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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13화 (113/1,826)

§ 나는 될놈이다 113화

그냥 데리고 다니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고 해도 되는 병사와 달리, 명예와 원칙에 충실한 기사는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

‘끙……. 그래도 병사보다는 기사가 나아.’

적이 해적이나 산적처럼 마법을 잘 안 쓰는 적이라면, 태현도 그냥 마음 편하게 병사를 많이 데리고 갔을 것이다.

숫자로 밀어붙여도 됐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적은 사디크 교단.

교단의 성기사들은 신성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거기다가 사제는 더 강력한 마법을 쓸 것이다.

그런 상대로 숫자로 밀어붙이는 건 위험했다.

-혼란!

-아군 공격의 저주!

-감염!

사제한테 잘못 걸리면 병사들은 서로 공격하면서 박살 날 가능성이 컸다.

차라리 한 명, 한 명이 마법 저항력이 높고 강한 기사단이 나았다.

* * *

“기, 기사단?”

“태산 님, 어떻게 기사단을?”

“국왕한테 빌렸지.”

태현 뒤에 따라온 기사들을 보고 놀란 건 플레이어만이 아니었다.

루포나 펠마스 같은 NPC들도 매우 놀랐다.

루포는 태현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현 님, 어떻게 기사들을 데리고 오신 겁니까?”

“사디크 교단을 털겠다고 말하니까 빌려주던데.”

태현의 대답에 루포는 불안하다는 듯이 물었다.

“감당하실 자신은 있으신 거 맞죠?”

“응?”

감당할 자신이 있냐니.

루포의 질문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명성이나 공적치는 충분한데?”

“그런 소리가 아니라, 저놈들을 데리고 다니실 자신이 있느냐는 뜻입니다. 태현 님도 성격이 더러, 아니, 만만치 않으시니까요.”

“너 방금 내 성격 더럽다고 하려고 했냐?”

“오해십니다.”

“데리고 다닐 자신이 있냐니. 자신이야 있지. 지휘 스킬이 낮아서 좀 페널티 받겠지만.”

“그런 뜻이 아닌데……. 음. 태현 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죠.”

“……?”

태현은 루포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무슨 소리를 한 건지 알게 되었다.

* * *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빠르게 이동한다. 필요한 것만 챙겨서 빠르게 가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

태현은 앞에 늘어선 기사들에게 말했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는 사디크 교단이 예전에 교단을 차렸던 장소였다.

주변에는 온갖 몬스터가 들끓고, 안으로 들어가면 험한 자연지형이 외부의 공격을 막아주는 천혜의 요새.

이번 사디크 교단의 습격 이후 왕국군과 교단들은 이곳을 공격하려고 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의 1차 목표도 바로 이곳!

[화신의 매력으로 기사들을 지휘할 때 보너스를 받습니다.]

[전술 스킬이 부족합니다. 기사들을 지휘할 때 페널티를 받습니다.]

[화술 스킬이 부족합니다. 기사들을 지휘할 때 페널티를 받습니다.]

[기사들이 당신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

빠르게 뜨는 메시지창들!

그리고 그 메시지창을 설명이라도 해주듯 기사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것만 챙겨서 빠르게 가자니. 그게 기사에게 어울리는 품위요?”

“그런 짓은 모험가에게나 어울리는 짓이라고 생각하오!”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당함! 허겁지겁 달려가는 건 쥐새끼나 하는 짓이오. 우리는 당당하게 진군해야 하오! 깃발을 들고 나팔을 불면서!”

“옳소!”

기사들이 단체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걸 본 플레이어들은 기겁했다.

이미 태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킬하는 거 아냐?!’

아무리 비싼 왕국의 기사들이라고 해도, 태현 성격이라면 충분히 죽이고 시작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일어난 일은 놀라웠다.

태현이 따뜻하게 웃으며 기사들의 말을 받아준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

“이거 내가 멍청한 소리를 했어. 그래, 기사에게는 기사의 방식이 있는데. 그렇지?”

태현의 말에 기사들은 호응했다.

“하하! 그렇소!”

“모험가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뭘 좀 아는 모험가로군!”

[기사들이 당신의 말에 호응합니다.]

[기사단 내에서 당신의 평가가 조금 오릅니다.]

“그러면 기사의 명예를 지켜서 천천히 가볼까?”

“오오! 좋지!”

“깃발을 들어라!”

태현은 몸을 돌렸다.

옆에서 있던 우정식은 태현의 눈빛을 보고 힉 소리를 냈다.

방금 보여줬던 미소는 어디 가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이 번쩍였던 것이다.

‘그래.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태현은 계획을 바꿨다.

원래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빠르게 이동해서 공적치를 쌓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기사들을 억지로 데리고 가면 역효과만 날 것 같았다.

-돌격! 지금 돌격한다!

-뭐? 후퇴라고? 후퇴는 없어! 그건 명예롭지 않아!

명령을 해도 듣지 않는 부하는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무슨 미친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태현은 이 기사들을 버리고 갈 생각이 없었다.

그만큼 투자했는데 최소한 본전은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데리고 왔는데 되돌려 보낸다고 해서 돌아가지도 않을 것 같고…….’

태현은 결정을 내렸다.

좀 늦게 도착하더라도 이 기사들을 완전히 복종시키고 가겠다고!

* * *

“태현 님, 태현 님.”

“왜?”

“이 길…… 틀린 길 아닙니까?”

“루포, 세상에는 틀린 답이라는 게 없어. 다만 약간 다를 뿐이지.”

“그게 뭔 헛소립니까?”

“시끄럽고 조용히 해.”

“예…….”

괜히 태현한테 ‘길 잘못 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했다가 욕만 들은 루포였다.

지금 일행은 이상한 길로 가고 있었다.

태현은 지도를 펴고 확인했다.

‘흠. 착실하게 잘못 가고 있군.’

의도적으로 잘못 들어온 길!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가려면 평야를 쭉 가로질러서 가면 됐다.

별로 어려운 길도 아니었다.

그에 비해 지금 태현이 가고 있는 길은 산악 지대로 향하는 길!

아예 대놓고 빙 돌아가는 길이었다. 물론 길 자체도 엄청나게 험난했다.

평야 지대보다 몬스터가 몇 배나 많이 나오는 곳. 게다가 더 강했다.

“하하. 오늘 바람이 참 기분 좋군. 그렇지 않나, 친구여?”

“그렇다네. 우리의 원정을 축복해 주는 거 같군!”

즐겁게 떠드는 기사들!

앞에서 말을 타고 가던 대장장이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힐끗거렸다.

“저러다가 빡쳐서 칼 들고 덤비는 거 아닐까요?”

“아니……. 밤에 말을 다 죽여 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떠나는 거지.”

“음식에 독을 탈 수도 있어.”

태현이 어떻게 기사들을 공격할지 추측하는 그들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넘어갈 성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계속 친절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런. 말이 좀 힘들어 보이는군. 쉬었다 갈까?

-싸우기 전에 내가 직접 칼을 갈아주지.

-활과 화살통이 무거워 보이는데 내가 들어줄까?

옆에서 보는 플레이어들이 조마조마한 친절!

그러나 기사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친절을 즐길 뿐이었다.

[기사단 내에서 당신의 평가가 조금 오릅니다.]

[기사들의 우호도가 오릅니다.]

[기사들의 사기가 오릅니다.]

-끼르르륵

“……!”

그렇게 나아가는 동안 저 멀리서 나타난 몬스터들!

날개가 달린 몸통에, 흉측하게 생긴 여자의 얼굴. 하피였다.

루포는 몬스터를 금방 알아보고 외쳤다.

“붉은 깃털 하피입니다. 조심하십시오!”

하피는 허공을 날아다니며 밑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그걸 보고 외쳤다.

“어디 건방진 몬스터가 감히! 본때를 보여주겠다!”

우우웅-

기사 중 한 명이 말 옆에 달린 짧은 창을 들어서 던졌다.

멋진 투창 스킬이었다.

쐐애액-

팍!

-카아아악!

창을 정통으로 맞은 하피가 비명을 지르며 땅에 떨어졌다.

“멋진 솜씨야!”

“하하! 이건 별것도 아니지!”

기사들끼리 서로 칭찬하는 동안, 하피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태현은 태연하게 지도를 보았다.

지도에는 이렇게 나와 있었다.

[주레 산맥 입구: 붉은 깃털 하피의 서식지. 상대하지 말고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추천. 맞서 싸우면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남.]

‘이 지도 정말 좋은데?’

루포와 에드안이 구해온 지도라 그런지 정말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가자.”

“네?”

순간 루포는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가자고.”

“……? 어디를요?”

“앞으로 빠져나가자고. 싫으면 넌 여기 있어라. 야, 잉여들.”

“잉여가 아니라……!”

“알겠어. 대장장이들, 가자.”

김지산은 아직도 태현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 기사들은요?”

“그럼 넌 여기에 있어. 난 간다.”

태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말에 강하게 채찍질을 했다.

왕궁에서 받은 말답게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같이 갑시다!”

펠마스와 에드안이 가장 빨리 태현의 뒤를 따랐다.

그걸 본 대장장이들과 루포도 상황을 깨달았다.

저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정말 두고 갈 인간!

“저, 저도 갑니다!”

“저도요!”

기사들이 하피를 하나씩 사냥하는 동안, 태현과 다른 일행은 속도를 내서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

“자네들! 어디로 가는 건가!”

기사들은 당황해서 외쳤지만 태현과 일행은 무시했다.

그저 더 속도를 올릴 뿐!

“이봐!”

“어, 어어! 어디 가는 거야!”

기사들은 당황했지만, 하피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일행이 나눠지자 기회라고 보고 덤벼들었다.

노리는 건 당연히 방금 그들을 공격한 기사들!

카카칵! 카카칵!

“이 몬스터들이 어디서!”

“저리 비키지 못할까!”

하피들의 숫자가 많아진다고 해서 기사들이 죽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너무 실력 차이가 심하게 났던 것이다.

-끓어오르는 용기!

-위대한 명예!

-돌아오는 투창술!

기사들은 스스로 버프를 걸거나, 투창으로 하피들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그러나 하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어서 기사들의 갑옷에 발톱을 박거나, 깃털을 쏘아댔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기사들의 갑옷은 날카롭게 긁히고 우그러졌다.

그럴수록 기사들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다.

촤촤촥!

“에잇! 물러서라!”

달려드는 하피 하나의 목을 칼로 날려버리고, 기사 중 한 명이 크게 외쳤다.

“우리도 빠져나가야 하지 않나?”

“적이 있는데 등을 돌리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 그렇지만…….”

“적을 섬멸하고 나간다! 그게 우리의 본분이다!”

기사들은 후퇴하지 않고 용맹하게 맞서 싸웠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부하들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지휘 스킬이 오릅니다.]

그리고 태현은 멀리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잘 싸우네~”

“…….”

루포는 질린 표정으로 태현을 지켜볼 뿐!

“안 도와줘도 됩니까?”

“알아서 잘 싸우는데 뭐하려고 도와줘?”

-주인이여, 힘이 들어오고 있다.

“그래, 용용아. 많이 먹어라.”

태현은 들어오는 경험치를 용용이와 나눠 받았다.

레벨이 느리게 오르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용용이를 그냥 내버려 두는 건 너무 아까웠으니까.

기사들은 정말 강했다.

한 명 한 명이 실력자인데, 그들이 뭉쳐 있으니 하피가 아무리 몰려와도 제대로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싸우면 갑옷은 흠이 생기고, 칼날과 창끝은 무뎌진다.

뿐만 아니라 피곤이나 배고픔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태현은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싸움 끝났네.”

기사들 주변에 하피의 너덜너덜한 사체가 쌓여 있었다.

피로 얼룩진 기사들이 터덜터덜 말을 타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태현은 그들이 오자마자 외쳤다.

“내가 빠져나오라고 했는데 왜 말을 듣지 않았지?!”

“?!”

기사들은 깜짝 놀라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런 명령을 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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