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102화
폼을 잡고 말하던 에드안은 놀라서 펄쩍 뛰었다.
“무, 무슨 소리냐. 누구를 말하는 거냐.”
“펠마스가 내 이야기를 안 했냐? 했을 텐데.”
“혹, 혹시 아키서스의…….”
“그래. 화신이다.”
“…….”
둘은 서로 빤히 쳐다보다가 동시에 복면을 벗었다. 에드안은 도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잘생긴 미중년이었다.
“후후. 죄송합니다, 태현 님. 제가 몰라 뵙고…….”
“그럴 수도 있지.”
태현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태현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뒤로 물러섰겠지만, 에드안은 불행하게도 아니었다.
“그런데 태현 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아키서스의 화신께서 이런 식으로 도둑질을 하는 건 조금 품위가 없는 짓 아닐까 싶…….”
“너 때문이잖아, 이 자식아!”
퍽!
“크헉!”
태현은 에드안의 명치에 정확하게 주먹을 박아넣었다. 거리를 좁힌 건 바로 이 일격을 위해서!
“권능을! 발견했으면! 말하고! 행동을! 해라!”
“컥! 억! 훅! 헉!”
병사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소리치며 패는 기막힌 솜씨!
왕궁 정원의 나무들 구석에서 이상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후…….”
태현은 손을 털고 구타를 멈췄다. 에드안은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몸을 세웠다.
“그, 제가, 왜 맞은 겁니까?”
“왕궁 같은 곳으로 들어갈 거라면 최소한 나한테 미리 말을 하고 갔어야 하는 거 아니냐? 들어갔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안 불 자신 있냐? 응?”
“안, 안 잡히면 되는데…….”
퍽!
“네 친구 펠마스도 도박할 때 그러더라. ‘따면 되잖아! 따면!’ 그래서 땄냐? 응? 이것들은 진짜 내 혈압을 단체로 올리네! 실패할 때를 생각하라고!”
태현이 에드안의 멱살을 잡고 너무 열을 올렸는지, 저 멀리서 병사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대화까지.
“무슨 일이야?”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쥐 같은 들짐승이겠지.”
“그런가?”
태현은 에드안의 멱살을 놓았다. 그리고 손짓했다. 에드안은 그 손짓을 바로 이해했다.
튀자는 신호!
* * *
둘은 용케 손님들이 머무르는 건물까지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둘 다 뛰어난 은신 스킬을 갖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태현은 다시 에드안의 멱살을 잡았다.
“컥, 커헉. 태현 님. 진정하고 이것 좀 놓아주시면…….”
“지금 너 때문에 내 일이 꼬이게 생겼는데 진정하게 생겼냐? 응? 앞으로 멋대로 일 벌이기만 해봐라. 내가 직접 숨통을 끊어서 입을 다물게 해줄 테니까!”
“아닙니다, 태현 님! 잡혀도 절대로 불지 않았을 겁니다!”
“헛소리하고 있네! 너희들이 잘도 그러겠다!”
이미 펠마스 때문에 태현은 이 집단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린 상태였다.
믿었다가는 뒤통수 맞기 딱 좋은 무리들!
그게 바로 태현이 생각하는 이들의 이미지였다.
“후…….”
태현은 에드안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일단 최악은 피한 셈이었다.
에드안을 지금 만났으니 크게 사고는 못 칠 것 아닌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에드안은 태현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태현은 의자 위에 털썩 앉고서 물었다.
“그래서, 권능은 어디 있는데?”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
태현이 노려보자 에드안이 허겁지겁 설명을 덧붙였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왕궁의 경비가 너무 두터웠단 말입니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며칠이 걸렸는지 아십니까?”
“그래, 잘했다. 걸리지 않아서 참 다행이군.”
“후후. 감사합니다. 잠깐, 그런데 태현 님은 여기를 어떻게?”
“난 손님으로 왔지.”
“……!”
에드안은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제가 이 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던 거 아닙니까?”
“누가 먼저 멋대로 행동하라고 했냐? 응?”
“크윽……!”
“알고 있는 거나 다 말해봐. 갖고 나갈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하니까.”
“얻은 정보는 별것 아닙니다, 태현 님. 고문서를 뒤지다가 발견한 ‘아키서스의 권능 중 하나는 아탈리 왕국의 왕궁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라는 문구가 다입니다.”
정말로 별거 아닌 정보였다. 왕궁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니.
왕궁 가장 깊숙한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거기에 정확히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얻으려면 목숨을 걸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
‘설마 갔는데 이미 사라졌다, 이런 건 아니겠지?’
에드안은 태현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태현 님, 정말 저를 한 번만 믿어주시면 제가 아무도 모르게 잘 뒤져서…….”
“아, 시끄럽고.”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을 잘라 버리는 냉정함!
태현은 이 에드안을 믿고 목숨을 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만약 잘못됐다가는 바로 왕에게 찍혀서 도망 다니게 생겼는데!
“멋대로 행동하다가 걸리면 내가 널 잡아서 국왕한테 바칠 거다.”
“어, 어떻게 그런 짓을……!”
“그건 내가 너희들한테 할 소리다, 이것들아. 나를 모신다는 놈들이 내 명령은 듣지도 않아? 응?”
태현은 에드안을 발로 걷어차며 그렇게 말했다. 에드안은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오해십니다. 저는 그저 태현 님의 고민을 덜어드리려고…….”
“고맙다. 덕분에 고민이 두 배가 됐으니까. 그보다 양팔이 잘려서 은퇴했다면서? 어떻게 도둑질을 하려는 거야?”
에드안은 태현의 질문에 양팔을 들어 보였다. 장갑을 벗자 강철로 된 손이 나타났다.
“후후. 고블린이 만든 기계공학 팔입니다.”
“그래, 거참 대단하다.”
[뛰어난 기계공학 작품을 관찰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상승합니다.]
[기계공학 스킬 레벨이 낮아 ‘고블린의 강철 도적 의수’ 제작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에드안이 어떻게 다시 도적질을 하러 여기 왔는지는 알 것 같았다.
고블린이 만든 기계공학 팔이라니.
‘배우는 건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건 왕궁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일!
“어쨌든 에드안, 더 이상의 행동은 금지다. 멋대로 행동하지 마. 바로 복장을 갈아입고 내 수행원 중 하나로 행동해. 펠마스도 같이 왔으니까.”
“예? 펠마스가 같이 왔다고요?”
에드안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펠마스 그 친구가 올 친구가 아닌데?”
“왜 올 친구가 아니라는 거지?”
“그야 펠마스는 제가 잡히면 같이 엮이기 싫어할 놈이니…….”
우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사이!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에드안을 보며 말했다.
“그래, 오기 싫어하더라. 그래서 억지로 데려왔지.”
“후후, 잘하셨습니다.”
“자꾸 후후거리지 말고 펠마스랑 같이 행동해. 쓸데없는 짓 하면 바로 시체로 만들어서 왕한테 바칠 테니까.”
“태현 님도 농담을 참 살벌하게…….”
“농담 같냐?”
태현이 살벌하게 말하자 에드안이 입을 다물었다.
* * *
‘밤에 나와서 다행이지…….’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만약 에드안을 만나지 못했다면, 에드안은 알아서 왕궁을 뒤지다 높은 확률로 잡혔을 것이다.
물론 에드안은 안 잡혔을 거라고 박박 우겨댔지만 태현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일이 두 배로 꼬였겠지!’
그렇지만 에드안을 붙잡은 덕분에 일단 왕궁에서 일을 보다가 갑자기 ‘저놈 잡아라!’ 같은 일은 당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그게 어디인가.
왕을 만나는 도중에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중요했다.
“태현 님, 어디 피곤하십니까?”
브랑송과 함께 따라온 브랑송의 친위대 병사 중 한 명이 태현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태현이 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니까 하는 말이었다.
“아, 아니. 괜찮다.”
태현은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펠마스 옆에 에드안이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일행이 한 명 늘어난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 * *
“이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몰라, 나도. 왜 나한테 물어봐? 우리가 친한 사이야?”
우정식은 김지산에게 짜증을 냈다. 지금 그들은 왕궁 앞의 뜰에 모여 있었다.
온 이유는 하나.
왕궁에서 나온 퀘스트 때문!
왕국에서 일정 조건을 만족시킨 플레이어들은 전부 다 왕궁에서 날아온 퀘스트를 받았다.
-왕궁에 와서 뛰어난 솜씨를 보여라. 국왕 폐하를 만족시킬 경우 매우 큰 보상이 있으리라.
누구든 참여할 수밖에 없는 퀘스트였다. 이 셋은 카테란드 섬 퀘스트를 깬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로 참가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같이 온 것이다. 왕궁 앞의 호화로운 뜰에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우글거렸다.
우정식이 짜증을 내자 박성찬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요. 이번에 게시판에 올라온 것도 봤는데.”
“……!”
우정식은 움찔했다. 게시판에 올라온 거라면……!
김지산이 옆에서 실실 웃었다. 김지산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정식이 단검이 합성이라고 우기다가 개망신을 당했다는 것을!
“너, 너희들……!”
“그거 주인 나타났어요?”
“시끄러워!”
악연도 인연이라고, 셋은 아옹다옹하면서도 계속 같이 다니고 있었다.
카테란드 섬에서 같이 노가다를 한 인연도 인연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행운의 대장장이 스킬 때문이었다.
이 특이하면서도 괴상한 스킬을 받은 셋은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다.
-이 스킬을 어떻게 써먹냐?
-행운을 올려야 하는데, 올리는 방법 있나?
-그 인간이 그냥 쓰레기 스킬 준 거 아니야?
-아니, 그럴 리는 없죠. 만드는 거 봤잖아요. 그 정도 퀄리티 나오는 게 쉬울 리가 없는데!
-아, 알겠어. 왜 화를 내?
고민하는 와중에 의외로 친해진 셋이었다.
대장장이들이 웅성거리는 동안, 왕궁에서 일하는 시종 한 명이 나타났다.
시종이라고 해도 플레이어한테는 하늘처럼 높아 보이는 신분!
국왕의 시종이니 당연했다.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길가에 보이는 강아지도 그 신분이 달라지는 것이다.
시종은 멋들어진 비단옷을 잘 차려입고 헛기침을 한 다음 말을 시작했다.
“자리에 모인 대장장이들이여, 이 자리에 모인 것을 환영한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왜냐하면…….”
길게 시작되는 연설문!
처음에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던 대장장이들도 5분 정도가 넘어가자 다들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지루한 연설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종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설을 이어갔다.
“그래서! 짐은 결정했도다. 이 경사스러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한 아이템을 바치도록!”
“?!”
시종의 말에 졸던 플레이어들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뭐? 뭔 아이템?”
“방금 뭐라고 한 거야?”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지만 시종은 계속해서 말했다.
“축하를 받는 사람이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아이템을 만든 대장장이가 우승자가 될 것이다. 모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기를 바란다. 이상!”
그리고 뜨는 퀘스트창!
<대장장이 직업 퀘스트-국왕을 만족시켜라>
아탈리 왕국의 국왕은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다. 오랫동안 왕국 해군을 괴롭혀 왔던 카테란드 해적단이 사라진 것이다. 국왕은 이 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카테란드 해적단을 섬멸하는 데 가장 공이 큰 사람에게 바칠 영광스러운 아이템을 만들어라. 만약 국왕의 마음에 든다면 막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보상: ??, ??, ??, ??, ??
모두의 눈빛이 변했다.
“이건…….”
“절대 질 수 없군!”
한 명만 우승하는 퀘스트!
자리에 모인 대장장이들이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 그 축하를 받는 사람이 누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