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11화
절대 혼자서 구르지는 않겠다는 굳은 의지!
에드안은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했지만 태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너도 나와 같이 간다.”
“으흑흑흑흑!”
에드안은 울상이 되어서 구석에 틀어박혔다.
“그런데 사디크 교단이 그렇게 무섭나?”
“그런 건 싸우기 전에 생각하셨어야죠!”
퍽!
태현은 계속 징징거리는 에드안을 걷어찼다.
“으헉!”
“누가 되고 싶어서 원수가 된 줄 알아? 네가 왕의 침실에 사람 없다고 해서 간 거잖아! 생각해 보니 이거 완전히 네 탓 아니냐?”
퍽! 퍽!
따지고 보면 에드안이 왕의 침실에 가자고 해서 벌어진 일!
태현이 구타를 멈추자 에드안은 제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사, 사디크 교단 놈들은 음험하고 끈질긴 걸로 이름이 높은 놈들입니다. 한번 원수지면 죽이려고 계속 덤벼들 걸요.”
“뭐, 그런 놈들이 한두 놈도 아니고…….”
태현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 원수는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단체로 있었다.
너무 많아서 이름도 제대로 기억 안 날 정도!
랭커들을 사냥하기 전에도 태현은 다른 살인자 플레이어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필드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고 다녔기 때문에 죽었을 때 아이템을 더 많이 떨궜기 때문이었다.
아이템을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다른 사람의 것을 뺏는 것!
덕분에 살인자 플레이어들은 이를 갈며 태현을 노렸다.
‘이 사악한 놈!’
‘아무리 그래도 도둑질한 걸 도둑질하는 놈이 어딨냐!’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물론 태현은 공격받을 때마다 그들을 탈탈 털어댔다.
태현과 맞부딪친 살인자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더 이상 덤비지 못할 때까지 죽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떠나거나!
태현이 너무 태평하자 에드안은 탁자를 탕탕 쳤다.
“걱정을 하셔야죠! 놈들은 절대로 만만한 놈들이 아니라니까요!”
“걱정은 이미 하고 있어. 그래서 놈들을 잡으려고 하는 거 아냐.”
에드안은 혹 떼려다가 혹 붙인 표정이었다.
결국 그를 데리고 사디크 교단과 싸우러 간다는 소리 아닌가.
“아, 아니…… 그냥 피하면서…….”
“끈질긴 걸로 이름이 높다며? 피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 안 되겠네.”
“그, 그러면 저는 좀 두고…….”
“하하. 대도적 에드안을 두고 어떻게 혼자 싸우겠어. 실력을 믿고 있다고.”
갑자기 대도적이라고 인정해 주는 태현의 모습에 에드안은 눈물을 흘렸다.
물론 감격의 눈물은 아니었다.
“이 사람 보게. 그렇게 눈물이 헤퍼서 쓰겠어? 뭘 이런 걸 갖고 감동하고 그래.”
“감, 감동이 아니라…….”
“감동이 아니라 감격이라고? 잘 알겠어.”
둘이 그렇게 떠드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찾아왔다.
루포와 펠마스였다.
“국왕이 태현 님을 찾습니다.”
* * *
“우리만 부른 게 아니잖아?”
태현의 질문에 루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야 사디크 교단을 적으로 선포하고 토벌대를 보내려고 할 테니,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 부르지 않았겠습니까?”
왕궁 앞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대부분이 플레이어들 같았다.
국왕이 대륙 단위 퀘스트를 낸다는 소문이 퍼져서 몰려온 플레이어들이었다.
웅성웅성-
“대륙 퀘스트라고?”
“그렇다니까. 사디크 교단 정도면 대륙 퀘스트 나올 거야. 우리도 참여해서 몫 좀 챙기자고. 어지간한 던전보다 나을걸?”
“우리가 깰 수 있나?”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 많이 참가할 테니까 괜찮겠지. 그냥 참가만 해도 이득이야.”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각자 생각을 이야기했다.
‘다들 생각하는 게 비슷하군.’
사실, 소규모 길드나 파티, 개인이 참가하기 좋은 퀘스트는 이런 대규모 퀘스트였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만큼 한 명 한 명한테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자기가 꼭 엄청난 활약을 하지 않아도 퀘스트는 성공할 수 있었다.
보상은 좀 줄어들더라도 그건 엄청난 장점이었다.
망신을 당한 아탈리 왕가가 사디크 교단을 토벌하기 위해 모험가들을 모으고 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다들 기대에 가득 찬 눈길로 연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왕의 시종이 기침을 몇 번 하고 말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 모인 모험가들이여, 잘 왔도다!”
확대 마법으로 쩌렁쩌렁해진 목소리가 광장 앞에서부터 끝까지 울려 퍼졌다.
“어제 있었던 참사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저 사악한 사디크 교단이 감히 신성한 왕가에게 이를 드러냈도다! 이 얼마나 사악하고 비열하며 잔인무도한…….”
듣던 태현이 중얼거렸다.
“저 긴 묘사 꼭 필요한 거야?”
“……일인가! 이 자리에 모인 모험가들이여! 그대들은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번 사태에 분노해서 모였다!”
태현은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욕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들!
정의로운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음. 뭐 정의로운 마음……일 수도 있겠지.”
톡톡-
“……?”
누군가 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주현영이었다.
“안녕하세요?”
“오. 안녕. 그러고 보니 저번 습격 때 잘 피했었나?”
“네. 요리사들은 별로 공격도 안 하더라고요. 병사들을 우선적으로 공격했고요. 근데 제가 만든 요리 먹어봤나요? 제가 만들었지만 정말 잘 만들어져서 기분이 좋았는데.”
“……!”
주현영은 자기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정말 잘 만들어졌는데’라고 말하다니.
대체 얼마나 좋게 나왔기에!
‘궁금하잖아!’
“못 먹었어. 그때 다 엎어져 가지고…….”
“네? 정말요? 아쉽네요.”
“나중에 다시 만들면 되지 않아?”
“그런데 행운을 올려주는 재료를 전부 다 써버렸거든요.”
“……!”
“언제 기회가 되면 만들어 드릴게요. 스킬도 배웠으니까 감사의 의미로요.”
“어…… 그래.”
태현은 태연하게 넘겼지만, 사디크 교단과 버포드라는 플레이어에 대한 분노가 두 배로 늘어난 상태였다.
‘두 번 죽인다.’
“이번 퀘스트에 참가하실 건가요?”
“아마? 너는?”
“요리사도 가능하면 참가해 볼 생각이에요. 친구들도 참가하고 싶어 하고요.”
“요리사도 가능할걸. 대장장이도 가능할 거고.”
태현은 저 멀리서 익숙한 세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김지산과 박성찬, 우정식이었다.
‘저 얼간이들은 정말 계속 나타나네.’
셋이 들으면 화를 냈을 속마음!
“그래요? 그러면 퀘스트 도중에 만날 수도 있겠네요. 만나면 요리 좀 드릴게요.”
“그래주면 고맙지.”
주현영이 물러나고 나서, 태현을 알아본 김지산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태산 님! 퀘스트 참가하십니까?”
“참가하는데 너희랑 같이 할 생각은 없다.”
“……!”
속마음을 들킨 김지산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그런 생각 안 했…….”
“거짓말은 입에 침이나 바르고 해라.”
그러는 사이 시종은 연설을 다 마쳐가고 있었다.
“이번 토벌에 참가해서 공을 세우는 모험가들에게는 국왕 전하의 이름으로 보상이 있을 것이다! 공적에 따라 적절하게 보상해 줄 것이니, 모두 분발하도록!”
<사디크 교단을 토벌하라-대륙 퀘스트>
사디크 교단은 언제나 대륙의 평화를 좀먹는 사악한 세력이었다.
과거에 다른 교단의 연합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은 지하에서 힘을 기르다가 다시 돌아왔다.
현 아탈리 국왕의 삼촌과 손을 잡은 그들은 다미아노 2세를 암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에 다미아노 2세는 대노해서 그들을 토벌하려고 한다.
사디크 교단과 적대 관계에 있는 교단들은 이에 응할 것이다.
모험가인 당신이 참가해서 공을 세운다면 국왕은 그에 걸맞은 보상을 줄 것이다.
보상: ?(공적치에 따라 결정됨.)
‘공적치 퀘스트군.’
퀘스트를 그냥 깬다고 보상이 나오는 게 아닌, 얼마나 활약했는지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퀘스트였다.
예를 들어 사디크 교단을 토벌하면서 참가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다면, 퀘스트가 성공해도 보상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에 비해 사디크 교단을 토벌할 때 맨 앞에 서서 성기사들을 썰고 다닌다면?
퀘스트가 성공할 때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대규모 퀘스트에서 중요한 건 전략이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공적치를 올릴 수 있을까에 대한 전략!
벌써 플레이어 중 몇 명은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공적치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사디크 교단을 토벌하라: 퀘스트 공적치는 현재 5,800입니다.]
‘응?’
갑자기 뜨는 메시지창.
태현은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5,800이라니.
숫자를 잘못 봤나?
[사디크 교단을 토벌하라: 퀘스트 공적치는 현재 5,800입니다.]
주변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 0인데, 너 공적치 몇이냐?”
“나 17이다.”
“뭐야? 왜 너는 17에서 시작해?”
“자식아, 나는 사디크 성기사들 쳐들어왔을 때 그 자리에서 화살 쏴서 맞췄거든?”
“와. 이거 사기 아니냐? 그거 맞아봤자 성기사들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
“억울하면 너도 화살 쏘지 그랬냐?”
그제야 태현은 어떻게 돌아간 건지 알 수 있었다.
‘왕궁에서 일어났던 일도 포함시킨 거구만?’
그렇다면 국왕의 목숨을 지키고 성기사들을 쫓아낸 태현이라면 공적치가 높은 것도 이해가 갔다.
‘이거 혹시 퀘스트 성공하면 1등도 노릴 수 있는 수준 아닌가?’
판타지 온라인 1에서, 태현은 공적치 퀘스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워낙 대형 길드가 유리했던 탓이다.
쪽수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됐다.
워낙 많은 인원이 공적치를 세우다 보니 개인에겐 한계가 있었다.
물론 태현은 그 한계를 넘은 적이 있었지만, 그것도 특별한 경우였다.
보통은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번 퀘스트는 좀 달랐다.
일단 시작부터 국왕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공적치를 크게 먹고 들어갔다.
게다가 그걸로 인해 국왕과 친밀도가 높아졌다.
퀘스트를 깰 때 여러 방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왕국군과 같이 움직인다거나, 기사단에 낀다거나…….
‘꽤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태현은 아키서스의 권능이 담긴 천을 확인했다.
신성이 부족해서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설마 이 고생을 했는데 나온 스킬이 별게 아니라면…….
‘아니, 그럴 리가 있겠어? 그럴 리가 없지.’
애써 자신을 설득하는 태현!
* * *
퀘스트가 떨어지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모두가 각자 다르게 움직였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거야!”
대형 길드는 따로 인원을 모으지 않고 준비를 마쳤다.
지금 전력으로도 파티 플레이가 가능하니 굳이 다른 인원을 모으지 않은 것이다.
“같이 파티하실 분 구해요! 마법사 우대합니다!”
“힐러 가능한 분? 저희 파티 탱커가 확실하게 보호해 드립니다! 준 랭커 수준이에요! 절대 안 맞게 해드릴게요!”
대형 길드와 달리, 작은 길드나 파티는 즉석에서 사람을 모으려고 했다.
원래 있는 사람만으로는 좀 부족하니 사람을 더 모아 파티의 규모를 키우려는 것이다.
적이 워낙 만만치 않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저 방패 전사인데 혹시 파티 들어갈 수 있을까요?”
“죄송한데 탱커는 이미 자리가 다 차서요.”
“저 레벨 70 넘는 창술사인데 파티 자리 남나요?”
“죄송해요. 이미 딜러 수는 충분해서요.”
“전 대장장이인데…….”
“장난하세요? 저리 가세요.”
필요하지 않으면 쫓겨나는 냉정한 시장!
그게 바로 즉석 파티의 장이었다.
필요 없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는 아무도 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