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9화
창고의 문은 머지않아 열렸다. 마법사들은 데넬손이 화를 내자 쩔쩔매며 급히 움직였다.
“놈들은?!”
“여, 여기 구멍을 내고 밑으로 내려간 것 같습니다.”
“왜 구멍을 내고 내려간 거지?”
“…….”
대답하는 해적들은 없었다. 그들도 이유를 몰랐다. 데넬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 상단 놈들이 이 밑에 무언가가 있어서 여기 온 거였구나!
그들도 모르는 비밀이 이 밑에 있었다니. 데넬손은 심각하게 얼굴을 굳혔다.
“이 주변을 완전히 포위해라. 놈들이 안 올라올 수는 없겠지. 올라오는 순간 즉시 붙잡아서 내 앞으로 데리고 와라!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
“예!”
상단 놈들이 이렇게까지 해서 얻어내려고 할 비밀이라면 분명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데넬손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그렇게 된 거다.”
“백작놈 때문이잖아!”
태현은 울컥해서 외쳤다. 데넬손의 뛰어난 머리는 무슨. 저 눈치 없는 마르셀 백작이 주절거리지만 않았어도 들키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 하하…… 미안하네. 나는 몰랐지.”
저 멀리 마르셀 백작이 보였다. 그는 해적들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그가 무슨 짓을 한 지 안 것 같았다.
루포와 태현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마르셀 백작은 시선을 어색하게 피했다.
계속 노려보자 마르셀 백작은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아니, 내가 알고 그런 게 아니지 않나! 누가 그렇게 시끄럽게 움직이라고 했나!”
“…….”
태현보다 루포가 더 열 받아 하고 있었다. 태현은 루포를 말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놈을 팰 때가 아니었다.
그 순간 뜨는 메시지창!
<카테란드 섬을 탈출하라>
카테란드 해적단의 대장 데넬손은 그를 속인 사람들에게 매우 분노한 상태다. 그를 속이고 명예를 더럽힌 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방법을 다 쓸 게 분명하다.
데넬손과 그 밑의 해적단을 따돌리고 살아남아라. 살아남을 수 있다면 당신의 이름은 한동안 전설이 될 것이다.
보상: ?, ??, ??
‘전설이고 뭐고…….’
해적단을 속이고 따돌릴 수 있다면 한동안 명성이야 얻겠지만, 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러나 퀘스트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탈리 왕국군 협력 퀘스트-카테란드 해적단 섬멸 작전>
당신은 정의로운 마음으로 카테란드 해적단을 속이고 들어오는 데에 성공했다.
‘응?’
뭔가 퀘스트 설명에 이상한 게 있는 것 같았다. 정의로운 마음이라니. 태현은 다시 읽었다.
<아탈리 왕국군 협력 퀘스트-카테란드 해적단 섬멸 작전>
당신은 정의로운 마음으로 카테란드 해적단을 속이고 들어오는 데에 성공했다.
당신의 정보를 들은 아탈리 왕국 해군은 함대를 이끌고 카테란드 섬 주변에 도착했다.
그들과 협력해 카테란드 해적단을 섬멸한다면 왕국에서 당신의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보상: ?, ??, ??? 아탈리 왕국 접견 기회.
“……!”
생각해 보니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아탈리 왕국 해군이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루포를 시켰는데, 벌써 와 있단 말인가.
‘하긴, 왕국 해군이라면 해적들에게 많이 시달렸을 테니…….’
신호만 하면 올 수 있을 것이다. 태현은 가능성이 조금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퀘스트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위대한 탈출-사람들을 구해라>
섬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만이 아니다. 맥크레니 상단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섬에서 해적들에게 갇혀 있는 상황.
그들을 버리지 말고 같이 탈출하라. 만약 성공한다면 당신의 이름은 그 고결함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보상: 구출한 사람들의 숫자에 따라 신성, 명성 획득. 아키서스 교단의 이름이 더 빠르게 퍼져나감.
“!!”
태현은 고민에 빠졌다. 데리고 온 사람들까지 구출해 나가라고?
이건 아키서스의 화신과 관련된 퀘스트 같았다. 신의 화신이니만큼 사람들을 구하는 위대한 일을 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들어오는 거겠지.
실제로 신성이나 명성, 이름이 빠르게 전파되는 건 매우 좋은 보상이었다.
‘여기 끌려온 사람들이 대충…….’
간단하게 계산해도 신성과 명성을 몇 배로 늘릴 수 있는 기회!
명성은 몰라도 신성은 태현에게 매우 중요했다.
‘회피로 모든 걸 피할 수는 없어.’
태현의 스탯은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압도적이었지만, 약점도 분명했다. 레벨 업이 힘든 것이다.
공격을 최대한 피하거나, 막아서 데미지를 줄여야 했다.
전자는 강력한 행운이 있으니 대부분의 공격은 회피가 가능하지만, 회피 불가능한 공격이 문제였다.
‘그걸 보완해 주는 게 <신성 권능>이다.’
<신성 권능>.
신성에 따라 받는 데미지를 낮추는 간단한 패시브 스킬이었지만, 절대로 약한 스킬이 아니었다.
레벨 업이 힘든 태현은 이 두 가지 방어에 전념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신성은 매우 필요한 스탯이었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출해서 데리고 나갈 수 있느냐, 였다.
‘솔직히 혼자 나가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시끄럽다! 빨리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몸에 구멍 하나 뚫어주고 시작해주지!”
고민하는 동안, 해적이 짜증이 났는지 그렇게 외쳤다. 사실 꽤 기다린 편이긴 했다.
태현은 고개를 들었다. 저 밑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드디어 왔나.’
“태, 태현 님.”
루포도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설마…… 아니죠?”
고대 신의 망령이 엄청나게 강력하기는 했지만, 던전 안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은 던전을 지키는 수호자 같은 거였으니까!
그러나 밑에서 들리는 소리는 루포의 기대를 배신했다.
“맞는 것 같은데.”
태현은 씩 웃었다.
그리고 바닥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 * *
-감히! 나를! 두고! 도망치다니! 후계자여!
“으아아아악!”
“이게 뭐야!”
해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저 지하에서 갑자기 검은색 거대한 게 솟구쳐 나오더니 모조리 때려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안에 있다가는 갇혀 죽기 딱 좋은 상황!
“태현 님! 갑시다!”
덕분에 포위망도 풀렸다. 루포는 속으로 감탄했다. 설마 저걸 기다리고 있었다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해적들에게 잡혀가는 게 싫어도 그렇지, 저런 괴물을 기다리는 건 미친 짓 아닌가.
“저, 저거…….”
“예?”
태현은 아쉽다는 듯이 고대 신의 망령을 쳐다보았다. 그가 올라온 곳 밑으로, 창고의 보물들이 쏟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아까워 죽겠네!’
“아니, 지금 저거 신경 쓸 땝니까?!”
“시끄러. 아까운 건 아까운 거지.”
태현은 말을 마치고 바로 움직였다. 그 와중에 해적 중 하나가 태현을 막으려 했지만…….
“젠장. 그래! 어쩔 수 없지!”
[망령 전사의 검을 착용합니다. 악명이 증가합니다. 계속 착용하고 있을 경우 불운한 일이 일어납니다.]
악명이고 불운이고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해적들의 수준은 만만치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했다.
태현은 망령 전사의 검을 들었다. 겉에서 풍기는 불길한 기운에 해적이 움찔하고 물러섰다.
“그, 그게 뭐냐?”
대답 대신 돌아온 건 태현의 공격!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크아악!”
해적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한 대 맞았는데 피가 절반 넘게 빠져나가고 시야가 흔들렸다.
“이 자식!”
루포야 딱 봐도 검사였지만, 태현은 요리사로 알려져 있었다. 상단이 데리고 온 요리사가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대 맞으니 바로 생각이 달라졌다.
[상대가 저주에 걸렸습니다. 지속적으로 저주 데미지를 받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거 되게 신경 쓰이네.’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지금 악명을 신경 쓸 수는 없었다. 태현은 바로 해적에게 달려들었다. 치명타를 맞았지만 해적은 다시 방어를 하려고 자세를 잡았다.
‘검을 쳐내고…….’
왼쪽으로 찌르는 척을 하자 해적이 움찔해서 검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태현은 바로 몸을 틀어 검을 후려쳤다.
온갖 종류의 싸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만이 가능한 전투 방식!
가상현실게임에서 중요한 건 스탯이나 스킬 레벨뿐만이 아니었다.
개인의 센스도 중요했다. 아무래도 실제 몸을 움직여서 싸우는 것이다 보니, 아무리 스킬 레벨이 높고 스탯이 높아도 몸치라면 싸우는 게 힘들었다.
물론 상대방과 스탯 차이가 너무 심하다면 몇 대 맞아도 데미지가 없거나, 아예 느리게 보이겠지만, 태현의 스탯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타고난 전투 센스까지 더해지니 해적 정도로는 상대할 수가 없었다.
“크아아악!”
“가자! 루포!”
“예!”
[카테란드 해적단의 일원을 쓰러뜨렸습니다. 카테란드 해적단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적대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집단에서 당신을 공격합니다.]
우르르 뜨는 메시지창들. 그러나 태현은 신경 쓰지 않고 넘겼다.
카테란드 해적단이 암살자를 고용해서 태현한테 보내더라도 지금 그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뒤에서는 고대 신의 망령!
앞에서는…….
“태, 태현 님.”
“에이…….”
태현은 혀를 찼다. 밖에서 데넬손과 그의 부하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 * *
데넬손은 부들부들 주먹을 떨었다.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많이 화난 것 같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루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무너지는 건물에서 빠져나오기는 했는데, 저 멀리서 우르르 몰려오는 해적들을 뚫는 건 힘들어 보였다.
“켁, 케헥…… 이봐! 날 좀 도와줘! 아무도 없나!”
부서진 건물에서 콜록거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마르셀 백작이었다.
“하, 하하…… 안 도와줘도 될 것 같군. 내가 알아서…… 치우고…… 나오지.”
마르셀 백작은 둘의 시선이 동시에 쏟아지자, 헛기침을 했다.
“지금 죽이면 해적이 죽인 걸로 처리되지 않을까?”
태현이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루포는 뜨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저거 지금 살려봤자 또 우리 엿먹일 거 같은데…….”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도 모르고, 마르셀 백작은 천진난만하게 달려왔다.
“어떻게든 빠져나왔군. 자! 나를 데리고 돌아가 주게!”
“지금 저기 몰려오는 해적들 안 보이나?”
“어…….”
마르셀 백작은 고개를 돌렸다. 살기등등한 얼굴로 해적대장 데넬손이 포위망을 다시 만들고 있는 게 보였다.
건물이 무너지고 부하들이 죽어도 데넬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소란으로 태현이나 루포가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망부터 만들었다.
과연 해적대장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
마르셀 백작은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해적들에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항복! 항복! 나는 항복이야!”
“저, 저거…….”
루포는 울컥해서 한 대 때리려고 했지만 태현이 팔을 잡았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하죠?”
“포위망을 뚫고 나가서 왕국군을 불러야지. 왕국군은 어떻게 부르게 되어 있지?”
“신호탄을 쏘면 왕국군이 오기 시작할 겁니다.”
“신호탄은 어디 있고?”
“저희 배에 있죠.”
“그리고 그 배는…….”
“……해적들이 벌써 점령했을 테고요.”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으면 해야지!
“가자. 왕국군을 불러야 해.”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되게 해야지!”
둘이 지하로 내려간 게 들켰으니 당연히 상단의 배도 해적들한테 뺏겼을 것이다.
신호를 보내려면 배로 가서 신호탄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