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5화
셋의 표정을 본 태현이 물었다.
“기쁘지?”
“예……?”
“설마 안 기쁜 건 아니지? 사람이 기껏 밥줄인 스킬까지 공개했는데…….”
태현의 목소리가 내려가자 셋은 기겁해서 고개를 저었다.
“기쁩니다! 스킬 설명 읽고 있었어요!”
“아이 신난다!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이라니! 이런 좋은 스킬이라니!”
“당장 가서 만들어보고 싶네요!”
살기 위한 필사적인 셋의 외침! 태현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스킬이지.”
그러나 셋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디가 좋은 스킬이냐!’
대장장이 기술 관련 스킬이면 힘이나 체력, 더 간다고 해도 민첩이나 지혜까지 아닌가.
행운이라니. 이제까지는 관심도 없었던 스탯이었다.
가끔 운 좋을 때 조금 올라가거나 퀘스트 보상으로 조금 올라가거나 아이템으로 조금 올라가는 정도의 스탯.
김지산과 박성찬은 조용하게 속삭였다.
‘이걸 찍는 놈이 있어?’
‘몰라…….’
이 스킬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행운이 필요한 거 같은데, 이제 와서 이 스킬을 쓰자고 행운을 올리는 건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그러는 동안 우정식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인간 혹시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우정식은 의심이 많았다. 그리고 나름 이유도 있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올리는 사람이라면 힘이나 체력 위주로 올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운은 아무리 올렸어도 얼마 못 올렸을 게 분명했다. 그러면 저 스킬도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다.
‘좋은 스킬 있는데 주기 싫어서 저런 스킬을 가르쳐줬다거나…….’
우정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차마 그걸 태현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는 아직 태현한테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쫓겨난 기억이 생생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태현의 더러운 성질!
‘게다가 여기는 배 위라서 쫓겨나면…….’
배 위에서 쫓겨나면?
바다 위였다.
김지산하고 박성찬한테 잘못 내기를 걸었다가 헤엄칠 뻔했는데, 그 위기를 넘기고 다시 바다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저 둘과 달리 태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를 바다로 집어 던질 사람이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우정식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 * *
“저, 부탁이 있습니다.”
우정식은 표정을 관리하며 말을 꺼냈다. 태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뭔데?”
“이 스킬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겠는데, 혹시 시범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정식은 정말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대한의 연기였다.
‘어떠냐! 이러면 거절 못 하겠지!’
우정식의 속셈은 간단했다. 태현이 직접 저 스킬을 쓰게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태현이 뛰어난 대장장이라도 저런 쓰레기 스킬로 좋은 아이템을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
앞에서 들통이 나면 태현도 더 이상 우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정식의 속마음은 태현한테 다 읽히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다 보인다, 이 인간아.’
태현은 게임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었다. 온갖 종류의 플레이어들을 만났고 상대해봤다.
덕분에 이제 사람을 봐도 바로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이 오는 경지!
‘주현영의 절반도 못 따라가는 모자란 놈들이지.’
김지산과 박성찬은 플레이어 중에서 많이 보이는 타입이었다.
좋은 스킬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나쁜 스킬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타입.
남들이 먼저 간 길을 따라가고 가지 않은 길로는 가지 않는 타입.
나쁘지는 않았지만 태현에게는 가장 지루한 타입이었다.
우정식은 거기에 의심도 많고 재수 없는 성격까지 더해진 타입이었다.
‘저런 놈은 꼭 잔머리를 굴려서 편하게 가려고 한다니까.’
잔머리를 잘 굴리면 문제가 안 되는데, 보통 저런 놈들이 굴리는 잔머리는 역효과가 날 때가 더 많았다.
그에 비해 주현영은 태현과 타입이 비슷했다.
노가다를 하는 걸 전혀 꺼리지 않고, 무엇보다 스킬을 따지지 않았다.
<행운의 요리> 스킬은 주현영도 받은 스킬이었다. 그러나 주현영은 저 스킬을 받았을 때 대장장이들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행운이 낮으면 행운을 올려서 쓰면 되겠네.
-지금은 몰라도 익히다 보면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죠.
나쁜 스킬이라고 버리는 게 아닌, 갖고서 어떤 식으로 할지 궁리를 하는 타입.
이런 사람이 언제나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태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시범을 보여주지.”
“……!”
우정식뿐만 아니라 김지산과 박성찬도 놀랐다. 시범을 보여준다니.
“정말이십니까?”
그들도 반쯤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쓰레기 스킬이 그 화려한 기술의 비법이라니.
“이런 거 가지고 속여서 뭐하게? 바로 보여주지.”
태현은 손수건을 꺼내서 눈을 가렸다. 대장장이들은 왜 저러나 싶어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유는 곧 밝혀졌다.
* * *
“아, 아니, 그건 좀…….”
“괜히 옆에 있다가 망치 맞지 마라.”
태현의 말에 대장장이들은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지금 태현은 눈을 가리고 아이템을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미친 거 아냐?’
대장장이들 입장에서는 미친 것 같아 보이는 짓!
대장장이 기술은 스킬 레벨, 스탯도 중요했지만 사용자의 경험도 의외로 중요했다.
어떤 대장장이 랭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몇천 번을 넘게 망치를 휘둘렀더니 대충 어디를 어떻게 때려야 할지 감이 오더라!
스킬 쓴다고 바로 해결이 되는 게 아니었다. 실제 사용자의 능력도 중요한 게 판타지 온라인 2였다.
그런데 태현은 눈을 감고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평범한 양손도끼>를 제작합니다.]
[행운으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 보너스를 받습니다.]
-신의 예지 사용.
눈을 감아도 어디를 쳐야 좋을지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대장장이들은 태현이 무슨 스킬을 쓰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땅, 땅, 땅-
가차 없이 휘둘러지는 망치. 보는 사람이 더 조마조마했다.
태현이 만들려고 하는 건 딱히 특별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재료도 평범했다. 카테란드 섬에서 해적들이 갖고 있던 강철이 재료였다.
마법 시약이나 희귀한 광석을 섞지 않고, 특별한 대장장이 스킬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쓰는 건 본인의 실력뿐. 게다가 눈까지 감고 있었다. 정말 행운에 의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면 대장장이들도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태현은 정말로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단 하나. 정말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것인가.
‘진짜로 만들 수 있을 리가…….’
‘눈을 감고 했잖아. 저게 말이 돼?’
대장장이들이 반신반의하는 사이 태현은 빠르고 정확하게 망치를 휘둘렀다.
신의 예지가 색으로 보여주지만, 꼭 신의 예지 덕분은 아니었다. 태현은 그게 없어도 자신이 있었다.
수천, 수만 번을 넘게 휘둘러 온 망치다. 눈을 감아도 어디를 휘둘러야 할지 대충 감이 왔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갈고 닦은 오랜 경험!
[<평범한 양손도끼>가 완성되었습니다. 뛰어난 솜씨와 행운으로 더 좋은 아이템이 만들어졌습니다.]
[대장장이 기술이 오릅니다.]
균형 잡히고 튼튼한 양손도끼:
내구력 140/140, 공격력 65
레벨 제한 40. 힘 제한 50. 민첩 제한 15.
장인은 가볍게 만들어도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혼을 쏟아부은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중간한 대장장이들이 만든 작품보다 뛰어나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다 됐다. 확인해봐라.”
태현의 말에 셋은 양손도끼에 다가가 상태창을 확인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였다.
‘겉은 괜찮은데?’
‘그러게. 진짜 이상한 아이템 나올 줄 알았는데.’
눈 감고 망치를 두드렸는데 제대로 된 양손도끼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양손도끼의 상태창을 켜고 읽는 순간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
“!!!”
“!!!!!”
도저히 눈 감고 대충 두들겨서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무기!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봐도 상태창은 달라지지 않았다. 태현은 그들을 보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됐지? 나머지는 알아서 해봐.”
“잠, 잠시만요!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행운으로 잘 해봐. 눈 감고 했는데 이 정도면 눈 뜨고 제대로 하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 오잖아?”
대장장이 셋은 전율했다. 태현이 알려준 스킬은 쓰레기 스킬이 아니었다. 정말로 대단한 스킬이었던 것이다.
물론 쓰려면 행운을 올려야 했지만…….
‘그게 대수냐!’
‘행운 올리는 아이템, 퀘스트 찾는다!’
자리에 모인 대장장이들은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그들이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그들은 태현의 행운이 기껏 해봐야 100, 많아 봤자 200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행운을 그 이상으로 올리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태현의 직업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설마 행운을 그 이상 올리는 직업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00 정도만 찍자!’
그러나 태현의 행운은 세 자릿수가 아니라 네 자릿수 단위였다.
* * *
“드디어 돌아갔군.”
대장장이들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인 다음 돌아갔다. 그만한 스킬을 받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물론 태현은 대장장이들이 저 스킬로 뭐 좋은 걸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원래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되지.’
적당히 시도하다가 안 되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 스킬을 키울 가능성이 높았다.
태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결국 나머지는 자기 선택!
‘일단 혈마법부터 배우자.’
혼자 남은 태현은 아까 보던 책을 꺼냈다. <멍청이 해적도 배울 수 있다! 초급 혈마법개론>이었다.
[<멍청이 해적도 배울 수 있다! 초급 혈마법개론>을 읽습니다.]
[혈마법을 배우겠습니까?]
-그래.
[혈마법을 배우는 데 성공합니다.]
[초급 마법 스킬이 생성됩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혈마법을 배웠습니다.]
‘상태창 확인.’
초급 마법 1 (1%)
-<혈마법>
*현재 스킬 레벨 1.
일시적으로 MP 대신 HP를, 마력 대신 체력을 사용해 마법을 강화시키는 비법이다. 과한 부작용 때문에 몇몇 학파에서는 금지령을 내렸다.
드디어 마법 스킬이 생성되었다. 태현은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마법을 배우고 싶었다. 기회가 되지 않아서 배우지 못했지만.
물론 혈마법 자체는 별 의미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보조 마법인 것이다. 다른 마법은 따로 배워야 했다.
태현은 각오를 하고 다른 마도서를 꺼냈다.
고대 신의 언데드 소환 비법서:
먼 옛날 사교도들이 사용하던 언데드 소환의 비법이다. 사용하면 마법 <저주받은 언데드 소환>을 배울 수 있다.
사용 시 악명 500 상승. 행운 100 감소.
페널티 때문에 걱정이 됐지만, 태현은 결심했다. 이 마법을 배우기로.
왕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직업 퀘스트를 깨가면서 동시에 배울 수 있는 다른 마법도 찾아보겠지만, 이 정도 마법을 배울 기회는 잘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마법 관련 NPC들은 다 마탑에 있는데 마탑은 마법사가 아니면 거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제작이나 예술 관련 직업보다 더 까다로운 게 바로 마탑!
그러면 마도서 아이템이나 마탑 밖의 있는 마법사 NPC를 찾아야 하는데, 보통 둘 다 힘들었다.
좋은 마법이 있는 마도서 아이템은 당연히 마법사 플레이어도 사려고 하니 가격이 엄청나게 셌다.
마탑 밖에서 마법을 가르쳐 줄 만한 마법사 NPC는 찾기 힘들었다.
즉 이런 <고대 신의 언데드 소환 비법서> 같은 마도서는 좀처럼 구하기 힘든, 아주 귀한 아이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