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7화
후회가 막심했지만, 그들은 요리사였다.
저 요리를 먹어서 얻을 수 있는 혜택도 혜택이지만, 저 요리가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판타지 온라인 2에서 요리사의 길을 걷는 사람은 보통 현실에서도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요리사라는 직업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맛있는 걸 만들고 맛있는 걸 먹는 즐거움!
판타지 온라인 2는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온갖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요리사들은 저 요리가 어떤 맛인지 알고 싶어 했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길래?’
‘그 재료들을 쑤셔 넣고 맛이 나올 수가 있나?’
요리사 중 한 명이 태현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저, 김태산 님.”
“어휴,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요리사님?”
태현은 갑자기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 태도에 요리사는 살짝 쫄았다.
“무슨 일로 오셨죠? 설마 저 요리를 먹고 싶어서는 아니겠고. 뭐 도와드릴 게 있으신지? 아니, 없겠죠! 설마 우리 요리사님이 나 같은 사람한테 도움을 요청할 리가 없겠죠!”
“…….”
차라리 욕을 해라! 요리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돌아왔다.
다른 건 몰라도 요리사들은 몇 가지는 알게 되었다.
태현의 요리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과 한 번 생긴 원한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것을.
* * *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맞나?”
“네. 좋네요. 되게 빨리 배우시는데요?”
다들 열심히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태현은 화가 한 명을 붙잡고 그림을 배우고 있었다.
남는 시간에는 뭐든지 하는 게 좋은 것!
“저, 준비 다 됐는데요.”
“그래? 그러면 출발하자.”
태현은 플레이어들 앞에 섰다. 제작이나 예술 직업들이라 모두 다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다. 대장장이 기술부터 시작해서 요리, 재봉, 음악 등 어지간한 버프는 모두 건 것이다.
이 정도라면 망령 전사를 쓰러뜨리지는 못해도 견딜 수는 있을 것이다.
‘더럽게 많네.’
태현은 언덕 밑에 우글거리는 망령 전사들을 둘러보았다. 고대 신의 망령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루포가 해안가의 상선 위에서 깃발을 흔드는 게 보였다. 여기까지 오라는 뜻이었다.
‘왕국 해군은 아직 오고 있나? 기다리기 전에 빠져나가는 게 낫겠다.’
버틸까 싶었지만 왕국 해군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대 신의 망령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빠져나가서 배에 타는 게 좋았다.
태현은 그를 쳐다보는 플레이어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고생 많았다. 그래도 지금 저 밑의 망령 전사들은 너희 수준으로 쓰러뜨리기는 힘들겠지.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죽으면 이 섬에서 자동 탈출이야.”
“…….”
플레이어들의 분위기가 대번에 내려갔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저 배까지 달려가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아니지만. 각자 서로 최대한 도와주면서 뛰자고. 그렇지 않으면 전멸할 테니까. 물론 나는 아니지만!”
자기는 살 자신 있다고 말하는 태현의 모습은 얄미움의 극치였다.
“좋아! 가자!”
[전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냉정한 지휘> 스킬을 얻었습니다.]
<냉정한 지휘>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함으로써 능력치를 상승시킵니다.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우와아아아아아!”
“덤벼라! 이것들아!”
“절대로 혼자는 안 죽는다!”
태현이 먼저 언덕을 달려 내려가자, 플레이어들은 모두 소리를 지르며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삼각형 모양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그럴듯했다.
물론 태현을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잔뜩 겁을 먹어서 소리를 질러댔지만…….
“다가오지 마! 이 강철 낚시바늘로 꿰뚫어 줄 테니까!”
“기름칠한 이 방패 맛을 봐라!”
망령 전사들이 느릿하게 다가오기 시작하자 플레이어들은 더 크게 외쳤다.
태현은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았다. 믿을 수 있는 건 서로 옆에 붙은 동료들뿐!
망령 전사들은 점점 더 포위망을 좁히더니…….
태현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태현은 망령 전사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의 원 스킬로 카운터를 친 다음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을 둘러싼 망령 전사들이 플레이어들은 공격하지 않고 태현만을 노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후계자…… 죽여라…….
-주인께서 명령했다…….
‘이 고대 신의 망령이!’
고대 신의 망령이 태현만을 노리라고 명령한 게 분명했다. 어차피 이렇게 다가오는 망령 전사들은 태현의 적수가 아니었다.
카카캉-
앞에 서 있는 망령 전사의 다리를 베어 버린 다음, 발로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대장장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퍽! 퍼퍼퍽! 퍼퍼퍼퍽!
레벨은 낮아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저렇게 두들겨 맞자 망령 전사는 순식간에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나 레벨 업 했어!”
“나도!”
뒤에서 들리는 플레이어들의 말에 태현은 혀를 찼다. 태현 혼자 손해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절대 보내지 마라…….
-놈의 발목을 잡아라…….
“아, 좀 뒤의 놈들도 노려라!”
망령 마법사나 궁수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있었다면 몇 배로 일이 어려워졌을 것이다.
태현은 개떼처럼 몰려드는 망령 전사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방어의 원!
“다가오는 놈들은 모두 이렇게 될 거다! 뒤의 놈들은 뭐하는 거야! 빨리 뛰어!”
-위압!
-가혹한 채찍질!
스킬을 동시에 여러 개 쓰자 MP가 빠르게 닳기 시작했다. 저번에 얻은 마력 회복의 귀걸이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고맙다, 멍청이들!’
태현한테 PK를 시도했다가 아이템을 뺏긴 두 사람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을 생각이었다.
콱! 콰콱! 콰콰콱!
태현은 마치 추수라도 하는 것처럼 망령 전사들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싸우면서 계속 속으로 투덜거렸다.
왜 뒤의 놈들은 안 싸우고 그 혼자 싸워야 하는가!
그러나 그 모습은 뒤의 플레이어들에게 전혀 다르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혼자 망령 전사들을 끌어들이고 싸우는, 살신성인의 뒷모습!
“대, 대단해……!”
“역시 좋은 사람이라니까!”
“맞아! 표현을 솔직하게 못 할 뿐이야!”
“우리도 돕자!”
* * *
“태현 님! 돌아오셨군요!”
태현이 해안가에 도착해서 플레이어들과 같이 배 위에 올라오자, 루포가 반갑게 외쳤다.
“해군은 아직도 안 왔냐?”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대 신의 망령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먼저 공격하지도 않고…….”
망령 전사들을 움직여서 배를 점령하거나, 태현과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거나 했어야 했다.
그러나 망령 전사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태현과 일행을 공격했을 뿐이었다.
“몰라. 브레스 때문에 맛이 갔나 보지. 일단 배를 출발시켜!”
“예. 알겠습니다.”
상대방이 실수를 해주면 고마운 일이었다. 굳이 그 이유를 붙잡고 늘어질 필요는 없었다.
바다 위에서 빠르게 왕국 해군과 합류한다. 그러면 일단 이 모든 일이 끝나게 되어 있었다.
고대 신의 망령은 왕국 해군이 처리해 주겠지!
파아아악-
상선은 돛을 펴고 빠르게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빙그르르-
“우아악?!”
배가 갑자기 방향을 돌리자, 플레이어들은 모두 갑판 위에서 굴렀다. 탈출했다고 방심하던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고대 신의 던전 효과로 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던전을 해제해야 합니다.]
“……!”
이제야 고대 신의 망령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배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느긋하게 안에서 힘을 회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헤엄쳐서 도망칠까?’
태현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대 신의 망령이 저렇게 집착하는데 굳이 상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
“태현 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헤엄쳐서 튈까?”
“예? 농담이시죠?”
“진담이었지만 안 된다는 걸로 알겠어. 좋아. 왕국 해군한테 빨리 오라고 신호를 보내.”
“네. 지금 우리가 왜 못 나가는지 설명하겠…….”
탁-
태현은 루포의 팔을 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우리가 왜 못 나가는지는 설명하지 마.”
“예? 그걸 설명하지 말라고요?”
“그걸 설명하면 저놈들이 여기까지 안 올 수도 있잖아.”
물귀신 작전!
왕국 해군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몰랐지만, 여기 들어왔다가는 못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안 들어올지도 몰랐다.
그래서는 안 됐다. 싸울 거라면 최대한 동료를 늘려야 했다.
태현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루포가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나중에 걸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우리도 다 몰랐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그렇긴 하지만!”
“그러면 네가 가서 고대 신의 망령 잡을래?”
“왕국 해군한테 최대한 빨리 오라고 말하겠습니다.”
* * *
“아탈리 왕국 3함대 제독 브랑송이오. 편하게 브랑송이라고 불러도 되오.”
거대한 함선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그 위에서 콧수염을 기른 미중년이 걸어왔다.
아탈리 왕국에서 계속 있던 플레이어들에게는 흥분의 도가니!
“브랑송? 그 브랑송 맞아?”
“맞는 거 같은데? 나 처음 봐!”
“말 걸면 안 되나?”
“야. 옆의 병사들 봐. 잘못하면 창에 찔려!”
브랑송은 아탈리 왕국 플레이어들에게 유명한 NPC 중 하나였다.
바다에서 적극적으로 함대를 몰고 다니며 여러 일을 벌이는 제독이니만큼 플레이어들도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유능하고, 귀족이라 왕실과도 친하고, 성격도 나름 친절해 플레이어들한테는 인기가 높았다.
해군으로 들어간 플레이어들한테는 우상이나 다름없는 존재!
루포도 당연히 깍듯하게 예의를 지켰다.
“감히 그렇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브랑송 제독님.”
그러나 태현은 아니었다. 남이 해보라면 꼭 하는 성격!
“편하게 부르라니 편하게 브랑송이라고 부르죠.”
“?!?!”
“하하. 그렇게 부르니 좋군그래. 그래서 여기 모인 사람들이 카테란드 해적단을 쓰러뜨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가?”
브랑송은 플레이어들을 둘러보았다. 겉으로 보면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은 사람들!
“그게…… 저…… 이미 해적들은 전부 쓰러졌습니다. 데넬손도 죽었고요.”
루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는 왕국 해군을 속인 것 때문에 아직까지 양심이 찔렸다.
“뭐라고?!”
그러나 브랑송에게는 정말로 놀라운 소식이었다. 브랑송은 크게 놀란 얼굴로 루포를 보며 물었다.
“해적들이 전부 쓰러지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섬의 요새들은? 데넬손은?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건가?”
“제가 한 게 아니라 이분이 하신 겁니다.”
루포는 태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단하군……!”
[브랑송이 당신을 높게 평가합니다. 명성이 50 오릅니다.]
[브랑송은 뛰어난 강자를 존중합니다. 아탈리 왕국에서 브랑송의 이름을 대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아탈리 왕국에 알려집니다.]
“말해주게! 대체 어떤 방법으로 저 해적들을 쓰러뜨린 건가! 설마 아까 섬 위에 떨어진 벼락들. 자네가 불러낸 건가?”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정말로 대단하군! 혼자서 카테란드 섬의 해적들을 쓰러뜨리다니! 이런 영웅이 있나! 모두들! 박수를 치게!”
짝짝짝짝-
아탈리 왕국의 해군들이 무표정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오히려 민망해지는 건 태현이었다.
“아니…… 박수는 됐고,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거든요?”
“명예가 중요하지 않다니.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혹시 해군에는 관심이 없나?”
“없고요. 지금 저 섬에 해적은 없지만 더 성가신 게 있으니 거기에 집중합시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