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1화
“달려! 달려! 달리라고! 더 빨리 달리지 못해! 이 굼벵이보다 못한 놈아!”
“어흑흑!”
마르셀 백작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달렸다. 거만한 태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람을 강하게 다그쳐 일의 효과를 높였습니다. 전술이 증가합니다.]
[스킬 <가혹한 채찍질>을 얻습니다.]
<가혹한 채찍질>
일시적으로 HP와 MP를 깎고 다른 능력치들을 상승시킵니다.
‘…….’
저 거만한 백작을 눈물 콧물 흘리게 하며 달리게 만든 태현한테 딱 어울리는 스킬!
‘아니 내가 뭘 가혹하게 했다고…….’
그래도 스킬은 쓴다!
[가혹한 채찍질을 사용합니다. 마르셀 백작의 HP와 MP가 감소합니다.]
[전술 관련 스킬입니다. 명성과 악명의 영향을 받습니다.]
“헉! 허허헉!”
“태, 태현 님. 저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쓰러지면 해적들이 죽였다고 하자고!”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나오는 간단한 대답! 그걸 들은 마르셀 백작은 더 울상을 지었다.
“지금 저놈 움직이는 거 느리다고 맞춰줄 때야? 해적들 쫓아오면 네가 상대할래? 뛰어야지! 뒤처지면 알아서 살아라!”
저 멀리 해적들이 보였다. 해적들은 갑자기 태현과 루포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서 외쳤다.
“저놈들 뭐야?!”
“막아! 다른 놈들 불러!”
태현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크앗!”
“불러봤자 못 온다, 이것들아!”
행운의 일격으로 몇 배가 된 공격력에, 치명타는 거의 기본적으로 터지고, 거기에다가 망령 전사의 검까지.
한 대 맞으면 해적도 피가 쭉쭉 닳았다.
루포도 만만치 않았다. 상단 소속이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검술로만 따지면 엄청난 실력을 가진 NPC였다. 이런 해적들로는 막을 수 없었다.
“대장! 대장! 도와주십쇼!”
“뭐? 대장?”
해적대장이면 데넬손밖에 없었다. 태현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데넬손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서 덩치 큰 해적이 부하들과 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 백병대장.”
해적 백병대장도 대장은 대장이었다. 태현이 한눈을 파는 사이 해적은 기합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죽어라!”
[회피에 성공합니다.]
“…….”
태현과 해적의 시선이 마주쳤다.
“크아아아악!”
“이거 좀 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그사이 해적 백병대장이 달려왔다. 백병대장은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며 덤벼왔다.
쾅!
한 번 철퇴가 바닥에 찍히자 깊게 자국이 남았다. 제대로 맞았다가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위력!
“덩치가 왜 이렇게 커?”
“오크 혼혈이 아닐까요?”
루포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백병대장에게는 엄청난 도발이었다.
백병대장은 얼굴이 붉어져서 외쳤다.
“이 자식! 짓뭉개주마!”
그걸 본 태현은 감탄했다.
“루포. 대단한데? 저런 식으로 도발할 줄이야. 상대의 어머니를 공격하는 건 언제나 효과적인 도발이지.”
“아, 아니…… 그러려고 한 게 아닌…….”
루포가 아니라고 해봤자 이미 백병대장은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쾅! 쾅! 쾅!
한 방 한 방이 어마어마한 위력이었기에 일단 둘은 피했다. 그사이 다른 해적들이 달려들었지만…….
쉬쉭!
-질주하는 질풍의 원!
루포의 검이 빙글 돌려지며 스킬이 사용됐다. 달려들던 해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렸다.
“으악!”
“피해!”
뛰어난 정통 검사는 이렇게 싸운다는 걸 루포는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 정석적인 모습이었다.
공격이나 방어 한쪽에 치우친 게 아니라 균형을 맞춰서, 단단한 바위처럼 흔들림 없이 하나씩 하나씩.
활을 든 해적 몇이 화살을 쏘아도 루포는 당황하지 않고 피해내거나 막아냈다.
그에 비해 태현은 싸우는 모습이 전혀 달랐다. 정통 검사가 아닌 다양한 직업 스킬을 전부 키우고 있는 태현만의 강함.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공격을 퍼부었다. 방어는 거의 하지 않았다. 맞기 전에 천재적인 센스로 피하거나, 맞게 되면 행운을 믿고 회피 스킬로 피해냈다.
‘어차피 신경 써줄 것만 피하면 된다. 나머지는 행운이 있으니까.’
상대하는 해적들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태현의 공격력도 만만치 않은데, 움직임도 잽싼 것이다. 어떻게 둘러싸서 한 대 때려도 빗나가기 일쑤였다.
“이 자식 보통이 아니다! 조심해!”
“둘러싸서 동시에 찔러버려!”
-방어의 원!
태현은 가타콰 검법의 스킬을 사용했다. 이름은 방어의 원이었지만 실제로는 적이 많을 때 쓸 수 있는 공격용 스킬에 가까웠다.
원 주변에 달려드는 놈들을 이어서 공격하는 연속 스킬!
퍽! 퍼퍼퍽! 퍼퍼퍼퍼퍽!
빛이 튀며 태현의 검이 빠르게 돌았다.
“비켜라! 내가 상대하겠다!”
다른 해적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자 백병대장이 크게 외쳤다. 해적들이 급하게 자리를 벌렸다. 백병대장의 공격에 휘말릴까 봐 거리를 벌린 것이다.
“죽어라!”
백병대장은 철퇴를 밑에서부터 쓸어 올렸다. 철퇴에 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더니 넘실거렸다.
‘스킬인가? 피해도 되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피하기 힘들었겠지만 태현은 피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피하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스킬로 맞대응했다.
-반격의 원!
“아니, 태현 님?!”
옆에서 싸우던 루포가 깜짝 놀랐다. 저 스킬을 지금 쓰다니. 미친 것 아냐?!
“피하십시오! 뭐하는 겁니까!”
카카카카카캉!
원이 그려지고, 태현의 발이 살짝 뒤로 밀려났다. 워낙 강력한 스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병대장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커어어억!”
철퇴가 박살 나고, 백병대장이 뒤로 튕겨져 나가서 쓰러졌다.
[완벽한 타이밍으로 반격의 원을 성공시켰습니다. 반격의 원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검술 스킬이 오릅니다.]
“대장!”
해적들이 깜짝 놀랐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상대방이 쓰러졌을 때 완전히 쓰러뜨려야 했다.
[행운의 일격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행운의 일격!
순식간에 뻥튀기되는 공격력. 태현은 쓰러진 백병대장을 밟고 서서 정확하게 급소를 찔렀다.
“남아 있는 놈들은 모두 이렇게 해주마!”
[당신의 강함과 악명, 공포에 해적들이 겁을 먹습니다!]
[공포 스탯이 오릅니다.]
[협박 스킬 보너스를 받습니다.]
[스킬 <위압>을 얻습니다.]
<위압>
적들을 상대로 사기를 깎고 공포를 줍니다. 일정 이상으로 사기가 내려가고 공포가 올라가면 도망칩니다.
사기는 이런 싸움에서 꽤 중요한 스탯이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사기가 낮고 공포 수치가 많이 올라가면 도망치게 되어 있었다.
한 명이 도망치기 시작하면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 공포 스탯이…… 벌써 80이야?!’
공포 : 80
명성 : 900
악명 : 250
공포나 명성, 악명 같은 추가 스탯들은 힘, 민첩 같은 스탯보다 올리는 난이도만 따진다면 훨씬 올리기 쉬운 편에 속했다.
명성? 퀘스트를 깨고 NPC들을 도와주면 그냥 명성이 올랐다. 악명이나 공포는 그냥 아무나 붙잡고 죽이면서 플레이하면 됐다.
그렇지만 저 정도로 올리려면 본격적으로 작업…… 아니, 노가다를 해야 했다.
말이 좋아서 작업이지, 엄청난 노가다였다.
주로 명성 작업, 악명 작업, 공포 작업 이런 식으로 불리면서 명성을 많이 주는 퀘스트들을 찾아서 깨거나, 작정하고 NPC들을 학살하거나…….
그런데 태현은 벌써 공포가 80에 악명이 250이었다.
‘망령 전사의 검 때문인가?’
명성이 900이나 되니 악명의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슬슬 찜찜하기는 했다.
공포나 악명이 높으면 싸울 때 좋기는 했다.
공포 스탯이 높으면 상대방이 쉽게 겁을 먹었다. 거기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겁을 덜 먹었다.
악명도 명성처럼 여러 효과가 있으니 아주 쓸모없는 스탯은 아니었다.
‘근데 이렇게 계속 올라가도 되나?’
갑자기 불길해지는 게 사람 마음!
공포와 악명을 올리는 건 전형적인 악당 캐릭터로 가는 길이었다.
“살려줘! 살려줘!”
“저놈은 악마다!”
남아 있는 해적들은 모두 반대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누가 악마냐!”
“태, 태현 님. 일단 배로 가서 사람들을…….”
“그러자고.”
“그보다 그 반격의 원 스킬은 어떻게 쓰신 겁니까?!”
루포는 뛰면서 물었다.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썼냐니? 네가 가르쳐줬잖아. 아주 쓸만하던데? 너 왜 지하에서 그거 안 썼냐? 하여튼 폼은 많이 잡아요.”
“폼 잡은 거 아닙니다!”
루포는 억울해서 가슴을 쳤다. 폼을 잡았다니. 반격의 원을 쓰지 않은 건 쓰기 힘들어서였을 뿐이었다.
“그거 잘못 쓰면 그냥 ‘나 때려봐라’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스킬이란 말입니다!”
“아. 그랬어?”
태현은 몰랐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렸다.
루포로서는 뒷목을 잡을 만한 일!
‘저, 저 인간이…….’
“다 왔다. 빨리 올라가자!”
* * *
“어? 뭔 놈들이…… 커헉!”
“뭐야? 다른 놈들 다 어디 갔…… 크학!”
“기습이다! 기…… 컥!”
상선 위에 있던 해적들은 한마디씩 하고 쓰러졌다. 태현은 가차 없이 그들을 후려갈겼다.
“바다 위로 꺼져!”
휘두르는 칼을 막아내고, 발로 걷어차자 해적은 비명을 지르며 바다 위로 떨어졌다.
“태현 님! 루포 님!”
갑판 위에 묶여 있던 상단의 직원들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외쳤다. 루포는 재빨리 그들을 풀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여기 있나?”
“저희는 다 여기에 있습니다.”
“데리고 온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저기 섬 반대쪽에…….”
“…….”
상단의 직원들이야 상선 위에 있었으니까 해적들이 올라와 상선 위에서 가둬놨지만, 섬에 온 플레이어들은 섬 위에 있다가 잡혔으니 다른 곳에 갇혀 있었다.
“태현 님. 어떻게 해야 합니…… 뭐하십니까?”
“응? 신호탄 찾고 있잖아. 어디다 뒀냐?”
“그, 데리고 온 사람들은…….”
“데리고 온 사람들? 일단 왕국군부터 부르고 생각하자고. 신호탄 어디 있어?”
“저, 저기 통 옆의 상자에…….”
태현은 숙련된 손놀림으로 재빨리 신호탄을 꺼냈다.
마법 신호탄:
마탑에서 품질 보장한 정품 신호탄이다. 유사품에 속지 마라.
‘……?’
뭔가 이상한 설명이었지만, 태현은 일단 신호탄을 작동시켰다. 중요한 건 왕국군이었으니까.
펑! 펑! 퍼퍼퍼펑!
허공으로 마법 불꽃이 솟구치더니 밝게 퍼져나갔다. 아주 멀리에서도 볼 수 있는 불꽃이었다.
“해적들도 다 봤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데넬손도 봤겠지?”
“아마 그렇겠죠?”
“화가 많이 났을 것 같은데, 그냥 배 띄우고 튈까?”
“…….”
모두가 생각하고 있지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바로 꺼내는 게 바로 태현이었다.
“그러는 게 좋겠군!”
그리고 대답한 건 마르셀 백작이었다. 아까 치열한 싸움에서도 용케 다치지 않고 배 위까지 올라온 마르셀 백작은 허겁지겁 외쳤다.
“당장 배를 띄우고 육지로 가야 해! 해적 놈들이 정신이 없을 때가 기회야! 왕국군들이 어느 정도는 막아주겠지!”
퍽!
“으허억!?”
태현은 마르셀 백작을 발로 걷어찼다. 쓰러진 마르셀 백작을 발로 밟고,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미안. 도망은 그냥 해본 말이었어.”
“컥! 도망치지 않겠다는 거냐? 저기 해적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냐!”
“보이지. 보이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고대 신의 망령이랑 해적들이랑 치열하게 싸우고 나면, 이제 왕국군까지 올 텐데…… 아무리 카테란드의 해적들이라고 해도 좀 힘들지 않을까?”
이이제이!
적으로 적을 공격하게 만든다. 지금 태현의 눈에 보이는 건 대박의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