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3화
태현은 시무룩해진 루포를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금이었다.
목표는 해적단 요새의 지하!
“어, 그런데…….”
“왜?”
“어떻게 들어가죠?”
“어떻게 들어가냐니. 은신을 써야지.”
“예. 그렇긴 한데, 제가…….”
“아.”
루포는 은신을 쓸 줄 몰랐다. 태현은 혀를 찼다. 이런 곳에서 발목을 잡힐 줄이야.
‘이런 무능한 놈.’
루포가 들었다면 억울해서 가슴을 칠 소리였다.
“어떻게 하죠?”
“으음…….”
루포를 두고 가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저 밑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루포 같은 고렙 NPC는 전투가 벌어지면 정말 든든한 존재!
“어쩔 수 없군.”
* * *
땅, 땅, 땅-
두 대장장이 플레이어, 김지산과 박성찬은 오늘도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같이 끌려온 대장장이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퀘스트는 대장장이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하는 퀘스트였다.
박성찬이 김지산에게 조용히 물었다.
“야. 그 사람 어디 갔는지 알아냈어?”
“아직. 그냥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안 되냐?”
“안 된다니까, 이 자식아! 좋은 건 혼자 가져야지!”
박성찬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지금 여기 대장장이들이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들이 만약 태현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된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몰려들어서 친해지려고 애쓸 게 분명했다.
그만큼 대장장이들에게 앞서가고 있는 고렙 대장장이들은 대단한 존재였다.
“지금 분위기 보면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박성찬은 중얼거렸다. 실제로 여기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태현은 ‘그 개자식’이나 ‘복면 사기꾼’으로 불리고 있었다.
“알면 달라진다니깐. 다들 자기가 원하면 굽신거리게 되어 있어!”
“그런가?”
다들 쉬는 시간만 되면 구시렁거리며 태현을 욕하고 있었다.
“어이. 거기.”
“……?”
둘은 고개를 돌렸다. 배에 같이 타고 있던 상단의 직원이었다.
태현과 루포는 둘만 온 게 아니었다. 그들의 일을 도와주는 배의 선원들과 상단의 직원들도 같이 데리고 왔었다.
물론 여기 속아서 온 플레이어들에게는 원망의 대상!
“무슨 일이십니까?”
그래도 상단의 직원은 직원.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아쉬운 건 그들이었으니까.
“따라와라. 할 일이 생겼다.”
“할 일이요?”
둘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섰다. 할 일이라니.
“또 다른 퀘스트인가?”
“노가다는 지겨운데…….”
“야. 여기서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그렇구나!”
해적들이 시키는 일보다는 상단이 시키는 일이 나을 게 분명했다.
“빨리 가자!”
다른 플레이어들은 각자 자기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은 재빨리 직원을 따라 움직였다.
* * *
“헉!”
김지산과 박성찬은 깜짝 놀랐다. 상단의 직원이 몰래 안내한 곳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중갑옷이 아닌, 코트를 걸친 가벼운 겉모습에, 복면을 한 얼굴.
바로 태현이었다. 옆에는 상단의 뛰어난 검사로 알려진 루포가 있었다.
둘은 어안이 벙벙해져 서로를 쳐다보았다.
“설마…….”
“우리의 정성에 감동해서?”
“가르쳐주려고?!”
그러나 태현은 냉정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
둘은 시무룩해져서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럼 뭡니까?”
“해줘야 할 일이 있어서. 저번에 해적들에게 말 걸었던 거 기억하지?”
주의를 끌기 위해 해적들에게 말을 걸었었다. 물론 덕분에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더 많이 받게 됐지만.
“예.”
“그거 한 번 더 해달라고.”
“……?”
둘은 얼굴을 찡그렸다. 노골적으로 하기 싫은 표정이었다.
“왜? 저번에 좋았잖아?”
“예? 좋기는 뭐가 좋아요?!”
“일만 더럽게 했는데!”
“해적 놈들이 얼마나 일을 시켰는데!”
둘은 울컥해서 떠들었다. 평소에 즐겁게 하던 대장장이 일과는 전혀 달랐다.
해적들의 구박을 들으며 시간에 쫓기는 일!
그러나 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좋은 거 아닌가?”
“???”
“공짜로 장비를 만질 수 있는 기회잖아. 그것도 만만한 장비도 아니고.”
둘은 태현이 진심으로 저렇게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 저게…… 고렙 대장장이구나!’
‘과연 다르다!’
아예 사고방식이 다른 수준!
태현과 그들은 생각부터가 차이가 났다.
태현이 게임을 키면서 ‘아, 이제 좀 쉬어야지’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게임을 끄면서 ‘아, 이제 좀 쉬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저렇게 진심으로 말하는 태현을 보니 새삼스럽게 감탄이 나왔다.
“아, 아니. 그래도…… 힘들고…… 일도 많고…….”
“그래야 스킬이 오르잖아?”
“다른 사람들도 막 힘들어하고…….”
“뭐야. 이런 경험을 공짜로 시켜주는데도 싫어한단 말야? 이해가 안 되는군.”
옆에서 듣던 루포가 작게 속삭였다.
“보통 일을 그렇게 많이 시키면 싫어합니다.”
“배가 불렀네. 어쨌든 하기 싫다는 건가?”
“네?”
태현의 질문에 두 대장장이는 서로 쳐다보았다. 둘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아니,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시켜주시면 하겠습니다. 다만!”
“다만?”
“저희가 열심히 하면 그쪽…… 잠깐. 그런데 이름이 뭐였죠?”
아직까지 태현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별명을 붙여서 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
“김?”
“김태산.”
별생각 안 했기에 갑자기 나온 건 익숙한 이름이었다.
태현의 아버지 이름!
그렇지만 말하고 보니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사고를 쳐도…….
‘아버지한테 돌아가잖아?’
물론 김태산이라는 이름을 갖고 다니는 플레이어가 한둘이 아닐 테니 아버지가 뒤집어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 가능성이 있으니까!
진작에 김태산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닐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태산 씨였군요. 어쨌든 저희가 열심히 하면 대장장이 기술을 좀 가르쳐주십시오!”
“아니…… 음…….”
태현은 머뭇거렸다. 이들은 태현이 대장장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현은 대장장이가 아니었다. 당연히 대장장이만이 갖고 있는 특수한 스킬이나 비법 같은 걸 가르쳐줄 수 없었다.
있는 건 대장장이라면 어지간해서 다 갖고 있는 기본 스킬뿐!
‘레벨 보면 강화도 있을 텐데.’
태현이 망설이는 걸 고민하는 걸로 착각했는지, 둘이 넙죽 엎드렸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희도 게임 내에서 뭔가 남겨보고 싶습니다! 어떤 노가다를 시켜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거 가르쳐주면 되는 거냐?”
“예!”
둘은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다시 물었다.
“진짜로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가르쳐주면 되는 거지?”
“예!!!”
“그래. 알겠다.”
“!!”
둘은 서로 얼싸안았다. 그만큼 기뻤던 것이다. 그걸 본 루포는 작게 속삭였다.
“가르쳐줄 스킬 있는 거 맞습니까?”
“있긴 있는데. 아마 쟤들도 알 거 같은데.”
“…….”
루포는 고개를 저었다.
* * *
둘은 태현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미 해적들 사이에서 밖에서 온 대장장이들은 유명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해주는 편리한 친구들!
“뭐? 대접해 주고 싶다고?”
“예! 저희 같은 미숙한 대장장이들을 믿고 무기를 맡겨주셨잖습니까. 덕분에 저희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허! 이놈들 보게!”
해적들의 말에 두 대장장이는 긴장했다. 설마 들킨 걸까?
“기본이 되어 있어! 기본이!”
“하, 하하, 하하하…….”
“좋아! 가자고!”
해적들은 기분 좋게 대장장이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움직였다.
그걸 본 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미리 상단의 직원들을 시켜 술과 음식을 준비시켜놓은 상태였다. 해적들은 거기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타탓-
루포와 태현은 재빨리 감옥을 통과해 지하로 내려갔다. 데넬손이 봤다면 뒷목을 잡을 일이었다.
‘그러게 해적을 믿지 말았어야지.’
아무리 규칙이 엄해도 해적은 해적!
저렇게 만만한 대장장이들이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섬에서 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는 뭐하는 곳입니까?”
“귀한 인질들 잡아놓는 곳.”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루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해적의 지하 감옥인데 왜 이런 소리가 나지?
안을 살짝 들여다보자 놀라운 얼굴이 보였다.
“마, 마, 마르셀 백작!”
“아는 사람인가?”
“납치당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여기 해적들한테 납치당했던 거였군요!”
“소식 알아서 잘됐네.”
“꺼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태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루포의 어깨에 올렸다.
“저걸 깨우면 저거랑 같이 다녀야 해. 저 밑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저 인간하고 같이 다녀야 한다는 거지. 만약 그러고 싶다면 상관은 없는데 네가 데리고 다녀라. 나는 싫으니까.”
“하하. 두고 가죠.”
빠른 태세 전환!
루포도 자기 목숨이 중요했다.
저 밑에서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마르셀 백작 같은 인간을 챙기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죽기 딱 좋았다.
태현은 걸어가면서 물었다.
“너희 왕국 귀족인데 이렇게 두고 가도 되냐?”
“잘 지내고 계시잖습니까?”
루포는 어느새 태현에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얼굴에 철판 한 겹을 깐 것 같은 뻔뻔함!
둘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태현은 조심스럽게 훔친 열쇠를 꺼냈다. 루포는 긴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과연 제대로 돌아갈까?
끼이익-
무딘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 *
“……!”
둘을 맞이한 건 눈부신 황금의 광채였다. 우르르 쌓인 황금 무더기와 보석들, 그리고 한눈에 봐도 명품 같아 보이는 아이템들까지!
“데넬손이 보물을 여기에도 보관해두고 있었군……!”
“이, 이건…….”
평소에 보물을 많이 만지는 루포였지만, 여기 있는 보물들의 규모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해적들이 참 알뜰하게도 긁어모았던 것이다.
“챙길까요?”
“모처럼 좋은 소리를 했는데. 일단은 내려갈 길을 찾자.”
태현도 말을 하면서 아쉬움으로 속이 쓰렸다.
여기 있는 보물들이 얼마인가! 게다가 단순히 돈만 있는 게 아니라 아이템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
게다가 보물들의 양이 워낙 많았다. 인벤토리에 넣으면 무게 때문에 속도가 느려질 게 분명했다.
“길부터 찾자!”
“어떻게요?”
태현은 신의 예지를 사용했다. 그리고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면서 손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를 얻었습니다.]
[……를 얻었습니다.]
태현은 창도 확인하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말 그대로 본능으로만 아이템을 고른 것이다.
고를 수 있는 아이템을 대충 챙겨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태현은 신의 예지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 금화 더미를 파헤쳤다.
“대단하십니다.”
“뭐가?”
“길을 찾으시면서 동시에 그걸 다 주머니에 넣으시는 게…….”
산더미처럼 쌓인 금화 더미를 치워서 길을 만듦과 동시에, 아이템을 빠르고 정확하게 챙겨서 주머니에 넣는 태현의 솜씨는 루포도 감탄하게 만들었다.
검술로 따지면 마스터 수준!
“찾았다.”
“……?”
루포는 태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태현은 금화 더미를 치우더니 바닥을 가리켰지만, 바닥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뭘 찾으신 겁니까?”
“이 바닥이 입구가 분명해.”
“확실한 거 맞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여기 구멍 뚫으면 눈치를 챌 겁니다.”
“확실해!”
태현은 말과 함께 망치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