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7화
“김태현이 누구야?”
“뭐야? 그런 랭커도 있었나?”
놀란 건 다른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태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태연하게 술렁이는 플레이어들 사이를 걸어 올라갔다.
국왕 앞에서 보상을 받는 상황이니 복면도 벗은 상태!
그러나 태현의 복장을 알아본 몇몇 플레이어들이 말했다.
“저거 김태산이잖아?”
“김태산? 그러게?”
“복면도 안 쓰고…… 가명이었나?”
원래 시작할 때 정한 닉네임을 두고 가짜 이름을 쓰는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많았다.
판타지 온라인 2는 자유도가 거의 무한한 게임이었고, 당연히 가짜 이름을 몇 개 쓰는 것도 자유였던 것이다.
그래서 김태산이라는 이름을 썼던 태현의 진짜 닉네임이 김태현이라는 걸 알았을 때에도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잠깐, 저거 사유랑 같이 돌아다녔던 놈 아냐?”
“맞아! 레드존 길드랑 싸웠던 그놈!”
그렇지만 여기에 태현을 처음 본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레드존 길드와 싸울 때 태현을 본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최상윤과 같이 다녔던 것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 깊이 남은 것!
몇몇 최상윤 광팬들은 태현을 욕하고 저주했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새로 알게 된 사실에 흥미로워했다.
“그러니까 카테란드 섬 퀘스트를 진행한 김태현이 레드존 털었던 그 플레이어라는 거지?”
“대단한데? 무슨 직업이길래?”
“난 직업보다 레벨이 더 궁금하다. 랭커겠지?”
“랭커겠지. 같이 다니던 사유란 플레이어도 랭커잖아.”
플레이어들의 말을 들은 태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레벨이 50이라는 건 말하지 말아야겠군.’
점점 레벨을 말하기 힘들어지는 분위기!
태현의 속마음은 그렇다 치고,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들은 새롭게 나타난 랭커의 정체에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직업 뭐 같냐? 도적?”
“카테란드 섬 퀘스트 깼던 사람한테 들었는데, 대장장이라던데?”
“뭐? 난 요리사라고 들었는데.”
“????”
떠들던 플레이어들은 서로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게 말이 돼?”
“헛소문이 섞인 거 아냐? 원래 소문이라는 게 믿을 게 안 된다니까.”
사실 모두 맞았다. 그렇지만 플레이어들은 알아서 오해하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설마 저렇게 잡캐겠어!
다들 떠드는 사이 태현은 아탈리 국왕, 다미아노 2세 앞에 섰다.
그러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다들 궁금했던 것이다.
과연 가장 많은 공적치를 세운 태현은 이 퀘스트에서 어떤 보상을 받을까?
3위를 한 아카시아 길마는 각종 보상과 함께 <푸른 오필리아 목걸이>를 받았다.
왕궁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마법사를 위한 화려한 옵션이 좌르르륵 달린 강력한 아티팩트였다.
2위를 한 랭커 요한손은 <지축을 울리는 천사의 뿔나팔>을 받았다. 자세한 성능은 알 수 없었지만, 전사 계열 직업이 쓰기에 아주 좋은 아이템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저 둘이 저 정도로 빵빵한 보상을 받았는데, 1위인 태현은?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이번 토벌의 최대 공로자인 김태현에게, 짐은…….”
두근, 두근-
천하의 태현도 긴장할 정도로 기대되는 순간!
“백작의 자리와 영지를 주겠노라!”
“……?”
전혀 예상치 못한 보상에 태현은 순간 멈칫했다. 백작의 자리와 영지라고?
“백작? 영지?”
“그게 무슨…….”
“헉, 설마 성주나 영주 자리 준다는 거 아냐?”
“!!!”
태현보다 더 먼저 반응한 건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
한 성이나 도시를 다스리는 자리야말로 모든 플레이어가 원하는 자리.
물론 그건 꿈에 가까웠고, 현실에서는 마을 하나 다스리기도 힘들었다.
그냥 플레이어의 무력으로 점령한다면 할 수야 있겠지만, 이미 주인이 있는 왕국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왕국군과 기사단이 몰려올 것이다.
자살행위!
혼란스러운, 내전 퀘스트가 벌어진 왕국에 가서 점령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였지만 썩 잘 풀리지는 않았다.
내전 퀘스트가 벌어지는 만큼 치안이 좋지 않아 뭘 하려고 하면 바로 공격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하다가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레드존 길드!
그런데 태현은 왕국의 왕한테 정식으로 귀족 자리와 함께 영지를 받은 것이다.
그냥 충격이 아닌, 대충격!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충격받은 얼굴로 태현과 다미아노 2세를 쳐다보았다.
태현은 자세를 수습하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전하!”
[명성이 500 오릅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아탈리 왕궁 내에서 당신의 평판이 최고 수준에 달합니다.]
[귀족-아탈리 왕국 백작을 수여받습니다.]
[당신의 영지는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입니다.]
[귀족의 권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기쁜 마음으로 메시지창을 보던 태현은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
‘영지가 어디라고?’
[당신의 영지는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입니다.]
“…….”
태현은 국왕을 쳐다보았다. 다미아노 2세는 근엄한 웃음을 지으며 태현을 마주 보았다.
“김태현 백작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 가장 어울리는 곳. 그곳이 바로 김태현 백작의 영지다!”
“오오, 전하! 과연 그런 깊으신 뜻이!”
“저희는 차마 따라갈 수도 없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다미아노 2세가 말하자마자 맞춰서 대답하는 다른 귀족들. 태현은 그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
‘이 인간들이…….’
다미아노 2세나 다른 귀족들이 태현을 엿 먹이려고 이런 보상을 준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영지와 귀족 작위는 이제까지 알려진 플레이어 중에서는 받은 사람이 없었다.
가치로만 보면 대규모 퀘스트 1위에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보상!
그런데 영지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였다.
성도, 도시도, 사람도 없었다. 골짜기 안에 뭔가 있기는 했는데 그건 태현이 다 부수고 나왔다. 남은 건 다른 플레이어들이 들어가서 다 부쉈다.
그냥 골짜기!
‘…….’
건물주의 아들인 태현은 뭐가 좋은 건물이고 나쁜 건물인지 잘 알았다.
결국 모든 것은 위치가 중요!
그런 면에서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안 팔리는 땅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잘나가는 도시나 성도 있는데 왜 하필……!’
그런 곳은 이미 다 주인인 귀족 NPC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좀 심했다.
태현은 이 영지를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이건 팔아먹을 수도 없지.’
태현이 원한다고 백작 자리를 팔 수가 없었다. 이 백작 자리를 원하는 플레이어야 엄청나게 많겠지만, 이건 국왕이 준 거라 팔고 싶어도 파는 게 불가능했다.
쓸데없이 현실적!
“감…… 사합니다.”
“앞으로 우리 왕국의 든든한 기둥이 되리라 믿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겉으로 보기에는 훈훈한 자리. 태현의 속은 뒤틀리고 있었지만 밑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은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영주 자리라니. 진짜 부럽다!’
‘이 운빨겜! 왜 나는!’
‘김태현이라는 플레이어가 처음으로 영주 자리에 올랐다. 이걸로 앞으로 달라질 건? 이걸 우리 길드는 어떻게 써먹을 수 있지?’
‘사유하고 친하게 지내다니 저 썩을 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온갖 생각이 부글부글 뒤섞이고 있었다.
다들 태현이 백작 자리를 받은 것에만 신경이 쏠려, 그 영지가 어디인지는 놓치고 있었다.
* * *
“아, 진짜, 빌어먹을…… 그냥 아이템이나 주지…….”
태현은 의자에 앉아서 중얼거렸다.
“축하드립니다, 태산 님! 아니, 이제 태현 님이군요!”
“저희한테까지 가명을 쓰실 필요는 없었는데!”
속으로 화를 삭이고 있는데 대장장이들이 들어왔다. 태현은 짜증을 낼 기운도 없어서 그냥 손만 까닥거렸다.
“어디를 영지로 받으셨습니까?”
“왜. 알아서 뭐하게?”
“저희도 가서 돕고 싶습니다!”
“받은 만큼 일하게 해주세요!”
반짝이는 대장장이들의 눈빛!
“기특하긴 한데…… 가서 일할 게 없을걸.”
“??”
영지에 대장장이가 할 일이 없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지산과 박성찬은 서로 쳐다보았다.
‘아!’
‘또 아닌 척하시는구나!’
태현은 겉으로는 까칠했지만 속으로는 배려해 주는 속 깊은 사람. 분명 둘을 배려해서 일할 게 없다고 말해 주는 게 분명했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이제 성장했습니다. 뭐든지 맡겨만 주십쇼!”
“없다니까, 이 자식들아!”
퍽, 퍽!
“억!” “으억!”
태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두 대장장이를 밀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골짜기, 골짜기…… 이걸 어떻게 써먹는다…….”
그러는 사이 밖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저놈! 저놈 레드존 길마다!”
“뭐?!”
“내가 봤다니깐! 저거 보상받을 때 케인이라고 했어! 수상하다 했는데 역시나!”
“……!”
케인은 투구 속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
설마 이렇게 걸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태현처럼 공적치 1위인 플레이어야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받지만, 케인은 공적치 랭킹에서 한참 뒤였다.
그래서 그냥 왕궁 관리한테 조용히 가서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걸 몰래 엿들은 놈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에이씨……!’
“저게 케인이라고?”
“장비가 전혀 다른데?”
“장비야 바꿔 꼈겠지! 레드존 길드 망했으니까!”
소리를 들은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레드존 길드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레드존 길마를 쓰러뜨리고 이름 좀 알려보려는 플레이어들도 꽤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게 완전히 갇힌 망한 길드의 길마!
케인은 입이 바짝 말라오는 걸 느꼈다. 완전히 갇힌 것이다. 주변에 워낙 플레이어들이 많아서 뚫고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너! 투구 좀 까봐!”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수상한 거 없으면 까보라고!”
“그러니까 내가 왜! 이유나 좀 듣자!”
케인은 이런 상황에서 밀려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히려 맞불을 놔야 했다. 케인은 분하고 억울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내가 아니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냐? 책임질 거냐고! 이렇게 의심한 책임질 거야? 너! 네가 나 의심했지!”
확실히 케인은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자 플레이어들은 움찔했다.
“아닌 거 아냐?”
“맞아. 레드존 길마가 왜 길드원도 없이 여기 있겠어?”
“게다가 저 사람은 PK 플레이어들하고 싸운 플레이어잖아.”
“그러네.”
전 레드존 길드원들과 싸웠던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그리고 저 사람은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던 사람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길드 망하게 한 사람하고 같이 다니겠어?”
“그것도 그러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
“…….”
묵직하게 명치를 후려치는 다른 사람들의 말. 케인은 투구 속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자존심에 엄청나게 상처가 난 거 말고는 괜찮았다. 다른 사람들도 저 말을 듣고 의심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한 명, 의심이 많은 도적 플레이어가 있었다.
-장비 해제하기!
“?!”
일시적으로 상대의 장비를 벗기는, 도적 스킬 중 하나였다.
비주류 스킬이라 잘 보이지 않는 스킬인데 익힌 플레이어가 있을 줄이야.
케인은 일이 망했다는 걸 깨달았다.
투구가 벗겨진 것이다.
“저, 저, 저거!”
“레드존 길마다!”
“맞네! 맞아!”
“젠장…….”
케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또 사망인가!
“매달자!”
“아냐! 묻자!”
“태우는 건 어떨까?”
‘이 자식들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케인은 울컥했다. 사람이 기껏 포기했더니 싸울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