, 개강총회, 하여튼 뭐든 간에…… 과에서 하는 행사는 안 간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철벽을 치는 태현!
“아. 그리고 돈도 안 낼 거야. 돈 걷고 싶으면 다른 사람 찾아.”
“아, 아니. 그게 아닙니다.”
정수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태현보다 큰 덩치에 그러니까 영 어색했다.
“선배님이 게임을 잘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
“저와 같이 판타지 온라인 2를! 뜨겁게 질주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
태현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놈이 지금 방송을 보고 나한테 빌붙으려고 온 건가?
‘그럴 수도 있지.’
물론 태현은 그런 사람을 매우 싫어했다.
태현이 좋아하는 건 재능이 있든 없든 열심히 노력하고 스스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나름 친절했다.
그에 비해 태현이 싫어하는 건 스스로 노력은 안 하고 편한 길을 찾으며 업혀 가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태현도 본색이 나왔다.
방송을 보고 빌붙으러 왔다면 봐 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태현이 말하려고 한 순간, 정수혁이 먼저 말했다.
“혹시 판타지 온라인 2를 아직 안 하고 계시다면, 제가 버스를 태워드리겠습니다. 이래 봬도 레벨 63이니까 골드나 초보자 아이템은 충분히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정수혁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태현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방송을 보고 온 게 아닌 거 같은데?’
방송을 보고 왔으면 저런 태도를 보일 리 없었다.
“야. 내가 판타지 온라인 2 하고 있는 걸 몰랐냐?”
“네? 하고 계셨습니까?! 더 잘됐네요! 같이하시죠!”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고. 왜 같이하자는 건데?”
“그야 선배님이 과에서 게임을 잘하신다고…….”
“내가 게임만 잘하진 않거든? 공부도 운동도 다 잘하는데 나한테 같이 와서 공부하자는 놈은 없었어. 이유가 뭐야? 왜 갑자기 같이하자는 건데?”
“그…… 저는…….”
정수혁이 우물쭈물하더니, 결국 털어놓았다.
“게임을 너무 못해서요…….”
“……?”
“레벨은 63인데 너무 못해서 파티도 잘 못 들어가고, 점점 밀리니까…… 게임을 잘한다고 알려진 선배님이라면 뭔가 도움을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여쭤봤습니다…….”
“근데 넌 내가 게임 잘하는 건 어디서 들었냐? 나 과 생활 안 한 지 꽤 됐는데.”
“어…… 그러니까…….”
-김태현? 그 자식? 잘하는 건 게임밖에 없는 개XX지!
-근데 걔 과 수석이잖아.
-집에 돈도 많고.
-싸움도 잘하잖아. 네가 덤볐다가 떡이 되도록…….
-닥쳐.
태현한테 원한이 맺힌 동기들의 대화를 훔쳐 들은 정수혁이었다.
“뭐 어디서 들었는지는 상관이 없고. 네 직업이 뭔데?”
“마법사요.”
“뭐? 마법사인데 파티에 못 들어가?”
마법사나 사제 같은 직업의 특징은?
파티에서 없어서 못 구하는 직업이라는 것!
그에 비해 평범한 전사나 도적 같은 직업은 발에 챌 정도로 구하기 쉬웠다.
그런데도 파티에서 쫓겨나다니.
‘얼마나 센스가 없는 거야?’
흔히들 도적같이 근접에 붙어서 온갖 스킬 콤보를 넣는 직업이 센스와 재능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러나 마법사도 재능이 꽤 많이 필요한 직업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거 같아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그 순간 써야 할 스킬들을 연속으로 파바바박 써야 하는 것이다.
‘둔하고 손 느린 놈은 마법사 하기 힘들지.’
“그, 그래도 선배님 버스 태워드릴 수 있습니다! 금세 제 레벨 따라잡으실 테니, 레벨 따라잡으면 저 좀 도와주세요! 게임을 잘하고 싶습니다!”
“호. 태도가 마음에 드는군.”
무작정 기대려는 게 아니라, 상대와 대등하게 거래를 하려는 태도가 태현의 마음에 들었다.
“근데 난 네 버스가 필요 없단다.”
“예? 저보다 레벨이 높으신 건가요?”
“어…….”
“그렇군요.”
사실 높지는 않았지만, 정수혁은 알아서 오해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태현이 레벨마저 높다면 정수혁은 부탁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게임은 왜 잘하려고 하는 거냐?”
“예?”
“게임 못 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잖아. 재능이 없으면 그냥 접고 다른 거 하면 되지. 아니면 즐겜하던가. 굳이 그렇게 목숨 걸고 할 이유가 있냐?”
“있습니다!”
정수혁은 불끈 주먹을 쥐며 말했다. 보통 험악한 모습이 아니었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뭔데?”
“판타지 온라인 2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게임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뭐 그렇겠지.”
“그렇다면 앞으로 가장 유력한 게임 방송도 결국 판타지 온라인 2 방송이 될 겁니다.”
“그것도 그렇겠지.”
“그렇다면 BJ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판타지 온라인 2를 잘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음…… 뭐 그렇긴 한데…… BJ로 성공해서 뭐하게? 어렸을 때의 꿈이 방송인이었냐?”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뭔데?”
“방송으로 성공하면 인기가 많아집니다!”
“…….”
태현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인기가 많아지면 저도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 커헉! 왜 이러십니까!”
“에라이, 이 한심한 놈아!”
태현은 놀라운 발기술로 정수혁을 넘어뜨렸다. 정수혁은 영문도 모르고 몸을 웅크렸다.
덩치만 크지 싸움 센스는 전혀 없는 둔한 몸!
“여자친구 하나 사귀자고 이러는 거였냐?!”
“저, 저는 진지합니다!”
“그래. 너야 진지하겠지. 그렇다고 안 한심한 건 아니고…….”
“선배님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한 정수혁의 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제가 방송인으로 성공하면 선배님은 무조건 1순위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언제나 좋은 말만 해드리고…….”
“야. 야.”
태현은 더 듣기가 지겨워져서 정수혁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의 핸드폰을 뺏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기다려봐.”
태현은 게시판에 올라온 그의 영상 중 하나를 켰다. 그리고 정수혁에게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