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6화
‘힘만 조금 더 조절했더라도…….’
아직도 태현은 조금 아쉬웠다.
그렇게 미쳐가지고 골드 드래곤 브레스를 계속 뿌려댔으니 지금 이 꼴이 된 것 아닌가.
한 절반 정도만 했어도 섬은 충분히 박살 났을 거 같은데…….
아니, 그냥 골드 드래곤 브레스를 쓰지 않고 해적대장만 잡아도 되지 않았을까?
‘무식하게 힘만 세가지고…….’
-주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아무것도 아니야.”
자기 욕하는 건 주인을 닮아서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용용이였다.
어쨌든 첫 번째로 얻은 신수 소환이 이렇게 강력한(지금은 아니지만) 스킬이었으니, 두 번째 권능도 많이 기대가 됐다.
솔직한 마음으로서는, 이 대규모 퀘스트에서 공적치를 확실히 굳힐 수 있는 강력한 스킬을 원했다.
‘그러니까 좀 비켜라!’
그런데 이 눈치 없는 왕국군 놈들은 비켜주지를 않았다.
연신 태현 앞에서 감탄사를 내뱉는 왕국군 장교들!
“대단하십니다! 태현 님!”
“어떻게 그런 전략을!”
“저희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알겠으니까 좀 비켜봐!”
좀 조용한 곳에 가서 권능을 익히려고 하는데 자꾸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게다가 부하인 기사들은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하하! 정말 대단한 싸움이었지.”
“자네들이 봤어야 했는데! 정말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지. 사디크 교단의 사악함이란!”
[명성이 300 오릅니다.]
[아탈리 왕국군 내에서 당신의 평가가 오릅니다.]
[아탈리 왕국의 기사를 성공적으로 귀환시켰습니다. 왕국 내 공적치가 올라갑니다.]
[기사들을 성장시킨 것으로 인해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저 사악한 사디크 성기사 놈이 나타나자, 우리는 말에 타고 용감하게 돌진했지. 놈들은 겁을 먹고 도망치더군!”
“그 모습을 자네들이 봤어야 했는데!”
기사들은 돌아오자마자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태현한테 갈굼 받던 과거는 순식간에 까먹은 모습!
어찌보면 대단한 모습이었다.
그걸 본 대장장이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말을 타고 돌격하다니. 말 버리고 갔잖아?”
“냅 둬. 냅 둬. 쟤네들이 자랑한다고 우리한테 피해 오는 거 없잖아. 그보다 챙긴 걸 보자구. 공적치 얼마 쌓였냐?”
“맞아. 공적치!”
세 대장장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공적치!
물론 아직 이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고, 그들의 공적치는 이 자리에 모인 고렙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다.
혼자서 날뛴 태현과는 얻는 공적치의 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 대장장이에게는 그걸로도 충분!
“공적치 봤냐?! 이거 제대로 나온 거 맞지?”
“제대로 나온 거 맞아! 대박이라고!”
김지산과 박성찬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제까지 고생한 게 한 번에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순위권에 들지 못하는 게 뭐가 어떤가. 어차피 처음부터 순위권을 노릴 생각은 없었다.
이런 대규모 퀘스트에서 순위권을 노리는 태현이 꿈이 큰 것이었지, 보통은 순위권을 노리지 않았다.
그들 같은 플레이어들은 그냥 적당히 공적치를 쌓아서 적당한 보상을 받는 게 목표!
몇몇 대형 길드나 랭커들이 아닌 이상 다들 비슷했다.
“아저씨. 뭐 해요?”
김지산이 우정식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조용히 가만히 있으니까 신경이 쓰인 것이다.
“아저씨 아니거든? 저놈 뭐하나 싶어서.”
우정식이 가리킨 건 케인이었다.
“저 사람이 왜요?”
“너희는 쟤가 누군지도 모르냐?”
“……?”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정식은 한숨을 쉬었다.
“케인이잖아. 케인. 못 들어봤냐?”
“어…… 어디서 들어봤나?”
“들,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둘은 못 들어봤지만 우정식이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허세를 부렸다.
“레드존 길마잖아. 전에 레드존 애들 데리고 삥 뜯던.”
처음에야 완전히 다 벗고 나타나서 불쌍한 모습으로 징징거렸으니 ‘저게 뭐하는 놈이냐’싶었다.
그다음에는 태현과 말하는 걸 보고서 ‘태현과 아는 사이인가?’ 싶었고.
나중에 갑옷을 입고 대검을 휘두르는 걸 보니 어디서 본 기억이 났다.
케인은 레드존 길마일 때 나름 유명했으니, 동영상도 몇 개 돌아다니고 했던 것이다.
기억이 난 우정식은 영상을 확인하고 얼굴을 비교해봤다.
똑같았다. 케인이 맞았다.
‘저런 놈을 왜 데리고 다니는 거야?’
당연히 우정식은 케인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힘 좀 세다고 길드원들 데리고 다니면서 삥 뜯고 다니던 양아치들!’
우정식 같은 대장장이 직업들은 저런 플레이어들이 삥을 뜯으면 뜯길 수밖에 없었다. 보기만 해도 기억폭력이 일어났다.
-정, 정말 골드 없어!
-없기는 뭐가 없어! 여기서 죽고 사망 페널티 받고 싶냐! 없으면 장비라도 벗어!
‘생각하니까 다시 빡치네!’
우정식이 혼자 씩씩거리는 동안 김지산과 박성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레드존 길마라고요?”
“레드존 길마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게다가 저 인간은…….”
박성찬은 상냥했다. 굳이 ‘저 인간은 다 벗고 변태처럼 구걸하고 있었잖아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레드존 길드 망했잖아. 그렇게 난리를 쳐댔으니 싫어하는 놈들도 있었을 테고. 당연히 원한이 쌓였겠지. 길드 망하고 쫓기다가 저렇게 된 거 아니겠어?”
우정식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태산 님이 왜 데리고 다니지?”
“그러게?”
두 대장장이의 말을 듣자, 우정식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네. 김태산이 왜 저놈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
우정식은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 만났을 때 케인이 태현을 대하던 걸 보면 둘이 분명 먼저 알고 있었던 사이 같았다.
‘알고 있었던 사이였나? 하긴, 저 인간은 확실히 그럴 수 있지!’
케인이 뒷골목에서 애들 삥을 뜯고 다니던 양아치라면, 태현은 그 양아치들을 모아서 등쳐먹을 사람!
비슷하게 사악한 사람이었다. 물론 사악하기로는 태현은 케인과 그 급이 달랐지만.
김지산과 박성찬은 눈에 콩깍지가 끼어가지고 태현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우정식은 나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다.
비교적 정확하게 태현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정식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둘은 ‘왜 태현이 케인을 데리고 다니는가’에 대한 이유를 추측하고 있었다.
“필요해서 데리고 다니는 거 아닌가?”
“뭐가 필요해서?”
“레벨은 높잖아. 탱커니까 단단하기도 하고…….”
“……!”
둘이 그러는 동안 우정식은 다른 생각을 했다. 지금 중요한 건 태현이 왜 케인을 데리고 다니느냐가 아니었다.
그야 케인은 성격이 더럽고 한 짓이 있어도 나름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였으니까. 데리고 다니면 언제나 쓸모가 있었다.
길드를 이끌고 나쁜 짓을 하는 것도 나름 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약하면 그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케인이 태현을 왜 따라다니는가였다.
‘이 자식…… 역시 얻어먹을 게 있다는 걸 알고 따라다니는 거구나! 역시 레드존 길마는 괜히 한 게 아니었다 이거지!’
오해의 연속!
우정식은 케인이 태현을 쫓아다닌다고 생각했다.
레드존 길드도 망했고, 원한도 많이 샀으니, 태현 곁을 따라다니면서 재출발을 하려는 것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이유였다.
지금 태현이 하는 퀘스트들은 몇 개만 봐도 그 급이 달랐다.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탐이 나서 침을 줄줄 흘릴 퀘스트들!
그런 퀘스트들을 같이 깨면서 다시 스탯과 레벨을 회복하고, 인기를 회복한다면…….
케인도 부활할 수 있었다.
케인은 욕도 많이 먹고 안티도 많았지만, 잘나갈 때에는 팬도 많았다.
원래 아무리 악당 짓을 해도 잘나갈 때에는 팬이 따라붙기 마련!
지금은 길드도 망하고 완전히 비웃음을 사고 있지만, 연신 대박 퀘스트들을 깨고 시청자들을 모으고 레벨을 올린다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절대 그 꼴은 못 본다!’
우정식은 이를 갈고 말했다. 지금 필요한 건 단결이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가만히 있을 거냐?”
우정식의 말에 두 대장장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또 뭔 소리예요?”
“저놈이 같이 다니는 게 신경이 안 쓰여?”
우정식의 질문에 김지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 신경 안 쓰이는데요. 그렇게 나쁜 놈 같지도 않고.”
“맞아. 장비도 우리가 만들어줬잖아요. 태산 님이 시킨 거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죠.”
‘이런 바보 같은 놈들을 봤나!’
우정식은 속으로 한탄했다. 이 둘의 단순한 생각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야 했다.
우정식은 케인 같은 플레이어를 매우 싫어했다. 그리고 지금은 더 싫어했다.
그들이 먼저 따라다니고 있는 태현을 따라다니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원래 남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먹을 때에도 상도덕이 있는 법이었다.
“흠. 그래. 너희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우정식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우정식은 멍청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둘보다는. 우정식은 이 둘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먼저 말하지 않고 기다리기!
그러면 둘이 궁금해져서 물어보게 되어 있었다.
“뭐에요, 또?”
“왜 말하다 말아요?”
“아니…… 너희들이 괜찮다며? 그래서 더 말 안 하는 거지.”
“안 괜찮으면 뭔데요? 아 진짜,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말해 봐요. 뭔데요, 진짜?”
우정식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은 안 하고 머뭇거리자 두 대장장이는 자꾸 재촉했다.
결국 우정식은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지금 김태산 따라다니려는 플레이어들 많잖아? 저번 퀘스트도 그렇고 인기 있으니까. 그런데 저렇게 한두 명씩 따라다니기 시작하면 다른 놈들도 따라붙을 거 아니야. 김태산도 그런 거 딱 거절하는 사람 아니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냐? 계속 생기지 않겠어?”
확실히 태현은 따라다닌다고 해서 딱 잘라내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유명 방송인이나 랭커들은 자기를 따라다니면 쫓아내거나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보가 생명이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은 따라다니는 거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
엄청 부려먹을 뿐.
따라다니려면 대가를 내라는 것이었지만 솔직히 이것도 엄청난 기회였다.
아직 안 알려져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이 이걸 알게 된다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태현을 따라다니려고 할 게 분명했다.
“그, 그런가?”
“에이. 그렇게 많이 따라다니겠어?”
김지산과 박성찬은 우정식의 말을 듣자 서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었지만 둘의 얼굴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래. 많이 안 따라다닐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저 케인은 랭커 아니면 준 랭커이고, 어지간한 몬스터 상대로 탱킹 가능한 탱커인데 우리는 짐꾼 역할인 대장장이지. 우리보다 더 잘할 사람이 많지 않겠어? 응?”
“……!”
우정식의 말은 사실이 되어 묵직하게 둘의 명치를 때렸다. 확실히 말은 맞는 말!
케인이야 나름 귀한 인재지만 그들은 정말 잡일밖에 할 게 없었다.
심지어 대장장이 기술도 태현이 더 잘하는 상황!
다른 사람들이 따라다니기 시작하면 상대할 게 없었다.
둘의 표정을 본 우정식은 그가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쿨하게 돌아설 때!
“난 모르겠다~ 그래. 너희들이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와도 우리 있을 곳 하나 정도는 있지 않겠냐? 그럼 난…….”
탁!
김지산은 우정식의 팔을 잡았다.
“저놈을 쫓아내죠!”
“그래요!”
우정식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잘 생각했다!”
케인이 안다면 분노로 뒷목을 잡았을 대화였다.
-누군 좋아서 같이 다니는 줄 아냐 이 자식들아!
케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대화!
그러는 사이 케인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눈을 신경 쓰며 골짜기 앞 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