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7화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아이템 스탯!
태현은 멈추지 않고 신이 나서 강화석들을 거덜 냈다.
강화가 끝나고 나자 그 많던 강화석이 한 줌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태현은 뿌듯하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맥크레니와 손을 잡길 잘했어.’
창고에서 필요한 건 박박 긁어 나온 기분이었다.
강화석이나 광석도 광석이었지만, 포션이나 붕대, 주문서들도 갖고 나온 것이다.
너무 많이 갖고 나와서 맥크레니와의 사이가 안 좋아지고 앞으로 갖고 나오기 힘들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태현 님!”
“어, 루포.”
“대체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맥크레니 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상인인 사람이 마음도 좁군. 이 정도 투자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얼굴에 흑철로 만든 방패를 깐 것 같은 뻔뻔함!
“……어쨌든 이제 슬슬 출발하셔야 합니다.”
“좋아, 가 볼까.”
태현은 저 멀리 건물 구석에서 어슬렁거리며 이쪽을 쳐다보는 펠마스를 발견했다.
태현은 펠마스를 향해 손짓하며 불렀다.
“펠마스!”
“……!”
태현이 부르자 펠마스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왕궁으로 떠나야 하는데, 같이 갈 생각 있나?”
태현이 말을 꺼낸 이유는 간단했다. 저번 카테란드 섬 때 펠마스를 두고 갔더니 펠마스가 계속 징징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펠마스는 머뭇거렸다.
루포는 왜 머뭇거리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태현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설마 왕궁에 가는 게 겁이 나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
“에라이!”
퍽!
“아이고!”
태현이 펠마스를 걷어차자 루포가 놀라서 물었다.
“태현 님,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리고 펠마스, 왜 왕궁에 가는 걸 두려워하는 거냐? 왕궁에 뭐가 있다고?”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태현이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자 펠마스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말했다.
“아닙니다, 태현 님! 저도 가겠습니다!”
“가기 싫은 사람 억지로 데려가기 싫다.”
“꼭 가게 해주세요! 이번에도 빠지면 영원히 빠지게 될 것 같단 말입니다!”
“눈치가 좋군.”
펠마스가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태현이 여기서 그냥 두고 갈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빠졌다가는 나중에 분명히 보복을 당할 게 분명!
* * *
“오랜만에 보는군! 잘 지냈나?”
제독, 브랑송은 태현을 발견하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태현은 고개를 공손하게 숙였다.
지금은 브랑송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
왕궁에 가서 꼭 문제가 생기리라는 법은 없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수 있는 건 든든한 친구들밖에 없었다.
“하하.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독님.”
결정을 내리자 태현은 바로 태도를 바꿨다. 필요한 게 있으면 태현은 언제든지 비굴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브랑송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태현의 겉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런데 왕궁에 가기엔 옷이 조금 격식 없군.”
브랑송은 태현의 겉모습을 지적했다.
코트에 갑옷, 거기에다가 복면까지. 딱 봐도 자유분방한 모험가의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브랑송은 깔끔한 제복을 멋들어지게 입은 상태!
“복면은 벗게나. 전하 앞에서 복면을 쓰고 있으면 무례하게 여겨질 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태현은 순순히 복면을 벗었다. 어차피 이 주변에는 브랑송과 병사들, 펠마스와 루포 정도밖에 없었다.
다들 NPC니 태현의 정체가 들킬 일이 없었다.
태현이 복면을 벗자 브랑송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그리고 옷은…… 흠, 남는 게 있을 텐데. 기다려 보게.”
브랑송이 손짓하자 부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아탈리 귀족의 제복:
내구력 99/99, 방어력 10, 마법 방어력 100.
귀족 관련 NPC 대할 때 친밀도 상승.
아탈리 왕국의 귀족들이 즐겨 입는 제복이다.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제복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받게.”
태현은 잘 만들어진 제복을 훑어보았다. 방어구로써는 형편없었지만 옵션이 재밌었다.
‘귀족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건가?’
갑자기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
브랑송은 태현이 머릿속으로 사악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옷이 잘 맞는다는 것에 기뻐했다.
“옷이 잘 맞는군! 전하를 뵙고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입고 다니게.”
“뭐…… 알겠습니다.”
갑옷은 제복 안에 입을 수 있었다. 워낙 잘 만든 갑옷인 데다가 적당한 사이즈가 그것을 충분히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코트까지 걸치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이 정도만 해도 만약의 상황에서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
어차피 태현은 공격을 맞으면서 싸우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태현이 복장을 갈아입고 돌아오자 옆에 있던 루포가 소곤거렸다.
“태현 님, 아예 다른 사람 같습니다.”
“시꺼.”
펠마스도 소곤거렸다.
“태현 님, 정말 다른 사람 같습니다.”
“죽고 싶냐?”
“왜 저만?!”
* * *
‘이야, 진짜 편한데?’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몰았다. 물론 전속력으로 모는 건 아니었다. 일행은 전체적으로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행은 정말로 편했다. 브랑송 밑에 레벨 높은 병사들이 우글거렸던 것이다.
뭐 귀찮은 일만 생기면 바로 병사들이 나와서 해결!
-길이 좀 질척거리는군.
-저희들이 가서 메꾸겠습니다!
-다리가 좀 흔들려 보이는데.
-저희들이 가서 다시 붙잡겠습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비싼 돈 주고 부하들을 고용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편안한 여행.
실제로 지휘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 중에서는 용병이나 병사들을 고용해 부하로 만드는 사람이 꽤 있었다.
혼자서도 파티 플레이가 가능하고, 이런 귀찮은 일들도 다 지시가 가능했던 것이다.
덕분에 태현과 루포, 펠마스는 그저 말만 천천히 몰면 됐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저기, 내가 요리를 좀 도와주려는데…….
-절대 안 됩니다!
-손님으로 오셨는데 무슨 요립니까!
결사의 각오로 반대하는 병사들!
‘이 많은 인원을 상대로 요리를 하면 경험치가 얼만데…….’
태현은 입맛만 다시고 물러셔야 했다. 이미 카테란드 섬에서 깨달은 것이다.
이 병사들은 한번 각오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덕분에 아무것도 못 하고 말만 계속 몰아야 했다.
[승마 스킬이 상승합니다.]
[승마 스킬이 레벨 4가 되었습니다. 빠르게 몰아도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심심하다, 심심해.’
태현은 판타지 온라인 2를 하면서 가만히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다른 플레이어들 모두가 태현처럼 목숨을 거는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먹을 수 없는 요리를 먹고,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을 보면서 느긋하게 게임을 즐겼다.
각자 즐기는 방식이 다른 것!
그러나 태현에게 이렇게 느긋하게 즐기는 건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태현은 근질거리는 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과 산. 그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 몬스터들이 날아다니고…… 산속에서는 온갖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말 그대로 판타지 세계!
이런 걸 보니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너무 조급했던 건가? 그래, 이렇게 차분하게 즐기는 것도 게임의 재미 중 하나…….’
-주인이여, 주인이여.
용용이가 잠에서 깨어나서 태현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저 멀리 적이 있다.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에 있는 병사들은 레벨이 낮지 않았다.
궁수 직업을 가진 병사들도 있었고, 그런 병사들은 엄청나게 넓은 시야를 갖고 있었다.
그런 병사들이 발견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정말로?”
-저 산 너머에서 싸우고 있다.
“넌 그걸 어떻게 아는데?”
-주인이여, 내가 누군가. 위대한 골드 드래…….
“네 소개는 됐고. 어떻게 알았냐고.”
용용이는 자기 자랑을 못 하게 되자 시무룩해져서 대답했다.
-소리로 들었다.
“소리로? 대단한데?”
태현은 말의 머리를 돌려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게 했다. 그러고는 채찍을 휘둘렀다.
“이랴!”
“……?!”
덕분에 자리에 있던 다른 병사들은 깜짝 놀라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 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태현 님! 같이 가셔야 합니다!”
“하하! 안 들려!”
태현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무시하고 말을 앞으로 몰았다.
이러는 이유는 하나였다.
‘나도 좀 뭐 하자!’
지금 저 멀리에 적이 나타났다는 걸 병사들한테 말한다면?
-태현 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태현은 내버려 두고 자기들끼리 싸울 게 분명했다.
태현은 검술 스킬도 못 올리고 마법 스킬도 못 올리고 기타 다른 스킬도…… 하여튼 아무것도 올리지 못하고 끝날 게 확실!
그렇다면 차라리 먼저 달려가서 싸우는 게 나았다. 병사들이 도우러 오더라도 상황은 이미 끝났을 테니까.
방금까지 ‘차분하게 즐기는 것도 게임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 * *
병사들이 뒤에서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따라오려는 걸 귀로 들으며 태현은 말을 몰았다.
그러고는 용용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용용아.”
-왜 그러나, 주인이여.
“저 산 너머에 누가 있다는 걸 소리로 알았다고 했잖아.”
-그렇다, 주인이여.
“그런데 그게 적인 줄은 어떻게 안 거야?”
시력이 좋은 병사들도 못 볼 정도로 멀리 있었다면 딱히 매복도 뭣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적인 걸 알아차리다니.
설마 골드 드래곤한테는 태현도 모르는 신통한 능력이 있는 것인가?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용용이를 쳐다보았다.
‘역시 골드 드래곤인가? 약해져도 능력이…….’
-무슨 소린가? 세상에 있는 건 내 부하 아니면 다 적이다.
“…….”
말을 몰던 태현은 순간 넘어질 뻔했다. 태현은 삐끗한 자세를 놀라운 운동 신경으로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주인이여, 말을 모는 것에 집중해라! 떨어지겠다!
“누구 때문인데!”
태현은 용용이에게 설명했다. 세상은 부하와 적으로 나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소리를 들으면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파악하라고.
그러나 용용이는 완고했다.
골드 드래곤다운 자부심!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주인이여, 내 부하가 아니면 다 적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판단하지 말고 일단 나한테 누군지 보고하라고.”
-아니다. 내 부하가 아니면 다 적…….
태현은 용용이를 잡아서 허공으로 대롱대롱 늘어뜨렸다. 말에서 달리는 도중이었다.
-무슨 짓인가?!
“보고할 거냐, 안 보고할 거냐?”
-!
용용이는 지능이 매우 높았다. 골드 드래곤다운 안목과 지능으로 용용이는 바로 알아차렸다.
이 인간은 정말 떨어뜨릴 인간이라는 것을!
-명령에 따르는 게 나의 기쁨이다. 주인이여. 하하.
“아주 좋아.”
태현은 용용이를 다시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누가 보면 펫인 줄 알 것이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귀여운 펫처럼 생긴 이 생명체가 섬을 통째로 날려 버린 골드 드래곤이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너는 언제 돌아오냐?”
-드래곤 브레스 때문에 너무 힘을 많이 썼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정확한 시간을 묻는 거야. 아니면 방법이라도.”
-으음, 시간은 나도 잘 모르겠다. 워낙 힘이 천천히 모여서…… 힘을 빠르게 모으는 방법은 간단하다.
“……?”
-강한 적을 쓰러뜨려서 그 힘을 흡수하면 된다.
“……설마 경험치 나눠달라는 건 아니지?”
그렇게 물었지만, 태현은 느끼고 있었다.
‘젠장!’
회복시키려면 경험치를 나눠 줘야 한다니. 이 무슨 딜레마인가.
갑자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