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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104화 (104/1,826)

§ 나는 될놈이다 104화

다미아노 2세는 곧바로 설명을 해주었다.

“왕궁 창고는 전통적으로 왕족들만 들어갈 수 있네. 아쉽지만 자네는 들어갈 수 없겠군. 다른 걸 말해보게.”

‘이런…….’

태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보니 어떻게 말을 해도 왕궁 창고 안으로는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근데 애초에 왕궁 창고 안에 있는 게 확실한 건가?’

왕궁의 가장 깊숙한 곳.

일단 뭔가 보관한다고 하면 왕궁의 보물들이 모여 있는 왕궁 창고를 먼저 떠올렸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태현이 머뭇거리자 다미아노 2세가 말했다.

“지금 떠오르는 게 없다면 조금 고민하고 나서 말해도 되겠지. 짐은 인색하지 않으니 말이야. 그대를 위해 준비한 자리가 있으니 마음껏 즐기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태현은 일단 고개를 숙였다. 지금 당장은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한다?’

* * *

“태현 님, 저한테…….”

“안 돼.”

듣지도 않고 거절하는 태현!

에드안은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태현 님, 듣지도 않으셨잖습니까!”

“들어가서 미친 짓 할 게 뻔하잖아. 안 돼.”

“안 들키면 됩니다. 안 들키면!”

“지금 널 시체로 만들면 안 들키지 않을까?”

태현의 말에 에드안이 움찔했다.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창고 안으로 잘못 들어갔다가는 그냥 안 끝난다.”

“창고? 창고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어째서지?”

“후후, 태현 님.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왕국 창고는 태현 님과 만난 그날 밤에 이미 한 번 확인을 했었습니다.”

“아, 그래?”

“후후, 태현 님. 이제 제 실력을 좀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왜 주먹을?”

퍽!

“들어갔다 왔으면 말을 했어야지, 이 자식이 진짜!”

“허, 헉! 말한 줄 알았는데……!”

갈수록 태현의 혈압을 올리는 에드안이었다.

신나게 에드안을 두들겨 팬 다음 태현은 에드안을 일으켜 세웠다.

“창고에 들어갔다 왔다고?”

“예…….”

“안에는 없었고?”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권능이 있을 만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들어가려고 한 건데?”

왕궁 창고에 권능이 없다는 건 좀 많이 놀라웠다. 그렇다면 있을 만한 곳이 어디지?

“국왕의 거처에 들어가 보려고 했습니다.”

“하하. 그렇군. 하긴, 왕궁 창고가 아니라면 국왕이 자는 곳이 가장 깊숙한 곳이긴 하겠네. 그렇지?”

“후후, 그렇습니다.”

빡!

“커헉!”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

* * *

“용광로 준비 끝났습니다!”

“좋아. 불을 최대로 지펴라. 내가 직접 반지를 만들겠다.”

스티븐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망치를 들자 길드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

“스티븐 님이 직접!”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충성충성충성!”

떠들썩한 <풍림화산> 길드원들을, 다른 대장장이들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뭉쳐서 움직이는 게 풍림화산 길드만 하는 짓은 아니었다.

실제로 다른 곳에서도 몇몇 무리가 보였다. 길드원들끼리 모인 것이다.

그러나 역시 풍림화산 길드에 비교하면 규모에서 밀렸다.

빠르게 임시 용광로까지 설치해서 아이템을 만들려는 풍림화산 길드의 박력에, 다른 대장장이들은 벌써부터 위축되고 있었다.

“재수 없네. 진짜…….”

“돈이면 다야? 사람 많으면 다야?”

“야, 우리도 같이 만들자.”

풍림화산 길드 때문에 전혀 협력할 생각이 없던 사람들끼리도 뭉치기 시작했다.

중소길드여도 뭉치다 보면 규모에서 꽤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뭉친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근데 뭐 만드냐?”

“우리 길드는 창 잘 만드니까 창 만들자.”

“뭐? 우리가 자신 있는 건 방패인데?”

“왜 우리가 너희한테 맞춰줘야 하는데? 너희 인원도 적잖아.”

“두 명 차이잖아. 이 자식아! 너 레벨 몇이야?!”

언제나 게임에서 말싸움을 할 때면 전통적으로 나오는 대사. ‘너 레벨 몇이야!’ 그 대사가 나오는 순간 진흙탕 싸움은 예정되어 있었다.

“8, 84다!”

“헛소리하지 마! 네가 그 레벨이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네가 84면 난 94다!”

“너야말로 거짓말하지 마!”

추한 싸움의 절정!

서로 레벨까지 속여 가며 다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김지산은 박성찬에게 말했다.

“우리는 저렇게 싸울 일이 없으니 참 좋지 않냐?”

“좋긴 한데…… 저 길드 이길 수 있냐가 문제 아냐?”

박성찬은 풍림화산 길드를 가리켰다. 일사불란하게 길드원들이 움직이며 온갖 광석과 보석을 녹이고 있었다.

화려한 대장장이 플레이의 교과서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지산은 태연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김태산 그 사람이라면 우리가 이긴 건 정해진 거나 다름없어.”

“아니…… 그 사람이 그렇게 쉽게 우리 편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은데…….”

둘이 대화하는 사이, 태현이 시종과 함께 뜰 앞에 나타났다.

“어, 저거…….”

“누구지?”

못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김태산 아냐?”

“저 사람이 김태산인가?”

“맞는 거 같은데. 저 복면에 사납게 생긴 눈까지.”

어디선가 들리는 외모 욕에 태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옆에 있던 시종이 태현에게 속삭였다.

“모험가님, 복면을 꼭 쓰셔야 합니까?”

“내가 좀 쑥스러움을 타서 말이야.”

“……?”

시종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왕 앞도 아닌데 복면을 쓰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둘이 대화하는 사이 대장장이들은 뜰 앞에 나타난 태현을 보고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왜 김태산이 여기 있는 거지?”

“잠깐, 김태산이 카테란드 퀘스트 진행하지 않았나?”

“설마? 설마 브랑송이 아니라 김태산이 받는 거라고?”

“NPC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심사관이야? 말도 안 돼!”

뜰이 시끄러워지자 시종이 손을 흔들었다. 말할 테니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대장장이 여러분, 국왕 전하의 치하를 받을 모험가분께서 여러분이 일하는 걸 보러 오셨습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

“!!!”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플레이어가 심사를 맡다니. 모두가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브랑송이 심사를 맡는 게 아니라 김태산이 맡는 거면…….”

웅성웅성-

대장장이들 대부분은 ‘브랑송이 심사를 맡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아이템을 만들고 있었다.

당연히 브랑송은 공명정대하기로 소문난 NPC니, 좋은 아이템을 만들면 올바른 평가를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사를 하는 게 플레이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좋은 아이템도 좋은 아이템이지만, 결국 결정하는 건 사람!

까놓고 말해서 아이템을 좋은 걸 만들지 못해도 태현이 고르면 그게 우승작이 되는 것이다.

순간 자리에 있던 모두의 눈빛이 변했다.

“김태산 님!”

“저 아시죠! 저 카테란드 섬에도 갔었는데!”

태현에게 우르르 몰려드는 대장장이들!

병사들이 나서서 막을 정도로 열렬한 기세였다.

“우리 대화 좀 해봐요!”

“뭐가 필요해요! 힌트라도 좀!”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대장장이들이 소리를 질러대자 시종이 당황해서 외쳤다.

“저 사람들 밀어내!”

우르르-

병사들이 몰려와 대장장이들을 밀어냈다. 일단 자리의 분위기는 진정이 되었지만, 대장장이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좋은 아이템을 만드는 것보다 태현과 친해지는 게 먼저다!

굳이 어렵게 아이템을 안 만들어도 혓바닥 하나로 이 거대한 퀘스트에서 우승이 가능!

모두 다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그러나 태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얼마면 되냐니. 돈으로 매수라도 하려고?”

“…….”

방금 얼마면 되냐고 소리 지른 대장장이가 고개를 숙였다.

“돈은 필요 없어. 우승하고 싶으면 제대로 된 아이템을 만들어 와! 괜히 말 걸어서 우승할 생각은 하지도 말고!”

“그렇지! 바로 저게 옳은 태도야!”

풍림화산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스티븐이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드워프로 플레이하고 있는 그는 태현의 말에 신이 났다.

브랑송이 심사를 맡은 줄 알았다가 갑자기 바뀌어서 당황했었는데, 말하는 걸 보니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모두 다시 집중해라! 반지를 만든다!”

“예!”

태현은 풍림화산 길드가 반지를 만드는 걸 멀리서 쳐다보았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걸 만드는 것 같았다.

옆에 쌓인 광석 주괴에, 보석에……. 이번 퀘스트에서 왕한테 인정을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흐뭇한데?’

저 반지가 태현의 손으로 올 걸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좋은 옵션이 많이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태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태산 님, 태산 님!”

뒤를 보니 우정식과 김지산, 박성찬이 달려오고 있었다. 태현은 병사들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 오지 못하게 좀 해라.”

“예.”

셋은 희망에 가득 찬 얼굴로 태현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네? 아니에요. 김태산 님한테 말 좀 전해주세요! 저희 아는 사이에요!”

세 대장장이는 뭔가 오해가 있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병사는 고개를 저었다.

“다가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태현은 자기의 이익이 관련된 일에는 철저하게 냉정했다. 아예 부탁을 하지 못하도록 접근을 막아버리는 철저한 냉정함!

* * *

“여기는?”

“요리사들이 오늘 저녁에 있을 연회에 나올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곳입니다. 뛰어난 요리사들의 실력을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시종은 당당하게 말했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이 퀘스트를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요리사 레벨이 어느 정도 있어야 했으니까.

여기 모인 요리사들은 거의 다 실력이 있는 요리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데 왜 저러고 있는 거지?”

“……?”

태현은 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요리사들이 우울한 모습으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지금은 한창 요리를 하고 있어도 시간이 모자란 순간. 그런데 하라는 요리는 안 하고 저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시종은 당황했다.

“어…… 어째서?”

“내가 알아보고 오지.”

태현은 훌쩍 뛰어내려 요리사에게 다가갔다.

“왜 하라는 요리는 안 하고 이러고 있지?”

“요리를 하고 싶어도 지금…… 근데 누구십니까?”

요리사의 질문에 오히려 시종이 화를 냈다.

“이런 책임감 없는 사람들을 봤나! 요리를 먹을 귀한 분이 오셨는데 요리는 안 하고 이러고 있다니! 당장 요리를 하지 않으면 쫓아내겠다!”

“……!”

시종이 고함을 지르자 구석에서 멍 때리던 요리사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브랑송 제독이 먹는 게 아니었습니까?”

“브랑송 제독님도 자리에 참석하지만 오늘 요리는 이 모험가를 위한 요리다! 당장 요리를 하지 못할까!”

시종이 펄쩍펄쩍 뛰자 요리사들은 일단 솥 앞에는 섰다. 그러나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들은 요리를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요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재료가 없습니다!”

“맞아요. 저놈들이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는 전부 사버렸다고요.”

시종이 오자 요리사들은 단체로 항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레스토랑> 길드원들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요리에 집중할 뿐이었다. 식재료를 전부 싹 쓸어와서 재료는 아주 차고 넘쳤다.

요리사들의 말을 들은 시종이 물었다.

“재료가 없다고?”

“예!”

“저놈들의 재료를 가져와 주시거나 왕궁의 식재료를 좀 나눠 주세요!”

“맞아! 공정하게 경쟁하게 해줘요!”

요리사들은 강하게 항의하면서 희망을 가졌다. 태도를 보니 뭔가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시종은 요리사들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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