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1화
결국 그 길드는 태현 하나 잡으려다가 왕국군한테 찍히게 되었다. 무기를 뽑자 왕국군은 덤벼들었고, 길드원들도 얼떨결에 싸우게 되었고…….
결국 왕국 안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병사들이 몰려올 정도로 적대도를 쌓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그 길드는 왕국 영토 내에 쌓아놨던 재산이나 건물도 다 날려 버리고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참 편했지.’
당한 사람들은 아직도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갈고 있을 정도의 원한!
그러나 태현은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당하기 싫으면 덤비지를 말았어야지.’
어찌되었든 간에 판타지 온라인에서 왕국이나 교단 같은 거대한 세력과는 싸워서 좋을 게 없었다.
한 번 찍히면 정말 계속 귀찮게 일을 꼬아놨으니까.
그런데 지금, 펠마스는 에드안이 아탈리 왕국의 수도로 갔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닐 거야. 모라 시 같은 대도시는 엄청나게 넓잖아. 왕궁 말고 다른 곳에 권능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태현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펠마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펠마스는 시선을 피했다.
“설마……!”
“아, 아니. 정말 안 걸릴 겁니다!”
“털 곳이 없어서 왕궁에 들어가냐!”
태현은 펠마스의 멱살을 잡았다. 펠마스는 캑캑대며 말했다.
“태, 태현 님.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뭔데. 이 자식아?”
“에드안은 잡혀도 태현 님의 이름을 안 불 겁니다.”
“퍽이나 안 불겠다. 너희들을 어떻게 믿어?”
태현은 펠마스의 멱살을 놓았다.
‘젠장. 괜히 불안해지네.’
가장 좋은 건 에드안이 왕궁에 들어가서 권능에 대한 비밀을 갖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좋은 건 에드안이 권능에 대한 비밀은 찾지 못하지만, 잡히지는 않고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일단 잡히지는 않았으니 태현의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을 것 아닌가.
제일 최악인 건 에드안이 잡힌 다음 태현의 이름을 부는 것이었다.
‘어차피 얼굴 숨기고 다니는데다가 이름도 가짜로 하면 들키지는 않겠지?’
태현은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크게 걱정해도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복면을 쓰고 있는데다가 가명도 쓸 수 있었으니까.
문제가 되는 건 맥크레니 상단이었다. 태현이야 일이 꼬이면 튀면 됐지만 맥크레니 상단은 그게 안 됐다.
괜히 잘못 걸렸다가는 상단째로 공중분해!
‘그래도 거기까지는 안 가겠지. 아직 잡힌 것도 아니고…….’
태현은 일단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에드안이 어떻게 되는지 듣고, 그다음에 결정을 하면 되겠군.’
에드안이 갖고 나오면 쉽게 퀘스트를 깰 수 있었고, 에드안이 잡히면 퀘스트가 어려워졌다.
기다렸다가 어떻게 할 지 결정하면 됐다.
“좋아. 에드안이 돌아오면 바로 나를 부르라고.”
“도와주러 가실 겁니까?”
“수도로? 아니.”
태현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만약 에드안이 잡혔을 때 여기 있으면 태현이 안 엮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만 에드안이 사고를 내고 잡혔을 때 수도에 있는다면?
엮일 가능성은 90% 이상!
‘기사들부터 시작해서 왕국군이 다 쫓아오는 건 사양이지!’
“나는 여기서 수련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네가 가서 돕든가.”
“하하. 저는 에드안을 믿습니다. 알아서 잘할 겁니다.”
이심전심!
둘 다 수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통했다.
* * *
대화가 끝나자 맥크레니와 루포가 들어왔다. 맥크레니는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다음 권능의 위치는 들었나?”
“들었는데 비밀이야.”
“뭐?! 어째서지!”
“펠마스가 비밀을 지켜달라고 하도 간절하게 부탁해서 말이야. 나는 명예를 중요시하게 여기거든. 어쩔 수 없이 맹세를 했지.”
옆에서 듣던 펠마스는 뜨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가 언제?
‘맥크레니한테 말할 필요는 없지.’
맥크레니의 상단은 정말 좋은 아군이었다. 태현처럼 길드도 없는 사람은 맥크레니가 이끄는 상단처럼 도와줄 수 있는 세력이 매우 쓸모가 있었다.
그렇지만 맥크레니한테 모든 걸 다 말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정보를 숨기고 필요할 때만 말해줘야 잘 이용할 수 있었다.
‘원래 필요한 게 있어야 더 안달이 나게 마련이지.’
실제로 맥크레니는 태현이 말해주지 않자 매우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태현은 흔들리지 않고 안 된다고 말했다. 맥크레니는 결국 포기했다.
“어쩔 수 없군. 그렇다면 권능은 어떻게 할 거지? 혼자서 가져올 수 있나?”
“조금 기다릴 생각이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려고. 그동안은 여기서 내 스킬을 올릴 생각이야. 아. 혹시 대장간 쓸 수 있는 곳 있어? 좋은 용광로가 있으면 좋겠는데.”
대장장이 스킬로 좋은 아이템을 만들려면 대장장이의 실력도 중요했지만, 만드는 장비도 중요했다.
모루나 망치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장비였다. 그에 비해 용광로 같은 건 설치를 해야 하는 장비였다.
들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한 번 설치하면 대장장이 스킬을 쓸 때 엄청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대장장이를 키우는 길드라면 땅을 사서 용광로를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로.
당연히 태현은 그런 땅이 없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맥크레니 상단은 있을 테니까!
“용광로야 있지만…….”
“잘 됐네. 그리고 도시에서 뛰어난 대장장이도 좀 불러봐. 내가 만들 게 좀 있어서.”
“…….”
맥크레니는 태현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는 사람이 왜 대장장이처럼 뭘 만들려고 하는 거지?
“대장장이를 부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데…… 우리 상단에 소속된 대장장이도 있으니까. 혹시 저번처럼 돌아다니면서 온갖 잡다한 기술 스킬을 배울 생각인가?”
“안 되나?”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시간이 많지는 않을 걸.”
맥크레니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이 많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
“왜 시간이 많지 않지?”
“설마 정말로 모르고 있나? 브랑송이 말했을 텐데.”
그 순간 뜨는 퀘스트창!
<아탈리 왕국의 왕궁으로 가 국왕을 접견하라>
아탈리 왕국 3함대 제독인 브랑송은 카테란드 섬의 해적들을 소탕한 당신의 능력에 감탄했다. 섬이 던전으로 바뀐 상황에서 직접 나서서 처리한 용기는 브랑송을 감동시켰다. 브랑송은 다른 사람의 업적을 뺏으려고 하지 않는 명예로운 귀족이다. 그는 당신의 업적을 아탈리 왕국의 국왕에게 그대로 전했다.
이제 국왕은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 한다. 한시라도 빨리 아탈리 왕국의 수도로 가 국왕을 접견하라.
늦게 도착할 시 국왕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보상: ?
‘……!’
태현의 표정이 변했다.
이 퀘스트는…….
‘아니, 왜 하필 지금이야!?’
국왕 접견 퀘스트는 아주 좋은 퀘스트였다. 게다가 이건 나쁜 이유로 부르는 게 아니라, 좋은 이유로 부르는 것 아닌가.
카테란드 섬의 해적들을 소탕했으니 아주 커다란 보상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에드안이었다.
에드안이 지금 수도로 도둑질을 하러 떠난 상황. 태현이 수도의 왕궁으로 갔다가 겹치기라도 한다면…….
오싹!
태현은 갑자기 등골에서 불안감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미룰 수는 없나?”
“뭐? 그걸 말이라고 하나? 국왕 전하의 청을 무시하다니. 목이 두 개라도 되나?”
맥크레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태현을 질책했다. 그리고 메시지 창이 바로 떴다.
[퀘스트를 거부할 경우 페널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이유를 대지 못할 경우 국왕이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
태현은 아파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빠지는 건 무리 같은데.’
이건 딱 봐도 빠지는 순간 어마어마하게 페널티가 날아오는 퀘스트였다.
그렇다면 왕궁에 가기는 해야 한다는 건데…….
“펠마스. 에드안하고 연락할 수 있나?”
“아니요. 태현 님. 에드안은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연락을 다 끊고 집중하죠. 정말 프로답지 않습니까? 어, 어, 왜 주먹을…….”
태현은 펠마스를 한 대 때리려다가 참았다. 달라지는 게 없었으니까.
“수도로는 언제 출발해야 하지?”
“3일 안에는 출발해야 편하지 않겠나? 그 이후로 출발하면 따로 가야 할 테니까.”
“편하다니?”
“브랑송 제독도 수도로 올라가니까 같이 가면 편하겠지.”
브랑송 제독 정도 되는 사람이 수도로 올라가면 당연히 혼자 가지 않았다.
밑의 병사들을 우르르 데리고 갈 게 분명했다. 같이 가면 확실히 편하긴 했다.
몬스터나 산적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쾌적한 여행!
“좋아. 같이 가도록 하지.”
“뭘 그렇게 각오를 한 얼굴로 말하는 거야? 이게 뭐가 어렵다고?”
맥크레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의 사정을 모르니까 하는 소리였다.
“후…… 갔다 와서 이야기해 주지.”
“……?”
* * *
왕궁은 왕궁.
일은 일이었다.
찜찜한 마음을 추스르고, 태현은 맥크레니가 소개해 준 장소로 걸어갔다.
상단 소속의 용광로가 있는 곳이었다.
“대단한데?”
태현은 휘파람을 불었다. 저 멀리서도 불꽃이 튀며 이글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열기였다.
상단의 용광로는 거대한 크기로 아주 단단하게 지어져 있었다. 딱 봐도 대장장이 기술을 쓸 때 어마어마한 보너스가 있을 것 같았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접근도 못 하겠군.’
원래 대도시에 있는 이런 용광로는 아무나 쓸 수가 없었다.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이 쓰려고 해도 친밀도를 쌓거나, 돈을 내거나, 명성을 쌓는 것 같은 여러 방법을 써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 이 친구는 주라고 합니다.”
“응?”
태현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완고해 보이는 드워프 두 명이 망치를 들고 서 있었다.
태현은 둘을 가리키며 물었다.
“대장장이?”
“예. 맞습니다.”
“저희를 부르셨다고요?”
드워프 대장장이는 겉만 봐도 신뢰가 갔다. 뭔가 뛰어난 대장장이일 것 같은 기분!
“그래. 불렀지.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야.”
“무언가 만드실 게 필요하다면.”
“그냥 저희한테 말만 하면 만들어드리는데 말입니다.”
“롱소드나.”
“갑옷이나.”
둘이 한마디씩 번갈아가면서 하자 태현은 궁금해서 물었다.
“한 명이 다 말하면 안 되는 건가?”
“…….”
“안 되는 거였나 보군. 미안해. 어쨌든 롱소드든 갑옷이든 좋은데, 나는 내가 직접 만드는 게 좋아서 말이야. 도와줄 수 있겠지?”
우와 주는 태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그 눈빛은 ‘네가 대장장이 기술을 쓸 줄 안다고?’ 같은 표정이었다.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이럴 때 가장 좋은 건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야. 여기 앉아봐라. 내가 딱 보여줄 테니까.”
“……?”
* * *
“아니!”
“말도 안 돼!”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이런 걸 만들다니!”
태현은 손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드워프는 홀린 표정으로 태현이 만든 방패를 훑어보고 있었다.
“이제 됐겠지? 응?”
[뛰어난 대장장이 기술로 대장장이 우의 친밀도가 증가합니다. 대장장이 우가 당신을 존중합니다.]
[뛰어난 대장장이 기술로 대장장이 주의 친밀도가 증가합니다. 대장장이 주가 당신을 존중합니다.]
“흐, 흐흠. 저희와 같이 일할 만한 것 같습니다.”
우와 주는 쑥스러운 듯이 코밑을 쓱 손가락으로 닦으며 그렇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바로 일에 들어가 볼까?”
“……!”
태현은 가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탈탈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걸 본 우와 주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이, 이게 다 뭡니까?”
“여기 나온 아이템들하고, 상단에서 쓸 수 있는 아이템들을 써서 내가 쓸 수 있는 장비를 만들자고. 할 수 있겠지?”
드워프 우는 불타는 강철의 중갑과 불타는 강철의 도끼를 들고 ‘오오’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드워프 주는 오크 두개골 분쇄기를 들고 ‘이런 귀한 물건이’ 하고 좋아했다.
둘 다 태현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 상황!
“내 말 듣고 있냐?”
“헉!”
“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