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5화
그 이후로도 태현은 멈추지 않고 기사들을 굴렸다.
몬스터가 나오면?
-돌격! 명예롭게 저 몬스터들을 처리해라!
-아, 아니. 좀 도와줄 수…….
-기사의 싸움에 우리 같은 모험가가 끼는 것도 불명예지! 돌격!
쉴 때는?
-먹을 거 없습니까? 저 사람들이 만든 거 말고 다른 사람이 만들면…… 아니, 못 먹겠다는 게 아니라…….
기사들은 급격히 불쌍해지고 있었다.
* * *
“크으윽…….”
“죽어라! 이 몬스터들! 죽어라!”
시간이 지나자 기사들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깔끔하고 번쩍번쩍 빛나던 겉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꼬질꼬질하고 지저분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전장에서 몇 년 동안은 구른 것 같은 모습!
무슨 닳을 대로 닳은 용병 같았다.
아무도 이들을 보고 명예로운 기사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달라진 점이 있었다.
바로 싸움법이었다.
“네 심장을 씹어주마!”
“이놈들! 다가오기만 해라! 뼛조각도 남기지 않고 조각조각 내주마!”
몬스터들도 겁을 먹고 물러설 정도로 포악해진 성격!
안 먹이고 안 씻기고 안 다듬고 굴리니 사람이 점점 포악해졌다.
[기사들의 사기가 내려갑니다.]
[기사들의 친밀도가 내려갑니다.]
[기사들의 복종도가 올라갑니다.]
[전술 스킬이 오릅니다.]
‘아주 좋아.’
태현은 올라가는 스탯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휴식!”
태현은 일행을 멈추고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갔다.
기사들은 말에서 내려 쉬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는 게 마치 시체 같은 모습!
그만큼 지친 것이다.
태현은 말을 거는 대신 솥을 바닥에 놓고 요리를 시작했다.
[아주 맛있는 냄새를 뿜는 네 가지 재료를 사용한 수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중급 요리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태현은 아주 작정하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미 어지간한 요리사는 뺨을 후려칠 정도의 실력을 가진 태현이었다.
레시피가 좀 적고 단조로운 편이었지만 강력한 행운으로 커버해 버리는 실력!
촥촥-
갖고 있던 향신료와 야채, 고기를 썰어 넣고 강력한 불로 끓여대자, 배가 부른 다른 일행도 킁킁거릴 정도였다.
물론 계속 굶고 있던 기사들에게는 더더욱 괴로운 냄새!
“끄, 끄으윽…….”
“끄으으윽…….”
괴로워하는 기사들을 보며 태현은 씩 웃었다.
“좀 먹을래?”
“……!”
“잠깐. 그러고 보니 저번에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했었지?”
“그건 저 사람들이 만든 거 이야기였습니다!”
“맞습니다!”
공손해진 기사들의 말투.
그러나 태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놈들이 만든 거나 내가 만든 거나 그게 그거지. 다 사람 성의 아니야. 그걸 무시해 놓고 이제 와서 먹겠다니. 저기 저 상처 받은 얼굴들이 안 보여?”
태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대장장이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기사들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보면 상처 받은 얼굴이긴 했다.
물론 얼빠진 표정에 가까웠지만.
“그렇지만 정말로 먹고 싶다면 나도 좀 생각해 보도록 하지. 다른 사람이 먹으라고 만들었는데 못 먹어서 남는다면 마음이 아프잖아?”
무슨 말하는 것만 보면 선량하고 진실된 요리사의 대사였다.
우정식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손을 들며 열렬하게 외쳤다.
“먹고 싶습니다!”
“제발 먹게 해주십시오!”
태현은 한 번 더 물었다.
“정말로?”
“정말입니다!”
“정말 먹고 싶습니다!”
“먹는 건 좋은데, 원래 너희가 말하던 것과 다르잖아. 그렇게 말을 바꿔도 되나?”
“…….”
“…….”
기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입을 다물었다.
태현은 씩 웃으며 다시 말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말이라는 건 원래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거기는 해. 그렇지? 원래 사람이란 게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 그렇습니다.”
“너무 고집만 부리는 것도 명예롭지 않은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태현의 말에 동의했다.
음식 한 숟갈 먹기 위해서라면 갑옷도 팔아치울 것 같았다.
“그러면 앞으로 너무 고집만 부리지 않고 내 명령도 좀 잘 듣겠지? 응?”
“…….”
“…….”
갑자기 조용해진 기사들.
최후의 자존심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그들의 속마음을 읽고 있는 사람!
“싫어? 싫으면 됐어. 나도 억지로 먹이고 싶지 않아. 내가 온갖 정성을 다해서! 성의를 다해서 만들었는데! 먹기 싫으면 말아야지. 안 그래?”
“아, 아닙니다!”
“그러면 먹은 다음에 앞으로는 내 말을 좀 잘 듣는 건가? 응?”
“…….”
“동의하는 사람만 나와서 먹으라고.”
[기사들의 복종도가 최대로 오릅니다.]
[기사들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악명이 150 오릅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악명이?’
태현이 불평하기도 전에 다른 메시지창들이 연달아 떴다.
[화술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초급 화술 스킬이 중급 화술 스킬로 변합니다. 앞으로 NPC를 설득할 때 보너스를 받습니다.]
[초급 협박 스킬이 중급 협박 스킬로 변합니다. NPC를 협박할 때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초급 전술 스킬이 중급 전술 스킬로 변합니다. 부하를 지휘할 때 보너스를 받습니다. 더 강한 부하를 더 많이 지휘할 수 있습니다.]
[칭호: 비정한 지휘관을 얻었습니다.]
칭호: 비정한 지휘관
비정한 지휘관: 부하를 믿음과 덕망으로 다스리지 않고 공포와 복종으로 다스립니다.
그 밑에서 움직이는 부하는 어떤 명령이 떨어져도 두려워서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술 스킬에 추가 보너스. 부하를 지휘할 때 사기 페널티. 부하가 반항하지 않음. 악명이 빠르게 오름.
“에…… 에에이!”
“일단 먹고 보자!”
결국 항복하는 기사들!
기사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요리를 퍼먹기 시작했다.
워낙 굶주렸다 먹으니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했다.
그걸 보며 태현은 인자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많이들 먹으라고.”
대충 기사들의 장악은 끝났다.
이제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향할 시간이었다.
* * *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퀘스트를 받자마자 급하게 길드원들을 모아서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기쁜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이 대규모 퀘스트에 참가한 플레이어는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공적치 경쟁에서 한 발짝 앞선 것이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다. 공적치 보너스를 받습니다.]
“야야야. 좋아하기엔 일러. 다른 놈들 들어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잡아둬야지.”
길마는 길드원들을 다독였다.
가장 먼저 던전에 도착한 건 여러 가지 보너스가 있었다.
[처음으로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들어왔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아이템 드랍률과 경험치가 올라갑니다.]
[싸울 시 추가 명성을 얻습니다.]
길드원들의 표정이 확 펴졌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보너스였다.
“이런!”
“늦었어!”
그러는 사이 다른 길드들이 뒤늦게 도착했다.
그들은 가장 처음을 뺏겼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다.
“아직 안 늦었다! 빨리 들어가자!”
“다른 놈들 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잡아야 해!”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플레이어들.
서로에게 공적치를 뺏길까봐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도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로 인원이 모이는 대규모 퀘스트는 실패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이다.
-크르르릉…….
“몬스터다. 처리하자!”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디크의 검은 뿔 마수.
거대한 덩치를 갖고 네 발로 걷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그러나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은 다들 퀘스트를 깰 자신이 있어서 모인 플레이어들.
물러서지 않고 바로 싸움을 준비했다.
“사제 분들 버프 좀 걸어주세요. 준비되는 대로 바로 들어갑니다!”
-데메르 여신의 중급 축복.
-대지를 감도는 여신의 힘!
뒤에 서 있던 두 사제가 신성 마법을 걸기 시작하자, 다른 플레이어들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사제들은 땅의 여신 데메르를 믿는 교단 소속 사제.
게다가 둘 다 희귀 직업이었다.
데메르 교단의 버프 주문은 다들 인정하고 있었다.
“들어간다! 탱커들! 어그로부터 끌어!”
“오케이!”
탱커 역할을 맡은 전사들이 달려들었다. 전사라고 해도 다 똑같은 전사가 아니었다.
태현처럼 가벼운 복장으로 공격을 피하며 강력하게 딜을 넣는 타입이 있는 반면에, 기사처럼 묵직하게 중장갑을 입고 공격을 맞으면서 전진하는 타입이 있었다.
파티에서 탱커를 맡는 건 후자!
쾅! 쾅!
-방패 버티기!
가상현실게임에서 싸우는 건 단순히 레벨이 높고 스탯이 높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자기가 몸을 움직여서 싸우는 것이다 보니, 어느 정도 센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세 명의 탱커들은 거대한 방패를 앞에 세우고 사디크의 검은 뿔 마수를 둘러쌌다.
몬스터가 날뛰어서 뒤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벽을 세운 것이다.
“쳐!”
그다음은 공격이었다.
탱커들부터 공격을 시작하자, 뒤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공격을 퍼부었다.
-은신, 급소 파악, 기습, 독이 묻은 칼날!
도적 한 명이 마수의 뒤로 뛰어 들어가서 스킬을 퍼부어댔다.
공격을 받은 마수가 비틀거렸다.
-쿠아아아아악!
공격을 받은 마수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자, 탱커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외쳤다.
“놈이 날뛴다! 잡아!”
“알겠어!”
몬스터들도 스킬을 썼다. 저런 식으로 움직이는 건 스킬을 쓰기 전 신호였다.
‘무슨 스킬을 쓸 거 같냐?’
‘덩치 보면 돌격 스킬일 수도 있어. 조심해.’
-크아아아앙!
마수가 크게 울부짖더니, 몸을 웅크리고, 폭발적으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
“막아!”
탱커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방패 뒤에 몸을 숨겼다.
-강철 성벽 소환!
-반격!
여기 있는 탱커들은 파티 플레이에 능숙했다.
이 정도 크기의 마수가 날뛰는 걸 억누른 경험이 많았다.
그렇지만…….
[체력이 순간적으로 50% 이하로 떨어집니다.]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일시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출혈 대미지를 받습니다.]
“으어어억?!”
탱커들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튕겨 나갔다. 마수의 공격이 생각보다 너무 강했던 것이다.
“뭐야, 저거?!”
뒤에서 공격을 하던 창술사 한 명과 도적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탱커들이 그대로 날아가다니. 저 마수의 공격은 막을 만한 성격의 공격이 아니었다.
피했어야 하는 공격!
그리고 저렇게 강한 마수는 보통 던전 입구에 있지 않았다.
“여기 입구잖아?! 저런 게 왜 나오는 거야?!”
“내가 알겠냐! 다시 온다! 조심해! 마법사랑 사제부터 보호해!”
플레이어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움직였다.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만난 몬스터라고 해서 얕본 게 실수였다.
이 던전의 마수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이다.
쾅! 쾅! 쾅!
마수가 발을 구르자 땅이 부서지면서 바위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급속 마나 결계!
마법사 한 명이 급하게 방어를 쳤지만 피하려던 창술사는 그대로 맞고 나뒹굴었다.
“으악!”
“지금 힐 해줄 테니까 버텨!”
여유 있게 싸움을 시작했지만, 파티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골짜기의 절벽 위에서 그런 파티원들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디크 교단의 성기사들이었다.
“하하. 저 꼴을 봐라. 하찮은 놈들이 참 어리석지 않느냐?”
교단의 고위 성기사가 말하자 버포드는 고개를 굽신거리며 대답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놈들에게 사디크의 교훈을 가르쳐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