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31화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불의 마수를 보고 침을 삼키는 소리였다.
“저거…… 우리가 가볼까?”
“미쳤냐? 지금 저기 박살 난 거 안 보여?”
모인 플레이어들은 웅성거리며 불의 마수를 쳐다보았다. 언덕을 점령한 불의 마수는 거센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후욱, 후우욱-
숨을 내쉴 때마다 화염이 일어났다. 사디크 교단도, 플레이어도 움찔했다.
-저게 이쪽으로 오면 안 되는데!
불의 마수가 방금 날뛴 걸 보고 모두가 깨달았다.
불의 마수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자 사람들은 머뭇거렸다.
‘굳이 먼저 갈 필요 있나?’
‘괜히 먼저 들어가 봤자 죽기만 할 거 같은데…….’
‘누가 먼저 가서 싸워줬으면 좋겠다!’
다들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에 비해 대형 길드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놈, 사디크 교단의 말을 안 듣는 거 같죠?”
“그런 거 같다. 괜히 겁먹었네.”
“사디크 교단의 말을 안 듣는다면 먼저 싸울 거 없지 않나요?”
불의 마수가 사디크 교단의 편이라면 여러모로 귀찮았을 것이다.
불의 마수하고도 싸우고, 사디크 교단과도 싸워야 했으니까.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불의 마수는 사디크 교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좀 기다려보자. 자기들끼리 싸웠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왜 불의 마수가 저러는 거죠?”
“글쎄? 사디크 교단이 실수라도 했나?”
아무도 누군가가 가서 난리를 쳤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 *
“쟤네 언제 싸우냐?”
태현은 멀리서 불의 마수가 불꽃쇼를 펼치는 걸 보며 중얼거렸다.
옆에서는 기사들이 안절부절!
“저, 저희들도 싸우고 싶습니다!”
“시꺼.”
추욱-
기사들의 어깨가 처졌다. 다들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만 끼지 못한다는 건 그들에게 불명예였던 것이다.
쾅!
“오. 시작한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불의 마수!
그 방향은…….
사디크 교단 쪽이었다.
* * *
“아니,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냐!”
버포드는 비명을 지르며 달렸다. 불의 마수가 그가 있는 막사로 쾅쾅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껏 부활시켜놨더니 가장 먼저 하는 짓이 팀킬!
‘사디크 교단에 들어온 내가 멍청했지! 그냥 멀쩡한 교단 들어갈걸!’
뒤에서 사디크 성기사들의 비명이 들렸다. 불의 마수가 쏘아낸 화염탄을 맞고 박살 나는 소리였다.
사디크 사제들의 마법도 그냥 찢어버리는 불의 마수의 위력!
“사디크의 이름으로 너를 묶노니…….”
“사디크의 힘이여! 여기에 강림하소서!”
사디크 고위 사제들이 성기사들에게 마법을 걸고 공격을 했지만 불의 마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수라장!
“크아아악!”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아탈리 국왕 다미아노 2세의 삼촌, 안토니오는 말 위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불의 마수 하나 때문에 완전히 뒤집혀진 상황!
그래도 팽팽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불의 마수가 뒤로 돌아서 다 날려버린 덕분에 사디크 교단 진영은 박살이 나버렸다.
“피하셔야 합니다! 안토니오 님!”
“어디로 피하란 거냐! 어디로!”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안토니오 님은 귀하신 몸! 이곳에 있으시면 안 됩니다! 안토니오 님을 호위해라!”
사디크 정예 성기사들이 안토니오를 둘러싸고 골짜기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포드한테 퀘스트가 떴다.
<목숨을 건 후퇴-사디크 교단 성기사 직업 퀘스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디크 교단은 전투에서 패배했고 이제는 후퇴해야 한다. 교단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지켜야 한다.
사디크 교단 성기사인 당신. 목숨을 걸고 적들을 막아라. 성기사장과 대주교가 빠져나갈 때까지.
사디크 신께서 보고 계신다!
보상:??, ???, 사디크 교단 내에서 평판 상승, 공적치 상승. 악명 상승.
‘?!?!’
버포드는 눈을 의심했다.
퀘스트로 멋지게 포장을 하긴 했지만…….
‘이건 그냥 총알받이잖아!’
우리는 튈 테니 부하인 너희들은 목숨 걸고 막아라!
누가 사교로 몰린 교단 아니랄까봐 아주 노골적이었다.
‘그냥 튈까?’
버포드가 고민하자, 바로 메시지창이 떴다.
[퀘스트 거절 시 페널티가 있습니다.]
‘…….’
교단에 들어가서 신을 믿으면 혜택이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성기사나 사제를 선택했다.
그러나 신 관련 직업은 장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단점도 명확한 직업!
단점 중 하나는 교단의 명령을 어겼을 경우 페널티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다른 직업들은 길드나 퀘스트를 거절해도 그다지 페널티를 받지 않았지만, 교단에 들어가서 일하는 성기사나 사제 같은 건 교단의 명령을 어기면 엄청난 페널티가 들어왔다.
신성 스탯도 팍팍 떨어지고, 명성도 팍팍 떨어지고, 신성 마법 레벨도 팍팍 떨어지고…….
한 마디로 을 중의 을!
그건 사디크 교단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디크 교단은 사악한 교단인 만큼 더 심했다.
버포드는 퀘스트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으흑흑!”
버포드는 무기를 들고 다른 성기사들과 함께 앞으로 달려나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장밋빛 미래가 순식간에 틀어지고 있었다.
* * *
“장하다! 불의 마수!”
“사디크 교단을 멸망시켜버리렴!”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플레이어들 쪽은 축제 분위기였다. 불의 마수가 갑자기 사디크 교단으로 가서 난장판을 펼쳐놓은 것이다.
덕분에 그 강하고 끈질기던 사디크 교단이 후퇴까지 하고 있었다.
몇몇 욕심 많은 플레이어들이 ‘공적치 챙겨야 하는데’ 하고 투덜거리는 거 말고는 모두가 즐거워했다.
불의 마수가 몸을 돌리기 전까지는.
“어…….”
“쟤 왜 이쪽을 보냐?”
“하하. 그냥 목이 뻐근해서 고개를 돌린…… 이쪽으로 온다!!!”
“야! 불의 마수 온다! 버프!!! 버프 걸어줘!!!”
쾅! 쾅! 쾅!
사디크 교단을 대충 쓸어버린 불의 마수는 바로 몸을 돌려 플레이어들을 향해 돌격!
마음 놓고 있던 플레이어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화염탄!!! 피해욧!!!! 옆으로!!!!”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비명을 지르는 것도 소용없이, 재수 없는 플레이어들은 속속 로그아웃당하기 시작했다.
“잡자! 어차피 잡아야 할 놈이다!”
-극지를 뒤덮는 냉기의 뿔!
-상급 빙결 저주!
불의 마수는 화염 속성.
냉기 전문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럴 때가 바로 그들이 나설 때였다.
퍽! 퍼퍼퍼퍽!
콰지직! 콰직!
-크어! 크어! 크어어!
고렙 마법사들이 강력한 냉기 마법을 써대자 불의 마수도 움찔했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몸의 구석이 얼어붙는 위력!
“됐다! 효과가 있다!”
“계속 몰아붙여!”
불의 마수가 움찔하자 플레이어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도망치려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멈칫했다.
“어? 잡을 수 있냐?”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는 않나 본데?”
다시 몰려오는 플레이어들!
“우리가 먼저 공격하고 있다! 끼어들지 마라!”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무슨 예약이라도 했냐!”
플레이어들은 투닥거리며 불의 마수를 공격하려고 했다. 지금 공적치 다툼 중이니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크어…… 크어어……!
“?”
불의 마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그걸 본 플레이어 중 눈치 빠른 몇 명은 바로 몸을 돌려 전력으로 뛰었다.
저건 절대 위험하다!
“어, 어, 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화염의 파도가 평야 위에 펼쳐졌다.
* * *
“태현 님. 뭐하십니까?”
“마법 연습.”
“그런 저열하고 더러운 마법 따위는 태현 님처럼 고귀하신 분이 다루실 게…….”
“뭐 인마?”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사 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태현이 하고 있는 건 <초급 언데드(망령) 소환> 연습이었다.
골짜기 안에서 계속 시도했지만 흑마법 레벨이 너무 낮고, 상대는 레벨이 너무 높아서 제대로 소환을 하지 못했다.
이 평야에는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언데드 소환 연습을 하기에는 아주 좋았다.
게다가 지금 주변에는 보는 교단 NPC들도 없는 상황!
[초급 언데드(망령) 소환을 시도합니다. 흑마법 스킬 레벨에 비해 시체가 너무 강합니다. 소환을 쓸 수 없습니다.]
[초급 언데드(망령) 소환을 시도합니다. 흑마법 스킬 레벨에 비해 시체가 너무 강합니다. 소환을 쓸 수 없습니다.]
[마법 실패로 페널티를 받습니다. 높은 행운으로 페널티를 받지 않는 데 성공합니다.]
[초급 흑마법 스킬이 레벨 5가 되었습니다.]
다른 마법사들은 마법을 실패할 때마다 MP나 지혜에 페널티가 걸렸겠지만, 태현은 페널티를 거의 받지 않았다.
덕분에 실패해도 계속 시도가 가능!
그러던 도중 드디어 초급 흑마법 스킬이 레벨 5가 되었다.
[초급 언데드(망령) 소환을 시도합니다. 소환에 성공합니다.]
“……!”
-나를…… 불렀는가…….
나타난 것은 반투명한 전사의 망령. 마치 유령 같은 모습이었다. 매우 약해 보였지만 태현은 실망하지 않았다.
원래 모든 스킬은 초반에는 구리기 마련!
태현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언데드들을 소환했다.
-언데드 소환.
[초급 언데드(망령) 소환을 시도합니다. 소환에 성공합니다.]
[흑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초급 언데드(망령) 소환을 시도합니다. 소환에 성공합니다.]
[초급 정예 언데드(망령)를 소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흑마법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
마법에서도 나오는 행운의 효과!
그냥 초급 언데드가 아닌, 초급 정예 언데드가 소환되었다.
물론 강하지는 않았다.
‘흠. 더럽게 약해 보이는군.’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언데드들을 쳐다보았다.
망령 계열 언데드는 물리 공격을 더 잘 견디는 대신 속성, 마법, 스킬 등에 취약했다.
물론 그것도 좀 강한 망령 이야기지, 태현이 일으킨 망령은 그냥 약한 수준!
[현재 수준에서 조종할 수 있는 언데드의 한계입니다.]
[더 이상 언데드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10명을 일으키자 더 이상 일으킬 수 없다고 뜨는 메시지창. 태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전사 망령 8명, 궁수 망령 1명, 마법사 망령 1명.
일단 구색은 나름 갖춰진 셈이었다. 게다가 전사 중 한 명은 정예 망령.
물론 초급이지만!
-적에게…… 죽음을…….
-내 앞을…… 가로막지 마라…….
“너희 대사 너무 비장한 거 아니냐?”
말하는 것만 보면 무슨 보스 몬스터의 대사!
그러나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비실비실한 그들이었다.
-크흐흐…… 살아 있는 건 곧 죽게 마련…….
“아. 시꺼.”
태현은 언데드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불의 마수를 쳐다보았다.
언제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 것인가?
그 순간이 중요했다. 너무 빠르면 괜히 남 좋은 일만 해주고 너무 느렸다가는 다른 사람한테 뺏길 수도 있었다.
‘사디크 교단은 뒤로 빠지고…… 불의 마수는 플레이어들 쪽으로 오고.’
사디크 교단은 불의 마수 때문에 완전히 붕괴되어서 도망치고 있었다.
다른 교단의 성기사들이나 왕국군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사디크 성기사들이 남아서 버티고 있는 상황.
원래라면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쫓아가겠지만 불의 마수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랭커들이나 대형 길드에서 힘을 좀 써야 하는데.’
태현이 노리는 건 하나.
불의 마수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서로 피 튀기게 싸우고 서로 지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바로 끼어들어서 낚아채기 좋은 순간!
지금 불의 마수와 정면에서 싸우고 있는 대형 길드원들이 알아차린다면 뒷목을 잡을 뻔뻔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