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2화
완전한 상태의 해적단과 싸우는 건 승산이 없는 미친 짓이었다. 태현은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카테란드 해적단은 고대 신의 망령과 싸우고 있고, 거기에다가 곧 있으면 왕국 해군도 여기로 몰려올 것이었다.
숟가락만 얹으면 보상은 두둑하게 떨어지는,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루포는 망설이며 물었다.
“뭐야, 저 사람들 버리고 도망치자는 거야? 의외로 피도 눈물도 없군.”
“아,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아까 해적 백병대장 상대할 때 어머니를 욕하고 그랬었지?”
“아니라니깐요!”
둘의 대화를 들은 상단의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그 루포 씨가?”
“설마…….”
쏟아지는 시선을 받은 루포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아니라니깐요! 그냥 데리고 온 사람들만 구출해서 떠나자는 거였습니다! 아직 해적들은 정신이 없지 않겠습니까?”
고대 신의 망령이 섬의 가운데에서 깽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루포는 이 상황을 활용하면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여기야 배 있는 곳이니까 이 정도지, 사람들 갇힌 곳은 해적들 근처인데 거기 가면 무조건 싸워야 해. 데넬손 그놈이 호구가 아니라고. 우리가 다시 보이면 고대 신의 망령이고 뭐고 우리부터 잡으려고 할걸?”
데넬손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이런 와중에 둘이 다시 얼굴을 내밀면 반드시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싸우는 건 좋은데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지.”
태현의 말에 루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상단의 직원들 중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적었다.
게다가 상선에는 무기도 없고…….
“뭘로 준비합니까?”
“새로 얻은 권능을 써볼 생각이야.”
나중에 써보려고 했지만, 지금 쓰지 않으면 늦을 것 같았다. 태현의 말을 들은 루포는 눈을 크게 떴다.
“과연……! 그렇다면 승산이 있겠군요!”
“만약 써서 별거 아니면 그냥 도망치자고.”
“…….”
루포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저기…… 대화가 다 끝났으면 내 위에서 좀 내려와 주겠나?”
둘의 대화가 끝나자 밑에서 깔려 있던 마르셀 백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 *
신수 소환.
행운을 영구적으로 소모해서 신수를 소환하는 스킬.
딱 봐도 신수가 엄청나게 강할 거라는 게 예상이 됐다.
게다가 신수는 한 번 소환하면 되돌려 보내기 전에는 다시 소환할 수 없습니다.
‘급하다고 어설프게 했다가는 계속 후회한다.’
행운을 얼마나 써야 할까?
태현은 고민에 잠겼다. 이럴 때 정답은 없었다. 결국 태현이 선택해야 했다.
“태, 태현 님!”
“왜 불러?”
지금 고민하기 바쁜 시간에 왜 사람을 방해하나 싶었다. 상단 직원 중 하나가 저 멀리 언덕을 가리키고 있었다.
“……?”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냐!”
“……!”
데넬손과 그의 최정예 해적대원들이 우르르 언덕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뭐야?!’
태현은 정말 놀랐다. 고대 신의 망령은 딱 봐도 정말 강한 몬스터였다.
아무리 데넬손과 해적단들이 강하다지만 이 상황에서 이렇게 빨리 처리하고 올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정답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고대 신의 망령이 큰 소리로 외치며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비겁한 놈들! 감히 나를 피해 도망치느냐!
* * *
데넬손도 머리가 있었다. 태현이 데넬손과 고대 신의 망령을 싸움 붙이고 도망갔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고대 신의 망령이 날뛰니까 어쩔 수 없이 부하들과 함께 상대하고 있었던 것뿐.
그러나 부하들이 점점 쓰러지고, 태현이 달려간 곳의 부하들이 달려와서 큰일이 났다고 말하자 데넬손은 결심을 굳혔다.
‘섬의 중앙은 포기한다!’
고대 신의 망령이 섬의 일부분을 점령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태현은 반드시 죽이겠다!
적대도를 엄청나게 쌓은 탓이었다.
결심을 하자 데넬손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모두 나를 따라와라! 저놈에게서 도망친다!”
“?!”
고대 신의 망령을 두고 태현이 도망친 쪽으로 전원 달려오는, 극단적인 선택!
* * *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태현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섬 중앙에 있던 걸 다 버리고 태현을 잡으러 오다니.
“태현 님! 지금 그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닙니다!”
“알아. 지금 소환한다.”
적이 저렇게 몰려오고 상황이 위험해지자 오히려 태현은 냉정해졌다.
위험한 상황에서 실수를 하는 사람이 있고,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었다.
태현은 후자!
-신수 소환.
[행운을 얼마나 사용하겠습니까?]
태현은 저 멀리 해적들과, 그 뒤에서 또 따라오는 고대 신의 망령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결심이 굳었다.
-1105를 쓰겠다.
현재 태현의 행운은 2605. 1105를 쓰면 1500까지 내려갔다.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투자!
그러나 태현은 계산이 있었다.
‘1500일 때도 회피는 엄청났어. 물론 전체적으로 손해는 있겠지만, 내 스탯도 많이 증가했다. 버틸 수 있을 거야.’
[신수 소환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사용하는 행운은 1105. 현재 행운은 2605입니다.]
[원하시는 신수를 골라주십시오.]
‘응?’
갑자기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눈부신 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림자가 나타났다.
한쪽의 그림자는 크기는 작았지만 형태가 안정되어 있었다. 일렁거리지도 않았다.
다른 쪽의 그림자는 크기는 컸지만 불안정해 보였다. 뭔가 계속 일렁거리며 깜박였다.
‘의미가 있는 건가?’
저 두 개가 다른 신수라는 건 짐작이 갔다. 그렇지만 정확히 어떤 차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쪽은 안정적이고, 다른 한쪽은 더 강하지만 더 불안정한 그런 건가?’
태현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지금 시간을 끌 때가 아니었다.
‘크고 불안정한 놈!’
태현은 손을 뻗어 그림자를 움켜쥐었다.
[신수를 선택하셨습니다. 신수가 소환됩니다.]
[신수의 이름을 정해주십시오.]
“이름?”
생각해 보니 신수의 이름은 지어두지 않았었다. 저 정도 신수라면 계속 같이 지낼 테니 좋은 이름이 필요했다.
태현은 자신감 있게 입을 열었다. 그가 언제나 자신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작명 센스!
“킹갓엠페러마제스티제너럴…….”
[너무 길어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냥 킹왕ㅉ…….”
[신수의 이름에 따라 신수와의 친밀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하. 그냥 농담이었어.”
태현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무슨 신수인지 알 수 없나?”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랜덤으로 가자.”
[무작위 작명으로 하시겠습니까? 사용자의 취향에 맞춰서 무작위로 지어줍니다.]
플레이어 이름을 지을 때 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플레이어의 취향이나 그런 모든 걸 종합해서 읽어낸 다음, 무작위로 가장 적당한 걸 뽑아주는 방식.
저렇게 하면 실수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
[신수의 이름은 ‘용용이’입니다.]
“뭐?”
[5초 후 원래 세계로 돌아갑니다. 5, 4, 3…….]
“야! 용용이는 아니지!”
태현은 자신의 취향에서 저런 게 나왔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신수가 저런 이름을 좋아한단 말인가.
그러나 목소리는 무심하게 2,1을 세었다. 눈앞에 있던 빛이 사라졌다.
* * *
“저게 뭐야?!”
보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태현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대체 어떤 멋진 놈으로 소환이 되었을까?
“드래곤이다!”
“……!”
하늘에서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복잡한 마법진이 생겼다가 사라지더니, 거기서 엄청나게 큰 황금색 드래곤이 나타났다.
‘골드 드래곤?!’
태현은 감탄했다. 드래곤이라니.
아직 플레이어 중에서 드래곤을 잡은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드래곤 둥지에 찾아가서 죽은 플레이어들은 몇 명 있어도.
드래곤을 보기도 힘들었다. 드래곤은 보통 부하들을 시켜서 침입자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도적으로 드래곤 얼굴 보고 죽기> 같은 특집 방송 편이 엄청난 히트를 칠 정도로, 드래곤은 인기 있는 몬스터였다.
‘투자한 가치가 있구나!’
쓴 행운이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골드 드래곤은 허공에서 날개를 한 번 턴 후 섬을 내려다보았다.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주인이여. 내 주인이여.
“그래!”
-내 이름을 불러다오.
“……용용이…….”
-용용이?
골드 드래곤은 고개를 흔들었다. 태현은 긴장했다. 설마 저거 때문에 내 말을 안 듣겠다거나…….
-훌륭한 이름이군.
“……?”
-애정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냥 킹왕짱으로 해도 좋아했을 거 같은데?’
골드 드래곤이 들으면 화를 낼 소리!
“저, 저건 대체…….”
“겁먹지 마라! 드래곤을 부릴 수 있는 놈이 있을 리 없다! 저건 환상이다!”
“환, 환상?”
“그래. 환상이겠지?”
데넬손은 당황하는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그도 엄청나게 놀라기는 했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게다가 드래곤이라니. 인간이 드래곤을 부릴 수는 없었다.
“돌격해라!”
-감히 이놈들이 나를 두고!
고대 신의 망령이 화가 나서 뒤에서 외쳤다. 망령 전사들이 해적들의 뒤를 쫓아서 언덕을 올랐다.
그걸 본 골드 드래곤이 불쾌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천박한 놈들, 더러운 놈들이 가득하구나, 내 주인이여. 저들을 쓸어버리는 게 내 일인가?
“이런 똘똘한 녀석. 바로 그거야.”
-그러도록 하겠다.
후우우우우우우욱-
순간,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
해적 마법사 중 하나가 경악해서 외쳤다. 엄청난 마나가 저 드래곤에게로 모이고 있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환상이 아니었다.
“저, 저건 진짜 드래곤 같…….”
모인 마나는 금색으로 빛나는 덩어리로 변했다. 그리고 골드 드래곤의 입 앞에 집중되었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알아차렸다. 저건…….
“드래곤 브레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기둥이 섬 위로 내리 찍혔다.
* * *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환호성을 질렀다. 적을 공격해주는 것 아닌가.
“태현 님. 저는 감격했습니다!”
루포는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래, 저게 신의 화신이지!
콰아아아아!
“……?”
드래곤 브레스는 한 방으로 끝나지 않았다. 골드 드래곤은 연속해서 브레스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마치 섬 전체를 폭격하기라도 할 것 같은 기세!
“편하긴 편한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괜찮다. 이 정도는…… 쿨럭!
“너 방금 기침한 것 같은데?”
-착각이다. 주인. 나는 이 정도로 기침하지 않는다.
“저쪽에 갇힌 사람들은 공격하지 마!”
-알겠다.
골드 드래곤의 브레스가 땅바닥에 닿을 때마다, 금색으로 거대한 구가 생기고 크게 터져 나갔다.
어떤 마법사의 마법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위력!
그 난공불락으로 이름 높던 카테란드 섬의 요새가 완전히 파괴되어가고 있었다.
절대 기어오르지 못한다던 인공 절벽도, 마법탄을 무차별로 쏘아 보내던 마법 대포도, 섬 주변에 둘러진 온갖 함정도…….
드래곤 브레스 앞에서는 모두 한 방!
모조리 시원하게 쓸려 나가는 모습은 한 편의 영화에 가까웠다. 태현은 이걸 혼자 보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내가 시켰지만 정말 대단하군.’
물론 혼자 보고 있지 않았다. 갇혀 있는 사람 중에서는 이 장면을 다른 쪽에서 방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