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4화
“언, 언제 그런 말을 했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기사들은 명령도 듣지 못하나?”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다른 일행을 쳐다보았다.
“내가 빠져나오라고 한 말을 들었나, 못 들었나?”
루포는 태현의 질문에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펠마스와 에드안은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들었는데?”
“나도 들었어. 태현 님께서 아주 큰 목소리로 외치셨다고. ‘모두 앞으로 달려 나가! 빠져 나가자!’라고 하셨다고.”
[사기 스킬을 성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화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뻔뻔하기로는 왕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두 사람, 펠마스와 에드안이었다.
당연히 정정당당하고 명예로운 기사들은 둘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그런가?”
“우리가 왜 못 들었지?”
기사들이 혼란스러워하자 태현은 오히려 더 밀어붙였다.
“급한 상황에서 내 명령도 듣지 않는다니. 이거 너무 실망이군. 기사라고 해서 많이 기대했는데.”
태현의 말에 기사들이 항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이 나타났는데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건 기사의 수치잖소!”
“맞아!”
“옳소! 그런 식으로 도망치는 건 부끄러운 짓이오!”
태현은 씩 웃었다.
원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적이 나오면 무조건 싸워야 한다?”
“그렇지!”
“먼저 도망칠 수는 없는 법이오!”
“아주 잘 알겠어. 여러분의 명예로운 의지! 존중하도록 하지! 하하!”
그러나 기사들의 고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이었다.
* * *
[기사들의 사기가 내려갑니다.]
[기사들의 친밀도가 내려갑니다.]
[기사들의 복종도가 올라갑니다.]
[지휘 스킬이 오릅니다.]
“헉, 헉헉…….”
덤비는 <화난 바위 정령>을 쓰러뜨리고, 기사가 헉헉댔다.
“이야. 잘 싸우네.”
“역시 아탈리 왕국의 기사. 그 이름값을 하는군요. 하하!”
그러는 동안 태현과 펠마스는 저 멀리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람을 얄밉게 만드는 데에는 거의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산맥을 올라간다고 말도 두고 온 상황.
올라가는 건 두 배로 힘들었다.
“그래도 조금은 도와줄 수 있지 않습니까?”
기사 중 한 명이 간절한 목소리로 태현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태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내가 어떻게 기사의 명예로운 싸움에 끼어들겠어? 그런 짓을 했다가는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거 아닌가?”
“맞습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하!”
옆에서 쿵짝을 맞춰주는 펠마스였다.
겉으로만 보면 악당이 따로 없었다.
“끄으응…….”
기사들은 미리 한 말이 있어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신음만 냈다.
별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계속 싸우고 싸우다 보니 슬슬 힘들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쉬었다 갑시다.”
“그럴까? 모두 휴식!”
태현의 외침에 대장장이들도 말에서 내렸다.
김지산은 기대가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태산 님이 직접 요리해 주시는 겁니까?”
태현의 요리 실력은 이미 보증된 바가 있었다.
뭔가 대충 대충하는 것 같은데, 결과물은 이상하게 맛이 좋은 요리 실력!
사실 그건 태현이 요리 스킬을 연습한 환경 때문이었다.
다른 요리사들은 보통 도시에서 다른 NPC에게 요리를 배웠다.
요리 스킬이 낮을 때, 그냥 혼자서 요리를 하면 도저히 먹을 만한 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난이도가 아주 낮은 요리를 만들면서, 요리 스킬이 올라가면 다른 레시피를 배우고…….
이게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달랐다.
워낙 행운이 높아서 레시피를 배우지 않고 대충 만들어도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던 것이다.
대충 재료를 잘라서 대충 넣고 대충 끓이면 이상하게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스킬!
태현은 다른 사람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직접 만들어주지.”
“오오!”
“기대됩니다!”
옆에서 흥미 없던 척 망치를 두드리던 우정식도 슬금슬금 다가왔다.
허기를 채우려면 요리가 필수적이었다. 제일 싸구려인 딱딱한 식빵도 먹으면 허기가 차긴 했다.
그렇지만 그건 먹어봤자 허기가 조금 달래질 뿐이고, 맛도 없었고, 추가 스탯 보너스 같은 것도 없었다.
기왕 허기를 채울 거면 맛있는 게 제일!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
“너희는 저기 기사들 좀 돌봐줘라.”
“네?”
대장장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사들을 돌봐주라니?
“쟤네 아이템 좀 봐줘. 수리부터 시작해서 걸어줄 수 있는 버프는 다 걸어주라고.”
“어…… 태현 님…….”
“저기 기사들은 저희를 싫어하는데요.”
대장장이들이 머뭇거리는 이유가 있었다.
당연히 그들도 기사들의 아이템을 만지고 싶었다.
여기 있는 기사들은 모두 레벨이 높았다.
끼고 있는 장비도 높은 레벨 아이템들이었다.
그런 아이템은 수리하고 버프를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대장장이 스킬이 쭉쭉 올랐다.
그렇지만…….
-뭐? 내 무기에 손을 댄다고? 너 같은 대장장이가?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내 투구에 손을 대면 그 손을 잘라 버리겠다!
-저리 꺼지지 못해?!
[대장장이 스킬이 부족해 기사들의 신뢰를 사지 못합니다.]
[명성이 부족해 기사들의 신뢰를 사지 못합니다. 아이템을 수리하지 못합니다.]
기사들은 눈이 높았다.
다른 NPC들도 아이템을 맡길 때에는 대장장이의 수준을 따지는데, 하물며 콧대 높은 기사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가서 말 걸어.”
“??”
대장장이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태현이 시키는 대로 했다.
누구 명령이라고 거절하겠는가.
그리고 물론 결과는 같았다.
-네 실력으로 감히 내 무기에 손을 대려고 하는 거냐!
-찔리고 싶냐!
“…….”
물론 실력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구박을 받으면 울컥하는 게 사람 마음!
대장장이들은 터벅터벅 돌아왔다.
그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
“왜 그러냐?”
“꺼지라는데요.”
“어쩔 수 없네. 무기 좀 손봐주겠다는데…… 자.”
태현은 솥을 가리켰다. 솥은 비어 있었다.
“???”
“뭡니까?”
대장장이들은 태현이 무슨 생각으로 솥을 가리키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솥이잖아. 뭐겠냐?”
태현의 질문에 대장장이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어…… 솥을 수리할까요?”
“솥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뭐가 좋지?”
“뭐 엄청 좋은 요리라도 만드나?”
그러나 태현의 대답은 전혀 다른 대답!
“요리하라고. 멍청이들아.”
“……??”
요리를 하라니.
그들은 대장장이었다. 요리사가 아니라. 게다가 방금까지 태현이 하고 있던 요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요리를 하라고요?”
“그래. 저기 기사들 먹일 요리다.”
“?!?!”
태현은 자기가 만든 요리는 따로 빼놓았다.
그리고 기사들한테는 주지 않고 일행들끼리 먹었다.
기사들에게 줄 요리는?
대장장이들한테 시킬 생각이었다.
“기사들이 안 먹죠!”
“맞아요! 우리가 한 요리는 우리도 안 먹는데!”
“너희가 먹을 요리는 따로 빼놨어. 이거 먹고 빨리 요리해. 쉬운 재료만 모아놨으니 막 독이 생기고 그러지는 않을 거다.”
독 대미지를 받는 요리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대장장이들은 여전히 황당해했다.
“하라니까 하는데…….”
“대체 왜?”
그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솥에다가 재료들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역시 요리 스킬 초보자들이 할 만한 가장 쉬운 요리는 재료를 넣고 끓이는 것이었다.
태현은 그걸 보고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하고 있다.”
‘????’
‘미쳐버린 거 아냐?’
‘네가 물어봐라.’
태현의 모습에 대장장이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태현이 직접 머리를 잡고 솥 안으로 넣을 것 같았다.
태현은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기사들을 완전히 부려먹기 위한 큰 그림.
부하들을 잘 지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한 가지는 그 부하들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친밀도를 올리면 부하들은 어지간한 명령은 다 따랐다.
물론 이 방법이 안 통할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런 기사들이었다.
명예, 명성을 따지고 워낙 콧대가 높다 보니 친밀도가 높아도 명령을 잘 듣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바로 다른 방법이 있었다.
‘친밀도를 내리고 사기를 낮춘 다음 복종도를 올린다.’
친밀도나 인간적인 매력으로 인한 지휘가 아닌, 공포로 인한 지휘!
주로 악명을 높게 올린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부하들이 겁에 질려서 명령을 듣게 만드는 것이다.
악명을 높게 올린 전사나 네크로맨서들은 이런 방법을 쓰기가 쉬웠다.
-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태현이 쓰려는 방법이 바로 이 두 번째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 잘 먹히기 위해선, 일단 기사들을 굴려야 했다.
몬스터들과 계속 싸우게 만들어서 피곤하게 만들고, 아이템은 수리도 제대로 안 되고, 회복도 못 하는 상황에서 허기도 못 채우고…….
계속 그러다 보면 사기가 내려가는 대신 복종도가 오르게 되어 있었다.
거기에 태현의 전술 스킬이 오르는 건 덤이었다.
[<냉정한 지휘>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현재 레벨 3]
[<가혹한 채찍질>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현재 레벨 4]
[전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초급 전술 스킬이 벌써 7 레벨에 도착해 있었다.
레벨 높은 기사들을 부리다 보니 성장이 엄청나게 빨랐다.
[기사들이 죽을 경우 왕실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기사들이 성장해서 돌아갈 경우 왕실에게 추가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태현에게 경고라도 하듯이 메시지창이 떴다.
그러나 태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기사들이 성격 까다로워도 편한 게 한 가지 있지.’
아무리 굴려도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병사나 용병은 참다 참다가 도저히 못 견디면 반란이나 탈주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그런 게 없었다.
땅땅땅-
태현은 솥을 두드리며 소리를 냈다.
“와서 식사 좀 하라고!”
“……!”
말에서 내려서 쉬고 있던 기사들은 태현의 말에 벌떡 일어섰다.
피곤한데다가 배까지 고팠던 것이다.
“먹을 거!”
“뭘 좀 먹게 해줘!”
우르르 달려온 기사들은 멈칫했다.
솥에서 나는 냄새가 맛있다기보다는 이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어색하게 웃는 대장장이들!
“이…… 이게 뭔 요리야?”
“이걸 먹으라고?”
기사들의 말에 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우리 지금 잘 먹고 있잖아.”
물론 태현이 먹은 요리는 태현이 만든 요리!
그걸 본 대장장이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무슨 거짓말을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하냐!’
기사들은 주저하면서 솥에 든 수프를 조금 떠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뱉어댔다.
“켁! 케켁!”
“이, 이건 사람이 먹을 게 아니오!”
“이런 걸 어떻게 먹으라는 건가!”
“이건 돼지 먹이야!”
그러자 태현은 오히려 화를 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게 돼지 먹이라니! 여기 이 요리사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응?”
“요리사?”
대장장이들은 태현이 자신들을 가리키며 요리사라고 말하자 당황해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자에게 줄 음식 따위는 없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말도록!”
태현은 냉정하게 말하며 솥을 치웠다.
기사들은 어, 어 하며 당황했지만 태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기사들은 쫄쫄 굶어야 했다.
[기사들의 사기가 내려갑니다.]
[기사들의 친밀도가 내려갑니다.]
[기사들의 복종도가 올라갑니다.]
그럴수록 올라가는 수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