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8화
“……?”
갑자기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나타난 건 김지산, 박성찬, 우정식 세 대장장이!
김지산은 결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뭐야?”
“넌 누군데?”
험악한 사람들의 반응에도 김지산은 굴하지 않았다. 김지산은 꿋꿋하게 말했다.
“물론 여기 있는 케인 씨가 전에는 레드존 길드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녔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케인 씨는 달라졌습니다.”
“……?”
“??”
“???”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놀랐다. 심지어 케인도 놀랐다.
‘내가 달라지긴 뭘 달라져?’
“케인 씨는 자기가 했던 짓을 반성하게 된 겁니다!”
“??”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케인은 이해가 안 갔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를 도와주러 온 거 같았으니까.
“케인 씨가 왜 태현 님을 따라다니겠습니까? 자기 길드를 망하게 한 사람인데요!”
“그건…… 그러네.”
“그러게? 왜 따라다니는 거지?”
김지산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수긍하고 웅성거렸다.
“약점이라도 잡혔나?”
“에이. 아무리 약점을 잡혀도 그렇지 자존심이 있는데. 그런 길드 이끌던 길마가 약점 잡혔다고 저렇게 따라다니겠어?”
“…….”
별생각 없이 던지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말이 케인에게는 커다란 상처!
“케인 씨가 태현 님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가 한 짓을 반성하고, 속죄하기 위해서입니다!”
“?!”
듣고 있던 케인도 놀랄 거짓말!
그러나 김지산은 진지했다.
“태현 님은 케인 씨와 싸우고서 케인 씨가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지 낱낱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걸 듣고 케인 씨도 자기가 했던 짓이 얼마나 잘못되었던 건지 알게 된 거죠!”
“……?”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그런 게 가능한 건가?
“아니, 김태현이란 플레이어가 뭐 어떻게 설득을 했는데?”
“태현 님은 차가워 보여도 속에는 따뜻한 마음과 뜨거운 정의를 가지신 분입니다! 카테란드 퀘스트 깬 다른 플레이어분들한테 물어보시면 얼마나 친절한 사람인지 아실 겁니다. 겉모습 때문에 오해를 받는 거죠!”
사람은 거짓말을 하다가 스스로 그 거짓말을 믿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인지부조화!
지금 김지산과 박성찬이 겪고 있는 과정이 그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다가 어느 순간 태현을 완전히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냥 성격 더러운 놈을 따라다니면서 생고생을 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보다는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태현과 같이 따라다니면서 온갖 퀘스트를 깨는 신나는 모험이 더 좋았다.
그렇기에 김지산은 열렬하게 태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설명했다.
“그 설득에 케인 씨도 넘어간 겁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절반은 혹하는 것 같았지만, 남은 절반은 헛소리하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그걸 믿으라고?”
“맞아. 저놈이 퍽이나 반성을 했겠다!”
험악해지는 분위기.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저 말은 진짜예요.”
“……?”
나타난 것은 최하준과 최하영 파티였다. 소란이 일어난 걸 보고 찾아온 것이다.
“뭔 소리야?”
“예전 레드존 길드원들이 우리 파티에 껴서 배신하려고 수작을 부렸는데, 저 사람이 나서서 막았어요. 직접 길드원들하고 PK해서 쓰러뜨렸고요.”
“……!”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자기 길드원을 직접 쓰러뜨리다니.
정말 반성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짓 아닐까?
옆에서 듣던 케인은 점점 황당해졌지만, 말하지 않고 참았다.
상황이 묘하게 잘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
그러나 역시 몇 명은 끝까지 넘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자기가 한 짓이 어디 가지는 않지!”
“맞아. 자기 길드원 팔아서 넘어가려는 거 아냐?”
‘!’
속마음을 찔린 케인은 움찔했다.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오히려 나서서 케인을 변호해 줬다.
“아니,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자기가 잘못했다는 거 알고서 자기 예전 친구들하고 싸우는 건데. 그쪽은 뭐 얼마나 깨끗하게 살아왔는데요?”
“뭐, 뭐? 나는 적어도 길목 잡고서 삥 뜯고 다니지는 않았거든?”
말다툼이 시작되자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쾅!
그리고 그 대화를 끊은 건 바로 태현이었다. 태현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롱소드를 땅바닥에 찍었다.
그것만으로 모인 사람들은 일시에 조용해졌다.
어떤 사람은 존재만으로 분위기를 만들었다. 태현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타나서 무기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분위기를 제압!
“왜 이 좋은 날에 이 앞에서 떠드는 거야? 다른 곳도 많은데.”
태현은 짜증 가득 섞인 얼굴로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는 왕국군 막사 앞이었다.
물론 태현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영지를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높은 고민 중!
그런 와중에 밖이 시끄러워지자 대장장이들이 나가서 상황을 확인하고, 그런데도 조용해지지 않자 태현이 나온 것이다.
“아니…… 저기…… 저…… 케인이…… 레드존 길마…… 아주 나쁜 놈…….”
누군가가 중얼거리자 태현이 시선을 돌렸다.
“나쁜 놈이라고?”
“어…… 그렇지 않나요?”
“그럼 1:1 뜨면 되겠네. 깃발 꽂아.”
‘깃발 꽂아’는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이어지는 아주 전통이 깊은 표현이었다.
한마디로 결투! 두 마디로 말하자면 나와 싸우자! 네 마디로 말하자면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이런 걸 모두 요약하는 게 바로 ‘깃발 꽂아’였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이거 싫어서 싸우려고 온 게 아니었어?”
태현은 롱소드 검집으로 케인의 뒤통수를 툭툭 쳤다. 무슨 강아지 다루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플레이어들은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반성하고 있기에 저러는 거구나!
물론 케인은 그냥 겁을 먹어서 이런 것이었다.
“아니, 제가 1:1로 싸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저 사람은 레드존 길마잖아요. 나쁜 짓 하고 다녔고. 그러니까 벌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마지막 말은 태현의 눈빛 때문에 떨리듯이 나왔다. 태현은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 받을만하네. 그러니까 깃발 꽂아.”
“네? 아니, 저 말고…… 태현 님이 벌을 준다거나…….”
“뭐라는 거야? 이거 웃긴 놈이네. 내가 왜 벌을 줘? 네가 원한이 있으면 네가 해결해야지. 내 원한은 내가 알아서 해결했어. 원한 있으면 덤벼. 난 안 말릴 테니까.”
태현은 진심이었다.
케인이 뭐가 예뻐서 편을 들어주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1:1 신청한다고 해도 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말을 오해했다.
태현이 ‘케인 건드리지 마라’하고 돌려서 말한 거라고 이해한 것!
“그래서 싸울 사람?”
“…….”
“야, 가자.”
“가자…….”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플레이어들!
그걸 본 태현은 당황했다.
‘아니, 왜 한 명도 없어?’
케인이 좀 구르는 게 보고 싶었는데!
“태현 님…… 감동했습니다!”
“역시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두 대장장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태현을 보며 말했다.
“너희는 또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는 사이 최하준과 최하영이 다가왔다.
“대단하시네요. 저런 사람을 반성시키다니.”
“뭔 반성?”
“굳이 겸손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자랑하고 다녀도 되지 않나요?”
최하영의 말에 덧붙여서 최하준도 끼어들었다.
“맞아요. 저도 솔직히 좀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놀라기도 했고요. 우리랑 같이 있을 때는 레벨을 숨겼던 거군요?”
태현은 그제야 저 둘이 예전에 유지수와 같이 돌아다닐 때 만났던 파티의 리더라는 걸 깨달았다.
‘별거 없어서 까먹고 있었네.’
최하준이 듣는다면 굴욕에 떨 속마음이었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 같이 있던 파티원을 버스 태워주느라 그런 거였죠?”
“대충.”
둘은 아주 멋대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태현은 원래 랭커였는데 유지수를 키워주느라 그들 파티에 들어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근데 반성은 뭔 소리냐?”
“크크. 진짜 겸손하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최하준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니, 진짜로 모르겠는데. 뭔 반성.”
“겸손하지 않아도…….”
“깃발 꽂을래? 반성이 무슨 소리냐고. 설명이나 해.”
태현의 목소리가 험악해지자 최하준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 저기 있는 케인을 반성시키게 한 게 태현 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
“저걸 반성시켜? 내가?”
“막 무릎 꿇리고, 반성시켰다고…….”
“많이 패고 괴롭히기는 했는데.”
“역시!”
“근데 반성을 했을 거 같지는 않은데. 저게 그런 놈인가?”
태현은 케인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런 플레이어에 대해서는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반성은 절대 안 하는 타입!
지거나 잡히면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태현 님이 진심을 다해서 말한 덕분 아닐까요?”
최하준은 저번과 만났을 때와 태도가 전혀 달랐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어딘가 거만한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스타를 보는 눈빛!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예전에는 태현이 이렇게 대단한 플레이어인지 몰랐던 것이다.
레드존 길드를 격파한 게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랭커인 최상윤이 있었기에 태현은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태현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랭커였다.
카테란드 섬 퀘스트,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 이 두 개에서 연속으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랭커밖에 없었다.
반짝반짝!
“내가 진심을 다해서 말한 덕이라…… 흠. 진심을 다해서 괴롭히기는 했는데.”
“역시!”
태현은 케인을 보며 물었다.
“너 반성했냐?”
케인은 움찔했다. 아직 주변에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반성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
“반…… 성했지. 많이 반성했어! 내가 얼마나 나빴는지!”
그 말을 들은 대장장이들은 신이 나서 케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역시!”
“괜찮아요, 케인 씨! 앞으로 잘하면 됩니다!”
“우리 앞으로 같이 다니면서 친해지자고요! 사람들도 케인 씨의 마음을 알아줄 겁니다!”
“?!”
케인은 화들짝 놀랐다. 이 대장장이들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계속 같이 다니려고? 네가 나를 그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케인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눈치를 봤다. 아직 의심하고 있는 눈초리!
‘XXX…….’
케인은 속으로 욕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이 다니고 싶……다…….”
“뭐 나야 부려먹기 편하고 좋지. 갚아야 할 것도 있고. 대장장이들이랑 친하다니 잘됐네. 앞으로 같이 다녀.”
‘%^#*&$^@&*#^$!’
케인은 속으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번 퀘스트가 끝나고, 태현이 풀어주면 도망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걸 스스로 차버린 것!
‘끄아악! 끄아아아아악!’
“케인 씨가 왜 이러죠?”
“글쎄? 좋아서 그러는 거 아닐까?”
“하하! 쑥스러워하시기는!”
대장장이들은 케인의 속도 모르고 신이 나서 서로 손을 잡고 얼싸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