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57화
“싫어. 인마.”
탁-
태현은 마르셀 백작이 내민 손을 매몰차게 쳐냈다. 마르셀 백작은 상상치도 못했다는 듯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는 뭘 어째서야. 네가 재수 없어서지.”
“이, 이놈! 어느 누구 앞이라고 건방진 소리냐!”
“뭐 어쩌게?”
태현이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먼저 마르셀 백작의 성격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퀘스트를 깰 때에는 퀘스트의 보상이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걸 맡기는 NPC도 중요했다.
마르셀 백작처럼 오만하고 재수 없는 인간은 위험했다.
퀘스트를 하는 도중에도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퀘스트를 깨더라도 보상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성격 더럽고 이상한 놈들은 이미 충분해!’
맥크레니부터 시작해서 태현을 쫓아다니는 아키서스의 추종자들까지.
이 인간들이 주는 퀘스트만 해도 깨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는 과연 전설 직업다운 난이도를 갖고 있었다.
태현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이미 첫 번째 권능 퀘스트에서 감을 잡은 상태였다.
‘첫 번째 권능 얻는데도 이 정도 난이도면, 앞으로도 결코 만만하지 않을 거다.’
가시밭길이 뻔히 보이는데 굳이 마르셀 백작 같은 놈을 거기에 추가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이, 이, 이놈. 내가 지금 당장 병사들을 불러서…….”
“네가 지금 어디 있는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차!”
마르셀은 그제야 현재 상황을 깨달은 것 같았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그의 성이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 호위 병사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해적들의 감옥에 있었고, 주변에 있는 건 해적들이 전부!
태현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마르셀 백작은 히익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때, 때리지 마라!”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인한 보너스를 받습니다. 위협의 성공 확률이 올라갑니다.]
[귀족의 높은 위치로 페널티를 받습니다.]
[마르셀 백작을 위협하는 데 성공합니다. 스킬 ‘위협’을 얻습니다.]
“…….”
태현은 진지하게 직업의 방향을 바꿔볼까 고민이 들었다. 점점 이런 쪽 스킬만 생기고 있었으니…….
“안 때릴 테니까 조용히 다물고 있어. 술이나 마시고.”
“술은 다 마셨…….”
“그러면 그냥 가만히 있어.”
“아. 알겠다. 조용히 하고 있으면 되지 않느냐.”
마르셀 백작은 풀이 죽어서 입을 다물고 구석에 그대로 찌그러졌다.
* * *
‘얻은 게 아주 없지는 않은데…….’
태현은 아까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가 들어가도록 도와준 두 대장장이는 아직도 해적들의 장비를 만져주고 있었다.
“아직도 하고 있어?”
“네?”
김지산과 박성찬은 쉬지도 못하고 망치를 두드리다가 뒤에서 태현이 말을 걸자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오셨……?”
“그건 별로 안 중요하고. 근데 왜 아직도 하고 있냐?”
“왜 아직도 하고 있냐니!”
둘은 억울함을 가득 담아서 외쳤다. 지금 둘이 쉬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 건 태현 때문이었다.
그가 시선을 돌리라고 해서 말을 걸었다가 괜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당신 때문이잖습니까!”
“아니. 나 때문인 건 아는데. 왜 아직도 붙잡고 있냐고. 난 끝내고 갔을 줄 알았지.”
“끝내기는 뭘 끝냅니까. 대장장이가 아니라서 모르시나 본데 여기 해적들 장비 숫자를 보세요.”
김지산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장비들을 가리켰다.
한눈에 봐도 많아 보이는 장비들.
게다가 카테란드 해적단의 해적들은 대부분 레벨이 높았다. 당연히 장비도 레벨이 높았다.
여기 있는 대장장이들이 만지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걸 다 끝내야 하는데 뭘 어떻게 끝냅니까? 실수라도 한 번 하면 해적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데!”
“알겠어. 도와주면 되잖아.”
“……?”
“……?”
김지산과 박성찬은 처음에 태현이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도적 직업이 어떻게 도와준단 말인가. 장비를 훔쳐서?
그런데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비를 잡으려 들었다.
“으아아! 그거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냥 우리가 다 할게요!”
둘은 필사적으로 태현을 막으려고 했다. 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망하는 건 그 둘뿐이니까.
“쯔쯔. 이렇게 믿음이 부족해서야.”
“아니, 대장장이도 아닌 사람이 뭘 도와주려고요!”
“대장장이 스킬은 있다.”
“대장장이 스킬 있어 봤자 별로 키우지도 않았을 텐데!”
“아. 진짜 말 많네. 비켜봐.”
태현은 힘으로 둘을 밀어내고 칼을 잡았다.
카테란드 해적단의 한손검:
내구력 120/120, 공격력 70
레벨 제한 75. 힘 제한 55. 민첩 제한 55.
악명 높은 카테란드 해적단의 해적들이 즐겨 사용하는 평범한 한손검이다. 무기 자체는 특별한 게 없지만 카테란드 해적단 때문에 이 무기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카테란드 해적단의 한손검을 수리합니다.]
[신의 예지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중급 대장장이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중급 수리 스킬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높은 행운 스탯으로 보너스를 받습니다.]
다른 대장장이들은 한두 개 뜨기도 힘든 보너스 창들이 우르르 뜨는 태현이었다.
태현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 고대의 망치를 꺼내려다가…… 멈췄다.
‘잠깐. 이거 지금 꺼내면 눈치를 채려나?’
고대의 망치는 너무 눈에 띄는 화려한 아이템이었다.
장착만 하면 오러가 줄줄 나오는 아이템!
이 둘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걸 본다면 눈치를 챌지도 몰랐다.
태현은 옆에서 굴러다니는 낡은 기본 망치를 들었다. 대장장이 중에서도 레벨을 조금만 올리면 안 쓰는 망치였다.
탕, 탕, 탕-
곧이어 울리는 경쾌한 소리!
태현의 동작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익숙했다. 그걸 본 두 대장장이들은 엄청나게 놀랐다.
처음 망치를 잡고 대장장이 일을 하는 초보자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망치를 어디에 휘둘러야 하는지도 모르고, 망치를 휘둘러도 자세가 어설프고, 망치가 칼날을 때리면 질끈 눈을 감았다.
한 몇천 번 휘둘러보면 초보자들인지 아닌지 감이 오는 게 대장장이 기술!
그런데 태현의 자세와 동작은 한마디로…… 완벽했다.
1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망치를 두드리는 게 무슨 평생 망치질만 한 장인 같았다.
‘대체 망치질을 얼마나 한 거야?’
‘도적 아니었어?’
둘은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았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태현이 판타지 온라인 1에서부터 대장장이로는 거의 전설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만약 태현이 누군지 알았다면 그들은 당장 태현의 발목을 붙잡고 사인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들이 정신을 팔고 있던 사이에 태현은 작업을 끝냈다.
‘앞으로 사람들 있을 때는 다른 망치를 써야 하나…….’
정작 위험을 감수하고 고대의 망치를 강화했는데 쓰려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 태현이 한 짓 때문이었으니까.
‘에이…… 뭐, 안 들키면 되니까.’
결코 자기가 한 짓을 후회하지는 않는 당당함. 태현이 갖고 있는 장점 중 하나였다.
“옛다.”
“이거 제대로 한 거 맞습니까? 제대로 안 한 거면 우리가 다시 해야 하는데…….”
“야. 그냥 우리가 다시 하자.”
태현의 자세에 홀려 있던 두 대장장이들은 아이템을 받자 정신을 차렸다.
김지산은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며 그냥 다시 하자고 말했다.
어차피 태현은 고렙 플레이어 같아 보였다. 그들이 하지 말라고 하거나 할 수가 없었다.
괜히 이상해진 무기를 해적들한테 줬다가 욕을 먹는 것보다는 그들이 귀찮더라도 다시 일을 하는 게 나았다.
“알겠어. 확인 좀 해봐. 난 아이템 좀 갖고 올 테니…… 왜 그래?”
“말, 말, 말도 안…….”
“……?”
아이템을 확인하던 친구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더듬거리자 박성찬은 당황했다.
‘갑자기 왜 이래?’
“완벽해……!”
“뭐가? 우리가 지금 완벽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무기가!”
“완벽하게 망가졌다고?”
“아니, 이 자식아! 완벽하게 고쳐졌다고!”
“?!”
둘이 떠들거나 말거나 태현은 무시하고 무기를 붙잡았다.
태현이 언제나 말하는 것 중 하나는, 노가다에는 때와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매우 중요한 퀘스트를 깨고 있는가?
그렇다고 해도 남는 시간 1분이 있다면 그때를 비우지 말고 노력을 해라!
게임계의 자기계발서를 내도 될 정도로 철저한 관리력이었다.
지금 해적들을 상대로 전설 직업 퀘스트의 비전 스킬을 얻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태현은 눈앞에 있는 보상을 두고 그냥 떠나지 않았다.
수리, 수리, 수리!
“저, 혹시, 대장장이셨습니까?”
자동으로 공손해진 목소리.
두 플레이어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태현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손은 공손하게 모아져서 배 앞에 붙여진 상태!
제작이나 예술 직업이 다들 그랬지만, 대장장이는 자기보다 레벨 높은 다른 대장장이 플레이어한테 도움을 특히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온갖 제작 스킬부터 시작해서 제조법까지.
당연히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장장이냐고? 비슷하긴 한데.”
“……?”
태현의 대답에 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슷하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어…… 대장장이는 대장장인데 뭔가 다른 거 들어간 거 아니냐? 희귀 직업에 있는 마탑 대장장이라던가…….”
“그런 거구나! 그러면 더 좋은 거네!”
둘은 그들에게 편리한 방향으로 생각을 해버렸다.
사실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복면을 쓰고 있는 태현이 전설 직업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얻은 사람이라는 것을.
[높은 행운으로 완벽하게 수리를 해냅니다. 현재 스킬보다 높은 난이도를 해결했기 때문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수리 스킬이 상승합니다.]
태현은 둘을 쳐다보지도 않고 남은 무기들을 빠르게 해치워 나갔다.
실로 무시무시한 집중력!
말을 걸려고 머뭇거리던 둘은 어느새 해치워져 나가는 무기들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끝.”
태현은 빠르게 마지막 무기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쿨하게 돌아섰다. 스킬을 올릴 수 있을 만큼 올렸으니 이제는 떠날 때!
탁-
“……?”
“저, 저희의 사부가 되어주십쇼!”
* * *
“저리 가, 이것들아! 왜 징그럽게 달라붙고 그래!”
“제발! 귀찮게 안 하겠습니다!”
“조금만 가르쳐주십시오!”
“이미 충분히 귀찮게 하고 있거든? 루포! 뭐하냐! 이것들 떼어내!”
멀리서 하품을 하고 있던 루포는 태현이 부르자 달려오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하고 계시는 겁니까?”
두 대장장이가 각각 태현의 다리 하나씩을 붙잡고 늘어지는 건 흔하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뭐하는 걸로 보이냐? 당장 안 치워?”
“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간절해 보이는데…….”
“너 누구 밑에서 일하냐? 돌아가서 맥크레니한테 하나하나 다 일러바쳐 줘?”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협박은 바로 일러바친다는 협박!
그냥 여기서 갈구면 갈궜지 맥크레니한테 일러바친다는 건 뭐란 말인가.
루포는 투덜거리면서 불평했다.
“알겠습니다. 하면 되잖아요.”
대장장이가 힘이 높은 직업이기는 했지만 루포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루포는 둘을 손쉽게 떼어놨다.
“그런데 이 둘은 뭘 잘못 먹어서 이러는 겁니까?”
“몰라. 약간 머리가 이상한 놈들 같아.”
두 대장장이는 태현의 말에 기가 막혀서 가슴을 쳤다. 루포는 그 모습을 보자 솔깃했다. 정말 약간 이상한 사람들 같았던 것이다.
“진짠가?”
“아닙니다! 기술 좀 가르쳐달라고 한 건데!”
“뭔 기술? 이 사람이 기술이 있어?”
루포는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그에게 태현은 아키서스의 화신인 걸 제외하면 쓸데없이 잡기술만 조금씩 익힌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