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4화
기회를 줘도 못 받으면 태현이 참아줄 이유가 없었다.
버포드는 검을 앞으로 들고 각오한 얼굴로 외쳤다.
“절대로 네가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흠. 평소라면 좀 멋있을 대사긴 한데, 지금 나하고 이놈들이 불의 마수를 잡고 왔거든? 네가 불의 마수보다 셀 거 같지는 않다.”
“?!”
“뭐 유언은 다 했지? 어디 한 번 날뛰어봐. 안 날뛰어도 상관은 없어. 결과는 똑같을 테니까.”
버포드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아니, 이놈들이 불의 마수를 잡았다고?
‘대체 어떻게?!’
그 무지막지한 괴물을 어떻게 잡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근처에 접근도 하지 못했을 텐데.
물론 버포드는 불의 마수보다 훨씬 약했다. 아니, 사디크 고위 성기사보다도 살짝 약한 게 버포드였다.
당연히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0!
그걸 안 버포드는 머리를 굴렸다.
“네, 네가 나를 죽인다고 해도 원하는 아이템은 못 가져갈걸?”
“아. 확실히 그렇지.”
플레이어가 죽었을 때 드랍하는 아이템은 랜덤이었다. 물론 페널티 상태에 따라 더 좋은 아이템을 드랍하긴 했다.
그래도 랜덤은 랜덤!
그러나 태현은 확신이 있었다.
“네가 사디크 교단 소속이고, 거기서 퀘스트도 많이 깼을 거고, 그러니까 당연히 악명도 높을 거고 페널티 상태일 거고. 거기에 내가 사실은…… 아니, 됐다. 내가 이런 걸 왜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있지? 그냥 죽어라.”
“잠, 잠깐! 날 죽여도 원하는 걸 못 가져갈 테니까 우리 협…….”
“가져갈 자신이 있으니 그냥 죽어!”
태현은 말을 멈추고 달려들었다. 버포드는 이를 악물고 태현을 노려보았다.
주변의 기사들이 무시무시했지만 그래도 안 싸우고 질 수는 없는 상황!
-사디크의 눈!
태현의 동작이 순간 느리게 보였다. 버포드는 방패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았다.
상대방의 공격을 읽는다면 방어하는 건 쉬운 일!
‘저 자식의 공격을 막고 반격한다!’
버포드의 스타일은 한 손에는 검, 다른 손에는 큰 방패를 든 클래식한 성기사 스타일이었다.
순간적인 딜을 넣는 데에는 부족해도 탄탄하고 안정적인 싸움이 가능!
그러나 그건 태현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왼쪽으로 페이크 넣고 반응하면 바로 틀어서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한발 앞서서 상대를 읽고 있는 태현!
태현과 싸우면서 버포드처럼 스킬로 공격을 먼저 읽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태현은 상대의 그런 속셈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다.
눈빛, 손짓, 발끝…… 아주 사소한 요소들만 봐도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먹이를 던져주고 함정을 팔 뿐!
태현은 가볍게 페이크를 걸었다. 그러자 버포드는 바로 방패를 그쪽으로 돌렸다.
“어디 보냐?”
“?!”
콰쾅!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컥!”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 충격에 버포드는 비틀거렸다.
그러나 태현의 공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다음은 방패.”
“으허헉?!”
태현은 혼란에 빠진 버포드의 팔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상대의 팔을 정확하게 공격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일시적으로 팔을 쓰지 못합니다.]
카캉!
방패가 땅에 떨어졌다. 한 손을 무장해제시킨 태현은 버포드를 발로 걷어찬 다음 다시 검격을 날렸다.
완전히 갖고 노는 샌드백 수준이었다. 버포드는 두들겨 맞으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지금 필요한 건?
‘일, 일단 거리를 벌려야 해!’
어쩌다 보니 태현과 이렇게 초근접전으로 붙어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어떻게든 다시 싸우려면 거리를 벌리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사디크의 폭발 화염!
버포드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화염이 원형으로 퍼져 나갔다.
팟! 파팟! 파파팟!
3연속으로 퍼져나가는 화염!
버포드는 태현의 공격이 이 스킬로 멈췄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강격!
[적이 강한 충격으로 스턴 상태에 빠졌습니다.]
‘뭐, 뭐야?!’
버포드는 정말로 당황했다. 왜 스킬을 썼는데 저 자식은 반응이 없지?
물론 태현은 피하지도 않고 회피로 넘겨버렸다.
“아, 안 돼……!”
버포드는 필사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태현은 완벽하게 버포드를 손아귀에 넣은 상태였다.
버포드는 그저 그 위에서 놀아날 뿐!
퍽, 퍼퍼퍽, 퍼퍼퍼퍼퍽-!
“그러게 달라고 했을 때 얌전히 줬어야지. 잘 가라.”
“잠, 잠깐만! 타협을……!”
퍽!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HP가 간당간당한 상황에서 버포드는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이미 태현은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가차 없이 공격!
“안 돼!”
버포드는 비명을 지르며 회색으로 변했다.
‘설마 여기서 발목을 잡혀서 죽다니! 말도 안 돼!’
남은 버포드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로그아웃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버포드가 드랍한 반지가 떨어졌다. 태현은 휘파람을 불며 반지를 주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태현은 바로 주운 아이템을 확인했다.
사디크의 성물 반지:
내구력 1/1
신성 제한 5000, 사디크를 믿지 않을 경우 저주를 받을 수 있음.
사디크 교단의 성물, 봉인된 사디크의 힘이 담겨 있는 반지다. 조건을 갖춘다면 사디크를 불러낼 수 있다.
“……어?”
반지는 반지인데, 뭔가 태현이 생각한 반지가 아니었다.
태현이 생각한 건 풍림화산 길드 대장장이들이 온갖 보석과 광석을 넣고 스킬을 사용해 만든, 옵션이 덕지덕지 달린 명품 그 자체인 반지!
그런데 이 반지는…….
“이게 뭐야?!”
태현은 울컥해서 외쳤다.
* * *
“으아악! 그 자식! 두고 보자!”
버포드는 사망으로 로그아웃되고 나서 캡슐에서 나와 발을 굴렀다.
일이 대체 얼마나 꼬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디크 교단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친 것? 사디크 교단이 맡긴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은 것?
물론 두 개 다 엄청난 실패였지만,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됐다.
사디크 교단이 근거지인 골짜기에서 도망치기는 했지만, 완전히 망한 건 아니었으니까.
교단의 주요 인물들이 도망치는 데 성공했으니 교단 자체는 남아 있었다. 사디크 성기사 퀘스트도 계속 진행 가능할 것이다.
사디크 교단이 막으라는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한 것도 어떻게든 수습은 가능했다. 사망 페널티 때문에 속이 쓰렸지만, 어떻게든 복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사디크의 성물 반지를 잃어버렸어!’
이건 버포드도 예상 못 했었다.
아무리 악명이 높고, 사디크 교단의 성기사로 일하고 있었다지만, 사디크의 성물 반지를 드랍하게 될 줄이야.
사디크의 성물 반지는 사디크 성기사 퀘스트 그 자체인 아이템이었다.
나중에 가면 그 반지로 진정한 사디크 성기사임을 증명하고, 사디크의 힘을 받아들이고…….
하여튼 온갖 것들의 열쇠가 되어야 할 퀘스트 아이템이 바로 그 반지!
그런데 그걸 드랍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뭔 개떡 같은 상황이야?!’
아무리 현실을 부정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버포드는 머리를 감싸고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고민에 잠긴 것도 태현은 마찬가지였다.
* * *
“흠…….”
처음에야 울컥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태현은 냉정하게 생각이 가능해졌다.
태현은 스스로의 행운 스탯을 믿었다. 거기에다가 버포드가 페널티 상태라는 것도 확실했다.
그런 상황에서 드랍한 아이템이라면?
분명히 가치 있는 아이템일 것이다.
‘이름도 <사디크의 성물 반지>고 말이야. 딱 봐도 평범한 아이템은 아닌데…….’
문제는 <사디크의 성물 반지>가 풍림화산 길드의 대장장이들이 혼신을 다해서 만든 반지보다 좋느냐는 것!
판타지 온라인 2의 시스템이야 가치를 어떻게 매겼는지 몰라도, 태현에게는 당장 쓸 수 있는 반지가 편했다.
그런데 이 <사디크의 성물 반지>는 지금 쓸 수 없는 결함품!
‘젠장. 그냥 반지만 주면 됐는데 말이지.’
태현은 그의 행운이 너무 높아서 원래 드랍해야 했을 반지 대신 사디크의 성물 반지가 떨어졌다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태현 님, 마저 추격하시겠습니까?”
“아니. 됐어.”
기사들이 묻자 태현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제까지 한 것만으로도 공적치 1등은 확실했다.
도망간 사디크 교단의 주요 인물들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못 잡겠지.’
이 상황에서 먼저 도망친 사디크 교단의 주요 인물들을 잡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잡힐 정도로 약한 놈들이면 애초에 이 정도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
“돌아가서 상이나 받자고.”
저 지평선 멀리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불의 마수도, 남은 사디크 성기사들도 태현한테 뺏긴 플레이어들이 이제야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공적치를 얻기 위해 사디크 교단의 뒤를 쫓으려는 것이다.
물론 이미 알맹이는 태현이 전부 빼돌린 상태!
‘보상 나올 때까지는 잠깐 쉬어도 되겠군.’
태현은 왕국군 막사로 돌아온 다음 로그아웃했다.
오늘은 약속이 있었다.
* * *
배장욱은 기대되는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방송국 앞 카페.
기다리고 있는 건 바로 태현이었다.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카테란드 섬의 주인공!
‘크흑흑. 투자하기를 잘했어.’
배장욱은 스스로에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놓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놓치지 않았다.
경매 사이트에서 단서를 잡고 과감한 투자를 한 덕분!
‘이게 차이지. 능력이고!’
현재 MBS는 게임 전문 방송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방송계에서 위치는 언제나 바뀔 수 있었다.
대형 방송사인 SBC는 판타지 온라인 2가 돈이 된다는 걸 깨닫고 전폭적인 투자로 게임 방송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방송사들도 하나둘씩 판타지 온라인 2 관련 방송을 시작하고 있었다.
개인 방송을 하는 BJ 플레이어들도 많았으니, 이런 플레이어들과 손잡고 새로 시작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배장욱은 예감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게임 방송의 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그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컨텐츠!
시청자들이 볼 수밖에 없는 방송을 만드는 것이었다. 다른 방송사들과 차별되는 방송. 그게 바로 배장욱이 생각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려면 인재가 필요해.’
방송을 재밌게 하는 BJ 플레이어들이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배장욱은 그런 플레이어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방송을 재밌게 하는 건 방송국에 있는 사회자, 출연진들이 하면 됐다.
배장욱이 플레이어들에게 원하는 건 능력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2 내에서의 능력.
아무리 방송을 재밌게 해봤자 다들 아는 내용을 재밌게 하면 경쟁력이 없었다. 재밌게 방송하는 플레이어가 한둘인가.
결국 희귀한 퀘스트, 희귀한 정보를 어떻게 선점하느냐가 경쟁력!
“배장욱 씨 맞습니까?”
저음의 목소리. 배장욱은 고개를 들었다.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체격 좋은 남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살짝 험악하게 생겼네.’
태현이 들었다면 대번에 화를 냈을 생각을 하며, 배장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습니다. 혹시 약속하신…….”
“네. 김태현입니다.”
“하하. 반갑습니다!”
악수를 하고 둘은 자리에 앉았다. 배장욱은 즐겁게 떠들기 시작했다.
카테란드 섬 퀘스트는 정말 재밌게 봤다, 요즘 랭커 중에서도 그런 퀘스트를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우리 방송국은 이런 방송을 하고 이런 플레이어들을 전속 계약으로 데리고 있다…….
말을 하던 배장욱은 태현을 힐끗 봤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때, 우리 MBS 방송국이 탐이 나지?’
“?!”
그러나 태현은 하품을 하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