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106화 (106/1,826)

§ 나는 될놈이다 106화

“지금?”

“그래, 지금.”

신선한 식재료를 뺏긴 덕분에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요리사들이었다.

그들은 태현이 말한 방법을 듣고 처음에는 망설였다.

-이런 방법까지 써야 해?

그러나 이야기하면 할수록, 태현이 말한 방법은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남이 한 대 치면 우리도 한 대 쳐야지!

-맞아! 저 자식들한테 한 방 먹여주자고!

원래 한 대 맞으면 똑같이 갚아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요리사들 사이에 순식간에 ‘복수하자’는 의견이 퍼져나갔다.

탁탁탁-

레스토랑 길드원들이 완성된 요리를 들고 걸어갔다. 총 다섯 접시의 코스 요리로, 레스토랑 길드원들과 길드 마스터가 머리를 맞대고 짜낸 걸작이었다.

차례대로 나올 때마다 요리가 추가되며 맛이 변하는, 그야말로 섬세하고 치밀한 요리의 정수!

그러나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콰당탕-

“?!”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요리사 한 명이 돌진해서 접시를 들고 가는 레스토랑 길드원을 덮친 것이다.

와장창!

당연히 들고 가던 요리는 바닥에 떨어져서 박살!

“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뭐가? 손이 미끄러진 건데?”

“이 자식! 변명이라도 좀 성의있게 해라! 발도 아니라 손이 미끄러졌다고?”

“몰랐나 보지? 손이 미끄러지면 이렇게 된다! 이렇게! 이렇게!”

요리사는 소금을 들어 레스토랑 길드원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추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 이……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거 같냐! 넌 실격이야!”

길드원이 분해서 펄펄 뛰자 요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상관없어! 어차피 실격 각오하고 한 거거든!”

“그만!”

레스토랑 길드의 길드 마스터, 차오가 외쳤다.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요리사들에게 달려들려다가 길마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차오는 비웃는 웃음을 지었다.

“하, 어리석군. 어차피 요리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양을 많이 만들었으니 거기서 다시 갖고 오면…….”

촥촥-

“응?”

차오는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뭐, 뭐 하는 거냐!”

“어이쿠! 손이 또 미끄러졌네!”

레스토랑 길드의 다른 요리에 소금을 촥촥 부어버리는 요리사들!

그제야 차오는 깨달았다.

요리사 한 명이 화가 나서 덤벼든 게 아니었다. 여기 있는 요리사들이 아예 작정을 하고 그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이 비겁한 놈들이!”

“먼저 시장 가서 그딴 짓을 해놓고서 비겁은 뭐가 비겁!”

“요리에 손을 대고 무사할 거 같냐!”

“어쩔 건데? 응? 어디 덤벼보든가!”

요리사들은 졸지에 멱살을 잡고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요리 재료를 얼굴에 뿌리고, 프라이팬을 휘두르고…….

전사나 마법사들의 싸움만큼 화려하고 멋지지는 않지만 그 처절함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난장판을 시종이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시종이 태현을 보며 물었다.

“저 사람들 전부 내보내도 되겠습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

* * *

왕궁으로 초청받은 요리사들의 요리는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2/3이 넘는 인원이 탈락!

요리도 내보지 못하고 그냥 병사들한테 붙잡혀서 쫓겨난 것이다.

[명성이 10 내려갑니다.]

[왕궁에서 벌인 일로 한동안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따라다닙니다.]

싸움이 끝나고 제정신이 돌아온 요리사들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왕궁 문을 나섰다.

냉정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니 역시 그런 싸움은 부끄러웠던 것!

물론 그렇다고 화해를 하지는 않았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

“너희야말로 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레스토랑 길드원들과 다른 요리사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갈라졌다.

* * *

“흠흠, 소란스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어디 한번 요리를 먹어보도록 할까요?”

자리에 모인 귀족들이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원래대로 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하품을 했다.

사실 지금 가장 궁금한 건 대장장이들이 뭘 만들었는지였다.

‘좋은 게 나오겠지? 분명 좋은 게 나올 거야.’

마치 생일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것 같은 기대감!

물론 지금 앞에 나오는 요리도 좋은 요리였다. 먹으면 다양한 스탯 보너스와 버프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역시 크게 보면 대장장이들이 만드는 아이템이 기대가 됐다. 한번 손에 넣으면 계속 쓸 수 있는 아이템 아닌가.

게다가 아까 보니 대형 대장장이 길드에서 아주 기를 쓰고 걸작을 하나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걸 공짜로 먹을 수 있다니.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응?”

주변을 둘러보던 태현은 왕이 안 보인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하는 어디 계시지?”

“조금 피곤하셔서 안에서 쉬고 계십니다. 곧 있으면 나오실 겁니다.”

“그래?”

사실 왕이 없어도 별 차이는 없었다. 어차피 요리를 먹고 평가를 해줄 NPC들은 많았으니까.

살짝 뚱뚱한, 콧수염을 기른 귀족 남자가 포크로 탁자를 치며 말했다.

“어서 요리를 내오도록! 과연 내 혀를 만족시킬 수 있나 보겠다!”

귀족 남자를 알아본 요리사들이 놀라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미식가 발드레즈잖아?”

“여기에 와 있었어?”

미식가 발드레즈.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NPC였다.

요리사로서 어느 정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명성도 일정 수치 이상을 가지면 발드레즈한테서 초대장이 올 때가 있었다.

처음에 받았던 플레이어들은 귀족한테서 초대를 받았다고 매우 좋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퀘스트는 아무도 받지 않는 퀘스트가 되었다.

-이 요리를 먹으라고 내왔나? 돼지 먹이로 쓰는 게 낫겠군. 아니, 돼지 먹이로도 쓰면 안 되겠어. 돼지가 불쌍하잖아!

-자네, 요리사라고 했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요리를 그만두는 게 어때? 왜냐하면 이 고기의 유령이 울고 있거든! ‘나를 이렇게 맛없게 만들다니’ 하고 말이야!

발드레즈는 아주 까다롭고 독설을 내뱉는 귀족 NPC였다. 그한테 잘못 보여서 멘탈이 깨진 요리사들이 수두룩할 정도.

그런 발드레즈가 이 자리에 와 있으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요리사 한 명이 주춤거리며 접시를 내왔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각자 한 입씩 먹기 시작했다. 물론 태현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먹었습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중급 요리 스킬 덕분에 먹은 요리의 레시피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감자를 이용한 포타주> 레시피를 얻었습니다.]

[체력이 영구적으로 2 오릅니다.]

[일시적으로 HP가 3% 오릅니다.]

‘맛있는데?’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숟가락으로 감자를 떠서 먹었다.

재료가 없다고 다들 징징대서 별 요리가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역시 여기까지 왔을 정도의 요리사라면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는 요리사였다.

새로운 재료를 구하지 못해서 있는 재료로만 만들었지만, 감자는 부드럽고 감칠맛이 느껴졌다.

그러나 발드레즈는 냉정했다.

“재료부터가 성의가 없군. 이런 걸 먹으라고 내놓은 건가? 가지고 가게!”

“…….”

시무룩해진 요리사.

그걸 본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거, 맛있기만 한데 대충 먹지.’

다음 요리는 향신료와 절인 고기 요리였다.

마찬가지로 먹었을 때 보너스가 뜨고 요리 스킬이 조금 오를 정도로 잘 만든 요리였지만, 발드레즈는 다시 냉정하게 걸렀다.

“이건 부끄러운 요리군. 고기한테도 향신료한테도, 그리고 이걸 만든 사람한테도 말이야! 가지고 가!”

까다롭기는 왕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

요리사들이 한 명씩 떨궈져 나가고, 주현영의 차례가 왔다. 태현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요리를 기다렸다.

과연 주현영은 어떤 요리를 만들었을까?

태현도 요리 스킬에 꽤 자신감이 있었지만, 요리 스킬을 전문으로 파는 직업은 역시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주현영이 잘하면 나한테도 보너스가 오잖아?’

별생각 없이 맺어뒀던 스승-제자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다니.

주현영이 요리를 들고 걸어왔다. 발드레즈는 먹기도 전에 얼굴부터 찡그렸다.

“이 모양새는 뭔가? 요리를 할 거면 좀 더 제대로 만들었어야…….”

콰콰콰콰콰쾅!

그 순간 저 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 때문에 발드레즈는 고개를 접시에 처박게 되었다.

“크후흡?!”

“뭐야?!”

“무슨 일이냐!”

화염이 위로 솟구치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태현은 지금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대장장이들이 있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장장이들이 무슨 사고라도 쳤나?’

그러나 태현의 추측이 틀렸다는 건 곧바로 알게 되었다.

시종들이 달려와서 외친 것이다.

“습격입니다! 모두들 안전한 곳으로 피하십시오!”

“습격?!”

습격이라니. 왕궁과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였다. 왕궁을 습격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시종들의 외침에 자리에 앉아 있던 귀족들은 당황하면서도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궁에 있는 안전한 장소들로 이동하려는 것이다.

태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 접시를 들고서.

“모험가님, 이동하셔야 합니다!”

시종이 그렇게 외치자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요리들을 하나씩 집어 먹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손놀림!

[뛰어난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먹었습니다.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요리 레시피를 얻었습니다.]

[영구적으로 힘이…….]

[일시적으로 민첩이…….]

“다른 모험가분들도 이동하십시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시종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

귀족들은 귀족들대로, 자리에 있던 요리사들은 요리사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태현은 다 무시하고 남은 요리를 해치우려고 했다.

“잠깐, 주현영이 만든 요리는 어디 있지?”

태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장 기대되는 요리였던 것이다.

“……!”

방금 폭발 때문에 식탁 위에 올라간 요리는 날아가 있었다.

태현은 얼굴에 요리를 뒤집어쓴 발드레즈와 눈이 마주쳤다. 발드레즈는 이 와중에도 얼굴에 묻은 요리를 할짝거렸다.

“이, 이건…… 맛있군!”

“……!”

저 까다로운 귀족이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태현은 더 궁금해졌다.

“남은 요리는…….”

콰콰쾅!

한 번 더 폭발이 일어나고, 이번에는 탁자까지 뒤집어졌다. 그 위에 있던 요리들도 모조리.

그리고 침입자가 나타났다. 갑옷을 입은, 사납게 생긴 전사!

“크하하하! 귀족들과 왕의 졸개들이군. 죽어ㄹ…… 크허억?!”

“너나 죽어, 이 자식아.”

태현은 말도 끝까지 듣지 않고 침입자에게 달려들어 폭풍 공격을 퍼부었다.

스킬 연사로 이어지는 분노의 공격 세례!

침입자가 강하다고 해봤자 태현한테 선공을 허락하고, 공격을 연속으로 맞으면서 계속 버틸 수 없었다.

침입자를 쓰러뜨리고 나자 태현은 화가 좀 풀렸다. 요리를 못 먹은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나중에 다시 해달라고 하면 되니까…….’

“태현 님, 태현 님!”

사람들이 움직이고 도망치느라 바쁘고 소란스러운 와중에, 누군가가 태현을 불렀다.

바로 에드안이었다.

“넌 왜 안에 안 들어가 있고 여기 나와 있냐?”

“기회입니다!”

“뭐?”

“지금이 기회라고요! 왕궁이 소란스러울 때, 지금 털지 않으면 언제 털겠습니까!”

태현은 에드안의 멱살부터 잡았다.

“설마 네가 이 소란을 만들었냐?”

당장에라도 죽일 것 같은 살기!

에드안은 최대한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그럴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야. 네가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펠마스랑 놀지 않았겠지.”

“…….”

맞는 말인데 어쩐지 서러운 말!

에드안은 빠르게 속삭였다.

“누가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입니다. 놓치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으음…….”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어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