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3화
“드, 드래곤이 나와서 브레스를…… 어…… 그러니까 브레스를…….”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 개인방송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말 재밌게 잘하는 걸로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좋았지만, 그는 지금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만큼 눈앞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뭐야? 누가 설명 좀.
-드래곤 맞아? 가짜 아냐?
-환상 마법이라거나…….
-환상 마법으로 섬 전체 박살 나는 거 보여주는 놈이 어디 있어! 드래곤 맞네!
-와. 나 드래곤 처음 봐!
-BJ님. 좀 더 가까이 가 봐요! 드래곤 모습 좀 보게!
-미쳤냐? 지금 해적들한테 잡혀 있잖아!
-알아서 빠져나가면 되잖아!
-지금 섬 박살 나고 있는데?
-알 게 뭐야! 궁금하다고!
방송의 리플들은 그야말로 폭주 중!
* * *
사실 방송을 하고 있던 플레이어는 별생각 없이 방송을 하고 있었다. 해적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잡았을 때는 틀렸다 싶었다.
‘에이, 한 번 죽고 다시 시작해야 하나…….’
페널티가 아까웠지만 이미 늦은 상황. 그는 포기하고 방송을 시작했다. 해적들한테 잡힌 것도 나름 재밌는 소재였으니까.
“빨리빨리 움직여라!”
“아니, 왜 우리한테 이러는 겁니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데!”
플레이어들은 갑자기 달라진 해적들의 모습에 항의했다. 해적 중 한 명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상단 놈들이 우리를 속였다.”
“네?”
“열심히 일했는데 안됐군. 너희들은 인질이 될 거다. 상단 놈들이 계속 건방지게 군다면…….”
뒷말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다행히 해적들의 태도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들이 여기 섬에 와서 노가다를 한 건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포로는 포로.
플레이어들은 구시렁대며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죠?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한 번 죽으려나?”
“상단 쪽에서 우리 구해줄 수도 있잖아요.”
“퍽이나 그러겠습니다. 상단이 우리를 위해서 돈을 낼 거라면 애초에 이러지도 않았겠죠!”
“상단이 해적들을 속였다는 건 뭐야?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물건이라도 속여서 판 거 아냐?”
“이유는 알아서 뭐 하게? 일단 어떻게 빠져나갈지 생각해봐야죠!”
“우리끼리 어떻게 빠져나가요? 전투 직업이 없는데.”
그랬다. 여기 모인 직업들은 거의 다 비전투 계열 직업. 예술이나 제작 쪽 직업들이었던 것이다.
태현처럼 대장장이를 들고 랭커들을 썰고 다녔던 게 이상한 거였지, 보통은 저렇게 싸움에 자신이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여기가 약한 곳도 아니고, 카테란드 해적단이 있는 섬이었다.
“괜히 빠져나가려다가 죽는 것보다는 여기서 좀 더 일하다가 해적들한테 퀘스트 받고 빠져나가는 게 낫지 않아요?”
“그것도 그러네요.”
물론 포로긴 했지만, 계속 있으면 해적들이 퀘스트를 줄 게 분명했다.
그걸 성실하게 해결하고 해결하다 보면 해적단 내에서 위치도 좀 올라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여러 가지 방법이 생길 것이다.
뭐든 간에 탈출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면 저는 다시 일이나 해야겠습니다. 아까 해적들이 시킨 일이 남아서…….”
“아. 저도 할래요!”
플레이어들은 주섬주섬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김지산이었다.
“올 겁니다.”
“……?”
“우리를 구해주러 올 겁니다.”
“누가요?”
“김태산 님이요.”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
“크핫핫!”
김지산은 당황해서 물었다.
“왜 웃으세요?”
“어? 농담 아니었어요?”
“농담 아니었는데…….”
그러자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농담이 아니었다고?
“아니, 그 인간이 왜 우리를 구하러 와요?”
“맞아. 그럴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우리를 속이고 여기로 데리고 왔겠어?”
사람들의 말에 김지산은 머뭇거리며 해명에 나섰다.
“그…… 그건 그냥 설명을 좀 덜 한 겁니다.”
“설명을 좀 했건 덜 했건 안 온다니깐요. 문제 생겼으니 도망쳤겠죠.”
“안 잡혔지? 운도 좋아. 이런 일 생길 때 밖에 있고.”
“맞아. 같이 당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투덜거렸지만 김지산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태현을 믿었다.
태현이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하던 걸 보면 절대로 문제가 생겼다고 도망칠 사람이 아니야!’
한 번 목표를 잡으면 무슨 일이 생겨도 반드시 끝까지 해내는 독종.
그게 김지산이 본 태현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도망친다고?
아니었다. 분명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야 했다!
‘그래야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지!’
받을 게 있는 사람만큼 간절하게 믿고 기다리는 사람도 드물었다.
“아. 안 온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퀘스트나 깨요. 그게 이익이니까.”
“올 겁니다!”
“그러면 내기라도 하시던가.”
“내기요? 무슨 내기?”
“만약 그 인간이 구하러 오면 내가 배 안 타고 헤엄쳐서 간다!”
“?!”
김지산은 당황했다. 그걸 본 남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거봐.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그냥 퀘스트나 하라니까.”
“좋습니다! 안 오면 제가 헤엄치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둘의 대화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남의 일!
둘 중 한 명은 바다에 들어가서 헤엄으로 육지에 가야 하는 상황이니 어찌 재미가 없을 수 있겠는가.
* * *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섬 곳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까 들리고…….
마지막에는 드래곤이 나타났다.
“?!?!”
“저게 뭐야?!”
“드, 드래곤 맞지?”
놀란 건 플레이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 주변에 있던 해적들도 놀라서 기겁했다.
“으아아아악!”
“드래곤이잖아!”
“살려줘!”
드래곤은 모습만으로도 해적들을 혼란 상태로 만들었다. 플레이어들을 지키고 있던 해적들은 나뉘어져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야! 어디 가!”
“돌아와! 이 자식들아!”
해적 부대장 몇 명이 부하들을 불렀지만 이미 혼란 상태에 빠진 해적들은 사방팔방으로 달려나갔다.
몇 명은 데넬손이 있는 곳으로, 몇 명은 절벽으로 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보는 플레이어들은 당황스러운 상황!
“이거 뭐냐?”
“지금 나가야 하나?”
“배도 없는데 어떻게 나가.”
“해적들이 흩어졌으니까 쓰러뜨리고 배를 뺏으면…….”
“다른 곳에 있는 해적들도 있지 않나?”
그리고 브레스가 섬 위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
그 견고하고 튼튼했던 섬의 요새가 완전히 갈갈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방송을 하던 플레이어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드, 드래곤이 나와서 브레스를…… 어…… 그러니까 브레스를…….”
* * *
-쿨럭, 쿨럭, 쿨럭!
“너 괜찮은 거 맞지?”
-나, 나는 괜찮…… 쿨럭.
‘이거 뭔가 불길한데.’
태현은 계속해서 마른 기침을 하는 골드 드래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렇게 기침을 하는 게 보통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일단 드래곤 덕분에 상황은 완전히 뒤집힌 상태였다.
섬 전체에 드래곤 브레스 폭풍이 작렬했고, 요새의 대부분이 박살이 난 상황.
왕국 해군이 도착하면 아주 신이 나서 올라올 것이다.
지하에 있던 해적들이 있긴 하겠지만 아주 쌩쌩한 상태인 왕국 해군과 비교한다면 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해적이 강해도 왕국 해군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크…… 크으윽…….”
브레스가 끝나고, 브레스 때문에 일어난 먼지가 사라지자, 거기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데넬손이었다.
“살아 있었냐?!”
태현은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아무리 강해도 그렇지, 이 드래곤 브레스 폭풍 속에서 살아남다니.
데넬손은 이를 갈며 목에서 목걸이를 뜯어냈다. 독특한 문양의 목걸이는 푸른색 빛을 희미하게 발하다가, 파직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비싼 아이템 끼고 있었군.’
태현은 저 목걸이가 뭔지 대충 알아차렸다. 드래곤 브레스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저 목걸이 안에 엄청난 방어 마법이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부서진 걸 보니 쓰면 사라지는 소모성 아이템? 하긴, 드래곤 브레스 막을 정도면 소모성이어야지. 영구라면 사기 아이템이고…….’
“너, 대체 정체가 뭐냐?”
데넬손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목걸이로 막고, 해적 마법사들이 보호 마법을 몇 겹을 걸었지만, 그런데도 드래곤 브레스는 정말로 강력했다.
HP도 크게 깎이고, 데넬손이 입고 있던 아이템들은 거의 박살이 난 상황. 게다가 그 강하던 최정예 해적들도 전멸해 있었다.
바다의 악몽이라고 불리던 최정예 해적들이 이렇게 쉽게 가버리다니.
“정체?”
“그래. 정체. 대체 정체가 뭔데 드래곤을 불러온 거냐!”
데넬손은 악을 쓰며 칼을 휘둘렀다. 태현은 배 위에서 가볍게 점프해서 섬 위로 착지했다.
이렇게 상황을 만들었으니 슬슬 결과를 손에 쥘 시간이었다.
해적들은 반파됐고, 데넬손은 무기 하나만 들고 있는 상황. 아무리 데넬손이 강하더라도 태현은 뒤에 루포와 골드 드래곤까지 있었다.
지금 싸우면 백전백승!
카카캉!
태현이 휘두른 칼을 데넬손은 막아내며 뒤로 물러섰다. 데넬손의 움직임은 일반 해적들과 차원이 달랐다.
엄청나게 민첩한 회피!
“내가 네놈을 과소평가했다는 걸 인정하지. 네가 이겼다는 것도! 하지만 나 데넬손, 절대로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네놈을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 주겠다!”
[해적대장 데넬손이 ‘해적의 저주’를 사용합니다!]
[회피 불가능한 저주입니다. 회피에 실패합니다.]
“?!”
데넬손의 손목에 검붉은색 사슬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뻗어 나와 태현의 손목을 감쌌다.
딱 봐도 불길한 겉모습!
“아니…… 물귀신도 아니고…….”
태현은 욕설을 하며 데넬손을 쳐다보았다. 잘생겼으면 잘생긴 놈답게 깔끔하게 갈 것이지, 이게 무슨 물귀신 같은 짓이란 말인가.
‘설마 쟤 죽으면 나도 죽는 것 같은 건 아니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저주는 있을 리 없었다.
‘저놈이 죽으면 데미지를 크게 입거나, 아니면 저놈을 죽이기 전에는 이 저주를 못 푼다거나…… 그 정도인가?’
신성 권능으로도 못 피하고 행운으로도 못 피하다니. 아주 지독한 저주가 분명했다.
데넬손은 태현이 당황한 걸 보자 기분 좋게 웃었다.
“크핫핫핫! 죽어라!”
데넬손이 칼을 휘두르자 푸른색 오러 줄기가 솟구치며 채찍처럼 사방에서 날아왔다.
‘못 피하나?’
한 방향에서 하는 공격이라면 보고 피할 수 있겠지만 전 방향에서 동시에 빠져나갈 곳이 없는 공격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태현은 피하는 걸 포기하고 앞으로 돌진했다. 데넬손이 쏘아낸 오러 줄기가 태현의 등을 후려갈겼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큭!”
태현이 휘두른 검에 다리를 베인 데넬손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섰다.
원래라면 피했을 테지만, 그도 스킬을 쓰느라 동작이 느려진 것이다.
“이상한 검에 이상한 기술을 쓰는군! 요리사!”
“뭐? 아. 그래. 요리사…… 네가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면야.”
태현은 다시 천천히 옆으로 돌며 데넬손과 눈을 마주쳤다.
싸움의 기본은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것.
데넬손이 지금 가장 싫어할 만한 짓은?
‘다시 다리!’
“이 자식이 진짜!”
데넬손이 욕설을 하며 태현을 찔렀지만, 태현은 한 대 맞겠다는 각오로 들어오며 다시 데넬손의 다리를 베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때린 곳 다시 때리기. 실제로 데넬손의 왼쪽 다리는 피가 줄줄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