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5화
“어째서 내가 공정하게 경쟁하게 해줘야 하는 거지?”
시종의 대답에 요리사들의 말문이 막혔다.
“재료가 없다니. 미리 재료를 사서 올 생각은 안 했나?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모으는 것도 요리사의 능력. 그런 것도 없는 주제에 무슨 얼굴로 여기까지 왔나! 능력이 없으면 나가라!”
시종의 단호한 외침에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맞는 말씀!”
“재료를 모으는 것도 능력이다!”
“시종 만세!”
당연히 옆에 있는 요리사들은 혈압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부글부글 끓는 눈으로 레스토랑 길드원들을 노려보았다.
“저것들이…….”
“돈이랑 사람 많다고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어디 두고 보자!”
시종과 요리사들이 떠드는 모습을, 태현은 하품을 하며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요리사 중 한 명이 태현에게 달려와 말을 걸었다.
“태산 님, 태산 님.”
“누구셨더라?”
“저, 카테란드 섬에서 있었던 요리사입니다.”
“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요리 먹기 싫어했던 사람이겠군.”
“…….”
끈질긴 뒤끝!
요리사는 태현이 설마 이런 사소한 일까지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왜? 내 요리 먹기 싫어했던 요리사께서 나한테 뭐 할 말씀이라도 있으신지?”
“…….”
뒤끝에 이은 비꼬기까지!
요리사는 말하는 걸 포기했다. 지금 태도를 보니 딱히 도와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태현에게 말을 걸었던 요리사가 돌아오자, 다른 요리사들도 반쯤 포기했다.
“현영아, 너 저번에 저 사람하고 대화하지 않았어?”
그리고 이 자리에는 주현영도 있었다. 그녀는 친구가 쿡쿡 찌르자 고개를 돌렸다.
“응?”
“저번에 퀘스트 깰 때 섬으로 올라가서 도왔잖아. 그때 좀 얘기하지 않았어?”
“하긴 했지?”
주현영은 왜 그러냐는 듯이 되물었다.
“좀 친해진 거 아니야?”
“친해졌…… 나?”
주현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현과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친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친해진 편이었다.
“가서 부탁 좀 해보면 안 돼?”
“부탁해서 들어줄 사람이 아닌데.”
주현영은 그렇게 말하며 솥 안에 향신료를 넣었다.
레스토랑 길드가 식재료를 다 쓸어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리도 하지 않고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주현영만 그런 건 아니었다. 곳곳에 보면 몇몇 요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요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신선한 식재료는 레스토랑 길드가 쓸어갔지만, 원래 갖고 있던 재료들을 써서 최대한 좋은 요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 이 재료로 어떻게 이겨!”
“꼭 진다고 정해지지는 않았잖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봐야지.”
주현영은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으로 요리에 나섰다. 신선한 식재료는 아니더라도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써볼 생각이었다.
‘이걸 지금 써야 하나?’
주현영은 침착하게 아이템들을 꺼냈다. 이런 순간을 위해 구해놓은 아이템들!
<네잎클로버를 곁들인 훈제오리고기요리:
질 좋은 오리고기를 멋들어진 솜씨로 잘 절여서 만든 요리다. 위에 곁들어진 행운의 상징인 네잎클로버가 요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복용 시 체력 1 상승.
일시적으로 행운 10 상승.>
<토끼발 고기국수:
토끼고기를 넣어서 요리한 국수 요리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미래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요리사가 만들었다.
복용 시 일시적으로 행운 1% 상승.>
태현에게 <행운의 요리> 스킬을 배운 다음, 주현영은 어떻게 이 스킬을 쓸지 고민했다.
일단 쓰기 위해서는 높은 행운이 필수적.
그러나 스탯은 올리고 싶어도 바로 올릴 수 없었다.
그렇게 쉽게 올려지면 사람들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행운을 일시적으로 올려주는 아이템들을 구해놓고, 필요할 때 쓰자!
주현영의 직업은 요리사. 아탈리 왕국에서 활동하면서 다른 요리사들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요리사들이 만든 요리는 그 재료나 요리 방법에 따라 효과가 다양했다.
가장 인기가 있는 건 공격력이나 HP, MP 회복 속도를 올려주는 효과를 가진 요리들이었다.
그런 요리들은 던전을 가는 파티들이나 길드들이 닥치는 대로 구입해 갔다.
그에 비해 행운을 일시적으로 올려주는 요리는 정말 인기가 없었다.
푼돈으로도 쉽게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행운을 올려서 눈에 보이는 이득을 보려면 조금 올려서는 의미가 없었다. 태현 정도는 올려야 했다.
당연히 행운을 5 올려주는 요리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덕분에 주현영은 행운을 올려주는 요리들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요리들을 전부 사용하고 있었다.
[행운이 일시적으로 10 오릅니다.]
[행운이 일시적으로 1% 오릅니다.]
[행운이 일시적으로 5 오릅니다.]
주르륵 뜨는 메시지창들.
행운 도핑이었다.
그리고 주현영처럼 묵묵히 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은 다른 요리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질 수는 없지.”
“그래, 이 자식들. 두고 보자!”
포기하고 있던 요리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의욕을 불태웠다.
요리사들이 레스토랑 길드원들을 살벌하게 노려보자 길드원들이 움찔거렸다.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재료도 별거 없는 놈들이다.”
레스토랑 길마가 그렇게 말하자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다른 요리사들이 뭘 해봤자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의 요리 실력이 밀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재료에서 압도하는 것이다.
“이번 퀘스트, 우리가 먹는다!”
* * *
“안녕하세요.”
“여기 늘어놓은 요리들은 뭐야?”
“행운의 요리 스킬 써보려고요. 즉석에서 행운을 좀 올리면 쓸 수 있지 않을까요?”
태현은 주현영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었다.
‘그에 비해 저 대장장이 놈들은…….’
저기 있는 대장장이들은 기껏 스킬을 가르쳐 줘도 스킬은 내버려 두고 인맥으로 날로 먹으려 들었다.
이런 식으로 쓸 방법을 찾으면 나오게 되어 있었다.
“뭐, 잘해봐. 재료 없어도 없는 대로 잘하면 되니까.”
태현이 찾아와서 주현영과 떠들자, 옆에 있던 요리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저기. 혹시 심사를 맡는 거면 저 레스토랑 길드는 떨어뜨려 주실 수 있으세요?”
“내가 왜?”
“어…… 저기는 반칙을 했으니까…….”
“식재료 먼저 쓸어모은 거? 그건 반칙이 아니고 전략이지. 난 솔직히 감탄했는걸.”
태현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치사한 방법은 많다!
기억해 두고 나중에 쓸 수 있을 때 써먹을 생각이었다.
“…….”
요리사는 황당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저게 뭔 전략이야?!
“그리고 대장장이 쪽이랑 달리 여기 나오는 요리들은 다들 먹는다고. 나 혼자 레스토랑 길드 욕한다고 되는 거 없어. 알아서 잘해봐.”
“저런 식으로 재료를 다 쓸어갔는데 어떻게 이겨요?!”
“여기 주현영은 알아서 잘하잖아.”
태현은 주현영을 가리켰다. 주현영은 벌써 둘의 대화에 신경을 끄고 요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장 이길 방법이 몇 개는 보이는데.”
“……?!”
태현의 말에 요리사는 깜짝 놀랐다. 이길 방법이 몇 개 있다니?
“무슨 방법입니까?!”
“나한테 방법 맡겨놨어?”
“…….”
까칠하게 나오는 태현의 모습에 요리사는 기가 죽었다.
그걸 보고 태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라면 말 안 해주겠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싸우고 싶다니 말해주지.”
태현의 말에 요리사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떤 방법일까?
태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카테란드 섬 퀘스트로 인해 알고 있었다.
맥크레니 상단과 같이 일하고, 그 많은 인원을 모아서 섬으로 갔다. 게다가 골드 드래곤까지 부르는, 끝을 알 수 없는 능력!
게시판이나 방송에서도 ‘과연 저 인간은 누구인가’로 시끄럽게 떠드는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길 방법이 있다!’라고 말하니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놈들 요리를 망쳐.”
“…….”
“…….”
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열심히 자기 요리를 하던 주현영도 고개를 들고 태현을 쳐다볼 정도였다.
‘그건 아니지!’라는 표정!
그러나 태현은 당당했다.
“왜?”
“그게 무슨 방법이에요……?”
“훌륭한 방법인데?”
요리사는 태현이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람 진심으로 말하고 있어!’
다들 당황하고 있는 와중에 태현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저놈들이 식재료를 다 쓸어갔다며. 그런 상황에서 정면 승부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
판타지 온라인 1에서 태현을 본 사람들은 태현을 오해할 때가 많았다. ‘무모한 성격이구나’라고.
그러나 태현은 언제나 확률을 계산하고 승산이 있을 때 행동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랭커들을 사냥하고 다녔을 때 도중에서 졌을 것이다.
‘다짜고짜 근성으로 덤비는 건 환상에 가깝지. 특히 약한 직업이 그러는 건 더더욱.’
승리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어야 가능했다.
승산이 없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올려야 했다.
“놈들이 전략적으로 너희들의 요리 실력을 내렸으니, 너희들도 똑같이 해주면 되잖아?”
“……!”
요리사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그런 방법은 좀…….”
“왜? 왜 안 되는 거지? 그러면 그냥 질래? 저놈들 보이지? 그냥 지고 싶어?”
태현의 목소리는 마치 악마의 목소리 같았다. 요리사는 점점 유혹에 넘어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던 주현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냥 제 실력으로 싸울래요.”
“그래, 넌 안 할 줄 알았어.”
태현은 깔끔하게 주현영을 포기했다. 성격상 안 할 것이 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요리사는 달랐다. 태현은 요리사의 속마음을 기막히게 알아챘다.
“잘 생각해 보라고. 저놈들이 이기고 나면 얼마나 으스대겠어? 그걸 보고 참을 수 있겠어?”
“그, 그렇지만 방법이…….”
“이 사람 봐. 아주 다 떠먹여 달라고 하네. 좋아. 한번 서비스를 해 준 김에 더 해주지. 요리사들을 모아. 저놈들 싫어하는 요리사는 많을 거 아니야. 그런 다음 한 명이 총대를 메고 저놈들 요리를 망쳐 버리는 거야. 연회 시작 직전에.”
“!!!”
술술 나오는 악마 같은 계획!
“저, 저는 차마 그런 방법까지는…….”
“그런 방법까지는?”
“쓰고 싶습니다!”
“아주 좋아! 가서 사람을 모으라고!”
결국 유혹에 넘어가 버린 요리사!
요리사는 태현에게 고개를 숙인 다음 뛰어가서 다른 요리사들을 모았다. 모인 요리사들은 쑥덕거리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주현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네 방법도 옳고 내 방법도 옳은 법이지. 하하. 중요한 건 결과라고.”
정공법이든 꼼수든, 결국 중요한 건 이기는 것이었다.
승자가 정의!
구석에서 이런 음모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 상상치도 못하고,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해맑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솥은 부글부글 끓고 도마 위의 소리는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걸 보며 태현은 씩 웃었다. 나중에 연회가 열릴 때가 기대되었다.
* * *
“요리사들은 요리를 마치고 갖고 오시오!”
시간이 다 되자 시종들이 나와서 요리사들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음식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미 1등은 자기들이 먹었다고 생각하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서 그들을 노려보는 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