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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36화 (136/1,826)

§ 나는 될놈이다 136화

박성찬이 말한 것처럼, 플레이어들은 누가 이번 공적치 퀘스트에서 1위를 할 것 같은지로 떠들고 있었다.

공적치 퀘스트에서 순위권과 거리가 먼 플레이어들도 호기심으로 떠들 정도!

덕분에 태현은 편했다. 태현은 휘파람을 불며 왕국군 막사 구석으로 갔다.

-초급 언데드 소환!

-초급 언데드 소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

방금 그렇게 큰 퀘스트를 깨고 나서도 태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시간이 날 때면 스킬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작업을 했다.

지금은 비실비실한 망령들만 다스릴 수 있지만, 언젠가는 분명 강한 놈들을 다스릴 수 있으리라!

태현은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스킬을 반복 사용했다.

“저…… 여기서 이러시면…….”

왕국군에 소속되어서 일하고 있는 데메르 사제 NPC가 태현이 흑마법을 쓰는 걸 보고 당황해서 말리려고 들었다.

태현이니 말리려고 하지, 만약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바로 호통이 나왔을 것이다.

왕국을 위해 해준 일이 있으면 대접도 달라지는 법!

“어허. 내가 왕국을 위해서 한 게 얼마나 되는데. 이런 연습도 못 해?”

“그, 그게 아니라…… 그래도 신이 보고 계시는데…… 다른 곳에서 하시면…….”

차마 하지 말라는 말은 못 하고 우물거리는 데메르 사제였다.

“조용히 하고 축복이나 걸어줘. MP가 딸린다고.”

“흑흑…… 신이 보고 계시는데…….”

“시꺼.”

누가 보면 태현이 괴롭히는 줄 알 것이다. 태현은 그렇게 구석에서 흑흑거리는 데메르 사제에게 버프를 받아가며 흑마법을 연습했다.

알뜰한 시간 활용이었다.

* * *

태현과 만나고 나서, 배장욱은 판타지 온라인 2 사이트를 켰다.

목적은 하나.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가 대규모 퀘스트로 인기가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요즘 바빠서 자세한 건 확인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어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응? 뭐야. 다 끝났어?”

올라오는 동영상의 제목을 보던 배장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 총정리.

-사디크 교단 마수 종류별 공략!

-랭커 요한손 연속 스킬 콤보 촬영 영상(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니 사디크 교단이 패해서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 도망친 것 같았다.

배장욱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역시 아무리 태현이라도 이 쟁쟁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퀘스트를 하기는 힘들었던 걸까?

살짝 기대했지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참…… 너무 욕심이 많은 거 같군. 카테란드 섬이면 됐지 이번 퀘스트에서도 뭘 바라는 거야?’

배장욱은 자기가 너무 욕심이 많다는 걸 느꼈다.

카테란드 섬 퀘스트 하나만으로도 다른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내 하기 힘든 퀘스트였다.

“뭐 보세요?”

“아. 판타지 온라인 2 영상. 이번에 새로 섭외한 김태현이라는 플레이어. 직업도 희귀 직업이고 실력도 괜찮고, 센스도 있어. 독점 계약 못 한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가온 건 김수아였다. 긴 검은 생머리에, 청아한 미소.

한때는 유명한 영화배우로 활동하다가 요즘은 게임 방송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2를 하는 연예인으로도 유명!

MBS 게임 프로의 간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김태현? 김태현……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요?”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랭커 사냥하고 다니던 대장장이가 김태현이었잖아.”

“아. 그러네요. 그거 말고도 들어본 거 같은데…….”

“……?”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그 플레이어를 섭외한 거예요?”

“아냐, 아냐.”

사실 맞았다.

“그 김태현이라면 이렇게 쉽게 섭외를 할 수가 있었겠어? 얼마나 성격이 배배 꼬인 놈이었는지 내가 온갖 방법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 하나 안 했다고.”

사실 태현은 읽지도 않고 차단을 해버렸기에 누가 뭘 어떻게 구구절절하게 보냈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면 그냥 이름이 같은 건가요?”

“그렇지. 그래도 이쪽도 만만치 않아. 대단하다고. 카테란드 섬 퀘스트 영상 오면 볼래?”

순수하고 청아한 이미지에 가려서 사람들이 착각하기 쉬웠지만, 김수아도 상당한 게임 폐인이었다.

주변 사람은 다 알았다.

게임 방송 진행자를 맡고, 잘 해나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제가 소개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봐야죠.”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런데 이건 뭐예요?”

김수아는 손가락으로 동영상 제목 중 하나를 가리켰다.

-불의 마수 레이드 영상.

-불의 마수 도중 난입.

-불의 마수 스틸.

…….

앞에 불의 마수를 단 영상들이 많았다.

“보스몹 레이드 영상이겠지. 왜?”

“스틸에 난입에…… 뭔 일 있었던 거 아니에요?”

“원래 저 정도 보스몹 레이드하는데 아무 일 없으면 이상한 거지.”

배장욱도 이런 보스몹 레이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대형 길드부터 시작해서 랭커나 고렙 플레이어들까지 우르르 몰려왔을 테니, 내가 먼저니 네가 먼저니 하고 다퉜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저런 식으로 ‘저 자식 치사하게 스틸했어요!’ ‘저 자식이 나쁜 놈이에요!’ 같은 영상이 올라오는 거겠지.

배장욱은 그렇게 생각하며 영상을 켰다.

“……!”

“!!!”

그러나 나오는 영상은 전혀 예상을 뒤엎는 것!

갑자기 바람처럼 나타나서 불의 마수에게 돌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날뛰는 불의 마수 위에서 연타를 퍼붓는 태현의 모습.

보는 둘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더듬더듬-

배장욱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더듬거렸다. 그걸 본 김수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 하세요?”

“무, 문자 보내려고.”

-사디크 교단 퀘스트 영상 뭐든 좋으니까 보내주실 수 있는 거 지금 당장 최대한 빠르게 주세요!

대박의 예감!

배장욱은 급하게 태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별거 아니긴 뭐가 별거 아냐!’

별거 아니라고 해서 정말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이게 별것이 아니면 지금 방송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 것!

그러나 배장욱은 알지 못했다. 태현이 왜 별거 아니라고 했는지.

여기 나오지 않은 영상들과 비교한다면 정말로 별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 * *

“좀 있으면 왕 앞에서 상도 받고…… 좋은 순간인데, 너는 왜 그러고 있냐?”

태현은 케인을 툭툭 치며 물었다. 케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잔뜩 겁먹고 있었다.

“말 걸지 마라.”

“뭐?”

“아, 아니. 그게…….”

태현의 목소리가 내려가자 케인은 꼬리를 내리고 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태현한테는 강한 척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것!

“그게, 무슨 일이 있었냐면…….”

케인은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하게,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다시 설명했다. 괜히 잘못 말했다가 태현한테 다시 구박을 받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내 아이템을 다 벗겨 먹은 그 사악하고 더럽고 비열하고 치사한 길드원 놈들 있잖아? 그놈들을 우연히 만나서 복수를 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다음부터 거기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를 보는 눈치가 이상하더라고. 그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자꾸 여기 주변에 와서 날 쳐다보는 게 수상쩍어서…….

“흠. 흠. 그래서. 오. 그래. 그랬다고?”

설명을 다 들은 태현은 손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주제 파악 못 하고 복수한다고 깝치다가 결국 의심을 산 거 같다 이거지?”

“아, 아니라니까! 아직 의심을 사지는 않았고…….”

깡, 깡, 깡-

태현은 들고 있던 유성의 검집으로 케인의 투구를 두들겼다. 맑고 명랑한 소리가 들렸다.

“의심을 샀으니까 여기 와서 보고 있겠지. 너 싸우면서 스킬 썼지?”

“안 쓰고서 어떻게 이기냐……?”

“거기 있던 플레이어 중에서 레드존 알고 있는 플레이어들 있으면 의심하고 있겠네. 네 스킬 특이한 스킬 맞아. 이 머리를 장식으로 쓰는 놈아.”

깡, 깡, 깡-

태현은 말하면서 계속 투구를 때렸다.

“그만 때려 좀!”

“머리를 폼으로 쓰는 거 같은데 뭐 어때? 어쨌든 알아서 잘 해봐. 들키면 알아서 하고. 나 끌어들이지 마라.”

“너, 너무한 거 아니냐? 같이 한 정이…….”

“뭐?”

태현이 웃으면서 롱소드를 뽑으려고 들었다.

“정이 뭔지 확실하게 보여줘? 미운 정도 정이라던데.”

“아, 아니야! 괜찮아!”

케인은 확신했다. 태현은 저렇게 웃으면서 PK를 할 놈이라는 걸!

‘나보다 더 무시무시한 놈이야!’

“얼굴 가려주는 투구로 만들어준 걸 고맙게 여겨라. 그거 꼭 쓰고 다니고.”

“……알겠다니까!”

* * *

그러는 사이, 왕궁 앞에 설치된 연단에는 구름처럼 플레이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 목적은 하나.

-열심히 일했으니 퀘스트 보상을 주세요!

다들 눈빛이 욕심으로 아주 반짝반짝했다.

“대장장이 김지산. 사악한 사디크 교단에 맞서서 뛰어난 헌신으로 공을 세웠으므로 이 보상을 내린다.”

김지산은 퀘스트 보상을 받고 싱글벙글 웃었다.

경험치와 골드, 명성은 물론이고 <아탈리 왕궁-중급 화염의 대장장이 망치>를 받은 것이다.

좋은 대장장이 아이템이야말로 대장장이한테 가장 좋은 선물!

왕궁의 대장장이들이 쓰는 아이템을 보상으로 받았으니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었다.

김지산도 박성찬도 다들 밑에서 보상을 받고 기뻐했다.

“……?”

보상을 확인하던 박성찬은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진 것이다.

“그러면 이번 토벌의 최대 공로자를 발표하겠다!”

“……!”

박성찬은 왜 주변이 조용했는지 깨달았다. 이번 퀘스트의 꽃. 공적치 퀘스트 다툼에서 누가 1위를 했는지 발표를 하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주변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자기 일이 아닌데 눈을 빛내며 궁금해하고 있었다.

“먼저 3위! 이준섭. 올라오도록!”

순식간에 플레이어들이 수군거렸다.

“이준섭?”

“아카시아 길드장이 3위라고? 2위나 1위는 할 줄 알았는데.”

다른 플레이어들도 놀랐지만, 이준섭도 놀랐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아카시아라는 대형 길드를 이끄는 만큼, 이준섭은 이번 퀘스트가 끝나고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확신을 했다.

‘1위 아니면 2위는 확정이다!’

그런데 결과는 3위. 뭔가 잘못됐다. 당황스러웠지만 이준섭은 일단 나갔다. 지금은 하라는 대로 해야 할 때!

이준섭의 차례가 끝나자 2위가 발표되었다.

“2위, 요한손. 올라오도록!”

아까와 똑같이, 그러나 더 심하게 플레이어들이 술렁거렸다.

“요한손이 2위라고?”

“1위가 누군데? 설마 파이터즈 길마야?”

“아니, 파이터즈 길마가 어떻게 아카시아 길마보다 순위가 앞서지? 마수 잡은 숫자부터가 차이 나는데?”

“크로포드 아냐? 랭커잖아.”

“그 인간은 불의 마수 레이드에 참가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준섭은 고개를 홱 돌렸다. 저 멀리 파이터즈 길마가 보였다.

파지직!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불똥이 튀었다.

‘너 이 자식, 뒤에서 무슨 짓을 한 거냐!’

이준섭은 그런 생각을 하며 파이터즈 길마를 노려보았다. 파이터즈 길마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이준섭은 깨달았다. 그가 너무 방심했다는 것을. 저 태연한 모습. 파이터즈 길마를 너무 얕본 것이다.

분명 몰래 공적치를 크게 쌓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1위를 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내 패배다!’

이준섭은 분해서 이를 악물었다. 길드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래. 나가라! 네가 받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주마. 그리고 기억해…… 응?’

“최고 공로자, 김태현! 앞으로 나오도록!”

뭔가 다른 이름이 나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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