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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75화 (75/1,826)

§ 나는 될놈이다 75화

루포는 황당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떠나버렸다.

“아니, 태현 님! 이러시면 안 되죠!”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야! 이 자식아!”

-…….

고대 신의 망령은 알기 힘든 눈빛을 루포에게 보냈다. 그 눈빛이 마치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루포는 발끈했다.

“뭘 쳐다보냐!”

-그러게 저런 놈을 화신의 후계자로 인정하지 말았어야지. 참 어리석군.

“헛소리하지 마라. 태현 님은 그 누구보다도 적합한, 아키서스의 화신이시다!”

-지금 그놈이 너를 버리고 갔는데도?

“……전략상 후퇴한 거다!”

-아닌 것 같은데?

“닥쳐라, 이놈!”

루포는 울컥해서 검을 뽑고 달려들었다. 고대 신의 망령은 몸을 부풀리더니 말했다.

-할 말이 없으니 화를 내다니. 인간이란 참 불쌍하군. 네 주인이 너를 버리고 갔다고 해서 실망하지 마라.

“……?”

-어차피 상관없게 될 테니까. 봐라!

고대 신의 망령은 몸을 점점 더 크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어, 어, 저거…….”

루포는 당황했지만 고대 신의 망령은 멈추지 않았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앗!

고대 신의 망령의 몸이 터져 나가더니 위로 솟구쳐서 섬 전체에 안개처럼 뿌려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려 나가던 태현도 그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고대 신의 망령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메시지창이 뜨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 신의 망령이 섬 전체에 영역을 펼칩니다. 카테란드 섬이 ‘고대 신의 던전’으로 바뀝니다.]

“뭐?”

태현은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돌발 퀘스트–고대 신의 던전을 해제하라>

평화롭고 아름답던 카테란드 섬은 고대 신의 망령이 지하에서 올라오는 바람에 저주받은 던전으로 변해버렸다.

고대 신의 망령이 부리는 부하들을 처리하고 고대 신의 망령에게 영원한 안식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섬은 영원히 던전으로 남게 될 것이다.

보상: ???

섬에 있던 플레이어들에게는 모두 다 동시에 뜬 퀘스트였다. 그러나 지금 드래곤 브레스에 정신이 없는 플레이어들은 이 퀘스트를 깰 엄두도 내지 못했다.

“지금 도망쳐도 되나? 해적들 사라진 거 같은데…….”

“아직 남아 있는 놈들 있잖아.”

섬 전체가 박살 나도 아직 곳곳에 남아 있는 해적들은 있었다.

플레이어들을 감시하고 있는 해적들도 그중 하나였다. 이 주변에는 브레스가 떨어지지 않아 덤으로 무사했던 것이다.

“우리끼리 쓰러뜨릴 수는 없나?”

“네가 해봐라. 나는 싫다.”

“누, 누가 내가 한다고 했냐? 그냥 물어본 거지.”

해적들의 숫자가 얼마 안 남아도 만만치 않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먼저 나서서 죽어봤자 다 자기 손해!

“크아아악!”

“?!”

그러던 도중 해적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나타난 것은 태현이었다. 은신을 풀고 나타난 태현은 검을 휘둘러 다른 해적 하나를 다시 쓰러뜨렸다.

“태산 님!”

‘응?’

태현은 순간 움찔했다.

‘아. 맞다. 가명을 쓰고 있었지.’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나타난 태현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정말 구하러 올 줄이야!

그러다 한 명씩 환호하기 시작했다. 환호성의 시작은 김지산과 박성찬부터였다.

“만세! 구해주러 오실 줄 알았습니다!”

“김태산 님 만세!”

“어…… 음…….”

태현은 머뭇거렸다.

이들을 구해주러 온 것은 퀘스트 때문이었다.

<위대한 탈출-사람들을 구해라>

섬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만이 아니다. 맥크레니 상단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섬에서 해적들에게 갇혀 있는 상황.

그들을 버리지 말고 같이 탈출하라. 만약 성공한다면 당신의 이름은 그 고결함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보상: 구출한 사람들의 숫자에 따라 신성, 명성 획득. 아키서스 교단의 이름이 더 빠르게 퍼져나감.

신성과 명성은 태현에게 아주 중요한 스탯이었다.

원래라면 그냥 두고 알아서 살라고 했을 테지만, 해적들이 전부 쓸려나간 상황에서 이들을 구해주는 건 매우 쉬운 일.

그냥 가서 해적 보초들만 제거하고 배에 태우면 끝 아닌가.

그래서 고대 신의 망령도 루포에게 맡기고 여기 달려 왔는데…….

‘아, 이거 찜찜하네.’

사람들이 환호하는 건 김태산의 이름! 욕먹어도 상관이 없는 이름을 골랐는데 어쩌다 보니 영웅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거봐요! 구하러 오잖아요!”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섬에 끌려온 대장장이 플레이어, 우정식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태현이 오지 않는다에 내기를 건 그였다. 솔직히 그 상황에서 누가 오겠는가?

그래서 내기를 했는데…….

진짜 온 것이다.

“말이 너무 심했어. 나는 처음부터 믿고 있었다니까!”

“맞아! 생각해 보면 여기 섬 퀘스트들도 조금 힘들었을 뿐이지 보상은 엄청나게 좋았다고.”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면 애초에 여기까지 우리를 구하러 왔겠어요? 우정식 씨는 말이 너무 심했어요!”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는 플레이어들! 우정식은 억울해서 가슴을 치고 싶었다.

‘자기들도 같이 뒷담 까놓고!’

묶여 있던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돌아오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아부를 하기 시작했다.

괜히 뒷말하던 게 들킬까봐 더 필사적이었다.

게다가 한두 명씩 태현의 칭찬을 늘어놓자 분위기도 바로 바뀌어버렸다.

원래 착한 사람은 나쁜 짓 하나 하면 바로 악당이 되어버리지만, 원래 악당 같은 사람이 착한 짓 하나 하면 이미지가 달라지는 법!

어느새 태현은 ‘태도는 좀 쌀쌀맞지만 그래도 책임감 있고 배려심 넘치며 다른 사람들을 좋은 곳으로 데리고 와준 멋진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김태산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공격의 원!

-행운의 일격!

“커헉! 크아앗!”

남은 해적들은 태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태현은 손쉽게 남은 해적들을 정리했다.

해적 하나가 창으로 태현을 찔렀다. 태현은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해적의 어깨부터 허리까지 베어버렸다.

‘최대한 아슬아슬하게.’

위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이런 식으로 스탯을 올리는 것도 좋았다.

스탯은 언제나 다다익선!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걸 많이 해낼수록 민첩이 올랐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상대가 망령의 저주에 걸립니다.]

“으, 으허허억…….”

한 대 맞은 해적은 비틀거리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가 된 후 회색빛으로 사라져버렸다.

[데넬손이 건 ‘해적의 저주’가 발동됩니다.]

[해적을 처치하면 처치할수록 전체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

손목에서 타오르는 저주. 데넬손이 걸었던 저주였다.

‘풀린 게 아니었나?!’

데넬손을 죽여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저주는 끝난 게 아니었다. 태현은 혀를 찼다.

해적을 죽이면 죽일수록 전체 능력치가 하락한다니.

‘이거 언제 풀리는 저주야?’

해적의 저주:

남은 시간-11시간 57분

12시간은 꼼짝없이 능력치 하락을 안고 싸워야 하는 저주였다.

싸움이 끝난 상황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남은 해적들과 고대 신의 망령까지 해치워야 하는 상황.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태현은 고민을 멈추고 남은 해적을 쓰러뜨렸다. 일단 이 자리에 있는 해적들은 쓰러뜨려야 했다.

[뒤에서 기습을 당했습니다!]

[신성 권능으로 출혈 상태를 막아냅니다.]

[신성 권능으로 치명타를 막아냅니다.]

“죽어라, 이 자식!”

해적 중 한 명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가 태현에게 암습을 가했다. 여기 있는 해적 중에서 제법 레벨이 높은 해적 같았다.

쭉 깎인 HP를 보며 태현은 빠르게 계산했다.

‘여기서 한 대 더 맞은 상태로 싸우면 체력 스탯이 오를 수 있겠군.’

팍!

[회피에 성공합니다.]

“이, 이놈!”

해적은 원통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더 어이가 없는 건 태현이었다.

“줘도 못 먹냐!”

말과 함께 태현은 해적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 * *

해적들을 전부 쓰러뜨리자, 남은 일은 쉬웠다. 태현은 플레이어들 앞에 서서 외쳤다.

이미 일을 벌인 상황. 플레이어들을 최대한 잘 다뤄야 했다.

“내가 너희들을 구하러 왔다!”

“와아아아아아!”

환호하는 플레이어들. 그들은 정말로 태현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기 시작하고 있었다.

김태산으로 가명을 쓴 태현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

‘상관없지. 말만 조금 하면 바로 바뀔 테니까.’

태현은 거만한 태도로 외쳤다.

“좋아하지 마라!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니까!”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 저게 뭔지 알아. 저게 그 츤…….”

“쉿쉿. 들으면 화낼라.”

한 번 이미지가 박히자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태현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지었다.

‘에이. 모르겠다. 지금 그거에 신경 쓸 시간도 아니고…….’

일단은 고대 신의 망령부터 먼저 처리해야 했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데넬손도 죽었고, 해적들도 대부분 죽었다.

게다가 왕국 해군도 오고 있으니 고대 신의 망령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왕국 해군이라면 마법사도 있고 사제도 있을 테니까.

‘시간 좀 끌다가 버티면 퀘스트 완료인가?’

권능도 얻었고, 데넬손의 아이템도(박살이 났지만) 얻었다. 고대 신의 망령만 처리하면 이제 이 지긋지긋한 섬에서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태현은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언덕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해안가로 가서 배를 태워야 했다.

“어…… 저게 뭡니까?”

그러나 언덕 위로 오른 플레이어들의 눈에 들어온 건, 주변을 빽빽하게 메운 망령 전사의 무리들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평화롭게 박살이 나 있던 섬에 망령 전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해적들보다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들!

“아, 아까 고대 신의 던전이 열렸다고 떴었잖아. 이거 아니야?”

“그런가?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갑자기 섬에 이렇게 망령 전사들이 많이 나타난 거야?”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동안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망령 전사가 많이 나타난 건…….

‘고대 신의 망령이 섬에 생긴 해적들 시체를 전부 일으켜 세웠나?’

사령술. 네크로맨서들은 시체만 많고 시간만 많으면 정말 끝도 없이 강해질 수 있었다.

고대 신의 망령 정도 되는 몬스터라면 이 섬 전체의 시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던전을 해제하라는 게 이런 소리였나……!’

해적들이 브레스로 몰살당한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태현은 한숨을 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슬슬 부작용이 무섭긴 했지만 망치를 꺼낼 수가 없었다. 뒤에 플레이어들이 워낙 많았다.

“따라와라. 돌파한다.”

“괜, 괜찮을까요?”

“그러면 남아서 죽든가.”

심드렁한 태현의 목소리. 플레이어들은 바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딱 봐도 징징댄다고 사정 봐줄 사람이 아니었다.

태현은 냉정하게 지시하기 시작했다. 일 초도 망설이지 않는 신속한 지시였다.

“대장장이는 밖으로, 화가, 낚시꾼. 안으로. 음유시인, 요리사는 가운데에 서라. 공격 스킬 하나라도 있으면 바깥에 서고. 가능한 스킬은 전부 준비해. 싸움 못한다고 징징거리지 마. 휘둘러서 한 대 때리면 데미지는 들어가게 되어 있어. 요리사, 지금 가능한 요리 전부 해서 모두한테 먹여. 대장장이들, 갖고 있는 장비 있나? 입을 수 있으면 바로 입어.”

“어, 숙련도가 떨어지는데요.”

“지금 숙련도 따지게 생겼냐? 일단 입어. 한 대 맞고 뻗지 말고.”

[전술 스킬이 오릅니다.]

[약한 부하들로 강한 적들을 많이 쓰러뜨릴수록 전술 스킬이 빠르게 상승합니다.]

“……!”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태현은 평소처럼 말했지만, 물어본 플레이어는 뭔가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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