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17화 (117/1,826)

§ 나는 될놈이다 117화

다들 급하게 뛰어나왔다.

원하는 건 하나!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교단 성기사들과 함께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야 해!’

누가 먼저 들어가냐의 싸움이었다. 교단의 성기사와 사제들까지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하. 우리 형제님. 적극적인 게 보기 좋습니다.”

“성기사들 데리고 들어가게 해주세요!”

“정말 보기 좋군요. 그런데 우리는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조금 쉬었다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성기사들 데리고 들어가게 해주세요!!”

“저기 다른 교단 성기사들도 서두르지 않고 쉬었다 들어가려고 하는데…….”

“성기사들 데리고 들어가게 해주세요!!!”

데메르 사제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해도 떼를 쓰는 플레이어들.

데메르 사제는 웃는 표정을 유지하면서 말했다.

“하하. 그러면 니들끼리 들어가면 되겠네요.”

“네?”

순간 플레이어들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데메르 사제는 여전히 인자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제님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기다릴게요! 성기사들도 쉬어가야 하니까!”

“잘 선택하셨습니다.”

데메르 성기사와 사제 플레이어들은 잔뜩 쫄은 얼굴로 데메르 사제 앞에서 물러섰다.

더 졸랐다가는 한 대 맞을 거 같은 분위기!

* * *

“정말 저희가 만져도 됩니까?!”

세 대장장이, 김지산, 박성찬, 우정식은 뛸 듯이 기뻐했다. 태현이 내린 명령 때문이었다.

-기사들의 장비를 좀 손봐줘라!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기사들의 장비는 전부 태현이 담당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워낙 까다로워서 어쩔 수 없었다. 대장장이들이 만지기라도 하려고 하면 질색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태현은 그들에게 장비를 손봐주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겠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만지기나 해.”

대장장이들이 다가가자 기사들은 질색하는 표정으로 싫어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태현의 명령!

그들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장비들을 건넸다. 장비를 건네받는 대장장이들이 죄책감을 느낄 정도의 표정이었다.

“흑흑. 내가 4년 동안 아껴서 쓴 내 방패일세. 잘 다뤄주게나.”

“……최선을 다해서 수리하겠습니다.”

방패를 받으며 김지산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들으면 장비를 부수려고 가져가는 줄 알 것 같았다.

“크, 크흑…… 내 칼…… 로앤나…… 잘 부탁하네…….”

“칼에 이름을 붙였어?!”

한바탕 눈물을 짜내고 나서야 대장장이들은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박성찬은 모루를 깔고 망치를 땅땅거리기 시작했다.

“태산 님. 태산 님.”

“왜?”

심드렁한 태현의 목소리. 그러나 박성찬은 이미 태현의 태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박성찬은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었다.

“이 장비들 태산 님이 직접 만지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

“만지기 싫냐?”

“그건 아니고요…….”

만지기 싫을 리 없었다. 기사들이 끼고 있는 장비처럼 레벨 높은 아이템을 만지면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빠르게 올랐다.

물론 그들 실력으로 만지면 전체 내구도가 좀 깎이거나, 완전히 수리가 안 되는 등 여러 페널티가 있었다. 그거 때문에 기사들이 싫어한 것이다.

기사들의 전투력을 생각한다면 태현이 직접 만지는 게 좋았다.

그러나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난 너희들을 믿는다.”

“태산 님……!”

박성찬도 순간 감동할 정도!

그러나 태현이 말한 ‘믿는다’는 건 좀 다른 의미였다.

‘난 너희들이 장비를 완전히 수리하지 못할 거라고 믿는다.’

믿기는 믿는데, 좀 다른 의미의 믿음!

태현이 세 대장장이한테 장비 관리를 맡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산맥을 올라가면서 싸우는 동안 태현은 계속해서 기사들의 장비를 만져왔었다.

수리는 기본이고, 녹 없애기나 날카롭게 갈기 같은 버프 스킬도 팍팍 썼다.

처음에는 레벨 높은 아이템을 만진다고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쭉쭉 올랐다.

[중급 대장장이 스킬로 인해 페널티를 받습니다.]

[높은 행운으로 페널티가 상쇄됩니다.]

[신의 예지로 수리 스킬에서 보너스를 받습니다.]

[현재 대장장이 스킬 수준보다 더 높은 아이템을 수리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크게 상승합니다.]

그러나 워낙 많이 수리하고 만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잘 오르지 않기 시작했다.

그래서 태현이 생각한 건…….

‘조금 망가뜨린 걸 다시 고치자!’

단순히 몬스터랑 싸우다가 내구도가 깎인 게 아닌, 실력 안 좋은 대장장이가 실수로 깎아 먹은 내구도.

이런 걸 복구시키면 또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올랐다.

기사들의 장비를 일부러 망가뜨린 다음 다시 수리해서 스킬을 올리려는 철저함!

아주 뼛속까지 우려먹을 것 같은 철저함이었다.

그러나 박성찬으로서는 감동일 수밖에 없는 상황!

‘나를 이렇게 믿어주다니…… 평소에 그렇게 까칠하게 굴어도 역시 우리를 믿고 있었구나!’

박성찬은 온 정신을 집중해, 한 땀 한 땀 세심하게 망치질을 했다. 평소에 이렇게 집중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박성찬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믿어줬는데 실망시킬 수는 없다!’

혼신의 망치질!

박성찬의 뒷모습에서 무슨 전설의 대장장이 같은 비장함이 엿보이자, 오히려 당황한 건 태현이었다.

‘이 자식 왜 이래? 뭐 잘못 먹었나?’

파손시키라고 맡겨놨더니 평소에 보기 힘든 집중력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김지산과 우정식도 걱정하고 말을 걸 정도!

“야. 너 왜 그래? 왜 그렇게 목숨 걸고 만들어?”

“맞아. 안 어울리게.”

박성찬은 둘의 물음에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현이 그들을 믿어줘서 이걸 맡겨줬다는 것을.

당연히 둘은 안 믿었다.

“에이,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사람이 그랬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나 박성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더 진지하게 말했다.

“이렇게 믿어줬는데 대충 해서 망가뜨리면 김태산 님도 실망할 겁니다. 이렇게 기회를 줬을 때 최선을 다해야죠!”

“……!”

박성찬의 마음이 담긴 말은 둘의 마음도 바꾸었다.

확실히 그랬다. 태현이 이렇게 기회를 주는데 제대로 하지 않고 망친다면 앞으로 그 누가 기회를 주겠는가?

김지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좋아. 나도 한 번 너처럼 해보겠어!”

우정식은 쑥스러운 듯이 코밑을 훔치며 그렇게 말했다.

“너만 하려고 하지 말라고. 나도 있으니까.”

“모두……!”

순식간에 세 대장장이 사이에는 뜨거운 우정과 단합심이 생겨났다.

옆에서 지켜보던 태현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

“너네 뭐하냐?”

* * *

대장장이들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그들을 믿어준 태현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망치를 두드린 것이다.

그 결과는 기적적이었다.

[완벽하게 수리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매우 어려운 난이도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낮다고 하더라도 꼭 실패한다는 건 아니었다.

성공 확률이 낮을 뿐, 성공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 요소 중 하나는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가진 실력이었다.

집중해서 잘 두드리는 사람과 대충 두드리는 사람의 차이는 명확한 것!

이 세 대장장이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원래라면 실패했을 수리를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셋의 얼굴은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해냈습니다!”

“태산 님! 이걸 봐주세요! 저희가 해냈어요!”

“…….”

태현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뿐!

‘평소에는 안 이러던 놈들이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기사들의 장비를 확인해보니 수리를 잘못해서 내구도가 깎이거나 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셋의 실력으로는 하기 힘든 난이도였는데 말이다.

“그, 그래. 잘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일단 잘했다고 화를 낼 수는 없었으니까.

“태산 님이 믿어주신 덕분입니다!”

“저희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니……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

“스킬 레벨이 낮다고 포기부터 하지 마라, 해봐야 실력이 오른다. 포기하지 말아라. 이런 거군요! 그렇죠?”

“……마음대로 생각해라.”

태현은 포기하고 돌아섰다. 대장장이들은 신이 나서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난리가 난 상태였다.

무슨 말을 해도 긍정적으로 들을 것 같은 상황!

태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리 실패하면 그걸로 내 대장장이 스킬이나 올리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지자 태현은 입맛만 다셨다.

그러는 사이 기사들은 대장장이들이 손봐준 장비들을 돌려받았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원래 상태 그대로야. 내가 자네들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군!”

[기사들과 친밀도가 올라갑니다.]

[명성이 50 오릅니다.]

앞에 뜬 메시지창에 대장장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어려운 난이도의 수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걸로 인해 스킬도 많이 올랐는데, 거기에다가 기사들한테 인정까지 받았다.

이런 것이 바로 대장장이의 기쁨!

김지산과 박성찬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며 뜨거운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봤다.

‘아. 태산 님! 이걸 알려주기 위해서!’

‘이게 바로 빅 픽쳐구나!’

그들이 태현을 쳐다보자. 태현도 그들을 쳐다보았다.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어쩐지 따뜻해 보였다.

마치 새끼 사자들을 절벽에서 밀어버린 다음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부모 사자 같은 눈빛!

그러나 태현은 속으로 그들을 욕하고 있었다.

‘이런 도움도 안 되는 놈들…….’

* * *

태현과 일행들은 주레 산맥을 빙 돌아서 가고 있었다. 사실, 주레 산맥을 타고 가더라도 더 빨리 갈 수 있기는 했다.

몬스터와의 싸움을 최대한 피하고 몰래몰래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태현이 기사들을 굴리고 굴려서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였다.

[기사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왕궁 내에서의 당신의 평가가 올라갑니다.]

[레벨이 올라간 기사들을 무사히 귀환시킬 경우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도 굴리다 보니 이런 부수입도 발생할 정도!

“태산 님. 앞에 사람 있는데요?”

“뭐? 여기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주레 산맥에 플레이어가 있을 수도 있었다.

지금 대륙에서 진행되고 있는 퀘스트가 이것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주레 산맥에서 퀘스트를 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가 있을 수도 있었다.

‘신기하네. 뭔 퀘스트지?’

이런 산맥에서 혼자 뭘 하고 있다면 궁금해지는 게 사람 마음!

“그런데…….”

“벗고 있다?”

대장장이들은 처음에 그들이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본 것이었다. 저 앞에 있는 플레이어는 전부 다 벗고, 무기 하나만 든 채 사각 반바지 하나만 입고 있었다.

시작할 때 주는 기본 아이템!

그는 처절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도 태현 일행을 본 것이다.

“저기! 좀 도와주십쇼!”

“…….”

달려온 플레이어는 헉헉대며 그들 앞에 멈추더니,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 산맥에서 퀘스트를 깨려고 파티를 했는데, 아니 이 사악한 파티원 놈들이 저를 빼고 다 한통속이었지 뭡니까! 저를 PK해서 저를 털어먹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간신히 도망쳐 나왔는데 여기가 주레 산맥이라 혼자서는 도망치기도 힘들고……! 좀 도와주십쇼!

듣던 대장장이들이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의 구구절절한 사연이었다.

그러나 듣는 태현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달려온 플레이어의 얼굴을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레드존 길드의 마스터 케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