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8화
그런데 이런 대장장이들이 가르쳐 달라고 빌다니.
“지금 너 나 욕했냐?”
“하…… 하하.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태현의 말에 루포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미 태현한테 많은 약점을 잡힌 루포였다.
태현이 돌아가서 맥크레니한테 제대로 일러바친다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단단히 혼이 날 게 분명한 상황.
더럽고 치사해도 태현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래 보여도 칼하고 갑옷 만지는 재주가 조금 있다.”
“예? 진짜요?”
루포는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보여줘? 갑옷 벗어봐.”
“……!”
루포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상단주 맥크레니의 호위인 만큼, 그의 아이템은 결코 싸구려 아이템이 아니었다.
상단에서도 결코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급!
그런데 그걸 태현한테 맡기라니.
“괜…… 괜찮습니다.”
“너 나 못 믿냐? 줘보라니까.”
태현은 루포가 머뭇거리자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딱 봐도 해적들보다는 레벨이 높아 보이는데 벗겨서 만지면 스킬 좀 두둑하게 오르겠지?
태현의 눈빛에서 욕심을 읽은 루포는 겁에 질렸다.
그는 더 잽싸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너 잡아먹냐? 그냥 장비만 잠깐 손봐주고 돌려준다니까. 너 나 못 믿어?”
“믿, 믿죠. 믿습니다.”
그러나 점점 벌어지는 거리!
“그렇지만 태현 님은 저희 상단의 귀중한 손님이신데 제가 이런 걸로 귀찮게 만들 수는…….”
“안 귀찮아. 이 자식아. 내놔봐.”
“그…… 그럴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검술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루포 정도 되는 NPC한테 직접 검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분명 루포가 형편없는 검술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투 스킬이 별로 없는 태현에게 있어서는 매우 탐나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태현은 원칙이 있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약할 때는 더 몰아쳐라!
“좋네.”
“휴…….”
“네가 검술을 가르쳐준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꼭 갑옷하고 칼을 손봐줘야겠는걸? 그래야 공평하지.”
“……!”
루포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쿠당탕-
루포는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 넘어졌다. 그가 멈춘 사이 태현은 웃으면서 다가섰다.
“가만히 있어. 어허! 움직이지 말고!”
“안, 안 돼……!”
두 대장장이는 둘의 대화를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금 저게 뭐하는 짓?
루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이렇게 그의 아끼는 장비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러나 아직 세상에 정의는 살아 있었다.
“이봐.”
“……!”
“데넬손 님이 너희를 찾으신다.”
이 카테란드 해적단의 총 우두머리인 데넬손이 그들을 부른 것이다.
소식을 전달한 해적은 씩 웃었다. 딱 봐도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당연했다. 이곳은 해적들의 섬. 거기서 해적들의 우두머리가 불렀다는 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후후. 이놈들. 어디 겁 좀 먹어봐라.’
해적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루포와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이 섬에 온 바깥 놈들을 겁주는 일이었다.
해적들이 워낙 악명이 높다 보니 조금 말만 해도 다들 잔뜩 겁을 먹었다.
‘크크. 그 백작이라는 놈도 웃겼는데.’
마르셀 백작이라는 놈을 놀려먹었을 때가 떠올랐다. 백작이라는 놈이 체면도 없이 겁을 주니 벌벌 떨었던 것이다.
“데넬손이 우리를 찾는다고?”
“그래.”
“……정말 잘됐군!”
“?!”
루포는 벌떡 일어서더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흠흠. 이렇게 부르니 어쩔 수 없군요. 갈 수밖에.”
“쯧.”
태현이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태현은 루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도 검술은 가르쳐주는 거 잊지 마라.”
“아니, 저도 바쁜 사람인데…….”
“네 장비 만져줄까?”
“……두 배로 열심히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루포는 태현의 협박에 굴복했다.
사실 협박도 아니었다. 태현의 실력을 알았다면 루포는 절대 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해적의 협박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화술 스킬이 상승합니다.]
[카테란드 해적단의 우호도가 상승합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
태현은 갑자기 뜨는 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왜 그러십니까?”
“아니…… 뭐지?”
왜 갑자기 해적이 협박을 했다는 소리가 나온단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태현이 그러거나 말거나 해적은 둘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간덩어리가 큰 놈들이었군. 하긴, 그러니까 이런 거래를 제안했겠지.’
단단히 착각한 해적은 공손한 태도로 둘을 안내했다.
“어…… 잠깐, 저희도 데리고……!”
두 대장장이는 순간 멍했다가 다시 태현을 부르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은 멀어진 지 오래였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나중에 다시 부탁하자고!”
김지산과 박성찬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기회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레벨의 대장장이들은 대부분 길드에 들어가 있었다. 혹은 이름이 알려진 랭커였다.
그런 사람들은 제자를 쉽게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태현은 알려지지 않은 대장장이 고수. 계속 빌고 빈다면 가능성이 생길지도 몰랐다.
“우리가 길드에 들어가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고수 밑에서 배워야 해!”
“맞는 말이야. 꼭 배우자고!”
둘은 굳은 다짐으로 손을 붙잡았다.
* * *
오싹!
태현은 뭔가 한기가 들어 몸을 움찔했다.
“왜 그러십니까? 긴장이라도 했습니까?”
루포는 별일이라고 생각했다. 태현이 긴장을 하다니.
물론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악명이 높은, 카테란드 해적단의 우두머리기는 했다.
그렇지만 태현이 긴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신 앞에서도 태연하게 농담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바로 태현이었다.
“아니. 갑자기 한기가 들어서.”
“별일도 다 있군요.”
둘이 떠드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해적은 입 앞에 손가락을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조용히 하셔야 합니다.”
“왜? 너희 대장이 큰 소리 들으면 오줌이라도 싸냐?”
“태현 님!”
루포는 태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지금 해적들 사이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란 말인가.
“왜 그래?”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걱정 마. 설마 이놈이 그걸 말하겠어?”
“……?”
“일러바치려면 ‘저놈이 대장님이 큰 소리를 들으면 오줌을 싼다고 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잘도 말하겠다.”
괜히 잘못 전했다가는 같이 피를 볼 수 있는 상황!
루포는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졌단 말인가?
해적은 이를 갈더니 참고서 말했다.
“데넬손 님께서는 조용한 걸 좋아한다.”
“시끄럽게 하면?”
“처벌을 받겠지!”
“그래?”
태현은 발걸음을 멈췄다. 루포와 해적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왜 멈춘 거야?’
“그러면 내 질문에 대답해라.”
“……?”
해적은 미친 사람을 쳐다보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지금 뭐가 있다고 태현이 그한테 명령한단 말인가?
“나한테 명령한 거냐?”
“그래.”
“싫다면?”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낼 거다.”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나나 루포는 밖에서 온 손님이니까 네 대장이 심하게 대하지는 못하겠지. 그래도 너는 확실하게 벌을 받을걸.”
“!!”
[화술로 설득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해적은 새파랗게 질렸다. 데넬손은 결코 인자한 성격이 아니었다.
태현이나 루포는 외부에서 왔고 아직 거래할 게 많으니 넘어가더라도 그는 본보기로 처형될 수도 있었다.
“그, 그러지 마라.”
“뭐? 그러지 마라? 말이 짧다?”
“그, 그러지 말아 주십시오.”
[협박에 성공했습니다.]
[뛰어난 솜씨로 협박에 성공했습니다. 화술 스킬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칭호: 해적 협박자를 얻었습니다.]
[서버에서 처음 얻은 칭호입니다. 각 스탯이 5씩 증가합니다.]
칭호: 해적 협박자
해적 협박자: 세상에는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있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협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협박할 사람이 없어서 해적들을 협박하는 당신! 해적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해적들을 상대할 때 공격력 +5%, 방어력 +2%, 화술 성공 +10%.
스탯 증가치는 다른 칭호에 비해 적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처음 얻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태현처럼 열심히 해적을 협박한 사람이 없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해적들과 싸울 일이 곧 있을 것 같은데.’
아키서스의 권능을 찾으려면 감옥의 통로를 찾아서 더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들키지 않고 끝나면 좋겠지만 만약 들키는 순간 해적들과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해적들 상대할 때 쓸 만한 칭호라면 뭐든지 좋았다.
“데넬손이 나를 왜 부르는 거지?”
“대장님께서는 그,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에 매우 만족하고 계십니다.”
“그래?”
태현은 놀랐다는 듯이 되물었다. 사실 태현이 모를 수밖에 없었다. 태현이 감옥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으니까.
* * *
-이봐! 빨리 해적기를 만들지 못해!
-이 굼벵이처럼 느린 자식! 생선도 제대로 못 낚냐!
-뛰어! 뛰라고! 나보다 더 늦게 달렸다가는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주마!
태현이 순조롭게 퀘스트를 깨는 동안, 다른 플레이어들은 눈물의 노가다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손해를 본 건 아니었다. 해적들의 일거리는 난이도가 높았고 덕분에 깰 때마다 경험치와 스킬이 빠르게 올랐으니까.
그러나…….
“두고 보자. 내가 돌아가면 맥크레니 상단에서는 물건 안 산다!”
“대체 그 복면 쓴 자식 누구야? 아는 사람 없어?”
“방송에서 본 적도 없는데…….”
“정체 나오기만 해봐라!”
“나오면 어쩔 건데?”
“어…… 방송하면 가서 악플 달기?”
플레이어들은 속았다고 생각하며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다.
* * *
“잘됐네.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다니. 내가 사람들을 제대로 봤군.”
뻔뻔하기로는 거의 신의 수준!
태현이 사람들을 어떻게 모았는지 알고 있는 루포는 어이가 없어서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그거 때문에 불렀다고?”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도…….”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루포에게 작게 말했다.
“데넬손이 욕심 좀 나나 보다.”
“저기. 태현 님. 아무리 그래도 더 지원하는 건 좀 위험한 거 아시죠?”
맥크레니 상단은 왕국에서 나름 잘나가는 상단이었다.
해적에게 몰래 이런 지원을 해줬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태현은 자기 상단이 아니라지만 루포나 맥크레니에게는 아니었다.
“알아. 걱정 마.”
“…….”
태현의 태도를 보니 더 불안해지는 루포였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더 내려가야 하는데…… 빈틈 만들기가 힘드네.’
지하 2층에서 그냥 나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르셀 백작을 조용하게 만든 다음, 태현은 다시 나와서 돌아다녔다.
귀족들이 있건 말건 그가 찾는 건 지하로 내려가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나 통로 끝에 나온 건 거대한 철문이었다. 게다가 걸려 있는 자물쇠도 심상치가 않았다.
[강력한 마법이 걸린 자물쇠입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대장장이 기술이나 기계공학으로 뭔가 해보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불가능하다는 말이 떴다.
‘젠장. 기계공학이 좀 더 높았으면 됐을지도 모르는데.’
기계공학 스킬이 높으면 도적의 자물쇠 따기 스킬 같은 게 없어도 자물쇠를 열 수 있었다.
임시로 열쇠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마법까지 걸려 있으면 지금 상태로는 열 수 없었다. 태현은 결국 포기하고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