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9화
‘그나저나 김태현은 여전히 판타지 온라인 1 때처럼 할 생각인가?’
최명성은 게시판에 달린 댓글들을 훑어보았다. 정체를 묻거나, 감탄하거나, 드래곤을 어떻게 부리냐고 묻거나, 혹은 인기 게시글이라고 광고 댓글을 달거나…….
-드래곤 부리는 방법 아시는 분? 5골드 드림.
-나 저 사람 정체 알 거 같다. 궁금한 사람 쪽지 보내셈. 1골드만 받고 말해줌. 선불임.
-♚♚최강 길드 <파워 워리어>♚♚가입 시$$ 전원 10 골드☜☜잘 만들어진 롱소드 100%증정※♜ 최강 길드 <파워 워리어> ♜펫 증정¥
온갖 사람들이 몰린 혼돈의 장소였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몇몇 눈에 보이는 댓글들이 있었다.
-‘진군’ 길드 마스터입니다. 저희 길드 이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저희 길드에 초대할 생각이 있습니다. 마음 있으시다면 쪽지 보내주십시오.
‘진군’ 길드는 꽤나 괜찮은 길드였다. 수천 개는 가볍게 넘는 길드 중에서 돋보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경쟁 상황에서는 퀘스트 몇 개만 실패해도 바로 꺾여 나갔다.
‘레드존’ 길드가 바로 그랬다. 한때 오그던 요새를 점령하고 빠르게 돈을 모으며 세력을 키우던 레드존 길드는 요즘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당연히 태현 때문이었다.
태현과 맞붙은 상황에서 길마가 죽고 길드원들은 잡혀서 페널티를 받자, 다른 사람들이 기회다 싶어서 그들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원한을 많이 쌓았기에 노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레드존 길드는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한 번 밀리기 시작하자 쭉쭉 밀려나갔다.
길드원들도 희망이 없어 보이는 길드는 탈퇴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고, 거의 반 토막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사망 이후 돌아온 길마는 태현을 반드시 쫓아서 죽이겠다고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는 상황!
‘진군 길드는 꽤 괜찮지.’
그러나 최명성은 태현이 진군 길드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진군 길드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태현의 성격을 알고 있어서였다.
원래 어딘가에 들어가서 같이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고독한 늑대 같은 플레이어였다. 그래서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더 특별했던 것이었고. 그런 태현이 이제 와서 대형 길드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 먼저 출발한 사람들은 길드의 힘으로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따라가기 힘들다고 대형 길드에 들어가는 건 태현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최명성은 다른 댓글들을 확인해 보았다. 길드 제안이 많았지만 다른 제안도 많았다.
-이번에 새로 판타지 온라인 2 전문 프로게이머 팀을 만들 생각입니다. 젊고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을 모아 한 번 강력한 팀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관심이 있으시다면 연락 주십시오.
-혹시 방송에 관심이 있으시면 제 방송에 출연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BJ ‘플라이’이고 마법사 직업으로 다양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봐주시고 나오고 싶으시면 쪽지 주세요.
“이야. 개인 방송부터 시작해서…… 방송국도?”
-MBS에서 진행하고 있는 <판타지 온라인 화제의 인물들>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PD입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쪽지 보내주십시오.
개인 방송을 하는 BJ들이 좀 화제가 된다 싶은 플레이어들을 초대하는 건 별로 놀랍지 않았다.
언제나 화제가 되는 것에 주목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게임 전문 방송을 하는 방송국에서 이렇게 빠르게 나설 줄은 몰랐다.
MBS는 게임 전문 방송을 하고 있는 방송국 중 하나로, 탄탄한 규모와 질 좋은 방송으로 유명한 방송국이었다.
최명성도 MBS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다.
판타지 온라인 2를 하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MBS에 출연할 기회를 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당연히 MBS에서는 먼저 섭외할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플레이어들이 자기가 어디서 뭘 했는지 그럴듯하게 소개하는 영상을 잘 설명해서 보냈으니까.
그런데 MBS 쪽 PD가 이렇게 나선 것이다. 최명성 입장에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엉덩이 무거운 사람들이 신기하군. 경쟁 때문에 초조해진 건가?’
SBC 방송사가 최근 게임 전문 방송에 진출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SBC 방송사는 게임 전문 방송을 하지는 않았지만 덩치가 크고 유명한 방송사로, MBS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SBC 쪽에서 막대한 돈을 퍼부어가면서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섭외하고 있다는 소문이 많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밀리는 상황. MBS 입장에서는 대응을 할 필요가 있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는 방송에 나가는 걸 피했었지. 2에서도 안 하려나?’
최명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화면 안의 태현을 쳐다보았다. 앞으로 태현이 어떻게 움직일지 정말로 궁금했다.
* * *
물론 태현은 지금 영상에 그런 리플들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게시판에 안 들어가면 리플도 못 보는 것!
BJ나 길드 마스터나 PD나 태현이 직접 올린 글이 아닌데도 저기에 리플을 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 외에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당사자가 보게 되면 연락하겠지’ 같은 생각으로!
그러나 태현은 생각보다 더 게시판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 할 일이 많은데 밖에 나가서 사이트 게시판을 볼 여유는 없었다.
“저기요. 잠깐만요.”
“……?”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태현을 부른 건 주현영이었다.
주현영은 다가오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번에 여러모로 고마웠어요.”
“혼자 받은 것도 아닌데 뭘. 저기 있는 사람 다 받은 퀘스트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저는 더 많이 받았으니까요. 제자로 등록하고 요리 스킬도 추가로 배웠잖아요? 감사 인사는 따로 드리고 싶었어요.”
태현은 저 멀리서 떠드는 대장장이들을 쳐다보았다. 대장장이들은 태현을 힐끗 힐끗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태현의 칭찬을 사람들에게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주현영은 정말 한 점의 다른 생각도 없이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정말 비교된다!’
물론 태현은 저 대장장이들처럼 속이 꼬여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더 저 대장장이들이 상대하기 쉬웠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이익을 쫓아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이용해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것도 쉬웠던 것이다.
그에 비해 주현영처럼 올곧은 사람은 뭔가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어딘가 눈부신 느낌!
“그래. 감사 인사는 잘 받았어.”
“네. 아. 저는 아마 여기서 계속 요리 스킬을 올릴 것 같은데, 혹시 제 손이라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받은 것만큼은 갚고 싶으니까요.”
거의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양심 수준! 태현은 살짝 감동을 받은 걸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배운 스킬은 지금은 별로 쓰지 못하지만 좀 더 숙련도를 쌓아서 언젠가는 쓸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그거 행운이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될 텐데.”
“그러면 행운을 올리면 되죠.”
간단한 대답!
뒤의 대장장이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어 할 대답이었다. 저들은 ‘행운을 올리고 싶어 한다고 올려지냐!’ 이런 대답을 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원래 하기도 전에 ‘저걸 어떻게 해요’라는 사람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어떻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방법이 보이는 법!
“맞는 말이야. 행운을 올리면 쓸 만할 테니까 잘해보라고. 그런데…….”
태현은 주현영에게 말하다가 잠시 멈칫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익숙한 느낌이지?’
태현이 말을 머뭇거리자 주현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괜히 쓸데없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우리 만난 적 있냐’라고 물어봤자 괜한 오해만 살 것 같았다.
* * *
“인기가 좋으시군요. 태현 님.”
“내가 원래 좀 그렇지.”
루포는 태현과 같이 걸어가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루포가 태현을 대하던 태도는 처음과 비교한다면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당연히 그 섬에서 보여준 능력 덕분이었다.
“사람들을 강제로 데리고 왔을 때만 해도 뒷감당을 어떻게 하실지 걱정이 됐었는데, 이렇게 하시다니.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와도 그 사람들을 다 휘어잡을 자신이 있으셨던 거군요?”
“아니, 그건 아닌데.”
“네? 그러면 뭡니까?”
“못 구하겠다 싶으면 버릴 생각이었지. 그래서 복면도 썼고. 어쩌다 보니 구할 수 있어서 구한 거야.”
“…….”
루포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라.”
문이 열리자, 호화로운 방 가운데에 앉아 있는 맥크레니가 보였다. 상단의 주인인 그녀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브랑송한테 이야기 들었네. 아주 대단한 활약을 했다고?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었나 보군.”
[맥크레니의 우호도가 올라갑니다.]
“벌써 이야기를 들었나?”
“당연하지. 왕국 해군이 움직였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나?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서 사람을 보냈네. 끝나자마자 바로 결과를 들었지. 그런데…… 그 드래곤은 어떻게 된 거지?”
태현은 가방에서 용용이를 꺼냈다. 용용이는 아주 잘 자고 있었다. 그걸 본 맥크레니는 감탄했다.
“아주 귀여운 펫이로군. 그런데 그건 왜 꺼낸 건가?”
“이게 드래곤인데.”
“……에이. 농담하지 말게.”
“아니, 이게 진짜로 드래곤인데.”
맥크레니의 눈동자가 떨렸다.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는 ‘과연 화신은 화신이구나! 드래곤을 부르다니!’ 라고 생각하며 무릎을 쳤었다.
그리고 그런 화신과 손을 잡은 그녀의 선택에 만족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아주 작은 새끼 드래곤이었다.
“그 섬을 날려 버렸다는 드래곤을 말하는 거잖나!”
“그 드래곤이 이 드래곤이야. 그러면 이 드래곤이 매번 원래 몸 상태로 있어야 했나? 이 건물 정도는 가볍게 무너지겠네.”
“아, 그런 이유에서 몸을 줄이고 있던 건가?”
“그건…….”
태현은 머리를 굴렸다. 굳이 드래곤이 힘을 잃어버렸다는 걸 다 말하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그냥 숨기자!’
원래 이런 사실은 끝까지 숨겨야 하는 법!
“그런 법이지.”
“대단해! 정말 대단해! 아무리 화신의 권능이라지만 드래곤을 부리다니.”
“완벽하게 부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기대 많이 하지 말라고. 제약이 많아.”
“나, 나도 무슨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네. 그저 드래곤이 있으니 신기하고 궁금해서…….”
둘이 떠드는 사이 용용이가 잠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파지직!
번개가 튀며 용용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태현은 용용이의 날개 뒤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허. 진정해.”
-주인이여. 여기는 어딘가? 저자는 누구고?
“도시인데. 저 사람은 상단의 주인이야.”
-욕심 가득한 눈빛이 싫다.
“뭐, 상인이니까. 그리고 네가 좀 희귀한 존재잖아.”
-내가?
태현은 용용이의 질문에 맥크레니를 가리켰다. 맥크레니는 욕심 가득한 얼굴로 손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혹시 그 드래곤 내가 좀 만져볼 수 있나?”
-절대 안 된다, 주인이여! 저 인간은 절대 안 된다!
-알고 있으니까 진정해.
용용이가 날뛰려고 하자 태현은 용용이를 급히 달랬다. 어차피 맥크레니한테 만지게 해줄 생각도 없었다.
괜히 만지게 했다가 용용이가 힘을 잃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어쩌겠는가!
“안 된다는데? 애초에 내가 이 드래곤을 부리는 게 아니라 서로 존중해 주는 거라서, 괜히 기분 나쁘게 했다가는 화를 낼 수도 있다고.”
“그,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맥크레니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