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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79화 (79/1,826)

§ 나는 될놈이다 79화

김지산과 박성찬이 ‘태현과 친하게 지내지 마라’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른 대장장이들이 알게 된다면 다들 친한 척을 할 테니까.

원래 이런 건 독점을 해야지, 사람들이 몰리면 되려던 일도 안 되는 법이었다.

게다가 태현이 친절한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진짜 이러깁니까?”

김지산이 날이 선 목소리로 우정식을 노려보았다.

“뭐가?”

“약속 안 지키겠다 이겁니까?”

“아니, 잘 들어봐. 나는 분명히 저 김태산이라는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랬죠.”

약속의 내용은 태현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냥 같이 다니는 건 문제가 안 되잖아? 나도 퀘스트 깨러 온 거라고. 병사들이랑 같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왜? 왜 말이 안 되는데?”

한 마디로 같이 다녀도 친하게 안 지낼 테니 상관이 없다는 뜻! 거의 우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지산과 박성찬, 우정식이 그렇게 추하게 싸우는 동안 태현은 주현영에게 말을 걸었다.

“그쪽은 왜 왔지?”

“어, 오면 안 되는 거였나요?”

“아니. 오는 건 자유인데. 다들 배 위에 있는데 내려온 게 신기해서.”

“저기 저분들도 내려왔는데…….”

“저기 저 인간들은 좀 모자라니까 그렇다고 치고.”

졸지에 대장장이 셋은 모자란 인간들이 되어버렸다. 주현영은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직접 싸우는 건 몰라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으니까 요리를 하면 꽤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아. 경험치하고 스킬 올리기 좋긴 하겠네.”

“네? 아니,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

“……?”

똑같은 걸 보고서도 서로 전혀 다른 걸 생각하는 둘!

태현은 저 병사들을 ‘대장장이 스킬이나 요리 스킬을 올리기 좋은 경험치 덩어리’로 봤고, 주현영은 ‘저렇게 사람들이 많으니 배가 고플 수도 있겠네? 뭘 좀 먹여줘야겠다’식으로 생각했다.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따라왔다고? 스킬 때문이 아니라?”

“어…… 그러면 안 되나요?”

“되기야 되지. 그냥 신기해서. 저기 저 셋을 보라고.”

태현은 세 대장장이를 가리켰다. 욕망으로 추하게 싸우는 세 명!

“딱 봐도 욕심이 가득한 게 보이지 않아?”

“……그렇긴 한데 저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

갑자기 태현은 눈이 부셔오는 걸 느꼈다. 주현영 뒤에서 눈부신 후광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천사 같은 모습!

딸칵-

“마법사님. 발광 마법은 왜 쓰신 겁니까?”

“아. 잠깐 확인 좀 해보느라.”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왕국 해군에 소속된 마법사가 뒤에서 발광 마법을 쓴 것이었다.

* * *

‘그래도 신기할 정도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인데?’

태현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

그러는 사이 우정식이 태현에게 다가와 말을 붙였다.

“뭐 시키실 거라도 있습니까?”

“없는데. 그보다 우리가 친했나?”

바로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냉정하게 나오는 태현의 말에 우정식은 당황했다.

그러나 우정식은 김지산이나 박성찬보다 뛰어난 장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얼굴에 깐 철판의 두께였다.

“앞으로 친해지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데.”

“하하. 원래 사람 사이의 우정이라는 건 친해지고 싶지 않아도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시끄럽고. 직업이 뭐지?”

“예? 제 직업이요? 그런 건 말해드리면…….”

판타지 온라인 2에서는 사소한 것들도 다 중요한 정보였다.

직업이나 이름, 무슨 스킬을 쓰는지, 어디서 무슨 퀘스트를 하는지…….

랭커들은 다 이런 정보를 숨기고 다녔다. 알기만 하면 약점이 알려지거나 견제가 들어오는 것이다.

“싫으면 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떠돌이 대장장이입니다.”

“떠돌이 대장장이?”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장장이 계열 직업 같기는 했는데, 정확히 어떤 직업이지?

“대장장이랑 뭐가 다른데?”

“대장장이하고 상인 계열이 섞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떠돌이 대장장이는 말 그대로 떠돌아다니는 대장장이였다. 대장장이 일도 하고, 떠돌아다니면서 거래도 하는 하이브리드 직업.

얼핏 들으면 좋아 보였지만, 태현은 생각했다.

‘보통 저런 직업은 둘 다 어중간하게 가던데.’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잡다하게 스킬을 키우는 태현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사실 맞는 말이었다.

두 직업 다 쓸 수 있다는 건 두 직업 기능 다 어중간하다는 뜻. 다른 사람들만큼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잠깐, 상인 직업도 섞여 있으면 들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 무게도 좀 많겠네?”

“네? 그렇죠.”

판타지 온라인 2에서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 무게에 제한이 있었다.

태현도 당연히 그런 걸 계산해서 아이템을 챙겼다.

원래 챙길 수 있는 아이템은 모두 다 챙기는 게 좋았지만, 그렇다고 잡템을 마구 넣었다가는 정작 중요한 걸 못 넣을 수 있었다.

아이템 무게 제한을 늘리려면 힘을 올리거나, 특수한 스킬을 배우거나, 특별한 아이템을 얻어야 했다.

상인 같은 경우는 아이템을 많이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전용 스킬도 있었고 전용 아이템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템이 많이 나오는 던전을 공략할 때에는 아예 상인을 따로 고용하는 파티도 있었다.

“잘됐네.”

“……?”

우정식은 태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태현이 왜 ‘잘됐네’라고 말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 * *

“도움이 되어서 좋지?”

“아, 예.”

“시키실 게 있냐고 해서 시켜주는 거야. 좋지 않아?”

“예…… 정말 좋네요…….”

태현은 나오는 잡템이란 잡템은 모두 우정식의 가방에 넣었다. 무게가 순식간에 늘어나자 우정식은 울상이 되었다.

[가방이 너무 무겁습니다.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이 상황에서 전투를 벌일 시 페널티를 받습니다.]

“저, 그래도 이건 좀…….”

“망령 전사의 우그러진 갑옷 조각? 흠. 좋아 보이는데. 이것도 넣자.”

“그걸 어디에 쓰는데요?”

“몰라. 언젠가 쓸 일이 나오겠지. 일단 챙겨.”

“…….”

김지산과 박성찬이 안쓰러워할 정도의 부려먹기! 처음에는 우정식이 태현과 같이 다니는 걸 보고 둘이 질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착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태현 옆에 있는 건 그만큼 힘든 것!

“망령 전사다!”

“모두 대열을 지켜!”

창을 든 병사들이 망령 전사를 둘러싸고 공격을 시작했다.

-신성한 축복!

-전사의 활력이 넘치는 손!

뒤에서 사제들이 축복을 걸어주자 병사들의 몸에서 흰색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정예인 병사들에, 아이템까지 호화롭게 맞춘 상태에서 축복까지 받자 망령 전사들은 바로 녹아버렸다.

푹! 푸푸푹!

왕국 해군들의 창술은 매서웠다. 망령 전사들은 제대로 접근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점점 지하로 내려가자 망령 전사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망령 전사들은 다른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태현에게 달려들었다.

그걸 본 태현이 씩 웃으며 검을 뽑았다. 귀찮은 건 전부 왕국 해군들이 다 해주는 상황.

한 대만 때리면 경험치나 아이템을 공짜로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비켜라! 사악한 언데드들아!”

“감히 어디서 귀한 분에게 손을 대려고 하는 것이냐!”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태현 앞에 서기 시작했다.

이 섬에 찾아와서 해적들을 전멸시킨 태현은 귀한 손님 중의 손님!

당연히 함부로 싸우게 할 수 없었다.

“아, 아니. 잠깐. 나 혼자 싸울 수 있는데…….”

“괜찮습니다! 저희가 싸우겠습니다!”

“손을 더럽히실 필요 없습니다!”

병사들은 태현을 한사코 말렸다. 태현은 답답해서 가슴을 치며 외쳤다.

“아니, 내가 싸우고 싶다니까!”

그러나 병사들은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저희가 싸우겠습니다!”

“싸우자! 언데드들을 물리치자!”

“우리가 못 미더우신 모양이다!”

우르르-

결국 태현은 망령 전사들에게 손 하나 대지 못하고 지하 신전 복도를 통과해야 했다.

“에이……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 건 병사들의 아이템을 수리해주고 버프를 걸어주고 잡템을 챙겨서 보내는 것 정도.

옆에서 태현을 보던 주현영이 불쌍한 사람을 쳐다보듯이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그…… 저도 말해서 싸우게 해달라고 할까요?”

“……됐어.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어차피 분위기를 보니 주현영 같은 플레이어가 말해도 싸우게 해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 * *

“잠시 쉬었다 움직인다! 사제님들, 회복을 부탁드립니다.”

해군 백부장이 손을 흔들자 질서정연하게 병사들이 멈췄다. 병사들 중에서는 다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아무리 잘 싸워도 망령 전사는 만만한 적이 아니었다. 갑자기 벽이나 바닥에서 튀어나오니 아예 다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태현은 멀쩡했다.

‘싸우게 좀 해주지…….’

방금 전 태현 앞에 나타난 망령 전사가 있었다. 태현은 옳다구나 하고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런데 병사 한 명이 몸을 날려서 공격을 받아냈다.

“…….”

이쯤 되면 그냥 고대 신의 망령을 잡을 때까지는 싸우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수준!

주현영이 솥을 꺼내서 가운데에 설치한 다음 물었다.

“저기, 요리할 건데 같이하실래요?”

“물론이지.”

어떤 상황이든 간에 스킬을 올릴 기회를 버릴 생각은 없었다. 태현은 바로 솥 앞에 섰다.

“아까 보니까 요리를 정말 잘하시던데, 요리사 직업을 갖고 있나요?”

“아니. 요리사 직업은 아니야.”

“그러면 그냥 요리 스킬만으로 거기까지? 대단하시네요.”

주현영은 순수하게 감탄하는 것 같았다. 태현은 순간 옆으로 살짝 거리를 벌렸다.

‘눈부셔……!’

태현이라면 만약 요리사가 아닌데 요리를 잘하는 플레이어를 봤다면 뒤에서 한 대 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순수한 감탄이라니.

“저는 요리사 직업이거든요. ‘수프 전문 요리사’라고, 희귀 직업이에요. 도시에서 요리만 계속했는데 직업 퀘스트가 떠서 그냥 전직했죠.”

“수프 전문 요리사면…… 그렇게 좋은 직업이 아니지 않나?”

수프 전문 요리사는 요리사 계열 직업 중에서도 그렇게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희귀 직업이기는 했지만 얻는 방법이 많이 알려졌고, 굳이 요리사 직업을 얻을 거라면 좀 더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 직업이 좋았다.

지금 와서는 수프 전문 요리사로 전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주현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직업 성능은 별로 안 따져서요. 그냥 제가 재미있게 하고, 잘하면 되겠지. 싶었어요. 직업 퀘스트 준 NPC도 착한 사람이라 마음에 들었고요.”

“바로 그거야.”

“네?”

“좋은 직업으로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안 좋은 직업으로 해야 재미가 있지!”

“어…… 안 좋은 직업이라서 고른 게 아닌데…….”

태현은 주현영의 말을 듣지 않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주 좋은 정신이군. 원래 게임은 그렇게 해야지. 요즘 다들 강캐만 찾으려고 애를 쓰는데, 원래 약한 캐릭터를 강하게 키우는 게 재미있는 거거든.”

“안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 안 한다니까요? 저는 재밌게 잘하고 있어요. 섬에서 퀘스트 하는 것도 재밌었고요.”

“섬에서 퀘스트 하는 게 재밌었다고?”

플레이어들이 섬에서 한 건 노가다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현영은 진심이었다.

“재밌었는데요?”

“재능이 있군. 재능이 있어.”

“??”

원래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더 강한 게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었다. 노가다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재미있게 하는 건 대단한 재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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