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21화
“잠깐 쉬었다 가자.”
태현이 발걸음을 멈추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멈췄다. 태현은 발 빠르게 포션을 사용했다.
[상급 체력 회복 포션을 사용했습니다. HP가 빠르게 회복됩니다.]
[중급 마력 회복 포션을 사용했습니다. MP가 빠르게 회복됩니다.]
상단 창고에서 갖고 나온 포션들!
원래 하나하나가 비싼 가격에 팔렸지만, 태현은 그냥 갖고 나왔다. 옆에 있던 루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포션 어디서 본 거 같은데요?”
“착각이겠지.”
“……?”
-신의 예지.
태현은 신의 예지 스킬로 보이는 붉은색 선이 점점 더 굵고 선명해지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들어가고 있는 동굴 통로도 점점 넓어지고 거대해지고 있는 상황.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던전의 중앙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신의 예지 스킬이 생각보다 MP를 너무 많이 잡아먹네.’
신의 예지 하나만 쓸 때는 MP 걱정 없이 팍팍 써도 됐었다. 어차피 다른 마법은 안 썼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흑마법 스킬을 올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마법을 쓰는 상황. MP가 생각보다 빠르게 닳았다.
‘마력 회복의 귀걸이를 착용해서 다행이지…….’
길 가다가 덤빈 멍청이들한테서 뜯어낸 마력 회복의 귀걸이가 참 쏠쏠했다.
태현은 다른 마력 회복 옵션이 걸린 아이템들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쓸 수 있는 마법의 개수가 늘어난다면 분명 필요해질 테니까.
“흠흠. 흠흠.”
“……?”
케인이 헛기침을 하며 태현 옆에 다가왔다. 태현은 ‘이 자식은 왜 이러나’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있잖냐. 내가 지금 맨몸인데…….”
케인은 등에 대검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다. 나머지는 반바지 하나만 빼고 다 벗고 있는 알몸 상태!
누가 본다면 ‘어머 저 사람 변탠가 봐’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겉모습이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케인은 지금 꿰고 있는 퀘스트를 영상으로 찍고 있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밖에서 발이 묶여 있을 때 이런 퀘스트를 깬다는 건 엄청난 기회였다.
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사람들의 관심은 떼놓은 당상.
그렇지만…….
‘너무 쪽팔리잖아!’
케인은 이전까지 카리스마적인 캐릭터를 쌓아놨었다. 레드존 길드를 이끌면서 거침없이 싸우는, 카리스마 있는 길드 마스터!
물론 덕분에 적도 많이 생겼지만 그런 걸 좋아하는 팬들도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을 다시 시작해서 ‘길드는 망해서 사라졌고 저는 아이템이 없어서 맨몸으로 다닙니다’라고 한다면?
엄청난 비웃음을 살 게 분명했다. 케인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점점 던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 계속 맨몸으로 있기에는 너무 불안했다.
아무리 맷집이 튼튼한 전사라도 한 대 맞으면 피가 쭉쭉 깎이는 상황!
“나도 낄 거 뭐 좀 주면 안 되냐?”
“나한테 아이템 맡겨놨어? 저기 사디크 성기사들이 드랍한 장비들 끼던가.”
“그거 껴보려고 했는데…….”
사디크 성기사들과 워낙 많이 싸워서, 그들이 떨군 아이템들이 꽤 있었다.
물론 그건 다 대장장이들이 들고 있었다.
대장장이들을 데리고 온 이유 중 하나. 그건 바로 짐꾼으로 쓰기 위해서!
직업 특성 때문에 들 수 있는 무게가 많은 대장장이는 타고난 짐꾼이었다.
-우리 이렇게 계속 짐만 들고 다녀도 돼?
-경험치는 많이 나오잖아…….
-대장장이 스킬도 많이 쓰고…….
짐꾼이지만 너무 얻는 게 많아서 대장장이들도 조용히 짐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케인도 그중에서 쓸 만한 갑옷이 있으면 입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신입 사디크 성기사를 위한 중갑 : 내구력 270/270, 방어력 65
스킬 ‘사디크의 불꽃’ 사용 가능, 스킬 ‘사디크의 하급 체력 회복’ 사용 가능
레벨 제한 75. 힘 제한 80. 체력 제한 120.
새로 훈련 받은 성기사들을 위해 사디크 교단에서 만든 중갑이다. 균형 잡힌 밸런스와 사디크의 신성 주문이 걸려 있다.
주의! 사디크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착용할 경우 강력한 페널티 있음.]
사디크 성기사들이 떨어뜨린 아이템들은 다 똑같은 단점이 있었다.
사디크 신을 안 믿는 사람이 입을 경우 강력한 페널티가 있다는 것!
이러면 오히려 입는 게 손해였다.
그래서 케인이 태현한테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쓸 만한 장비를 달라고!
“저 대장장이들한테 내가 입을 만한 갑옷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안 되냐?”
이미 부탁을 한 번 했지만, 대장장이들은 바로 거절했다.
-해주고야 싶지. 해주고 싶은데…….
-태산 님한테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하면 혼난다고.
-난 별로 해주고 싶지도 않으니까 안 할래.
셋이 똑같이 하는 소리에 케인은 결국 포기하고 태현한테 온 것!
“목숨만 살려달라고 해서 목숨만 살려줬는데, 이제는 아이템도 달라. 좀 있으면, 어? 골드도 달라고 하고 부하들도 나눠 달라고 하겠네? 나한테 맡겨놨냐?”
“그, 그런 말은 안 했는데!”
태현이 윽박지르자 케인은 억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쩌다가 그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케인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참아야 했다.
“목숨 살려줬는데 네가 활약을 보여준 게 있냐?”
‘네가 못 싸우게 했잖아!’
사디크 성기사들이 나오면 혼자 싸우려고 다들 뒤에 있으라고 한 건 바로 태현이었다.
물론 케인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했다. 입으로 꺼냈다가는 더 구박을 받을 테니까.
“기, 기회만 주면 보여줄 수 있다고!”
“그래?”
“정말이다! 기회만 주면 내가 앞에서 뭔가 보여주겠어!”
케인은 태현한테 인정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쳤다.
“알겠어. 이거나 받아.”
“……?”
태현이 내민 건 계약서!
판타지 온라인 2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당연히 플레이어 간의 계약서도 가능했다.
“나 케인은 갑옷과 벨트와 장갑과 부츠와…… 어쨌든 대충 전신 방어구 세트를 받는 대신 거기에 맞는 돈을 갚기로 하겠습니다 라고 써.”
“맞는 돈은 얼마지?”
“뭐 대충 500골드면 되겠지.”
“대충 500골드라고?!?!”
500골드면 현금으로 환산하면 2천만원이 넘어가는 금액. 케인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벌어서 갚으면 되잖아. 벌어서.”
“그,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내가 자선사업이라도 하는 줄 아냐? 500골드에는 내가 너를 용서하고 넘어가는 비용도 들어 있어. 그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지.”
한 번 맺은 원한은 절대 잊지 않는 태현이었다.
“게다가 너 레드존 길마였잖아. 왜 500골드 갖고 그래? 노력해서 벌라고. 노력해서.”
“길드는 망했다고!”
게다가 망한 원인이 저렇게 말을 하니 혈압이 두 배로 올랐다.
케인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살아나가서 길드원들한테 복수하려면, 태현의 손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그러면 우리 사이 원한은 잊어주는 거지?”
“돈을 갚으면 잊어주겠지. 돈을 안 갚으면 더 생기겠고. 500골드 썼냐? 그 뒤에 이자 10%도 쓰고.”
“…….”
케인은 쓰면서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드는 생각.
-길드원들을 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사실 이게 더 큰 실수가 아닐까?
그렇지만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악마의 손이라도 잡을 수밖에.
“상단 창고에서 갖고 나온 중급 계약서니까 효과는 확실할 거야. 괜히 페널티 받아보겠다고 배짱부리지 말고.”
“그, 그런 생각 안 했어!”
케인은 고민하던 속마음을 들켜서 얼굴을 붉혔다. ‘안 갚고 튈 수 없나?’ 고민했던 것이다.
“좋아. 잘 썼군. 그러면 이제 쟤네들한테 가서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고…… 고맙다.”
잃은 게 많았지만, 그래도 알몸 생활이 끝난다는 게 기뻤다.
* * *
세 대장장이는 그래도 능력이 있었다. 급하게 있는 재료만으로 만들어서 성능은 좀 낮지만 쓸 만한 중갑옷과 다른 장비를 만들어냈다.
케인은 행복해서 싱글벙글하다가 갑자기 서글퍼졌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떨어졌냐!’
얼마 전만 해도 길드원들을 부리며 외치던 게 꿈만 같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태현과 파티는 동굴의 통로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보이는 건 거대한 공동!
골짜기 안의 동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넓은 공간이었다. 천장이 거의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는…….”
[영웅 던전: 사디크 교단의 지하 신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처음으로 사디크 교단의 지하 신전에 들어왔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아이템 드랍률과 경험치가 올라갑니다.]
[명성이 300 오릅니다.]
[공적치가 크게 오릅니다.]
[사디크 교단과의 적대도가 최대치가 됩니다. 사디크 교단 소속을 만난다면 무조건 공격해올 것입니다.]
[교단이 이끄는 불의 마수가 깨어납니다!]
“어?”
메시지창들을 본 플레이어들은 동시에 놀랐다.
마지막에 뜬 창.
-교단이 이끄는 불의 마수가 깨어납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이렇게 메시지창으로 뜰 정도라면 어마어마하게 강한 놈이 분명했던 것이다.
“태, 태산 님. 이건…….”
“알고 있어. 아마 보스 몬스터겠지. 그보다 저걸 보라고.”
태현은 손가락을 뻗어 먼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건 사디크 교단의 신전 건물들!
이글거리는 불꽃 장식과 흉악하고 무섭게 생긴 신의 얼굴들이 건물들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신전 건물들 가운데에서는 엄청나게 거대한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딱 봐도 수상한데…….’
뭔가 잘못 건드리면 아주 강력한 놈이 나올 것 같은 기분!
“가자. 저기 신전을 턴다!”
“괜찮을까요?”
“지금 놓치면 기회가 안 올 거야.”
태현도 알고 있었다.
이 지하 신전은 사디크 교단의 핵심 중의 핵심.
저 밖의 골짜기에 있는 수많은 함정들과 장애물들은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지하 신전에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전력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밖에 많이 나가 있어도 말이다.
‘성기사들, 사제들까지 있으면 솔직히 좀 힘들 거 같기도 한데…….’
기사들이 강하기는 했지만, 사디크 고위 성기사들과 고위 사제들은 얕볼 수가 없었다.
태현이 직접 경험하기도 했고, 지금 영상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골짜기 밖에서 당하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온갖 파괴적인 마법과 저주를 마음대로 다루는 강력함!
태현의 강한 회피율도 고위 사제들한테 집중적으로 당하면 깎이게 되어 있었다.
태현은 고민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공격하는 방법은?
“그래.”
“네? 뭐라고 말하셨습니까?”
“좋은 생각이 났다. 신전 건물들을 날려버리는 거야.”
“저희는 마법사도 없고 스크롤도 없는데…….”
“기계공학 스킬을 쓸 거야.”
이럴 때 가장 편리한 것은 역시 기계공학 스킬!
불안정하고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효과 하나는 기가 막혔다.
태현은 상단 창고에서 갖고 나온 폭탄들과 재료들을 꺼냈다. 그리고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했다.
[고블린 제작자가 설계한 연쇄 화염 폭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중급 대장장이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제노마 시에 있을 때 기계공학자 NPC한테서 가능한 폭탄들 제작법을 배워 온 상태였다.
그러나 태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추가 개조!
<추가 개조>
제작법을 기계공학자 스스로 바꿉니다.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제작법을 살짝 바꾸는 스킬.
[<고블린 제작자가 설계한 연쇄 화염 폭탄>이 <불안정한 미친 화염 폭탄>으로 개조되었습니다.]
불안정한 미친 화염 폭탄:
화염 덩어리를 안에 꽉꽉 눌러서 만든 연쇄 화염 폭탄을 개조해서 만든 폭탄이다. 안 그래도 불안정한 화염 덩어리들을 더 압축시켜서 넣었다.
주의! 대폭발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