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6화
“당연히 그러셔야죠!”
버포드는 손바닥을 비비며 아부했다. 그리고 밑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멍청하기는. 사디크 교단을 대체 뭐로 보는 거야?’
버포드도 아직 사디크 교단 내에서는 별것 아닌 위치였다.
그 정도로 사디크 교단 내에는 강한 NPC들이 많았던 것!
당연히 토벌 퀘스트라고 해서 멋대로 나눠서 오면 안 됐다. 다른 교단의 성기사들이나 사제, 아니면 왕국군하고 같이 와야 했다.
저렇게 단독으로 오는 건 ‘나 죽여주세요~’라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이 골짜기는 사디크 교단이 단단히 이를 갈고 만든 곳.
온갖 함정이 잠들어 있었다.
사실, 플레이어들이 이렇게 몰려온 데에는 버포드의 영향도 컸다.
버포드는 몰랐지만.
버포드가 왕궁 습격 퀘스트를 하면서 생방송을 했을 때, 버포드는 허풍을 떨었다.
-아, 제가 사디크 교단에서 지금 되게 높은 위치거든요? 저기 있는 성기사들도 부릴 수 있어요. 부려볼까요? 앗. 다른 곳 가네. 어쩔 수 없네요. 다음 기회에 보여드릴게요.
-왜 후퇴하냐고요? 아니, 물론 잡을 수는 있는데. 다들 후퇴하자고 하는데 그거 안 들으면 부하들이 싫어해요. 친밀도 떨어진다고요. 어쩔 수 없네요!
물론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저거 허풍 아냐?’라고 의심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 버포드 정도 플레이어가 교단에서 저렇게 높은 위치라면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는 않겠는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반대.
버포드는 말단에서 구르는 성기사에 가까웠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퀘스트를 깨고서 올라온 위치였다.
“가자!”
사디크 교단의 성기사들이 칼을 뽑자 칼이 화염으로 타올랐다.
사디크의 화염이었다.
“?!”
“위에 사람이 있다!”
마법사가 절벽 위를 가리키며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돌렸다.
나타난 건 불타는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디크 교단의 성기사들!
“이, 이런!”
지금 마수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성기사들까지 나타나면 이길 방법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여기 있는 파티원들은 현실 파악이 빨랐다.
“튀어!”
“어, 탱, 탱커들은?”
“그럼 네가 챙겨서 와!”
“……같이 가!”
고민하지 않고 빠른 후퇴.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조금 더 머뭇거렸으면 전멸했을 테니까.
“쫓아라! 쫓아! 도망가지 못하게 해!”
-발목을 붙잡는 화염의 족쇄!
위에 있던 사디크 교단의 사제가 주문을 외우자, 플레이어 한 명의 발목에 화염으로 타오르는 족쇄가 채워졌다.
대미지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순식간에 느려지는 속도!
이동 속도를 엄청나게 내리는 디버프였다.
“으아악! 야! 도와줘! 저주 좀 풀어줘!”
“미안! 저주 풀려면 나도 죽어!”
“야! 인마!”
파티원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저주를 풀려면 남아서 마법을 써야 했는데, 지금 쫓아오는 상황에서 그랬다가는 바로 붙잡힐 것이다.
후다다닥-
결국 도망치지 못하고 남은 파티원들은 성기사들에게 전부 쓰러져야 했다.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 * *
방금과 같은 상황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사디크가 부리는 날개 달린 괴수다. 일단 디버프를 걸고 땅바닥에 내리게 한 다음…… 크억!”
“뭐, 뭐야? 튀어! 튀어!”
“저거 너무 세다! 일단 물러서!”
던전 입구에서 나타난, 생각보다 강한 몬스터들.
그리고 싸우던 도중 습격해 오는 사디크 교단의 성기사들.
사디크 교단을 얕보고 빠르게 덤벼든 플레이어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죽거나 도망치거나, 플레이어들은 정신없이 던전을 빠져나왔다.
골짜기 밖에는 이미 빠져나온 플레이어들이 반쯤 정신이 빠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 이거…….”
“생각보다 너무 세지?”
그제야 되는 상황파악.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이렇게 파티 하나하나씩 들어가서 깰 수 있을 만한 던전이 아니었다.
먼저 들어간 파티가 박살이 난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퍼졌다.
-골짜기 던전이 생각보다 강하다며?
-빨리 들어간다고 좋은 게 아니겠는데. 준비를 좀 더 하자고.
원래 이런 대규모 퀘스트에서는 소문이 빨리 퍼졌다.
먼저 들어간 파티가 박살 나자, 다른 사람들은 속도를 늦췄다.
겁이 없거나 욕심이 많은 파티들은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던전에 들어갔지만, 머리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은 던전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기다리다 보면 왕국군하고 교단이 오겠지.
-같이 들어가면 난이도는 훨씬 내려간다. 굳이 먼저 들어가서 죽을 필요는 없지.
다들 생각하는 것은 비슷!
물론 지금 들어가서 성기사들과 몬스터를 잡으면 공적치가 쌓이겠지만, 굳이 목숨을 걸고 할 이유는 없었다.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큰 모험인 것이다.
* * *
그러는 동안, 태현은 성기사들과 함께 주레 산맥을 뺑뺑이 돌고 있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가는 방법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몬스터가 많은 길로 가고 있는 셈이었다.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기사들은 저 멀리 쿵쾅거리며 살벌하게 걷는 <두 발 바위 마수>를 발견하고 태현에게 물었다.
처음에 묻지도 않고 돌격부터 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거의 하늘과 땅 차이!
태현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을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가서 싸우자!”
[중급 전술 스킬로 부하들을 지휘하는 데 보너스를 받습니다.]
김지산은 감탄하면서 태현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저 거만하던 기사들을 저렇게 바꿔놓다니.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이었다.
‘역시 성격 더러운 사람끼리 부딪치면 더 더러운 사람이 이기는구나!’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태현의 말에 김지산은 시선을 피했다. 속으로 생각한 게 들킬까 봐 무서워졌다.
그러는 사이 기사들은 용감하게 돌격해서 몬스터와 치고받고 있었다.
-쿠아악! 쿠아아아악!
두 발 바위 마수는 양손으로 집채만 한 바위를 들어서 던졌다.
그러나 기사들은 그런 공격에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콰직!
기사들은 바위를 쪼개거나 막으며 우르르 달려들어 바위 마수를 집중 공격했다.
일 대 일이나 기사의 명예 따위는 없는 난장판 싸움!
일명 다구리였다.
물론 기사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싸운 건 아니었다.
그들은 몬스터와 싸울 때에도 일 대 일의 정정당당한 싸움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태현이 그냥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다.
-나와라, 이놈! 당당하게 나와 맞서라!
-뭐?
-네? 아니, 그. 있잖습니까. 저 몬스터와 제가 당당하게 싸우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한 놈을 여럿이서 같이 잡으면 더 빨리, 더 쉽게 잡을 수 있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그건 명예롭지 않…….
-헛소리 하지 말고 전부 달려들어!
-그, 그건 명…….
-뭐?
-달려들겠습니다!
철저한 복종으로 인한 학습 효과!
‘잘 싸우네.’
태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기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앞으로 가라고 하면 앞으로 가고, 뒤로 도망치라고 하면 뒤로 도망치는,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부하의 모습!
명예, 명예 거리면서 거만하게 굴던 기사들은 어느새 충성스러운 부하로 바뀌어 있었다.
“잘 했다. 먹을 걸 주마.”
“오오오오옷!”
“맛, 맛이……! 위장 깊숙이 스며든다!”
굴리고 먹이고 굴리고 먹이고를 반복!
‘그런데 토벌 퀘스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려나?’
태현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규모 퀘스트인 만큼 많은 플레이어가 참가한 퀘스트였다.
태현이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
태현은 잠시 쉬는 시간에 판타지 온라인 게시판으로 들어갔다.
개인 방송이 인기를 타고 나자, 이런 식으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쉬워졌다.
물론 개인이 비밀리에 하는 퀘스트는 방송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퀘스트는 정보가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디크 교단 토벌 퀘스트 생중계!]
[대륙에서 가장 빠르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가장 먼저 도착한 BJ!]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몬스터 공략법! 이것만 알면 1차 절벽까지 갈 수 있다!]
‘많이도 하네.’
태현은 아무 방송이나 하나 잡고 보기 시작했다.
-지금 들어간 파티가 6개, 7개 정도는 전멸해서 나왔거든요? 게다가 그중 두 파티는 그 유명한 길드 <아카시아>하고 <파이터즈>에서 나온 파티였어요.
‘오, 그래?’
들어간 파티들이 전멸했다니.
태현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길을 돌아가고 있는데 퀘스트 진행이 느려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게다가 유명한 길드에서 나온 파티도 전멸하다니.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나본데?’
하긴, 그 난리를 쳐놓고 무기력하게 당한다면 그것도 웃길 것 같았다.
태현은 영상을 차례대로 확인했다.
어떤 몬스터들이 있고 어떤 함정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보 수집은 적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기본!
‘이 뿔 마수는 막아서 상대할 만한 몬스터가 아니군. 범위 공격이 생각보다 너무 강력해. 스턴도 있고…… 탱커를 빼고 딜러로만 깨야 하나?’
‘여기는 성기사들이 매복하고 있었네. 흠. 성기사들이 나오는 곳이……. 아, 이런 형태의 절벽은 성기사들이 위에서 매복하고 있는 건가? 들어가게 되면 조심해야겠다.’
다른 사람들이 박살 난 영상에서 얻는 교훈.
태현은 결코 무모하지 않았다.
뭘 하더라도 언제나 승산을 바탕으로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었다.
태현이 영상을 보면서 하나하나 메모해 두는 동안, 방송을 진행하던 BJ가 말했다.
-이렇게 다들 안 들어가고 눈치만 보고 있긴 하지만, 곧 퀘스트는 진행될 겁니다. 내일이면 다른 교단에서 보낸 지원군이 오거든요.
다른 교단의 사제들과 성기사!
이 토벌 퀘스트에서 그 무엇보다도 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실제로 교단과 미리 친밀도를 쌓아놓거나, 교단 관련 직업을 갖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교단 관련 직업을 갖고 있거나, 교단과 친하다면 이런 퀘스트에서 교단 세력들과 같이 움직일 수 있었다.
남들은 혼자서 골짜기를 뚫어야 할 때, 자기는 성기사와 사제들과 같이 골짜기를 뚫는 것.
그건 엄청난 특혜였다.
-저도 데메르 교단과 친밀도 쌓아놓은 게 있으니 같이 움직일 겁니다. 그때를 기대해 주세요!
‘음. 다른 교단들이 오면 진행이 좀 빨라지려나?’
태현은 방송을 껐다.
지금 태현과 일행은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 뒤로 아주 멀리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로 가는 방법이 있는데도 아무도 이 길로 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길이 너무 멀고 험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뒤로 들어간다고 딱히 좋은 것도 없었다.
골짜기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아무 보장도 없이 뒤로 돌아가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이었다.
물론 태현은 기사들을 구르고 굴려서 가는 도중에 확실히 쥐어 잡으려고 여기로 온 것이었지만.
“좋아. 속도를 좀 내보자!”
* * *
쿵, 쿵, 쿵, 쿵-
착착착착-
“오오오! 성기사들이다!”
“진짜 갑옷부터 시작해서 겉모습은 최고 아니냐?”
성기사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 그건 바로 겉모습이었다.
겉모습.
외모야말로 게임의 최종 콘텐츠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겉모습은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성기사들이 쓰는 아이템들은 다 멋지고 근사했다.
깔끔한 디자인에, 은은한 장식에, 성능도 좋은 장비들!
교단에 들어가서 성기사로 전직하면 플레이하는데 여러 귀찮은 점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성기사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다.
“상급 성기사님! 데메르 중급 성기사인 펠렉스입니다!”
“사제님! 저 타이란 교단 노래 사제에요!”
교단의 병력이 오자 달려 나오는 플레이어들!
다 교단과 관련 있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