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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70화 (70/1,826)

§ 나는 될놈이다 70화

“이 건방진 놈들이…… 나는 보이지도 않냐!”

그러나 그사이 데넬손과 해적들은 포위망을 거의 끝내가고 있었다.

지하 감옥과 창고가 부서지는 건 뒷목을 잡을 정도로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데넬손은 화가 나는 와중에도 포위망을 완성시켰다.

저 두 놈이 그사이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까.

“당장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이 사기꾼 같은 도둑놈들아!”

“나! 나 항복이야!”

마르셀 백작이 폴짝폴짝 뛰며 해적들에게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나 단단히 화가 난 해적들한테 마르셀 백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항복해라! 항복하지 않으면……!”

“항복하면 뭐 달라지나?”

듣던 태현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뭐라고?”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주고 그런 건가?”

“어…….”

말하던 해적은 고개를 돌려 데넬손을 쳐다보았다. 데넬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러면 뭐가 좋은데?”

“어…… 항복하면 깨끗하게 죽여주겠다!”

“항복을 안 하면?”

“죽는다!”

“별 차이가 없잖아?”

“……닥쳐라! 공격! 공격!”

말을 거는 사이 태현과 루포는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고대 신의 망령이 밑에서 올라온 탓에 그 위 건물까지 전부 박살이 난 상황.

덕분에 부서진 돌덩이들이 많아 몸을 숨기기에는 적합했다.

파파파파팟-

해적들이 쏘아내는 화살들이 거세게 날아왔다. 둘은 돌덩이 뒤에 몸을 숨겼다.

“으악! 으악! 항복이라니까!”

마르셀 백작은 비명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태현은 그걸 보고 신기해했다.

“이야. 그래도 용케 피하네?”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어요!”

“그러면 저 화살들 사이로 돌진하자고? 나야 괜찮겠지만 너는 좀 많이 아플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사실 저 밑에서 고대 신의 망령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태현이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걸 본 루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방금까지 그들을 쫓아오던 고대 신의 망령.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길 수 있나?’

저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화난 해적들과 저 밑에 있는 고대 신의 망령. 둘 중 누가 더 끔찍한지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그…… 래도 됩니까?”

“야. 나도 저 정체 모르는 놈이랑 싸우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어쩌겠어. 저기 해적들이 얌전히 지나가게 해주지는 않을 거 아니야.”

태현의 말이 맞았다. 여기 몰린 해적들이 갑자기 비켜주지는 않을 테니까.

포위를 뚫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왜 안 나오는 겁니까?”

“나도 그걸 생각하고 있었지.”

“……설마 밖으로는 못 나오는 거 아니죠?”

“에이, 설마…….”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서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 밑의 괴물이 안 나오면 해적들을 상대하기가 힘들어지는데.’

“권능은요?”

“뭐?”

“아키서스의 권능을 얻으신 거 아닙니까?”

“아. 얻었지.”

“지금 써야죠! 지금 아껴둘 땝니까?”

“아껴둔 게 아니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데.”

태현은 말과 함께 새로 얻은 스킬을 확인해보았다.

<신수 소환>

행운을 영구적으로 소모해서 신수를 소환합니다. 신수는 한 번 소환하면 되돌려 보내기 전에는 다시 소환할 수 없습니다.

‘응?’

뭔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달랐다. 공격 스킬도 아니고 방어 스킬도 아니고 소환 스킬.

게다가 행운을 영구적으로 소모해서 부르는 스킬이었다.

‘사냥꾼이 부리는 동물 같은 건가? 음…….’

행운을 영구적으로 소모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한 번 소환하면 되돌려 보내기 전에는 다시 소환할 수 없다니.

태현은 알아차렸다. 이 스킬은 괜히 행운을 아꼈다가는 아까운 행운만 손해 볼 수 있었다.

스킬을 쓴다면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했다.

‘어느 정도로…….’

“헉, 헉! 죽는 줄 알았네! 저놈들은 명예도 없나!”

고민하는 사이 마르셀 백작이 몸을 던져서 굴러들어왔다. 루포와 태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마르셀 백작을 쳐다보았다.

마르셀 백작은 땀투성이가 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태현을 보며 어색하게 말했다.

“도, 도망칠 거면 나도 같이…….”

“…….”

태현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뻔뻔함! 그러나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종이를 꺼내서 내밀었다.

“이게 뭔가?”

마르셀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다가 ‘나 마르셀 백작은 김태현한테 목숨을 구원받는 은혜를 받았고 그걸 반드시 갚겠다’고 써. 거기 뒤에다가는 ‘갚지 않을 경우 나는 명예고 뭐고 없는 쓰레기다!’도 같이 쓰고.”

“뭐, 뭐라는 거냐! 내가 그런 걸 왜 써야 하냐!”

태현은 대답 대신 마르셀 백작을 붙잡았다.

그리고 돌덩어리 위로 들어 올렸다. 아직 해적들은 화살을 무차별적으로 쏘고 있었다.

“으아악! 으아아아악! 내려줘! 내려줘!!”

마르셀 백작은 기겁해서 외쳤다.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계약서를 쓸 생각이 들었냐? 응?”

“쓴다! 쓴다고! 쓸 테니까 내려줘!”

“더 공손하게! 더 절실하게 말해!”

“쓸 테니까 내려주십시오!”

[협박에 성공합니다.]

[협박 스킬이 상승합니다. 화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 * *

“흑흑…… 이런 나쁜 놈들…….”

억지로 계약서를 쓰게 된 마르셀 백작은 옆에서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곱게 품속에 종이를 넣었다.

나중에 돌아가게 되면 이걸로 두둑하게 벌 수 있을 것이다.

“저것들이…… 들어가서 잡아 와라!”

화살을 쏟아부어도 둘이 나오질 않자 데넬손이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예!”

해적들이 칼을 뽑아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루포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 망령 놈 안 나오는 거 아닙니까?!”

“으윽…….”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태현은 고민에 빠졌다. 신수를 지금 소환해야 하나?

신수는 함부로 소환할 수가 없었다. 딱 봐도 잘못 소환했다가는 일이 꼬이기 좋은 스킬.

여기를 빠져나가서 좋은 시간에 좋은 장소를 잡고 여유롭게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지가 않았다. 뭐든 좋으니 써야 했다.

콰콰콰콰콰쾅!

그러나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다. 다시 한번 폭음이 터지더니 고대 신의 망령이 지하에서 솟아 나온 것이다.

-내가 올라왔다, 이 도망자 놈들!

“망령!”

“믿고 있었어!”

-뭐라고?

고대 신의 망령은 도망치던 둘이 환호하며 자신을 쳐다보자 당황했다.

데넬손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건 뭐냐?”

“지…… 지하에 있던 괴물인가 봅니다.”

“상단 놈들이 찾던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상관없다. 같이 죽여 버려라! 마법사들은 준비됐나?”

“예, 예!”

카테란드 해적단은 규모가 컸다. 소속된 마법사들도 있었다.

원래라면 마법을 쓰지 않고 저 둘을 붙잡아서 아주 호된 맛을 보여주려고 했었지만, 고대 신의 망령이 나오자 생각이 바뀌었다.

“마법으로 저 주변을 날려버려라!”

“예!”

우우우웅-

당연히 그 소리는 태현과 루포한테도 들렸다. 마법사들이 꽤나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는 것 같자 둘은 당황했다.

“어떻게 할까요?!”

루포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현은 침착하게 방법을 생각해냈다.

“망령!”

태현은 고대 신의 망령을 향해 소리쳤다. 고대 신의 망령은 태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

“저놈들이 너를 공격하려고 한다! 마법에 대비해!”

-후계자여. 네가 왜 나를 걱정하느냐?

“그야 네 상대는 나니까 그렇지! 다른 놈들한테 지지 마라!”

-감동적이구나! 당연히 그러도록 하겠다!

고대 신의 망령은 몸을 솟구치더니 검은색 덩어리들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이, 이런! 막아라! 마법사들을 보호해!”

목표가 된 해적 마법사들은 기겁해서 몸을 움츠렸다. 해적들은 방패를 들고 와서 마법사들 앞에 달려들었지만, 고대 신의 망령이 쓰는 마법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한 번 맞을 때마다 대형 방패를 든 해적들이 튕겨 날아갔다.

“저놈이 너무 강합니다!”

“젠장! 안 되겠다! 방어막부터 펼쳐!”

공격하려던 해적 마법사들은 이를 갈며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일단 목숨이 중요했다. 공격하기 전에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적과 적을 싸우게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술이 증가합니다.]

[스킬 <이이제이>를 얻습니다.]

혓바닥 하나로 적과 적을 싸우게 만드는 스킬. 태현이 하고 있는 짓과 정확히 일치했다.

고대 신의 망령은 과연 지하 던전의 보스다웠다. 몇 번의 공격으로 해적 마법사들의 발이 묶이자, 다음에는 부하를 소환했다.

-일어나라, 나의 전사들이여!

어둠이 뭉클거리며 끓어올랐다. 주변의 땅이 검게 물들고 거기서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익숙한 몬스터들이 걸어 나왔다.

망령 전사였다.

-싸워라, 나의 전사들이여!

망령 전사들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타난 언데드들의 모습에 해적들은 기겁했다.

“저게 뭐야?”

“대체 저런 놈이 어디서 나온 거지?”

“시끄럽다! 한눈팔지 마라. 적이 좀 늘었을 뿐이다! 쏴서 때려눕혀라!”

놀라긴 했지만 역시 카테란드 해적단은 만만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혼란을 수습하고 전열을 재정비했다.

“공격!”

파파파팍!

-질풍의 화살!

-트레칼로의 독화살!

해적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궁수들은 있었다. 화려한 효과가 터져 나오며 망령 전사들을 때려눕혔다.

그러나 망령 전사들은 꾸준히 전진했다. 동료를 방패 삼아서 전진하는 망령 전사들!

“으랴앗!”

망령 전사들이 가까워지자 해적들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카카카캉-

해적들의 외날검과 망령 전사의 검이 맞부딪혔다. 불꽃이 튀며 고함이 울려 퍼졌다.

-죽어라 하찮은 인간!

“크억!”

망령 전사는 독특한 싸움 방식을 갖고 있었다. 해적이 칼을 휘두르면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은 다음, 동시에 때리는 것이다.

뼈를 주고 뼈를 치는 언데드다운 싸움 방식.

쓰러지는 망령 전사도 몇몇 보였지만 망령 전사는 생각보다 더 튼튼했다. 쓰러지는 해적들이 더 많이 보였다.

“이런 건방진 언데드 놈들이!”

그걸 본 데넬손이 폭발해서 달려들었다. 그가 달려들어서 칼을 휘두르자 망령 전사 둘이 그대로 날아갔다.

-거센 바다의 검!

물결이 몰아치더니 망령 전사들을 후려쳤다. 데넬손의 실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걸 본 태현이 루포에게 물었다.

“이야. 더럽게 세네. 이길 수 있겠냐?”

“…….”

태현과 루포는 고대 신의 망령이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반대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길을 막는 해적 몇 명 정도는 루포와 태현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고, 해적들이 고대 신의 망령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것 같자 여유가 생겼다.

언덕 위에서 데넬손이 싸우는 걸 구경할 정도의 여유!

망령 전사들을 쓰러뜨리던 데넬손은 고대 신의 망령이 쏘아낸 마법을 후려쳐서 막아냈다.

“크윽!”

그리고 나서 눈에 들어온 것은 태현과 루포가 언덕을 지나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데넬손은 갑자기 혈압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헉. 이쪽을 쳐다본다!”

마르셀 백작이 데넬손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외쳤다.

“걱정 마. 망령들이랑 싸우느라 못 쫓아올 테니까. 가자!”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고대 신의 망령은 태현이 도망치는 것도 모르고 신나게 해적들을 패고 있었다.

-나를 쓰러뜨려 봐라, 인간들이여! 으핫핫핫핫!

“이 영원히 저주받을 언데드 놈이 감히 내 섬에서!”

데넬손이 양손검을 뽑아 들더니 달려들었다. 뒤에 있던 마법사들이 일시에 마법을 걸었다. 버프 마법으로 인해 데넬손의 몸이 눈부시게 변했다.

그 모든 모습을 구경하던 최명성 팀장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누가 보면 저놈이 영웅인지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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