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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8화 (88/1,826)

§ 나는 될놈이다 88화

길드 이름이 <최강지존무쌍> 길드인 데다가, 길드원들이 전원 오크라서 착각하기 쉬웠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절대로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닳고 닳은 아저씨들이었다. 게다가 게임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리X지에서 패자로 군림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도적 진행하고 있는 놈은? 얼마나 깼냐?

-한 절반쯤 깬 거 같습니다.

-좋아. 모두 최소한 희귀 직업, 영웅 직업까지는 얻자고.

-길마님도 꼭 지금 노리는 거 얻으십시오.

-물론이지.

김태산은 채팅을 멈추고 기지개를 폈다.

지금 김태산이 노리고 있는 직업 퀘스트는 <고대 정령의 오크 지휘관>이었다.

무려 영웅 직업으로, 길드장에 어울리는 강력한 직업.

개인 전투력도 그렇고 지휘도 그렇고 얻기만 하면 몇 배로 강해질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길드원 중 한 명인 박원준은 <서리를 다루는 오크 주술사> 퀘스트를 깨고 있었다.

오크 주술사는 마법사와는 약간 다르지만 오크에게 특화된 마법을 쓰는 강력한 직업.

그리고 다른 길드원 서청식은 <전쟁 북의 오크 사제> 퀘스트를 깨고 있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오크에게 특화된 신성 마법을 쓰는 사제였다. 전투 상황에서 전투력을 몇 배나 올려주는 좋은 직업이었다.

직업 하나하나가 매우 귀한 정보라서 절대로 쉽게 얻지 못할 정보들.

김태산이 이런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단 한 가지 이유였다.

‘돈 주고 산 보람이 있군.’

현질!

판타지 온라인 2는 국제적으로 히트를 친 게임이었다. 미국에서부터 한국까지, 심지어는 남극 기지에서도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당연히 인기가 있으니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를 추구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수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꼭 방송을 하거나, 비싼 아이템을 팔아서 수입을 올리지 않아도 됐다.

정보도 돈이 됐다.

판타지 온라인 2 사이트를 보면 희귀한 퀘스트나 희귀한 정보를 팔겠다고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희귀 오크 직업 퀘스트 정보 팝니다. 이거 저 오크 아니라서 바로 깰 수 있어요. 제시.

김태산은 그걸 보고 쪽지를 보냈다.

-얼마면 되지?

-네? 아니 제시를 하라고요.

-얼마면 되냐고. 원하는 가격이 있을 거 아냐.

‘뭐야, 이 사람?’

패기 넘치는 쪽지에 판매자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답변은 했다.

일단 손님은 손님이니까!

-어, 백만 원 정도……?

‘너무 크게 잡았나?’

희귀 직업 퀘스트 정보만을 파는데 백만 원이라니. 좀 심했나 싶었다.

그러나 대답은 바로 돌아왔다.

-보냈다. 계좌 확인하고 너도 보내라.

‘……??’

처음에는 장난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계좌를 확인해 보니 들어와 있는 돈!

‘알고 보니 대박 고객이었잖아!’

-보냈습니다!

-혹시 다른 직업 정보도 있나?

‘……!’

그렇게 김태산은 주변 오크 직업들에 대한 정보를 깡그리 사들였다.

그리고 바로 길드원들을 시켜 각자 직업 퀘스트를 진행하기 시작!

무시무시한 진행력이었다.

* * *

김태산이 그러고 있는 사이, 태현은 다시 게임으로 들어가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선은 아탈리 왕국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제노마 시의 항구로 돌아왔다.

카테란드 섬의 해적들을 쓰러뜨리고, 고대 신의 망령을 쓰러뜨리는 데에 큰 공을 세웠기에 해군이 태현과 다른 플레이어들을 대하는 건 매우 극진했다.

이런 대접을 처음 받는 플레이어들은 감동해서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였다.

“와. NPC들이 이렇게 잘해주는 건 처음이야.”

“이 퀘스트하기 잘했어!”

다들 섬에서 했던 고생은 싹 잊어버리고 기뻐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지나간 기억들은 미화가 되게 마련이었다.

섬에서 해적들에게 잡혀 엄청나게 노가다를 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보상이 나왔으니까!

스킬도 많이 오르고, 경험치 보상은 물론이고, 상단에게는 돈 보상, 왕국 해군에게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 정도로 알뜰하게 보상이 나오는 퀘스트도 드물었다.

“김태산! 김태산!”

짝짝짝짝짝짝-

태현이 배에서 걸어 내리자 플레이어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모두 기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환호를 해주면 반응을 해주겠지?

태현의 성격이 까칠하고 무심한 건 알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퀘스트도 다 깼는데 훈훈하게 헤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도시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도 많으니 다시 다른 퀘스트를 할 수도 있고.

그러나 태현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복면을 써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죽 써서 다른 사람 좋은 일만 해준 기분인데.’

플레이어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태현도 자기 이름 부르면서 환호하는 사람들 있으면 그건 나름 좋게 여겼다.

그렇지만 저들이 부르는 이름은 김태산이었다. 아무리 잘나가도 다른 사람!

‘젠장…….’

게다가 가명을 말한 것도 태현이었다.

제일 짜증 나는 상황 중 하나가, 자기가 무덤을 파서 누구한테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

태현은 흩어지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루포와 함께 걸어가 버렸다.

그걸 본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그냥 가는 거야?”

“인사 정도는 해주고 가도 되잖아.”

“너무하는 거 아니야? 우리도 열심히 퀘스트했는데…….”

“저번에도 그랬지만 너무 성격 나쁜 거 아니야?”

뒤에서 들리는 불평을 들으며, 태현은 씩 웃었다. 잘하면 이미지가 뒤집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욕해라. 어차피 내 이름도 아니니까.’

그러나 그 불평은 곧 사라졌다. 몇 명이 나선 것이었다. 바로 대장장이들이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합니까? 우리가 이번 퀘스트 때문에 얼마나 이익을 봤는데! 물어봅시다. 이런 퀘스트 혼자서 받을 수 있어요?”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리고 이런 퀘스트 받을 때 돈 하나 안 받고 그냥 받는 사람 있어요? 다들 이런 퀘스트는 돈 받거나 길드원한테만 공유해 준다고요!”

김지산, 박성찬, 우정식 이 세 대장장이는 열정적으로 나섰다. 당연히 태현이 앞에 있어서였다.

이렇게 열심히 나서서 말해주면 태현도 좋아하겠지?

“그런 퀘스트를 공짜로 공유하고, 도중에 탈락하는 사람 한 명도 없이 끝까지 잘 끌고 왔는데! 사람이 감정 표현이 서투를 수도 있죠! 김태산 님이 저렇게 보여도 속이 깊은 사람이에요!”

‘어, 그런가?’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김지산의 외침에 박성찬과 우정식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현이 보라고 광고를 하는 건 좋았는데 뭔가 말하다 보니 스스로 잘 설득이 안 됐다.

태현은 속이 깊다기보다는…….

배배 꼬인 사람에 가까웠다.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직 태현이 저기에서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김지산이 열정적으로 말하자 사람들의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그들도 알고 있기는 했던 것이다. 이런 퀘스트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니, 방해나 하지 않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퀘스트를 혼자 독점하려고 방해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대형 길드 같은 경우는 좋은 퀘스트를 발견하면 외부인들을 협박하거나 힘으로 내보냈다.

억울해도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태현이 해준 일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정말 이타심 넘치는 일이었다.

“그건 그래.”

“이런 퀘스트 또 언제 받겠어.”

순식간에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게다가 김지산이 저렇게 말하니 ‘저렇게 까칠해 보여도 속이 깊나 보다’ 같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운이 좋으면 앞으로 더 퀘스트를 같이할 수도 있잖아?’

태현을 보니 상단과 꽤 친한 것 같았다. 이런 식의 퀘스트가 다시 나올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퀘스트에 다시 참가하려면?

태현과 사이가 좋은 게 좋았다. 욕하면서 태현이 내건 퀘스트에 참가할 수는 없었으니까.

여러 이유가 겹쳐서, 항구에 내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태현은 점점 칭찬, 아니 찬양의 대상이 되어갔다.

물론 이름은 김태산이었지만!

“그, 복면을 쓰고 다니는 것도 원래 사람 대할 때 쑥스러워서 그런 거라며? 원래 성격은 따뜻한데 말이야.”

“나 그거 알아. 츤데레라고 하는 거지?”

급기야 헛소문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태현은 저런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 * *

“낭중지추라더니. 역시 인물은 인물이야. 숨겨도 삐져나오네.”

주머니 속의 송곳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날카로워서 빠져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처럼 뛰어난 사람은 숨기려고 해도 눈에 띄게 되어 있었다.

태현도 마찬가지였다.

최명성 팀장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게시판을 훑어보았다. 태현은 방송을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 중에서 방송을 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 악명 높은 카테란드 섬에 가서 퀘스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름 관심을 받았었지만, 그건 그래도 적당한 편이었다.

카테란드 섬에 대해서 잘 아는 건 그 주변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었으니까.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은 <그 카테란드 섬에 드디어 도착! 퀘스트 진행 중!> 이런 방송 제목을 봐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드래곤이 나오고 섬이 뒤집히고 왕국 해군이 나오더니 대격변이 일어났다.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퀘스트가 끝나고 얼추 정리가 되자 방송과 영상에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서 시끌거렸다.

-섬에 나타난 거 진짜 드래곤임?

-구라 아냐? 조작 같은데.

-그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몇 명인데 조작이냐? 꼭 저렇게 못 믿는 놈들이 있다니까.

드래곤이 나타나서 섬 전체를 날려버리는 영상은 무려 게시판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2위로 밀린 건?

드디어 스미스가 전설 직업 퀘스트를 끝내고 ‘고대 제국의 백기사’로 전직한 영상이었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나온(물론 공개적으로) 전설 직업 영상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고대 제국의 백기사는 정말 전설 직업답게 강력했다. 기사는 안정적이고 탄탄한 직업. 그리고 고대 제국의 백기사는 기사 계열 직업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엄청난 맷집을 자랑했다.

중갑을 입고 말을 타고 수백이 넘는 적 사이로 돌격해서 닥치는 대로 싸우는데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강력함!

-크아아아악!

-저 괴물을 잡아!

적으로 모인 병사들은 절대 레벨이 낮지 않았지만 스미스 앞에서는 무력했다.

스킬의 연속 사용으로 병사들을 털어버린 스미스는 투구를 벗고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정말 그림으로 빚어 놓은 것 같은 귀공자!

사람들의 인기가 몰리는 건 당연했다. 스미스는 게다가 성격까지 좋았다.

능력 좋고 잘생겼고 성격 좋고…… 정말 부족한 거 하나 없는 완벽한 남자!

그런데 그 스미스의 전직 영상이 2등으로 밀린 것이다.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저 복면을 쓴 놈이 누구냐 추측하느라 바빴다.

-랭커 아냐? 복장 보니까 도적이나 마법사 같은데. 랭커 중에 누구 있지?

-지금 복면 쓰고 저기 있을 랭커가 누가 있더라. 김한수? 폴?

-근데 랭커 아닐 수도 있잖아.

누군가 합리적인 의심을 했지만, 그는 순식간에 구박을 받았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어떻게 저게 랭커가 아냐?

-네. 물론 랭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네 머릿속에서만요.^^

-카테란드 해적단 소굴로 들어가서 해적들 썰어버리고 해적 대장 목 날리고 골드 드래곤 불렀지만 랭커는 아니다. 와. 너무 그럴듯한데?

“…….”

최명성은 쯔쯔 하고 혀를 찼다. 누군가가 맞는 말을 하고 욕을 대차게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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