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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61화 (61/1,826)

§ 나는 될놈이다 61화

태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데넬손의 표정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나가봐라.”

“아. 예.”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루포와 같이 천천히 걸어나갔다. 데넬손이 보이지 않게 되자 루포가 당황해서 다시 물었다.

“정말 걱정 안 해도 되는 겁니까?”

“야. 생각을 좀 해봐라.”

“……?”

“명색이 해적이라는 놈이 욕심이 없겠냐?”

돈에 대한 욕심이든, 보물에 대한 욕심이든, 권력에 대한 욕심이든. 해적이라면 당연히 욕심이 많아야 했다.

데넬손이 아무리 폼을 잡는다고 해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 그건…….”

“왜 나가라고 했겠냐? 우리 보는 앞에서 먹으면 쪽팔리니까 그랬겠지.”

“……!”

“여기서 기다리자고. 잠깐. 이 소리 들려?”

밖으로 나가지 않고 통로에서 멈춰선 태현은 손짓했다. 루포는 그 말을 듣고 귀를 기울였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데요?”

“수프를 퍼마시고 있는 모양이다. 자식. 그냥 대놓고 먹지. 폼은 더럽게 잡네.”

“…….”

루포는 고개를 저었다. 데넬손은 그래도 악명 높은 해적대장이었는데, 저런 놈이었다니. 환상이 깨지는 느낌이었다.

계속 기다리자 소리가 사라지고 조용해졌다. 루포가 침을 꼴깍 삼키고서는 물었다.

“잠든 걸까요.”

“글쎄. 네가 가서 보고 올래?”

“예, 예?”

“농담이야. 네가 도적이면 모를까 은신 스킬도 없겠지. 내가 보고 온다. 여기 있다가 무슨 일 생기면 달려와.”

“알, 알겠습니다.”

루포는 허리춤에 매단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데넬손이 강하다고는 했지만 그도 약하지는 않았다.

사실, 루포 정도면 엄청나게 강한 NPC였다.

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순위권에 있는 랭커들도 아직 레벨이 100 초반대였다.

그에 비해 NPC들은 그 레벨을 넘는 NPC들이 수두룩했다. 루포도 물론 그중의 하나였다.

맨날 태현에게 구박을 받기는 했지만…….

화악!

[스킬 ‘은신’을 사용했습니다.]

태현은 천천히 통로를 되돌아갔다. 데넬손이 만약 깨어 있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태현의 은신은 높은 행운 수치와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는 전설 직업의 패시브 스킬이 뒤에 있었다.

어지간한 도적보다는 훨씬 더 뛰어난 은신 스킬.

그렇지만 데넬손도 결코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 주변의 바다를 주름잡는 해적들의 왕 아닌가.

‘뭐, 그건 그때 생각하자고.’

태현은 태연하게 걸어갔다. 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대담한 모습!

“크르릉…….”

“……!”

데넬손이 코를 고는 소리였다. 태현은 속으로 데넬손을 욕했다.

‘코 고는 소리도 이상한 놈이야.’

수프를 만든 솥을 확인해 보니 텅텅 비어 있었다. 데넬손이 전부 먹은 게 분명했다.

이걸 예상하고 많은 양을 만들기는 했지만 전부 먹을 줄이야.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러면…….’

열쇠는 어디쯤 있을까?

이곳은 데넬손이 머무르는 거처였다. 온갖 중요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해적들이 없을 정도니까.’

원래 악당은 다른 악당을 믿지 않았다. 데넬손도 마찬가지였다. 이 주변에 부하들이 없는 걸 보면 이 안에 얼마나 중요한 게 있는지 상상이 갔다.

물론 덕분에 태현한테 이렇게 털리게 됐지만…….

‘와. 이거 무슨 칼이야?’

방에 걸려 있는 칼을 본 태현은 감탄했다. 딱 봐도 명품이었다.

거친 파도 선장의 양손검:

내구력 440/440, 공격력 180

스킬 ‘광분의 난격’ 사용 가능, 스킬 ‘파도 소환’ 사용 가능, 스킬 ‘크라켄의 울부짖음’ 사용 가능. 공격 시 물 속성 데미지 추가.

레벨 제한 170. 힘 제한 500. 체력 제한 300. 퀘스트를 깨기 전에는 쓸 수 없음.

전설에 나오는 ‘거친 파도 선장’이 썼다고 알려지는 양손검이다. 자격이 없는 자는 쓸 수 없다고 알려졌다.

‘미친 아이템이군. 게다가 퀘스트 아이템이잖아?’

태현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아쉽게도 이 방에 있는 건 가져갈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데넬손이 일어나고 나서 바로 눈치를 챌 테니까.

게다가 저 아이템은 딱 봐도 지금 수준에서 깰 수 있는 퀘스트가 아니었다.

괜히 받아봤자 죽기만 할 뿐!

판타지 온라인에서 중요한 건 퀘스트가 어떤 퀘스트인지 판단하는 머리였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희귀 퀘스트라는 말만 들으면 눈이 돌아가서 당장 받고는 했다.

-받으면 어떻게든 깰 수 있겠지!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어! 일단 받아야 해!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깰 수 없는 퀘스트라면 받지 말아야 했다. 받아봤자 페널티만 나오니까.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열쇠였다.

‘열쇠 같아 보이는 게…… 아. 이거 지도네.’

카테란드 섬의 비밀 지도:

카테란드 섬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해적단의 지도다.

해적단의 비밀 지도. 해적단에 원한을 갖고 있는 세력들이 엄청나게 많은 이상, 이 지도는 갖고만 가도 엄청나게 돈이 될 게 분명했다.

게다가 해적단과 원한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은 태현에게도 필요할 가능성이 높았다.

‘메모, 메모를 하자!’

태현은 재빠르게 지도를 베끼기 시작했다.

[지도를 필사합니다.]

[필사 스킬이 부족합니다. 지도의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신의 예지 스킬로 완성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필사 스킬을 미리 올려두지 않은 게 후회됐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었다.

태현은 정신없이 빠르게 지도를 베꼈다. 중요한 곳만 우선적으로! 다 맞지는 않아도 된다!

[스킬 ‘필사’를 얻었습니다.]

빠르게 베껴진 카테란드 섬의 비밀 지도:

카테란드 섬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해적단의 지도를 빠르게 베낀 지도다. 얼마나 맞을지는 알 수 없다.

슥슥-

태현은 재빨리 지도를 품속에 넣고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크르릉…….”

“……!”

데넬손이 뒤척거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반짝!

바로 열쇠였다.

태현은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분명 열쇠가 맞았다. 저 주머니에서 저렇게 나올 만한 열쇠가 많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다 나온 게 아니라 반쯤 걸린 상태였다.

‘건드렸다가 깨면 어쩌지?’

아무리 태현이라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도 할 수밖에 없었다.

“후…….”

태현은 품속에서 열쇠를 꺼냈다. 물론 진짜 열쇠는 아니었다. 밖에서 만든 가짜였다.

* * *

열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하에서 알았을 때부터, 태현은 계획을 세웠다.

열쇠를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열쇠를 갖고 있는 놈한테서 훔쳐야 한다. 그렇지만 걸리면 안 된다.

걸리는 순간 해적들이 몰려올 테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훔쳐도 상대방이 모르게 훔쳐야 했다.

‘가짜를 만들어서 바꿔치기해야겠군.’

나쁜 짓을 할 때면 특히 더 잘 돌아가는 머리! 태현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모든 계획을 세웠다.

[가짜 열쇠를 제작합니다. 열쇠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제작에 실패했습니다.]

[스킬이 상승합니다.]

[가짜 열쇠를 제작합니다. 열쇠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제작에 실패했습니다.]

[제작에 실패했습…….]

[제작에 실패…….]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해적들의 소굴에서 가짜를 만드는 대담함! 해적들은 어차피 봐봤자 태현이 뭘 하는지 알지 못했다.

무기를 잘 만져주는 놈이니 뭐 만지나 보다 하고 넘어갈 뿐.

* * *

태현은 가짜 열쇠를 꺼내서 비교해보았다. 열쇠 구멍을 보고 크기를 맞췄기에 크기는 거의 비슷했다.

그렇지만 색이 달랐다. 진짜 열쇠는 은으로 만들었는지 은색이었지만 태현이 갖고 있는 열쇠는 구리색.

‘색이 좀 다른 거 같은데…….’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한 상황. 태현은 물감을 꺼냈다. 다른 곳에서 갖고 온 물감이었다.

* * *

몰래 가짜 열쇠를 만든 태현은 대장장이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전에 화가들이 끌려간 곳으로 찾아갔다.

크기는 비슷하더라도 색이 다를 가능성이 높았다.

“이야. 그림 잘 그리네.”

“……!”

거대한 해적 깃발을 그리던 화가들은 태현이 다가오자 고개를 홱 돌렸다.

원한이 서린 눈동자!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는데 그들은 쉬지도 못하고 계속 해적들의 깃발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당, 당신…… 너무한 거 아냐!”

“맞아!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쉬게 해줘라! 쉬게 해줘라!”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는 목소리들! 그러나 태현은 귀만 팔 뿐이었다.

‘복면은 이럴 때 좋군.’

무슨 짓을 해도 얼굴 팔릴 일이 없다는 장점. 태현이 아랑곳하지 않자 화가들은 더 시끄러워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결국 옆에 있던 해적들까지 찾아왔다. 태현은 바로 손가락으로 화가들을 가리켰다.

“일하기 싫다는데?”

“뭐?! 어떤 놈들이야!”

해적이 눈을 부라리고 으르렁거리자 화가들은 바로 시선을 내렸다.

‘치사하게 해적을 부르다니!’

‘뭐 저런 악당이 다 있어!’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해적에게 말했다.

“내가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불만이 많으니까 관리를 좀 해야지. 원래 사람들을 놔두면 논다고.”

“맞는 말이군. 앞으로 감시를 꼭 붙이지.”

“!!!”

더 혹독해지는 노동 환경! 화가들은 꿍얼거리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태현들은 화가들의 물감을 챙기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해적 깃발을 그리느라 불평도 하지 못했다.

* * *

[색칠에 실패합니다.]

[색칠에 실패합…….]

[색칠에 실…….]

[색칠에 성공합니다.]

[스킬, ‘초급 미술’을 얻었습니다.]

[스킬, ‘초급 색칠’을 얻었습니다.]

‘됐다.’

태현은 즉석에서 완성된 가짜 열쇠를 조심스럽게 들고 데넬손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탁!

“……!”

데넬손의 눈동자가 떠졌다. 태현은 기겁했다. 여기까지 와놓고 결국 걸리는 건가?

“크르릉…….”

그러나 데넬손은 일어난 게 아니었다. 그저 잠꼬대일 뿐이었다.

‘잠꼬대로 눈을 뜨는 놈이 어디 있어?’

태현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열쇠를 바꿔치기했다. 그리고 몰래 밖으로 나왔다.

방금 있었던 일 때문에 수명이 준 기분이었다.

루포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태현이 은신을 풀자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태현 님!”

“목소리 줄여라. 걸린다.”

“일,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태현은 대답 대신 열쇠를 흔들어 보였다.

“……!”

“조용히 나가자고. 그러면 이제 나중에 들키더라도 안 했다고 잡아뗄 수 있으니까.”

“그게 통할까요?”

“시간은 벌어주겠지. 안 걸리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말이야. 일단 나가서 계획을 짜자.”

둘이 밖으로 나오자 해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증인이 되어줄 해적이었다.

가장 좋은 건 아예 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걸릴 경우도 대비를 해야 했다.

* * *

“이, 이게 뭡니까?”

“비밀지도. 이 요새에 뭐가 배치되어 있는지, 어떤 비밀 통로가 있는지…… 다 나와 있지.”

“!!”

루포는 감탄했다. 태현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원래 겁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해적단 대장이 자고 있는 곳에 가서 이런 걸 갖고 나오다니!

“그런데 이게 문제가 있어.”

“……?”

“급하게 베낀 거라 조금 틀릴 수도 있다는 거지.”

“…….”

감탄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감탄스럽기는 했다.

“어쨌든 지도는 지도잖아?”

“그, 그렇기는 하죠.”

“일단 계획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너랑 내가 저 지하로 들어가는 거야.”

“예. 알고 있습니다.”

둘이 여기에 온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아키서스의 권능이었다.

루포는 그 권능으로 아키서스의 화신인지 확실하게 확인해야 했다.

태현은 그 권능을 얻어 아키서스의 직업 퀘스트를 깨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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