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60화
“넌 요리도 안 하는 놈이 왜 있는 거지?”
“예? 저는, 어, 그러니까…….”
데넬손이 루포를 보며 묻자 루포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무슨 이유를 말해야 하지?
대신 대답해 준 건 태현이었다.
“조수 역할을 할 겁니다.”
“조수? 요리사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하하. 이 칼을 보십시오. 어떤 것 같습니까?”
“뛰어난 검사 같아 보이는군.”
“바로 그겁니다.”
“뭐가 바로 그거라는 거냐?”
“뛰어난 검사는 칼을 잘 다루잖습니까. 즉 요리에서의 칼질도 잘한다는 거죠.”
데넬손과 루포는 동시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
“그렇지?”
태현은 루포를 보고 물었다.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뜻은 간단했다.
‘내 말에 맞춰라! 죽기 싫으면!’
루포는 바로 눈치채고 대답했다.
“어, 네. 그렇죠. 사실 제가 취미가 요리입니다.”
“진짜로?”
데넬손은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아무리 봐도 루포는 요리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태현 님만은 못하지만 저도 나름 요리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 믿어주십시오.”
“……마음대로 해라. 결과만 제대로 나오면 되니까 말이다.”
데넬손은 흥미를 잃어버린 듯 고개를 돌렸다.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바로 조리장으로 이동했다.
루포는 데넬손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속사포처럼 속삭였다.
“이게 뭡니까?! 저는 요리 하나도 몰라요!”
“괜찮아. 옆에만 있으면 되니까. 요리는 다 내가 한다.”
“예? 그러면 저는 밖에 나가 있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안 되지.”
“……?”
“만약에 일이 꼬이면 네가 도와줘야 하니까.”
“……!”
태현의 말을 들은 루포는 경악했다.
이 인간이 지금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고 있구나!
“안 됩니다!”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뭐든 간에 안 됩니다! 여기 해적단 소굴이라고요! 게다가 저기 있는 건 그 악명 높은 해적 대장 데넬손이고 말입니다! 여기서 무슨 짓이라도 잘못 벌였다가는 죽어 나갑니다!”
“안 걸리면 되지.”
“…….”
루포는 순간 이런 인간과 엮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태현과 엮이게 되었단 말인가?
“시끄럽고. 옆에서 지켜보기나 해. 시끄럽게 떠들면 데넬손이 의심할 수도 있으니까 조용히 하고.”
“제발 생각을…….”
“시꺼. 저기 옆에 서서 저 재료들이나 썰어.”
태현은 손가락으로 야채들을 가리켰다. 데넬손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칼을 들었다. 그가 정말로 이런 짓을 해야 하다니.
“좋아. 그러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수프를 만들어보실까.”
“!!!”
옆에서 듣던 루포는 깜짝 놀랐다. 뭔 놈의 요리 이름이 저렇단 말인가?
“무슨 요리입니까?!”
“뭐야. 말했잖아?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수프라고.”
“설, 설마 독을 타는 건 아니겠죠?”
루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데넬손 정도 되는 강자는 어지간한 독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루포도 당장 독을 먹어도 견디고 싸울 수 있었으니 데넬손도 더 견디면 견뎠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데넬손은 미식가. 독이 들어가 있다면 바로 눈치를 챌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바로…….
‘우리를 죽이러 오겠지!’
독이 오른 해적대장을 상대하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이긴다고 쳐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해적들이 우글거리는데 어떻게 탈출한단 말인가. 배를 타도 바로 잡힐 게 분명했다.
“독은 안 됩니다! 분명 걸릴 거예요!”
“독이라니. 사람을 뭐로 보고. 내가 방금 가슴으로 요리를 한다고 하지 않았냐? 독을 요리에 탄다는 건 요리사의 수치지.”
“후…… 다행이네요.”
“수면제 탈 거야.”
“…….”
루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태현이 ‘요리사의 수치’니 뭐니 해서 순간 감동했던 게 억울하게 느껴졌다.
역시 이 인간은 직업에 대한 긍지고 뭐고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분명해!
“수면제는 왜 탑니까?”
태현은 아까 그가 몰래 들어갔던 지하에 뭐가 있는지를 루포에게 말해주었다.
“들어가려면 열쇠가 필요한 거 같아. 그리고 그 열쇠를 누가 갖고 있겠냐?”
“……아마 데넬손이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그래. 한 번 찾아볼 만하지.”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데넬손 정도 되면 독도 잘 안 통할 텐데 수면제는…….”
독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면 수면제 같은 것도 안 통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놓고 독을 타거나 수면제를 타면 걸리겠지. 은근하게 하는 거야.”
“예? 은근하게?”
“솔란꽃의 뿌리, 칼데나스의 잎, 다렌 가루…… 이런 것들이 어디에 쓰는지 알아?”
요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루포가 알 리 없었다.
“그게 뭡니까?”
“먹으면 편안해지고 긴장이 풀어지는 재료들이지.”
먹는 순간 바로 쓰러지는 그런 수면제가 아닌, 먹으면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오는 재료들이었다.
태현은 제노마 시의 시장 전속 요리사인 크리스토퍼에게 요리를 배울 때 허투루 배우지 않았다.
필요한 건 모두 배우는 철저함!
* * *
-이건 어디에 쓰는 재료입니까?
-이 재료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부분은 어디입니까?
-먹었을 때 마비시키려면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죠? 재우려면? 즉사시키려면? 마법 방어력을 낮추려면?
태현의 질문을 들은 크리스토퍼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은 대체 뭘 하려고 이런 걸 묻는 거지?’
제자로 삼고 싶기는 했지만 동시에 두려워지는 태현의 성격!
-그런 건 왜 묻는 건가?
-아니, 필요할 수도 있잖습니까.
-그런 게 어디에 필요하겠나!
그래도 크리스토퍼는 태현의 질문에 하나하나 다 대답을 해주었다. 태현의 재능이 탐이 났던 것이다.
그가 그의 밑으로 들어와 궁정 요리사로 들어가게 된다면!
덕분에 태현은 귀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요리사들은 직접 몸으로 때워야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솔란꽃의 뿌리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칼데나스의 잎에 대해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요리 스킬이 상승합니다.]
[재료 정보를 사용해 새로운 요리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 * *
“먹다 보면 나른해지고 편안해질 거다. 독이나 수면제라고 의심하지는 못할걸?”
“그럴듯하기는 한데…… 그런 건 많이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것도 넣으려고.”
아하크 추출물:
아하크의 잎과 뿌리에서 추출한 원액이다. 요리에 쓰면 뒷맛이 깔끔해지고 좋아지지만 약간의 중독성이 있다.
“?!”
한마디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지는 재료!
“독이 아니니까 눈치 못 채겠지. 게다가 이 정도는 충분히 숨길 수 있어.”
태현은 자신이 있었다. 데넬손이 미식가라면 그도 나름 요리사였다. 지금 요리 스킬 정도라면 이런 재료 정도는 데넬손이 눈치 못 채도록 숨길 수 있었다.
“아니, 그거 거의 준 마약 아닙니까?! 어디서 구했습니까!?”
“크리스토퍼가 재료 많이 갖고 있길래 조금 빌렸지.”
“빌려요?”
말 안 하고 가져온 걸 빌렸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수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독자적으로 만든 요리법입니다. 공개할 경우 보너스를 받습니다. 요리법이 많이 퍼질 경우 보너스가 증가합니다.]
요리사로서 명예 중 하나였다. 직접 만든 요리법이 왕국에서 쓰이거나 다른 플레이어들한테 쓰이면 쓰일수록 명성이 올라가는 것이다.
[신의 예지 스킬이 발동됩니다.]
[국자 젓기 스킬이 오릅니다.]
[중급 요리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재료가 뛰어난 솜씨로 잘라져 있습니다. 보너스를 받습니다.]
“요리에 재능이 있는데?”
“예? 저 말입니까?”
루포는 가만히 있다가 깜짝 놀랐다. 태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요리 좀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아이고. 됐습니다.”
워낙 검술 스킬이 높다 보니 재료만 잘라도 나름 결과물이 괜찮게 나온 루포였다.
[대성공! 요리,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수프’가 완벽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대성공?’
보통 성공이라고 떴다. 대성공이라고 뜨는 건 일정 확률을 뚫고 더 높은 단계의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
태현은 높은 행운 수치 덕분에 남들보다는 훨씬 더 유리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었다.
제작이나 예술 스킬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요리 스킬이 상승합니다.]
[스킬, ‘초급 독 제작’을 얻었습니다.]
[어둠의 독 요리사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이미 전직했기에 직업 퀘스트가 취소됩니다.]
‘…….’
요리 스킬이 상승하는 건 당연했지만, 초급 독 제작 스킬에 어둠의 독 요리사라니.
다른 사람들은 노리고 해도 얻지 못하는 희귀 직업들이 태현에게는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태현은 혀를 쯧쯧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키서스의 화신만 아니었다면 나름 막장스러워 보이고 재밌어 보이는 직업들을 고를 수 있었을 텐데…….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수프:
뛰어난 젊은 요리사가 야심 차게 만들어낸 수프 요리다. 많이 먹으면 긴장이 풀어지고 졸음이 올 수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추천.
복용 시 체력 1 상승. 지혜 1 상승. 일시적으로 체력, 지혜 상승.
(추가 옵션)일정 확률로 금단 증상이 일어날 수 있음.
[둘이 먹다 하나도 죽어도 모를 수프를 먹었습니다. 체력과 지혜가 오릅니다.]
요리사의 또 다른 특권 중 하나. 다 만들어진 요리는 처음 먹을 때 효과가 있었다. 스탯이 영구적으로 상승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태현이 수프를 마시자 루포는 기겁했다.
“예?! 그거 먹어도 되는 겁니까?!”
“뭐 어때.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오는 거지 적게 먹으면 괜찮아.”
재료를 조화롭게 넣고 끓인 수프는 아주 뛰어난 감칠맛이 났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깊은 구석을 갖고 있는 맛!
현실에서는 맛보기 힘든 맛이었다.
‘이게 가상현실게임의 재미지.’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경험을 하는 것. 태현은 이래서 게임을 좋아했다.
“갖고 가자고.”
태현은 재빨리 수프를 국자로 떠 그릇에 담았다. 해적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그릇이었다.
그렇지만 수프 하나만 있으니 조금 초라해 보였다.
“더 갖고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됐어. 어차피 쓸데없는 거 더 추가해봤자 괜히 문제만 생길 거라고.”
태현은 자신만만하게 외쳤지만 루포는 불안할 뿐이었다.
* * *
“이게 다라고?”
“한 번 드셔보시죠.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으음…….”
데넬손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수프가 확실히 먹음직스럽기는 했다. 연하고 맑은 황금색. 그렇지만 다른 것 하나도 없이 수프라니.
데넬손은 숟가락으로 수프를 떴다. 그리고 입에 가져갔다.
“오오!”
[데넬손이 매우 만족합니다. 요리 스킬이 상승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요리,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수프’가 해적들 사이에서 퍼져나갑니다.]
“……?”
태현은 잠깐 멈칫했다. 뭔가 이상한 게 방금 나왔던 것 같았는데?
‘해적들 사이에서 퍼져 나간다고? 괜찮겠지?’
“이 수프는 절대 평범한 수프가 아니군! 이 복잡한 감칠맛이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숨겨진 뒷맛까지!”
태현은 몸을 움찔했다. 다행히 데넬손은 그 뒷맛이 어떤 뒷맛인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데넬손은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조금 더 가져올까요?”
“아니. 됐다. 요리는 원래 배부르게 먹는 게 아니지.”
‘해적 놈 주제에 뭔…….’
태현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루포는 당황해서 속삭였다.
“어떡합니까? 많이 먹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걱정하지 말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