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4화
그러나 드워프 주와 우는 이상한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허겁지겁 달려갔다.
태현이 마음이라도 바꾸면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여러 금속을 이용한 제노마 갑옷> 제작을 시작합니다.]
[제작 시간이 긴 아이템입니다. 도중에 방해를 받거나 멈출 경우 페널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가진 대장장이가 있습니다. 제작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높은 행운으로 제작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신성으로 제작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높은 행운으로 인한 패시브 스킬인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 그리고 화신이라는 직업 특성으로 인한 패시브 스킬 <신성 대장장이 기술>.
그 두 가지가 따로 영향을 주고 있었다.
“태현 님. 준비되셨습니까?”
“시작합니다?”
“시작해!”
드워프 주와 우는 빠르게 움직였다. 아까 울먹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화르륵-
마법으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오른 용광로가 소리를 내며 들어간 흑철을 녹이기 시작했다.
드워프 둘은 옆에서 풀무질을 하기 시작했다. 태현은 그걸 보고 재빨리 말했다.
“내가 도와주지.”
“예? 이건 저희가 할 수 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하기에는 힘든 스킬인데요.”
두 드워프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태현은 바로 말했다.
“그래? 그러면 응원이라도 할 겸 가서 요리나 할까?”
“……알려드리겠습니다!”
<드워프 식 풀무질>
화염의 세기를 바람으로 키웁니다. 스킬 레벨이 높을 시 화염의 방향과 모양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대장장이들한테는 꼭 필요한 스킬 중 하나였다. 무언가를 녹이거나 할 때 쏠쏠한 스킬!
태현은 배우자마자 드워프들 옆에 서서 풀무질을 하기 시작했다.
[희귀한 금속을 다룹니다. <드워프 식 풀무질>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빠르게 쭉쭉 오르는 스킬들. 희귀한 금속을 다루다 보니 덤으로 나오는 결과였다.
‘그래. 이런 걸 노렸어!’
애초에 저 두 드워프는 태현보다 대장장이 기술이 좋았다. 그런데도 태현이 직접 나서서 같이하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스킬의 성장!
다른 사람이나 NPC가 스킬이 좋다고 맡기기만 한다면 영원히 성장하지 못했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하는 플레이어가 훨씬 더 많았다. 사실 그게 당연한 일이었고.
전사가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익혀서 뭐하겠는가? 도적이 요리 스킬을 익혀봤자 시간만 낭비 아닌가?
그러나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쓸모없는 스킬은 없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 쓸모가 없어서 인기가 없었던 스킬들을 조합해서 랭커들을 쓰러뜨린 태현이었다.
무엇이든지 익혀놓으면 쓸모가 나오게 마련이었다.
그러는 사이 용광로 안에서 뭉개진 갑옷이 녹아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흑철이 녹아서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진행 상황: 3%]
드워프들은 땀을 뻘뻘 흘렸다. 태현도 마찬가지였다. 가상현실 게임이니만큼 이런 부분에서는 리얼했다.
‘더워!’
게임이라고 얕보면 안 됐다. 그냥 스킬을 쓴다고 써지는 게 아니었다. 쓰는 동안 힘든 건 다 플레이어가 견뎌야 했다.
[흑철이 녹아서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진행 상황: 5%]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우! 진은 갖고 와서 녹여!”
“알겠어, 주!”
드워프 우는 빠르게 달려서 진은 덩어리를 갖고 와서 녹이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금속을 섞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중급입니다. 완전히 배우지 못합니다.]
‘……!’
두 드워프 대장장이는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갖고 있었다.
흑철이나 진은 같이 귀한 금속을 섞을 수 있는 것도 그 스킬 덕분이었다.
태현의 대장장이 스킬은 아직 중급. 덕분에 저걸 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 배울 수 없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태현은 정신을 집중하고 흑철을 계속해서 녹였다.
* * *
[흑철이 녹아서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진행 상황: 99%]
[흑철이 전부 녹았습니다.]
“지금이다!”
“갖고 와서 모양 만들어!”
두 드워프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흑철과 진은, 그리고 상단 창고에 있던 다른 광석 몇 개를 섞은 결과물은…….
아름다웠다.
은은한 빛을 내는 짙은 검은색!
태현이 감상할 틈도 주지 않고 두 드워프들은 급히 녹인 금속을 거푸집에 들이붓더니 모양을 잡기 시작했다.
“냉각! 냉각!”
“빨리 해! 모양 망가지겠다!”
치이이이익-
두 드워프들이 손을 휘두르자 겉으로만 봐도 엄청나게 시려 보이는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법의 일종이었다.
‘대장장이 스킬인가?’
“내가 배울 수 있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중급이라 배우지 못합니다.]
‘쩝.’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고급이어야만 쓸 수 있는 스킬들이 많았다.
지금 두 드워프가 쓰고 있는 스킬도 그중 하나였다. 손 주변에 엄청나게 시린 냉기를 만드는 스킬.
전투용으로는 쓰기 힘들었지만 아이템을 만들 때에는 매우 요긴했다.
땅, 땅, 땅, 땅-
드워프들은 망치질을 하며 태현에게 손짓했다.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흑철과 진은, 그리고 기타 금속들이 섞인 걸 두드려서 모양을 잡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잘못 두드리면 모양이 망가집니다!”
“알고 있어.”
두 드워프의 호들갑에 태현은 <신의 예지>를 켰다. 망치로 두드려도 되는 곳이 평소보다 엄청나게 좁았다.
‘물건이 물건이라 그런가?’
드워프들이 온갖 스킬을 써서 도와줬는데도 불구하고 갑옷을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모양을 잡은 다음 계속해서 망치를 두드려야 하는 상황.
태현은 고대의 망치를 들고 솜씨 좋게 갑옷을 두드려 나갔다. 옆에서 일을 하던 드워프들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솜씨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땀방울을 흘리며 망치를 두드리던 도중, 한 메시지 창이 떴다.
[<여러 금속을 이용한 제노마 갑옷>이 완성되었습니다. 아이템 등급: 영웅]
[뛰어난 완성도로 인해 제작자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
영웅 등급의 아이템. 게다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특권까지 나왔다. 태현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름은 <철벽>으로 한다.
[중갑옷 <철벽>이 완성되었습니다. 아이템 등급: 영웅]
<철벽>
내구력 990/990, 방어력 300, 마법 방어력 275.
스킬 ‘물리력 흡수’ 사용 가능, 스킬 ‘마력 흡수’ 사용 가능, 착용 시 체력 25% 상승, HP 회복력 10% 상승, 마법 저항력 10% 상승, 신성 3% 상승. 무게 없음.
레벨 제한 150. 힘 제한 300. 체력 제한 300.
이미 고수의 솜씨를 갖고 있는 두 드워프 대장장이와, 뛰어난 젊은 대장장이가 합작해서 만들어 낸 걸작 갑옷이다.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철벽 그 자체인 갑옷.
다만 사용된 금속의 출처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레벨 제한 때문에 착용하지 못합니다.]
[스탯 제한 때문에 착용하지 못합니다.]
[제작자 권한으로 입을 수 있습니다. 입을 시 성능에 페널티가 붙습니다.]
어지럽게 뜨는 메시지 창. 태현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대장장이 플레이어의 기쁨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대작을 만드는 것이었다.
남들은 파티를 맺고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쾌감을 느낄 때, 대장장이는 혼자 망치를 두드리면서 이런 아이템을 만들면서 쾌감을 느낀다!
판타지 온라인 2에서 이 정도 되는 아이템을 만든 건 처음이었기에 더욱 기뻤다.
‘감동이 몰려오려고 하는데.’
전신갑옷이었다면 기사 같은 탱커 직업이 전재산을 주더라도 사려고 했을 걸작이었다.
태현도 원래라면 레벨 제한, 스탯 제한 때문에 착용하지 못했겠지만…….
‘제작자 권한 덕분에 입을 수는 있지.’
제작 스킬을 갖고 직접 만든 사람의 특권. 그건 레벨이나 스탯 제한에 걸려도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성능은 그만큼 내려가지만, 이 아이템은 그래도 입을 가치가 있었다.
태현은 바로 <철벽>을 착용했다.
‘입은 것 같지도 않군.’
중갑옷이라고 하는데도 별로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겉으로 봐도 별로 갑옷의 티가 나지 않았다. 거의 두꺼운 천옷처럼 보일 정도!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태현이 갑옷을 착용하자 두 드워프가 눈빛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태현의 만족!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좋아.”
“만세!”
“해냈다!”
두 드워프들이 신나서 서로 박수를 치고 있는 동안, 태현은 주변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무기를 만들어볼까?”
“…….”
드워프 주와 우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하하. 도망치다니. 너무하잖아.”
태현은 양팔로 드워프 둘을 껴안고 작게 속삭였다. 두 드워프는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아무리 빨리 도망쳐도 태현보다는 빠를 수 없었다.
“도, 도망친 거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냥 달리고 싶어져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자고.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두 드워프는 축 쳐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철벽>을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쳐 버린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집요했다.
‘왕궁 가기 전에 전부 다 뽑아야 해!’
시간제한이 있는 만큼 태현은 필사적이었다.
물론 지금 바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아이템을 만들 때에는 체력도 중요했다. 지금 바로 일을 시작하게 하면 페널티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럴 때는?
‘역시 요리지.’
체력 회복에 좋은 요리를 빠르게 만들며, 태현은 동시에 아이템 리스트를 확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번 쓰지 않는 건 팔고 가야겠어.’
판타지 온라인 1 때에는 돈을 신경 쓰지 않고 했지만, 판타지 온라인 2는 달랐다.
가족들에게(특히 아버지에게) 보여줄 만한 게 있어야 했다.
지금 당장 랭커나, 프로게이머로 갈 수는 없었다.
‘이름을 까면 되긴 했지만…….’
김태현이라는 이름을 까는 순간 죽이러 달려올 놈들이 최소 수백 명!
아직은 더 참아야 했다.
그렇다면 역시 돈이었다. 판타지 온라인 2에서 짭짤한 수입을 만들어내는 플레이어들은 많았다. 태현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 않았을 뿐.
‘뭘 팔까. 흠. 불타는 강철의 중갑, 불타는 강철의 도끼. 이 두 개는 팔아야겠군.’
PK에서 저 두 아이템을 뺏긴 김병국은 아직도 저 두 아이템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가 알게 된다면 피눈물을 흘릴 소식!
‘그리고 또 뭐가 있지? 오크 두개골 분쇄기는 갖고 있어야겠다.’
타이럼에서 받은 보상, <오크 두개골 분쇄기>. 지금 쓸 수는 없었지만 팔고 싶지는 않았다.
영웅 등급의 아이템인데다가 언젠가 퀘스트와 관련될 것 같았던 것이다.
‘게다가 오크하고 원한도 있고.’
갑자기 오크 대족장이 아들의 원수를 갚겠다고 찾아올 수도 있는 법이었다.
‘아, 단검은 팔아야겠다.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하고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 이 두 개 다 팔아야지.’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은 카테란드 섬에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창고에서 닥치는 대로 주운 아이템이었고 꽤 좋은 아이템이었지만, 태현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도적들이나 좋아할 아이템.
그리고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은 한때 사이트를 크게 논란으로 만들었던 아이템이었다.
-저거 합성이라니까!
-합성 아니야! 너무 깔끔하잖아!
몇 명은 내기까지 걸었던 바로 그 아이템!
태현이 물어보고 난 다음 별생각 없이 넘어가서 잊혔던 바로 그 아이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