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9화
그렇게 케인의 일이 마무리되고 있을 때, 게임 밖에서는 폭풍이 치고 있었다.
태현이 처음으로 백작 자리를 받고 영지까지 받은 게 바로 영상으로 올라온 것!
보고 있는 플레이어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백작?! 진짜 백작임? 자칭이 아니라?
-와 개쩐다!! 진짜 개부럽다. 난 성이나 도시도 필요 없어. 마을 하나만 줘도 좋겠음!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세금 팍팍 물려야지!
-그러면 거기를 안 지나가지 멍청아. 마을 하나면 거길 안 지나고 다른 데로 가도 상관없잖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현장에서 본 사람 정보 좀 더 풀어봐. 어디 영지냐? 권한 어디까지 준 거야?
-설마 왕국군도 좀 줬을까?
-제노마 시 같은 곳 준 거 아니겠지?
-우와…… 그러면 진짜 대박 아니냐?
-그보다 왜 김태현인데 김태산으로 가명 쓰고 다닌 거지?
-알 게 뭐야. 가명 쓰는 사람이 한둘이야?
-김태현으로 이름 지은 게 부끄러웠던 거 아닐까?
-ㅋㅋㅋㅋㅋ. 가능성 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 태현이 한 짓 때문에 닉네임을 김태현으로 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정작 짓고 보니 자기랑 비슷한 사람이 많아서 부끄러워서 닉을 숨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했지만, 몇몇 플레이어들은 아니었다.
“으윽!”
구성욱은 뒷목을 잡았다.
설마 저게 김태현이었다니!
‘왜 정체를 숨기고 다녀서 사람을 몇 번이고 헛발질하게 만드는 거야……!’
그는 아직도 <차가운 울음의 검> 제작법을 찾고 있었다.
타이럼 시에서 온갖 수모와 고난을 겪고, 뺑뺑이를 다 돈 다음 그는 결국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제작법은…… 후후…… 내 제자한테 물려줬지.
빠직!
구성욱이 조금만 더 성질이 급했다면 구렌달을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성욱은 정신줄을 잘 붙들었다. 참고 견뎌낸 것이다.
“후…….”
그리고 그다음에는?
태현을 찾아 헤맸다. 물론 발견할 수 없었다. 반쯤 포기하고 다른 퀘스트를 하고 있을 무렵…….
영상에서 나오는 그 얼굴!
“크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악!”
이제까지 태현이 나오는 영상을 봤을 때 ‘대단하네~’ ‘쟤는 뭐 하는 사람이지? 랭커인가?’하고 넘겼다.
그리고는 태현을 찾으려고 온갖 뻘짓은 다 했던 것이다.
그 헛된 시간들을 생각하니 바닥에 구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흑흐긓그흐긓…….”
* * *
“아주 좋아!”
구성욱이 이불을 차고 있는 동안, 배장욱은 신이 나서 모두를 재촉하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굳이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이번 퀘스트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김태현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때 특집 방송을 한다면?
사람들의 주목은 떼놓은 당상!
‘시청률 1위는 우리 거다!’
“빨리! 빨리 영상을 편집하자고! 지금 어느 정도까지 됐지?”
태현이 보낸 카테란드 퀘스트 영상은 그야말로 보물이었다.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와 관련된 정보는 잘라낸 상태지만, 그래도 카테란드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에는 충분!
태현이 어떻게 해적들을 속이고 어떻게 던전을 돌파해서 어떻게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던 것들이 다 나와 있었다.
거기에다가 결정타로, 골드 드래곤까지!
‘대단하다, 대단해!’
온갖 게임 영상에 익숙한 배장욱도 태현이 준 영상에는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 상황에서 골드 드래곤을 불러내서 쓸어버리는 압도적인 영상미!
“저……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
“이거 보시면…….”
직원 중 한 명이 영상을 멈추며 말했다.
-완벽하게 통하든, 통하지 않든. 해적들이 거래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일단 섬에만 들어가면 돼. 그러면 몰래 지하로 내려갈 수 있으니까.
-해적들한테 잡힌 플레이어들? 굳이 구해줄 필요 있나? 인질로 쓰면 버리지 뭐.
-이런. 퀘스트 떴잖아. 구해줘야겠네.
태현의 이미지를 완전히 잡아먹는 대사들!
모두 태현이 직접 한 말이었다. 카테란드 섬 퀘스트를 깨면서 한 말들.
태현은 이미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기에 이걸 그냥 통째로 보냈지만, 방송사는 아니었다.
“이거…… 편집할까요?”
“바로 그거야. 너도 이제 방송을 좀 아는구나?”
시청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내용으로 ‘살짝’ 고치기!
-해적들이 거래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럼 뭐가 중요한 겁니까?
-해적들한테 잡힌 플레이어들? 구해줘야겠네.
악마의 편집!
직원은 스스로가 만들어놓고서도 솜씨에 감탄했다. 너무 감쪽같았던 것이다.
“어떻습니까?”
“좋아. 이대로 가자고. 분위기 깰 대사들은 다 빼버려!”
태현이 방송에서 공개하고 싶지 않은 건 아키서스의 화신과 관련된 정보였다.
골드 드래곤 용용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태현이 무슨 퀘스트를 깨고 있는지…….
이런 정보들은 모두 편집되었다.
얼핏 보면 불완전했지만, 배장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알려줄 필요 없지. 오히려 시청자들은 이렇게 부분부분 알려주는 걸 더 궁금해할걸?’
카테란드 섬 퀘스트부터 시작해서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까지.
이미 김태현 단독 특집으로 방송을 잡아둔 상태였다. 거기서 공개 안 하는 정보가 있더라도 사람들은 궁금해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핫핫핫핫핫핫!”
“조용히 좀 해주세요!”
“어…….”
* * *
“생각해냈다.”
“예? 뭘요?”
태현의 말에 루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지를 써먹을 방법 말이야.”
“아…….”
루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제 백작이 된 태현이었다.
과연 어떤 현명한 방법으로 그들을 이끌어줄까?
“그냥 내버려 두자.”
“……네?”
“지금 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네. 그냥 내버려 두자고.”
“아니! 영지잖습니까! 전하에게 받은 영광스러운 영지!”
“그래. 이 자식아. 주변 산맥에서는 몬스터가 우글거리고 주민은 없고 그나마 건물 있는 골짜기 안은 완전히 박살 나고 무너진 영지.”
“…….”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손해야. 방법이 없어.”
“저, 저희 상단의 인맥을 이용해서 주민들을 모으면…….”
“주민들 모아서 뭐하게? 그 주변 몬스터 생각하면 일단 방벽부터 시작해서 용병까지 고용해야 하는데. 그런 다음에는? 그 돈 누가 다 책임지냐. 너희 상단이 대주냐? 오. 좋은데? 그래. 당장 하자!”
“헉, 아닙니다!”
태현은 진심으로 할 사람이었다. 루포는 재빨리 태현의 팔을 붙잡았다.
“영지가 생겨서 욕심이 생기는 건 알겠는데, 지금은 뭘 할 수가 없어. 주민들 모아서 마을 만들어도 손해라고. 유지하는 데 더 비용이 들걸? 애초에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
태현은 냉정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영지와 작위를 받았다는 것에 흥분해, 그곳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계산기부터 굴렸다.
결과는?
‘하면 개고생이지. 안 그래도 지금 바쁜데.’
태현은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로 갈 길이 먼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레벨이 안 올라서 스트레스인데…….
그렇지만 루포는 미련을 못 버리는 얼굴이었다.
쾅!
“태현 님! 들었습니다! 작위를 받으셨다고요! 아이고! 저는 태현 님이 이렇게 크게 되실 줄 알고 있었죠!”
대도적 에드안과 도박꾼 펠마스였다. 그렇게 싸울 동안은 어디 보이지도 않던 인간들이 끝나자 잽싸게 찾아오고 있었다.
“에라이. 이것들아!”
“어이쿠! 왜 이러십니까!”
“하하! 에드안. 이 발차기는 태현 님의 애정 표현이라네!”
“뭐라고? 그러면 한 번 더 차주시죠!”
얼굴에 물을 끼얹어도 흔들리지 않을 2인조!
태현은 그걸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영지는 내버려 둘 거다.”
“예?!”
“왜요?!”
“거기서 뭐 할 게 있어야지.”
“세금 거둬야죠!”
“세금! 세금! 세금!”
“세금 거둘 사람도 없거든? 이 진상들 좀 내보내.”
“저희를 내보낼 수는 없…… 컥!”
“조용히 해봐.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잖아.”
태현은 펠마스의 입을 다물게 한 다음 말을 이었다.
“지금 영지는 뭘 할 수가 없으니 그냥 내버려 둔다. 언젠가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뭘 할 수도 있겠지. 땅이 어디로 가지는 않으니까. 지금 주민을 모으고 마을을 만들 수는 없지만, 대신 내 땅이긴 하니까 거기서 뭘 해도 상관은 없을 거야. 무슨 의견 있는 사람 있나?”
모두가 조용한 와중에, 펠마스가 손을 들었다.
“펠마스. 말해봐라.”
“흠흠. 태현 님. 맥크레니 상단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잖습니까.”
“그거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있나?”
“아시다시피 도시에 물건을 들일 때 세금을 내는데…….”
세금!
도시, 성, 마을…… 그걸 갖고 있는 주인의 권한이 바로 세금이었다.
판타지 온라인에서는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세금을 붙여서 뜯어내는 게 가능했다.
물론 지금 판타지 온라인 2에서는 대부분의 영주가 다 NPC였기에 몇몇 막장 도시나 마을을 제외하고서는 정상적인 세금을 물렸다.
“그래서?”
“그 세금을 안 낼 수 있다면 참 좋지 않겠습니까?”
“……?”
루포는 펠마스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쳐다보았다. 이게 뭔……?
“상단의 창고를 만들어서 여기에 보관하는 겁니다. 세금도 안 물고, 수상한 물건이 생기면 여기에다 놓을 수도 있고…….”
한 마디로 밀수!
루포는 기가 막혀서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태현은 손뼉을 쳤다.
“너 같은 놈도 쓸모가 있을 때가 있군!”
“하하. 감사합니다!”
펠마스는 태현의 구박에 흔들리지 않는 두꺼운 얼굴 가죽을 갖고 있었다.
루포는 당황해서 태현에게 말했다.
“태현 님. 정말로 하실 겁니까?”
“뭘? 밀수를?”
“예!”
“왜. 좋지 않나? 맥크레니한테 말하면 아주 좋아할 거 같은데.”
“…….”
“물론 대놓고 하면 걸리겠지. 흠. 어떻게 해야 안 걸릴까.”
태현은 턱을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지.”
* * *
대규모 퀘스트가 끝났는데도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꽤 사람들이 있었다.
사디크 교단이 한 번 날뛰고 간 덕분에 마수들이 아직 골짜기 안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뒤에 산맥의 몬스터까지.
나름 괜찮은 사냥터였다. 주변에 마을이 없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덕분에 신이 난 건 상인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짐꾼까지 고용해 와서 좌판을 깔았다.
“중급 HP 회복 포션 팝니다! 50개 세트로 사실 경우 4% 할인해 드려요!”
“힘 상승의 알약 5개 세트로 팔아요!”
물론 가격은 절대 싸지 않았다. 여기까지 아이템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싸게 팔 리는 없는 것이다.
“아니,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손님. 그러면 다른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배짱 장사!
상인 플레이어들이 싱글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다른 플레이어들은 울컥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이 주변에 마을도 없었으니까. 잡템을 팔고 보충을 하려면 상인 플레이어들의 힘이 필요했다.
“모두 동작 그만!”
“……?”
갑자기 나타난 병사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으로 이 영지 내에서 장사는 백작님에게 허락을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다!”
“예? 여기 주인이 어디 있다고요?”
“이놈! 감히 국왕 전하의 명령을 무시할 셈이냐!”
용병은 백작의 인장이 찍힌 종이를 들고 흔들었다.
백작 인장 반지가 찍힌 허가서:
내구력 1/1
위조할 수 없는 백작의 인장 반지가 찍힌 허가서. 영지 내에서 장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진짜잖아?!”
“뭐? 여기 영주가 어딨다고?!”
“허가받지 않은 장사는 허락하지 않는다! 모두 짐을 싸도록!”
“아, 아니 이게 무슨…….”
상인 플레이어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