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8화
‘정말 경험치를 나눠 줘야 하나?’
안 그래도 높은 행운 스탯 때문에 필요한 경험치 양이 많았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레벨을 팍팍 올릴 때에도 태현은 느릿하게 올려야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경험치를 나눈다면?
레벨 업은 더 느려질 게 분명했다.
‘어쩐다…….’
레벨 업을 조금 늦게 하더라도 골드 드래곤 용용이의 힘을 돌려놓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레벨 업을 하는 게 나을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주인이여, 주인이여.
“왜.”
-저기 적이다.
“용용아, 내가 말했지? 일단 길가에 있다고 해서 적인지 아닌지는 모르니까 제대로 보고 생각한 다음 판단하라고.”
-으음, 주인이여. 그런 것인가?
“그래, 그런 거다.”
-그러면 저기서 주인에게 활을 겨누고 마법을 쏘려고 하고 있지만, 확실하게 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래, 그런 거…… 뭐?”
태현은 용용이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몇 명의 플레이어가 보였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 * *
<레드존> 길드 마스터 케인은 태현과 싸우고 나서 그야말로 눈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태현과 싸워서 죽은 건 엄청나게 쪽팔리는 일이었지만, 그건 그래도 견딜 만했다.
그 때문에 사망 페널티를 받았지만, 견딜 만했다. PK를 한 상태라 추가로 페널티를 더 받았지만, 그것도 견딜 만했다.
그러나 길드원들이 우르르 요새로 잡혀가고, 거기서 갇혀서 나오지 못하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레드존 길드는 끝났다!
-길마도 죽고 길드원들 절반이 넘게 갇혀 있다는데? 지금이 기회야!
-어디 한번 저번처럼 세금 뜯어봐라!
원래 사람들에게 거칠게 굴었던 만큼, 빈틈을 보이는 순간 바로 역습이 돌아왔다.
그동안 쌓은 악명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레드존 길드에게 길을 지나가다가 강제로 돈을 뜯겼던 플레이어, 레드존 길드가 약해진 틈을 타 공격해서 명성을 얻으려는 플레이어, 단순히 레드존 길드가 약해졌으니 ‘지금 털면 저항 못 하겠지?’ 하고 덤벼드는 플레이어들까지.
온갖 종류의 플레이어가 이를 드러내고 덤벼들었다.
레드존 길드원들 중에서는 PK를 한 길드원이 많아 공격받았을 때 피해가 더 크게 나왔다.
한번 기세가 꺾이면 오래가지 못하는 법.
원래 레드존 길드는 무리해서 영역을 확장한 길드였다. 이렇게 역습을 받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괜히 같이 길드원으로 엮여서 피해를 보느니 길드를 나가겠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결국에는 초창기 멤버 몇 명을 제외하고는 공중분해!
케인은 피눈물을 삼키며 길드원 몇 명과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기껏 점령한 오그던 요새도 버려야 했는데, 그 주변에는 워낙 그와 길드원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반드시 복수를 해주겠다!
박박 이를 갈았지만 복수할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잃어버린 것부터 복구하기로 했다.
케인부터 시작해서 다른 길드원들도 모두 한두 번씩 죽어서 사망 페널티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죠?
-아탈리 왕국으로 가자.
-!
케인의 말에 길드원들은 케인을 쳐다보았다.
-왜 아탈리 왕국으로 가는 겁니까?
-생각해 봐라. 이번에 카테란드 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아탈리 왕국으로 가는 플레이어가 꽤 많다.
커다란 퀘스트가 있는 곳에 플레이어들은 모이는 법.
실제로 카테란드 섬의 퀘스트 영상이 게시판에 올라오고 나서 아탈리 왕국을 찾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많이 늘어 있었다.
‘뭐 재밌는 일 없나’, ‘여기 있으면 퀘스트를 건질 수 있을지도 몰라’ 같은 속셈으로 온 플레이어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돌아다녀도 정체를 들키지는 않겠지. 거리도 꽤 되니까.
일단 레드존 길드원들은 정체를 숨기는 게 우선!
오그던 요새 주변에서는 얼굴만 봐도 수십 명이 PK를 하겠다고 달려왔다.
-과연!
-좋은 생각입니다!
길드원들은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역시 그들의 길마는 이럴 때에는 머리가 잘 굴러갔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회가 많지 않겠냐?
케인은 사악하게 웃었다.
본질적으로 레드존 길드는 PK나 약탈을 좋아하는 길드!
먼저 공격을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는 방식의 길드가 있다면, 레드존은 먼저 선공을 가해서 이익을 보려는 방식의 길드였다.
-아탈리 왕국에서 돌아다니는 플레이어가 많으면, 그만큼 우리가 노리기도 쉬워지지.
-그런 방법이……!
새로 온 플레이어가 많으니, 필드에서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도 많을 것이고, 그들을 좀 털어도 별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후후, 나만 믿어라.
-믿습니다!
여기까지 남은 길드원들은 케인을 믿었다. 케인의 인품이나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PK를 하려면 역시 케인이 있어야지.’
남 괴롭히는 대회를 열면 가볍게 1등을 할 사람이 바로 케인이었다.
이미 PK로 뺏는 플레이에 중독된 그들은 새로 시작할 생각이 없었다.
잃어버린 건?
다시 뺏으면 된다.
그리고 다시 뺏으려면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탈리 왕국으로 왔다.
일은 생각했던 대로 풀려갔다.
아탈리 왕국에 새로 온 플레이어가 많았고, 그들은 의심을 잘 하지 않았다.
-퀘스트를 같이 깨자고 파티로 초대한 다음 협박해서 돈 뜯어내기.
-필드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파티를 기습해서 아이템 뜯기.
다양한 약탈 방법으로 그들은 아이템을 벌어 나갔다.
“피와 분노의 돌격!”
콰콰쾅!
또 한 파티를 쓰러뜨리고, 케인과 길드원들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떠냐, 봤냐?”
“어, 어…….”
“뭐? 어라니. 나한테 한 소리야?”
케인은 길드원 중 한 명이 감탄은 못 할망정 ‘어, 어’거리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 어, 저거…….”
“??”
케인은 그제야 길드원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다.
“!!!!!”
저 멀리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가 멀었지만 케인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케인과 레드존 길드원들은 입을 모아 동시에 외쳤다.
“죽여!!!!”
* * *
슈우우우욱-
“피해봐라!”
길드원 중 마법사가 준비를 끝내고 주문을 쓰자, 이글거리는 화염의 덩어리가 태현을 향해 날아왔다.
-쫓아가는 강력한 화염구!
태현이 용용이와 떠드는 덕분에 주문을 완성시키는 데 시간이 충분했다.
마법사는 화염구를 쏘아내고 태현에게 가운뎃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만큼 원한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피해봐라! 이 자식아! 피해보라고!”
이렇게 소리를 치는 이유가 있었다. 이건 단순한 화염구가 아닌, 유도 기능이 달린 화염구였던 것이다.
화염 계열 마법사인 그가 비싼 돈을 주고 마법서를 사서 익힌 마법!
태현은 저 멀리서 화염구가 빠르게 날아오는 걸 보고 용용이를 툭툭 쳤다.
“피할 수 있냐?”
파르르륵-
-물론이다, 주인.
용용이는 빠르게 날아올랐다. 파닥거리는 날개로 허공에서 맴돌았다. 태현은 그걸 보고 롱소드를 빼 들었다.
“하나, 둘, 셋…….”
노리는 건 타이밍.
1/10초도 빠르거나 느리면 안 됐다. 그랬다가는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다.
인간의 영역이 아닌 초인의 영역!
그러나 괴물 수준의 태현의 반사 신경과 강력한 행운 스탯이 태현이 스킬을 발동하는 걸 도왔다.
-반격의 원!
[스킬 발동에 성공합니다. 검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반격의 원 스킬이 상승합니다. 반격의 원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현재 레벨 3.]
파파파파파팍!
태현의 주변에 작은 회오리 같은 게 생기며, 동시에 날아오는 화염구를 감싸고 돌았다.
그러자 빠르게 날아오던 화염구가 반대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뭐야?!?!?!”
당연히 레드존 길드원들은 기겁해서 펄쩍 뛰었다.
왜 잘 날아가던 마법이?!
“야!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이 마법사를 노려보며 설명하라고 압박하자 마법사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마, 마법 되돌리기? 아니, 저 자식 마법사 아니잖아요?!”
뛰어난 마법사는 날아오는 마법도 다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아주 강력한 스킬이었지만, 그건 뛰어난 마법사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현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막기나 해! 날아오잖아!”
“이, 이이익!”
-즉석 마나 방패!
마법사는 이를 악물고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동시에 스크롤을 썼다.
-마나 강화!
마법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스크롤이었다. 아까웠지만 저 화염구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안 쓸 수가 없었다.
콰콰콰쾅!
“후…….”
다행히 막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화염구는 마나로 만들어진 방패 위에서 터져 나갔다.
-그림자 잠수!
“?!”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이언 바디’ 마법이 깨졌습니다. 앞으로 들어오는 대미지는 HP로 받습니다.]
[‘출혈’ 상태에 빠졌습니다. 상태를 회복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HP가 감소합니다.]
[‘실명’ 상태에 빠졌습니다. 상태를 회복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뜨는 메시지창들.
마법사는 HP가 4/5가 넘게 깎였다는 걸 알고 경악했다.
지금 그는 ‘아이언 바디’ 마법을 걸고 있는 상태였다. 받는 대미지를 MP로 대신 받는 마법.
그런데 일격에 이 마법이 깨지고 HP가 이만큼 닳아버린 것이다.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저 멀리 있었는데?!’
마법사는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태현은 놓아주지 않았다. 바로 따라붙어서 추가타를 날렸다.
-강격!
“아, 안 돼!”
다른 길드원들이 도와주지도 못할 정도로 재빠른 연속 공격!
[HP가 0으로 내려가 사망합니다.]
마법사는 순식간에 회색이 되어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아이템이 툭 떨어졌다.
잦은 PK 행위 때문에 페널티를 받은 것이다.
“이, 이 자식……!”
“감히 메이너를!”
“죽여 버리겠다!”
길드원들은 이를 갈며 태현을 노려보았다. 저 멀리 있던 놈이 거리를 좁힌 게 놀라웠지만, 절대로 그냥 놔줄 생각은 없었다.
특히 케인은 이를 빠드득 갈며 태현을 붉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저 마법사 이름이 메이너였나? 저렇게 죽은 건 내 잘못이 아니야.”
태현의 말에 길드원들은 무슨 소린가 싶었다.
“무슨 헛소리냐?”
“너희가 제대로 안 지켰으니까 죽은 거지. 제대로 지켰으면 이렇게 쉽게 죽었겠어?”
“…….”
사람의 혈압을 제대로 올리는 도발!
사실 레드존 길드원들이 막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태현은 화염구를 반격의 원으로 돌려보낸 다음 상대가 당황하자 바로 외투를 입고 스킬인 <그림자 잠수>로 거리를 좁힌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절대 반응할 수 없는 공격.
그러나 태현은 당당했다.
‘난 반응할 수 있는데?’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는 오만함!
물론 그 오만함을 가만히 듣고 있을 레드존 길드원들이 아니었다.
“이 자식이 진짜!”
분통이 터졌는지 길드원 중 한 명이 단검 두 자루를 들고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파파파파파팍!
공격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전사가 한 번 휘두를 시간에 한 서너 번은 찌른 것 같았다.
‘어디 한번 피해봐라! 피하면 그다음 스킬이 들어간다!’
도적 직업 플레이어는 태현을 보며 그렇게 속으로 외쳤다.
이 연속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뒤로 물러서면 바로 다음 스킬이 들어갔다.
대미지도 몇 배로 더 쌓여서 들어가는, 일종의 함정!
그러나 태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맞으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
[치명타가 터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