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7화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퀘스트창이 뜬 것이다.
<왕궁 습격 사건-살아남거나 공을 세워라.>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왕궁을 습격할 적이 있다고는.
그러나 현재 왕궁은 기습을 받았고, 사람들은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다.
당신은 현재 왕궁에 있는 모험가다. 왕궁을 도와 공을 세우거나 위험을 피해 빠져나가라.
보상: ?
‘공을 세우라는 건 알겠는데, 빠져나가라는 건 위험하다는 뜻인가?’
보통 퀘스트에서 빠져나가라는 게 나올 정도면 빠져나가도 페널티가 없다는 뜻이었다.
즉 그만큼 상대가 위험하다는 뜻!
‘하긴, 왕궁을 공격할 정도면 어떤 놈이든 꽤 강한 놈이겠지.’
태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왕궁 병사들이 굳은 얼굴로 달려오고, 곳곳에서 폭발이 계속 일어났다.
귀족들은 왕궁 내에 숨겨진 안전한 은신처로 피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되나?’
확실히 에드안의 말은 그럴듯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왕궁을 뒤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앗!”
고민하던 태현은 무언가 떠올라 급하게 외쳤다.
옆에 있던 에드안이 놀라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안 돼! 내 아이템!”
태현은 급하게 몸을 돌려 뛰어갔다. 달려가고 있는 곳은 대장장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태현을 위한 아이템이 만들어지고 있던 곳!
* * *
“으아아! 뛰어! 뛰라고!”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대장장이들이 있는 곳은 요리사들이 있는 곳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습격을 직접적으로 당한 것이다.
“크흐흐……. 왕궁에 있는 국왕의 졸개를 전부 처리해라!”
검은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나타나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대장장이들이 만들던 아이템 중 몇 개는 박살 났고, 모루나 용광로마저 와장창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중 운 없는 대장장이 몇 명은 재수 없게 걸려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회색이 되어 로그아웃!
그리고 전사들 사이에, 플레이어 버포드가 있었다.
‘일이 이렇게 잘 풀리다니!’
버포드는 투구 안에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
위엄 있는 모습으로 있어야 했다.
이번 왕궁 습격 사건은 그냥 일어난 게 아니었다. 여러 세력이 연관되어 있는 복잡한 사건이었다.
다미아노 2세의 삼촌인 안토니오와, 화염과 파괴의 신 사디크를 믿는 사디크 교단이 힘을 합쳐 왕궁을 습격한 것이다.
버포드는 사디크 교단에 들어가서 교단의 성기사로 전직한 플레이어였다.
사디크 교단은 다른 교단과 달리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쉽게 들어갈 수도 없는 비밀 교단.
그런 교단에 들어가서 퀘스트를 착실하게 수행해 온 결과가 드디어 나오고 있었다.
왕궁까지 습격할 수 있다니!
“으하하하! 쓸어버려! 쓸어버리자!”
버포드는 신이 나서 다른 교단의 기사들과 함께 날뛰었다.
왕궁에서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주워서 가방에 넣었다.
이제까지 했던 것들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번 퀘스트가 끝나면 편집해서 방송 시작한다!’
이제까지 퀘스트들은 제대로 공개도 안 했다. 괜히 유출되었다가 방해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왕궁 습격 퀘스트만 깨면 공개해도 상관없는 상황.
한동안 게시판을 뜨겁게 달굴 게 분명했다.
버포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건 풍림화산 길드인가?’
대충 자리를 다 때려 부수고 난장판을 만든 버포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나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다.
대장장이나 요리사, 다른 제작 직업, 예술 직업인 등이 국왕을 위해 퀘스트를 깨고 있다는 것을.
물론 버포드에게 그건 부수입이었다. 운만 좋으면 공짜로 다 가져갈 수 있는 부수입!
“이, 이건……!”
버포드는 박살 난 용광로 사이에 놓인 반지를 발견하고 놀라움에 떨었다.
무시무시한 옵션이 덕지덕지 발린 반지!
원래라면 퀘스트 도중에 발견된 아이템들은 다 그의 상관인 NPC한테 바쳐야 했다.
그렇지만 이 반지는…….
정말로 좋았다.
버포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린 다음 몰래 반지를 챙겼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이동한다! 국왕을 찾아!”
“예!”
그러고는 천연덕스럽게 다른 기사들과 함께 이동했다.
* * *
“으아아아!”
태현이 분노 섞인 고함을 질렀다.
태현은 지금 아수라장이 된 뜰 가운데에 서 있었다.
모루나 용광로는 전부 박살이 났고, 쓰러진 NPC들의 시체가 굴러다녔다.
누가 본다면 태현이 이 비참한 현장에 분노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 저런 정의로운 사람이라니!
그러나 물론 태현은 사람들이 죽어서 분노하는 게 아니었다.
‘내 아이템!’
대장장이들이 만들던 아이템은 모두 박살이 나거나 사라져 있었다.
습격자들이 갖고 간 게 분명했다.
“저, 태, 태현 님.”
옆에서 에드안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딱 봐도 태현이 화가 났다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왜?”
“지금이 아니라면 기회가 없습니다. 왕궁을 뒤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
태현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가자!”
아이템도 잃어버린 상황, 권능이라도 챙겨가야 했다.
이 상황을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에드안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진짜 누가 습격한 거야?’
누가 한 건지 알게 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 * *
-그거? 버포드란 놈이 하고 있던데?
“뭐?”
태현은 귓속말을 듣고 경악했다. 최상윤에게서 온 귓속말이었다.
-지금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거든. 이제까지 숨기고 있다가 퀘스트 막바지라서 생방송 시작한 것 같아. 대충 보니까 사디크 교단이랑 왕 삼촌이랑 힘 합쳐서 암살하는 퀘스트 같은데, 조심해라.
“그러니까…… NPC나 세력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끼어 있었다 이거지?”
살벌한 목소리!
최상윤은 움츠러들어서 대답했다.
-그, 그렇지.
“버포드란 놈이라고?”
-그래.
“고맙다.”
반드시 쫓아서 회수한다!
태현은 이를 갈았다.
남의 밥상을 뒤엎다니.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최상윤의 귓속말 덕분에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국왕 다미아노 2세의 삼촌이 사디크 교단과 힘을 합쳐서 왕궁을 습격한 것이다.
버포드란 놈은 그 교단에 속한 성기사였고.
-사디크 교단이 만만한 놈들은 아닐 테니까 조심해.
사디크 교단은 대륙에서 정식으로 활동하는 교단은 아니었다.
과거에 크게 사고를 쳐서 공격받은 다음 사라진 교단!
사악한 수법을 쓰는 이교도 교단이었다.
당연히 소속된 인원들도 만만치 않았다.
“조심해야 하는 건 그놈들이지.”
태현은 살벌하게 말하며 왕궁 복도를 걸었다. 반지를 날린 게 아직도 속이 쓰렸다.
-나도 지금 퀘스트 깨야 하니까 나중에 말하자고.
“그래. 조심해라.”
왕궁 복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는 치열한 전투 소리가 들렸다.
에드안과 태현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몰래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어디부터 뒤질 생각이지?”
“왕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이 어디일지 생각해 봤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국왕의 침실 아닐까요?”
“국왕의 침실?”
“예. 그만큼 또 깊숙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런 곳에 귀중한 물건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걸 어떻게 알지?”
“후후. 태현 님, 제가 누굽니까? 대도적 에드안 아닙니까.”
에드안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았다.
왕년에 좀 많이 털어봤다는 뜻!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기로 가자고. 왕은 거기 없겠지?”
“당연히 없을 겁니다. 지금 국왕을 죽이러 습격자들이 찾아왔는데, 국왕이 침실에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근위대원들과 함께 비밀 은신처로 갔을 겁니다. 이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에드안은 열정적으로 말했다. 태현도 그 말에 설득당할 정도로.
* * *
[어려운 상황에서 들키지 않았습니다. 은신 스킬이 오릅니다.]
둘은 은신을 쓰고 조심조심 걸어갔다. 왕궁 내에 아예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가끔 급하게 뛰어다니는 병사들이나 시종들이 나타났다.
그럴 때는 바로 은신 스킬을 써서 피해야 했다.
“여기냐?”
“그런 것 같습니다만…….”
둘은 복도 벽에 바짝 붙어서 문을 힐끗 쳐다보았다. 호화롭게 장식된 문이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였다.
“열 수 있겠냐?”
“후후. 태현 님, 제가 누굽니까? 대…….”
“대도적이고 대변이고 상관없으니까 열라고.”
“네…….”
에드안은 시무룩해져서 문에 손을 댔다.
달칵, 달칵-
“흠…….”
“왜 그래? 못 열겠어?”
태현은 고대의 망치를 꺼낼까 생각했다.
소리야 크게 나겠지만 이 문 정도는 부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요. 열었습니다.”
“대단한데?”
“사실 안 잠겨 있었습니다.”
“……들어가기나 하자.”
둘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왕의 침실답게 안은 호화로웠다.
그냥 침대 하나도 평범하지 않았다. 장식과 보석으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빠르게 뒤지고 빠져나가자고.”
“후후. 맡겨만 주십시오.”
에드안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에드안은 빠르게 움직이며 아키서스의 권능이 있을 법한 곳을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워낙 철저해서 보고 있는 태현이 감탄할 정도!
‘아, 앞으로 도둑질을 할 때는 저렇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침대 밑과 벽에 걸린 그림 뒤에 숨겨진 금고, 탁자 옆에 있는 공간과…….
에드안은 모두 빼놓지 않고 뒤졌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의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편지지가 있었다.
아무 내용도 쓰여 있지 않은 편지지였다.
‘국왕의 편지인가?’
태현은 혹시 쓸 만한 퀘스트가 뜰 지도 몰라 하나씩 챙겨두려고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편지지가 아닌, 탁자를 덮고 있는 천에서.
“?!”
[아키서스의 권능이 새겨진 고대의 천을 발견했습니다.]
<권능을 흡수하라–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아키서스의 교단은 과거에 큰 타격을 입고 사라져버린 교단이다.
진정한 화신이 되기 위해서는 흩어진 아키서스의 권능을 모으고 신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
아키서스의 권능은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흩어져 있다. 평범한 물건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마라. 그것에 권능이 담겨 있을 수도 있으니.
자격이 된다면 권능을 흡수하라.
보상: 아키서스의 권능 습득
[신성이 부족합니다.]
“……!”
동시에 뜨는 메시지창들.
태현은 방금 얻은 정보를 정리했다.
아키서스의 권능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게 무슨 보물처럼 보관되어 있던 게 아니라, 그냥 테이블을 덮는 천으로 되어 있었다는 건 충격이었지만.
‘뭐 이런 식으로 보관을 하냐?’
어쨌든 얻은 건 좋았는데, 현재 태현이 익히기에는 신성이 부족했다.
[필요한 신성: 1000]
‘지금 신성이 760이니까…… 그렇게 멀지는 않았는데.’
신성이나 명성 같은 스탯은 힘, 민첩 같은 스탯보다 올리기 쉽다.
문제는 올릴 방법이 한정적이라는 점이었다.
‘신성 관련 퀘스트가 뭐가 있더라?’
태현은 일단 천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에드안을 불렀다.
에드안은 침대 밑에 머리를 넣고 뒤적거리고 있었다.
“에드안, 나와라.”
“예? 여기 비밀금고가 있…….”
“권능을 찾았어.”
“……!”
에드안은 헐레벌떡 빠져나왔다.
잘생긴 얼굴이 먼지로 엉망이었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탁자를 덮고 있던 천이었어.”
“과연!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정말 뛰어난 방법입니다!”
“아니……. 그렇게 노리고 한 거 같지는 않은데…….”
에드안은 감탄했지만 태현은 그다지 놀랍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