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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9화 (59/1,826)

§ 나는 될놈이다 59화

‘안에 뭔가 중요한 게 있는 게 분명해.’

귀족들을 가둬놓은 감옥보다 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거라면?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대단한 것들이 안에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키서스의 권능도…….’

해적단의 보물도 탐이 나기는 했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아키서스의 권능이었다.

캐릭터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태현은 길드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몇 달 늦게 시작한 상태였다. 이미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 상황.

거기서 따라잡으려면 보통 방법으로는 안 됐다.

전설 직업으로 전직한 이상 최대한 빨리 전설 직업의 전용 스킬들을 찾고 스킬 레벨을 올려서 스킬 마스터를 찍는다.

동시에 전설 직업 퀘스트를 진행해 보상을 얻는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했다.

전설 직업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좋은 느낌이지만, 아키서스의 화신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레벨 업에 엄청난 페널티가 붙고, 그나마 스탯을 성장시키기는 좋았지만 그것도 랜덤인 데다가, 다른 전설 직업들에 비해 전투 스킬이나 마법도 갖고 있지 않았다.

‘전설 직업 맞아?’

생각해 보니 갑자기 또 억울해지는 마음!

이름은 전설 직업인데 다른 전설 직업보다 안 좋은 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었다.

“흠흠. 들어가시죠.”

해적이 손짓하며 공손하게 둘을 안내했다. 태현과 루포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 * *

“후…….”

들어가자마자 들린 건 한숨 소리였다. 정말 힘이 들어서 내쉰 한숨 소리가 아니라, 폼을 잡을 때 내는 한숨 소리에 가까웠다.

“왔나?”

“…….”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데넬손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폼을 잡지?

잘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수가 없는데 저렇게 폼까지 잡으니 더 재수가 없었다.

원래 해적단의 우두머리였으니 나쁜 놈임은 분명했지만, 저런 걸 보니 더더욱 해치우고 싶어졌다.

“이야기는 들었다.”

데넬손은 기지개를 켰다. 마치 모델이 체조라도 하는 것처럼 우아한 동작이었다.

루포는 그걸 보고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긴장한 표정이야?”

“대단한 기세잖습니까?”

“뭐? 저게?”

태현이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자기한테 취해서 뻘짓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루포는 한심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 님은 아직 수련이 부족하셔서 못 알아보시는 겁니다. 높은 경지에 이르면 아시게 될 텐데, 저렇게 빈틈이 많아 보여도 저게 다 완성된 경…….”

삐끗-

데넬손이 비틀거리더니 자세를 바로 잡았다. 태현이 그걸 보고 물었다.

“지금 넘어질 뻔한 거 아냐?”

“…….”

데넬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태현은 넘어질 뻔한 거 아니냐고 캐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기는 일단 해적단의 요새였으니까!

“일을 아주 잘하더군. 부하들한테 들어보니 대장간 일부터 시작해서 해적 깃발까지 못하는 일이 없다던데.”

“제가 고생을 좀 많이 했죠. 물론 힘들었지만 약속은 약속 아니겠습니까?”

루포는 태현을 기가 막히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얼굴에 철판 몇 개는 깐 지 오래였다.

‘뭘 했다고?’

일은 끌려온 사람들이 다 했지 태현은 구경만 한 것 아닌가.

“처음에 말을 했을 때는 이게 진짜인가, 아닌가 했는데…… 믿기를 잘했어. 그렇지 않나?”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 상단 놈들은 입만 살아서 번드르르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책임감이 있군.”

데넬손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단 사람들이 입만 살았다고 하지만 태현에 비교하겠는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보고 결정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해준다면 괜찮겠지. 출입을 허락해 줄 테니 계속 일을 해달라고.”

[카테란드 해적단의 대장 데넬손이 상단의 통행을 허락합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카테란드 해적단 내부에서 평판이 오릅니다.]

[명성이 100 오릅니다.]

[악명이 200 오릅니다.]

[공적치를 사용해 카테란드 해적단의 아이템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공적치를 많이 쓸 경우 해적들이 불쾌해할 수 있습니다.]

명성이 오르는 것과 동시에 악명이 같이 올랐다. 해적들을 위한 일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뭐, 이 정도는 상관없지.’

악명은 엄청나게 높아질 때나 문제가 있었지, 저 정도 악명은 아직 크게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명성도 더 높았으니까.

악명이 명성보다 훨씬 더 높을 경우 다양한 일이 일어났다.

도시의 출입을 거부당한다거나, 현상금이 걸려서 누군가 찾아온다거나…….

그렇지만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악명이 높아서 좋은 것도 있었다.

악 성향 NPC들은 악명이 높은 플레이어를 좋아했고, 또 악명이 높을 경우 그런 NPC들이 부하로 삼아달라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판타지 온라인 1에서 악당 컨셉으로 놀던 플레이어들은 아예 작정을 하고 악명을 높이기도 했다.

어차피 보이는 플레이어를 죽이고 아이템을 뺏을 거라면 차라리 그런 쪽으로 끝까지 가는 게 더 이득이었으니까.

그리고 태현은 그런 놈들을 다 털어먹고 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악명이 높으면 죽을 때 아이템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다.

그리고 거기에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여서 붉은 상태가 된 것까지 겹치면?

걸어 다니는 아이템 자판기나 마찬가지였다.

태현과 랭커들의 화려한 일대일 대결 전에는 이런 PK 플레이어들의 눈물겨운 사연이 있었다.

오죽하면 PK 플레이어들 카페까지 만들어졌겠는가.

태현 하나만을 잡기 위해 모인 악당 플레이어들!

물론 많이 모였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태현은 얼씨구나 하고 다 털어먹었으니까.

“출입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데넬손 님.”

“앞으로 지켜보지. 칭찬한다고 해서 게을러지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태현은 루포와 같이 나가려고 했다. 대화는 끝났으니까.

그러나 데넬손이 태현을 멈춰 세웠다.

“잠깐.”

“……?”

“네 요리 솜씨가 괜찮다던데.”

‘어떻게 알았지?’

태현은 살짝 놀랐다. 태현의 요리 스킬이 낮은 편은 아니었다. 중급 요리 스킬은 아무나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행운과 아키서스의 화신 보정까지 받는다면 어지간한 요리사보다는 훨씬 뛰어난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상단 직원 놈이 그러던데?”

루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떤 놈이 입을 놀렸단 말인가?

태현이 요리를 잘한다는 게 뭐 엄청나게 중요한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데넬손한테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어떤 놈이야?’

태현이 대신 물어보았다. 태현도 궁금했다. 어떤 놈이 그렇게 입이 싼지.

“제가 요리를 잘한다고 누가 말했습니까?”

“내가 하찮은 놈들 얼굴까지 기억해야 하나? 섬에 데려온 요리사들이 다 별로여서 화를 좀 냈더니 누가 말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는군.”

그제야 둘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 * *

섬에 온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건 아니었다.

무기를 맡은 대장장이들은 차라리 나았다. 제일 재수가 없는 건 데넬손의 식사를 맡게 된 요리사들이었다.

해적들의 식사를 맡게 된 요리사들은 대량으로 요리를 만들고, 평소에는 다룰 수 없는 식재료를 다뤄서 경험치를 받았다.

게다가 해적들은 어지간하면 다 맛있다고 말했기에 완수도 쉬웠던 것이다.

그에 비해 데넬손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도시의 미식가들보다 더 까다로웠다.

-이건 뭘 넣고 끓였지?

-월, 월계수 잎과 파슬리를…….

-어디서 그런 하찮은 쓰레기를!

와장창!

데넬손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짜고짜 접시를 집어 던졌다. 요리사들은 히익 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딴 식으로 요리를 할 거냐! 나를 얕보는 거냐!

-아, 아닙니다!

-다시 해 와!

요리사 플레이어들도 오기가 있었다. 그들도 나름 게임에서 요리에 목숨을 건 사람들인 것이다.

데넬손이 저렇게 나오자 오기로라도 다시 해왔다.

-이게 뭐지?

-닭고기와 포도주 소스…….

-이 닭고기는 너무 안 익어서 사제가 다시 부활시킬 수도 있겠다! 저리 꺼져!

와장창!

접시가 부서지고 요리사 한 명이 또 쫓겨났다.

-넌 또 뭘 갖고 온 거냐?

-소고기 타르타르 스테이크와 샐러드입니다.

-정말 대단하군.

이제까지와 다른 반응!

다른 요리사들은 놀라서 데넬손을 쳐다보았다. 요리를 갖고 온 요리사는 우쭐해져서 코밑을 슬쩍 닦았다.

내가 이 정도다!

‘부럽다!’

‘나도 저 요리를 해갈걸…….’

까다로운 NPC를 요리 하나로 만족시키는 것. 요리사 플레이어들이 가장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소고기는 너무 덜 익혀서 지금도 샐러드를 씹어먹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야!

-……?!

-전부 꺼져라, 이 쓰레기들아!

와장창!

결국 한 명도 데넬손을 통과하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옆에 있던 상단 직원은 계속 구박을 받자 태현이 요리사를 찾아가서 배울 정도라는 걸 떠올리고 말한 것이다.

* * *

“나는 미식을 즐기지. 그냥 맛있는 거로는 충분하지 않아. 품격이 있어야 하지.”

‘거 해적 놈이 더럽게 까다롭네.’

태현은 심드렁한 마음으로 데넬손의 말을 들었다.

솔직히 미식이고 뭐고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는 동네 순댓국밥집만 다녀도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해적이라는 놈이 저렇게 폼을 잡으니 어이가 없을 뿐!

“네가 내 혀를 만족시킬 수 있겠나?”

<데넬손의 혀를 만족시켜라>

카테란드 해적단의 총대장 데넬손은 까다로운 성격과 취향으로 악명이 높다.

그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요리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다면, 데넬손은 그만큼의 보상을 해줄 게 분명하다.

요리사라면 포기할 수 없는 기회. 불가능에 도전해라!

보상: 해적대장의 전속 요리사, ???, ????, ????

‘이게 뭔 개떡 같은 퀘스트야?’

보상이 화려하기는 했다. ???가 몇 개나 있으니 아마 데넬손이 따로 보상을 주는 것 같았다.

문제는 해적대장의 전속 요리사였다. 저걸 받는 순간 데넬손 밑에서 요리사로 일해야 했다.

당연히 전설 직업 퀘스트 깨기도 바쁜 태현에게는 발목 잡는 상황.

‘아니, 잠깐만…….’

태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뜩이고 지나갔다. 이 상황을 잘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이 인간 또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야?’

옆에 있던 루포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미 태현이 예상에 없는 짓을 몇 번이나 한 상황.

가만히 두면 뭘 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게 태현이었다.

“거절하실 거죠?”

“하겠습니다!”

“?!”

루포는 화들짝 놀라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 양반이 진짜?

“아니, 무슨 생각으로 하겠다는 겁니까! 저기 데리고 온 요리사들 다 쫓겨났잖아요!”

“요리는 요리 실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야.”

“예?”

“뛰어난 요리사는 가슴으로 요리를 하는 법이지.”

데넬손이 그 말을 듣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단하군. 저 밖의 풋내기들과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라.”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둘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했지만, 루포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도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그가 보기에, 태현은 절대로 저런 생각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가슴으로 요리를 하기는 무슨!

식칼로 손님의 가슴을 찌르면 모를까, 태현은 저런 장인 요리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그러면 요리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좋다. 재료는 안에 들어가면 있으니 솜씨를 발휘해 보라고.”

“감사합니다.”

태현은 씩 웃으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루포의 눈에 그 웃음은 불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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