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4화
[위대한 탈출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명성 840을 얻었습니다.]
[한 명의 플레이어도 버리지 않고 구출했습니다. 추가적으로 명성 200을 얻습니다.]
[명예로운 행동으로 신성이 500 오릅니다.]
[나중에 교단을 공식적으로 세울 경우 이름이 빠르게 퍼져나갑니다.]
‘그래. 이거지.’
태현은 선실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태현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서 쉬고 있었다.
고대 신의 망령과 싸우는 건 솔직히 정신력을 소모했다. 아주 가까이 들어오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도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피곤함을 회복시키는 건 역시 퀘스트 후 보상!
‘이 정도로 명성이 많이 들어오면 아까 그 마법책도 익힐 만하겠는데?’
악명이야 명성으로 억누르고, 행운은 어차피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야 눈물을 삼키고 포기하겠지만.
‘아이템 확인.’
태현은 이번 원정에서 건진 아이템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아이템은 바로 해적들의 지하 창고에서 훔친 아이템들이었다.
급해서 손이 가는 대로 대충 집었던 물건들!
멍청이 해적도 배울 수 있다! 초급 혈마법개론:
혈마법의 비법을 아주 쉽게 써놓은 비전서다. 이 책을 갖고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자신들의 비법을 그렇게 쉽게 퍼뜨린 혈마법사들이 분노할 것이다.
사용 시 혈마법 습득.
<혈마법>
일시적으로 MP 대신 HP를, 마력 대신 체력을 사용해 마법을 강화시키는 비법이다. 과한 부작용 때문에 몇몇 학파에서는 금지령을 내렸다.
‘좋은데?’
태현은 감탄했다. 마력이나 MP가 전문 마법사에 비해 부족한 태현은 이런 식의 스킬이 아주 필요했다.
제목이 좀 웃기긴 했지만…….
해적대장의 잘 세공된 단검:
내구력 45/45. 공격력 75.
공격 속도 3배. 치명타 확률 10%. 일정 확률로 출혈 발동.
레벨 제한 65. 민첩 제한 125.
해적대장이 갖고 다니던 단검이다. 단순히 성능뿐만이 아니라 장식용으로도 가치가 있다.
‘이건 꽝이네.’
태현이 단검을 쓰지 않을뿐더러, 단검을 쓴다면 다른 단검을 쓸 것이다.
태현이 아주 예전에 만든,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이 더 성능이 좋았던 것이다.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
내구력 40/40. 공격력 90.
공격 속도 1.5배. 치명타 확률 10%. 인벤토리 무게에 잡히지 않음. 장비 무게에 잡히지 않음. 일정 확률로 출혈, 기절, 부위 파괴 발동.
만든 사람의 솜씨는 형편없지만 어째서인지 성능이 미친 듯이 좋은 무기다. 아키서스가 내려와서 만들고 간 게 아닌지 의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걸 용케 만들었네.’
이후로도 단검을 몇 번 만들기는 했지만 이런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다.
가벼운 단검, 질 좋은 단검, 가볍고 질 좋은 단검들은 꽤 많이 나왔지만 매우 가볍고 질 좋은 단검은 이후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게임 내의 행운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의 행운이 겹쳐서 만들 수 있었던 아이템!
‘초심자의 행운인가?’
원래 무언가를 시작하는 초보자한테는 행운이 따라준다는 말이 있었다.
다시 만들 수 없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태현은 다른 생각을 했다.
‘이번 기회에 재료를 모아서 검을 만들어볼까?’
롱소드 제작법은 구렌달한테서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다.
대장장이 직업이 없어서 칼에 무슨 마법을 넣거나, 별다른 특성을 넣는 건 힘들겠지만, 그가 만들면 일반적으로 파는 것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다.
‘강화도 좀 더 해보고…….’
혹시라도 아까운 아이템들이 파괴될까봐 강화도 조심해서 했는데, 태현이 만든 거라면 강화도 좀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재료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곳도 옆에 있지 않은가.
‘상단은 참 좋은 곳이란 말이야.’
* * *
“에취!”
루포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원정이 끝났는데도 무언가 섬뜩한 기분이었다.
* * *
아쉽지만 해적대장의 단검은 팔기로 했다. 혈마법 비전서만 해도 충분히 귀한 아이템이었다.
중급 요리 1 (49%)
-초급 향신료 뿌리기 4 (55%)
-초급 도축 8 (35%)
-초급 재료 파악 7 (65%)
-초급 국자 젓기 4 (85%)
-초급 독 제작 4 (15%)
초급 화술 7 (38%)
-초급 협박 4 (75%)
-초급 사기 1 (5%)
‘많이도 올랐다…….’
다양하게도 올라간 스킬 창들을 보며 태현은 뿌듯함을 느꼈다.
잡캐의 매력은 이렇게 다양하게 올라간 스킬들 목록에 있었다.
초급 전술 4 (48%)
‘전술은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초급 4인가?’
이득 본 기분이었다. 태현은 아이템창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부서진 해적왕의 세트 아이템:
한때 카테란드 해적단을 지휘하던 데넬손이 사용하던 무구 세트다.
‘고쳐서 쓸 수는…….’
알고 보니 뒤에 설명이 한 문장이 더 있었다.
부서진 해적왕의 세트 아이템:
한때 카테란드 해적단을 지휘하던 데넬손이 사용하던 무구 세트다. 고쳐서 쓸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다.
‘에잉.’
레드존 길드와 싸울 때, 카자크를 죽이고 얻은 갑옷 파편과 도끼 파편도 있었다.
‘부서진 아이템들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아까워서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지만 지금으로써는 쓸 수 없는 애물단지들.
무게만 차지하고 있었다.
태현은 육지에 도착하면 다른 대장장이들을 불러서라도 이 부서진 아이템들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해적왕의 세트 아이템은 분해해서 갖다 붙이고, 갑옷이나 도끼 파편은 녹여서 써먹어 보자.’
카자크의 갑옷은 정말로 튼튼했다. 그걸 써먹을 수 있다면 정말로 좋을 것이다.
똑똑-
누군가 태현이 있는 선실의 문을 두드렸다.
“루포냐?”
“아, 아뇨. 저희입니다.”
문을 두드린 건 김지산과 박성찬, 그리고 우정식이었다.
우정식은 두 대장장이와 달리 잔뜩 기가 죽은 표정이었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쫓겨났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태현은 우정식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정식은 그걸 보고 움찔했다.
그러나 태현은 자상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
그걸 본 김지산과 박성찬은 살짝 감동했다.
‘아, 그래도 퀘스트가 다 끝났으니 저렇게 화해를 하는구나.’
‘살짝 감동적인데?’
우정식도 살짝 감동한 얼굴로 손을 뻗어서 태현의 손을 잡았다.
“뭐하냐?”
“네? 악수……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무슨 악수는 악수야. 내가 맡긴 아이템 내놓으라고.”
“…….”
둘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정식은 주섬주섬 잡템들을 꺼내서 태현에게 돌려주었다. 태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잡템들을 받았다.
그러고는 다시 편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래, 스킬을 배우고 싶어서 왔겠지?”
“……!”
두 대장장이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들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태현이 구박하고 연신 부려먹어도 계속 남아 있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태현이 더 뛰어난 대장장이였기 때문이었다.
길드에 들어가지 않는 한, 고렙 대장장이한테 스킬을 지도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내 대장장이 스킬은 별것 없다고.”
태현의 말에 대장장이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 사람이 또 엄살을 부리는구나!
태현 정도로 아이템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별것 없다’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웃겼다.
아무리 봐도 엄살, 혹은 겸손으로밖에 볼 수 없는 상황!
이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뻔했다.
“별것 없어도 좋습니다!”
“그걸 배우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동시에 터져 나오는 목소리들!
그러나 태현은 못 믿겠다는 듯이 말했다.
“에이. 안 그럴 거 같은데.”
“아닙니다!”
“만약 가르쳐줬는데 ‘이게 뭐야’나 ‘이런 스킬 같은 건 필요 없어’ 같은 반응이 나오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나는 마음이 약하다고.”
태현의 뻔뻔한 말에 셋은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마음이 약하면 세상에 마음 강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
태현만큼 마음이 강한 사람도 드물었다.
얼마나 강한 몬스터가 나오든, 어떻게 상황이 꼬이든,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맞서는 정신력!
거기에다가 사람들이 단체로 항의를 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뻔뻔함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김지산은 손을 들고 말했다. 일단은 태현을 설득해야 했다.
“절대로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정말로?”
“예! 만약 저희가 배웠는데도 배은망덕하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배에서 내려서 헤엄쳐 가겠습니다!”
“그런 짓을 왜 해? 그런 짓을 하겠다는 멍청한 놈이 세상에 어디 있냐?”
우정식이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내기를 걸었던 게 떠오른 것이다.
태현은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좋아. 그 정도로 각오가 있다면 가르쳐주지. 그런데…… 잠깐, 내가 가르쳐주려면 제자로 들여야 하나?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김지산과 박성찬은 서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킬 가르쳐주실 때 꼭 제자로 들이지 않아도 되는데요?”
“아. 그래?”
“그렇지만 제자로 들여 주신다면 충성을 바쳐…….”
“필요 없어. 스킬만 가르쳐주지.”
“!!”
제자로 들어가는 게 좋기는 했지만 스킬을 가르쳐주는 것도 충분히 좋았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세 대장장이는 먹이를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전수합니다.]
[상대방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 레벨이 적정 수준입니다.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현재 가르쳐줄 수 있는 스킬은 강화, 날카롭게 갈기, 녹 없애기, 수리,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 신성 대장장이 기술입니다.]
‘강화.’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날카롭게 갈기, 녹 없애기, 수리.’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역시…….’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 네 스킬은 저 정도 중수 대장장이면 다 알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역시 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르쳐줄 건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과 <신성 대장장이 기술>스킬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대장장이 기술 스킬과 같지만, 태현의 높은 행운과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는 직업 덕분에 진화된 대장장이 기술 스킬.
태현은 그냥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써도 적용이 됐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태현한테 배워야 쓸 수 있었다.
‘신성 말고 행운만.’
굳이 둘 다 가르쳐 줄 이유가 없었다. 하나면 됐다.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을 가르칩니다. 상대방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에 영향을 받습니다. 상대방의 행운에 영향을 받습니다.]
[다른 대장장이를 가르친 것으로 인해 대장장이 기술이 오릅니다.]
[명성이 50 오릅니다.]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
“그게 뭐지?”
메시지창을 본 대장장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태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가 빠르게 아이템을 손볼 수 있었던 비법이지.”
“……!”
대장장이들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급하게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
사용자의 행운에 따라 달라지는 대장장이 기술. 제작법을 몰라도, 아무렇게나 제작을 시도해도 행운에 따라 걸작이 나올 수 있다.
“……?”
“행운?”
“행운을 쓰는 스킬도 있었어?”
셋은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행운에 따라 달라진다니.
“설마 이거…… 행운 스탯만 관련되는 스킬입니까?”
“맞아.”
“?!”
그제야 이 <행운의 대장장이 기술>이 무슨 스킬인지 깨달은 대장장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스탯 중에서 가장 안 쓰이는 행운이 높아야 효과가 나오는 스킬이라니.
이건 완전…….
‘쓰레기 스킬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