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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53화 (53/1,826)

§ 나는 될놈이다 53화

뒤에서 무게를 잡고 서 있던 루포가 태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하는 겁니까? 제대로 하세요!’

지금 자리에서 무게를 잡고 있는 건 상단의 전투원이었다.

루포도 그렇고 상단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전사들. 입고 있는 아이템도 그렇고 겉모습도 그렇고 가만히 있어도 위압감이 풍겼다.

그런데 태현이 기껏 그들 가운데 서서 한다는 소리가 ‘좋은 아침이네요’라니.

그들도 망신이었다.

‘아. 참을성 없기는. 기다려봐.’

태현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그렇죠?”

“빨리 말이나 해라!”

참고 기다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결국 말이 나왔다. 누군가 주먹을 흔들면서 외쳤다.

“맞아! 빨리 말이나 하라고!”

“간단합니다. 제가 여기 온 건 좋은 말씀을…… 아니, 좋은 퀘스트를 여러분한테 드리러 온 겁니다.”

순간 말이 잘못 나왔지만 태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쳐서 말했다.

어차피 복면을 써서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좋은 퀘스트를?”

“우리한테?”

광장에는 고렙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이었다.

거기다가 제작 계열 직업인 사람들이 절반을 넘었다.

대장장이나 재봉사나 요리사나 공통점이 있다면, 초반에는 혼자서 뭘 하기 힘들다는 것!

던전이고 보스 몬스터 레이드고 뭐고 처음에는 도시 안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당연히 좋은 퀘스트를 준다는 말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 속이는 거 아냐?”

“뭐? 속여서 뭐 좋을 게 있다고 우리를 속여?”

“생각해 봐. 너 같으면 남한테 그냥 좋은 퀘스트를 공유해 주겠어?”

“그건 그러네…….”

어디에나 부정적인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럴듯했다. 남한테 그냥 퀘스트를 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당연히 공짜는 아닙니다.”

“……!”

“하지만 그렇게 비싸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 사정을 제가 아는데 비싸게 받을 수는 없죠. 여러분들, 골드 모으시기 힘드시죠? 다 압니다. 제작 스킬은 올리기도 힘든데 NPC는 부려먹기만 하니…….”

태현은 제작 직업들의 상황들을 꿰고 있었다.

그런 태현이 하는 말은 제작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듣다 보면 울컥하는 마음!

“그래서 단돈 1골드! 1골드만 받겠습니다. 1골드만 내시면 퀘스트에 참가할 수 있는 겁니다!”

“1골드?”

“1골드면…….”

저렙에게는 푼돈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 낼 정도로 거금은 아니었다.

내려면 충분히 낼 수 있는 수준!

대박 퀘스트에 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거였다.

“그런데 무슨 퀘스트예요?”

“잘 물어봤습니다. 여기 맥크레니 상단 사람들 보이시죠?”

태현은 루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루포는 질색을 했지만 밀치지는 않았다.

“네! 보여요!”

“여기 이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퀘스트입니다.”

“섬에 가서 뭘 해요?”

“섬에 있는 NPC들한테 여러분들의 스킬을 마음껏 보여주시는 거죠. 대장장이? 요리사? 정원사? 화가? 음악가? 뭐든 좋습니다. 제작이나 예술 직업을 가진 분들은 가시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와아아아아아!”

모두 손을 들고 함성을 질렀다.

제작이나 예술 직업이 저런 식으로 새로운 곳에 가는 건 엄청난 기회였다.

일단 못 가본 곳을 발견하면 그것만으로도 보너스가 있었다.

스탯 보너스는 기본이고 운이 좋으면 직업 스킬 보너스까지.

게다가 그 지역에서 NPC들한테 퀘스트를 받고 해결한다면 추가로 보상이 따라왔다.

물론 그 NPC들이 해적이라는 건 말하지 않았지만…….

“뭐하는 겁니까?!”

사람들이 신나서 소리를 지르는 동안 루포는 황급히 태현을 붙잡고 속삭였다.

“뭐하냐니. 해적 문제 해결하려고 하잖아.”

“해적단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여기 모인 잔챙이들로는 절대 깰 수 없습니다! 거기에 여기 사람들한테 아직 말도 안 했잖습니까? 해적단이 상대라는 걸 말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도망칠 겁니다.”

“걱정 마. 싸울 생각 없거든.”

“예?”

“지하로만 들어가면 될 거 아냐?”

“??”

“해적단들도 사람이야. 그런 곳에서 갇혀서 지내다 보면 아쉬운 게 많겠지.”

“설, 설마…….”

“적당히 뇌물로 바칠 걸 가득 실자. 술이나 먹을 것도 좋겠지. 거기에 여기 사람들을 쫙 풀어서 일을 시키는 거야.”

태현의 계획을 들은 루포의 입이 딱 벌어졌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그러니까, 해적들의 요새를 꾸며주겠다 이겁니까?”

“뭐…… 비슷하지?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는 마. 어차피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실력이 별로여서 꾸며봤자 별로일 거야.”

“아니, 잘하냐 못하냐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해적들한테 그러면 안 되죠!”

“왜 안 되는데?”

“어, 그러니까. 그게…… 해적이니까?”

“너희 상단이잖아. 해적도 돈만 되면 거래하지 않나?”

“저희는 그런 적 없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생겨도 절대 안 할 자신 있냐?”

“그, 그건…….”

루포는 입맛을 다셨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맥크레니가 거래를 안 할 거라고는 100% 확신할 수 없었다.

돈만 되면 누구와도 거래를 할 수 있는 게 상인!

“완벽하게 통하든, 통하지 않든. 해적들이 거래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일단 섬에만 들어가면 돼. 그러면 몰래 지하로 내려갈 수 있으니까.”

배에 탈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냉정함.

태현은 목표를 위해서 어떤 짓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어차피 복면 썼는데 뭐 어때?’

나중에 문제 생기면 또 겉모습을 바꾸면 끝!

“해적들이 섬으로 데리고 가도록 교섭을 해봐. 그게 너희들 역할이니까. 지원해주겠다고 했었지?”

“…….”

태현은 루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모두 일렬로 서세요! 이름 적겠습니다!”

“와아아!”

사람들은 순식간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늦어서 끼지 못할까 봐 다들 필사적이었다.

“여기! 1골드 있습니다! 제임스에요! 이름 적어주세요!”

“저는 다나카! 다나카 명단에 꼭 넣어주세요!”

“저기 근데 어디 섬으로 가요?”

곤란한 질문에는 못 들은 척!

태현은 은근슬쩍 넘기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순식간에 배 한 척에 가득 태울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제작이나 예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새로운 곳에 가서 얻을 보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해적단 소굴에 가는 건 언제 말해줄 겁니까?”

“도착하면?”

태현은 두둑해진 금화 주머니를 흔들며 말했다.

* * *

<상단을 따라 섬으로>

제노마 시를 주름잡는 맥크레니 상단은 이익이 있다면 어디든 가는 상단이다.

그들이 인원을 모집하고 있다. 섬에 가서 각종 제작과 예술 활동을 한다면 두둑한 보상을 받으리라.

보상: ?, ??, ???

모인 사람들에게 모두 퀘스트가 떴다. 상단의 사람들이 친절하게 항구로 안내해서 거대한 상선까지 가르쳐주자 모두가 감격했다.

“거봐. 맥크레니 상단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 상대로 사기를 치겠어?”

“그러네. 내가 너무 의심을 했던 것 같다. 괜히 미안해지네.”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가서 열심히 하면 되지!”

“하하! 그렇지?”

어디로 가는지는 꿈도 꾸지 못하고 해맑게 대화하는 플레이어들!

설마 그 악명 높은 카테란드 해적단이 있는 섬으로 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태현은 배의 갑판 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돛에, 탄탄하고 잘 만들어진 배의 몸체. 아주 비쌀 것 같은 상선이었다.

플레이어들이 가지려면 전 재산을 쏟아도 모자랄 수준의 범선!

거기 위에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모두 다 희망으로 얼굴이 반짝거렸다.

“어디로 가지? 분명 좋은 곳일 거야. 맥크레니 상단이 갈 만한 곳이니까.”

“그렇지? 상단이 막 위험한 곳에 가지는 않을 거 아니야.”

상단에 대한 믿음.

플레이어가 이렇게 많이 모인 이유 중 하나였다.

맥크레니 상단은 태현이 제노마 시에 오기 전부터 유명했던 상단이었다.

유명한 상단은 유명한 교단이나 유명한 세력만큼이나 사람들이 믿는 곳이었다.

게다가 맥크레니 상단은 상단인 만큼 다른 세력들보다 덜 위험한 일을 한다고 평가받았다.

맥크레니 상단이 사람들을 모은다! 했을 때 사람들은 ‘그래도 맥크레니 상단이니 위험한 곳으로 가지는 않겠지?’ 하고 믿고 따라온 것이다.

“주변 섬이 뭐가 있더라?”

“엘더렌 섬? 거기 좋지! 거기 가면 분명 발견 보너스 나올 거야. 풍경도 좋고 몬스터도 그렇게 안 강하다고 하더라. 거기 사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초보자 화가 세트를 차려입은 두 플레이어가 두근거린다는 듯이 서로 보고 웃어댔다.

아름다운 엘더렌 섬에 가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리라!

그들은 실제 현실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판타지 온라인 2의 자연은 현실의 자연과는 비교도 안 되는 스케일의 자연.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마나 폭풍, 빙하들 사이에서 날아다니는 아이스 드래곤, 용암 속에서 끓어오르는 거인들…….

모두 다 화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장면들이었다.

‘나도 꼭 여기서 영감을 얻을 거야!’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

철컥, 철컥-

“야. 넌 뭘 그렇게 많이 챙겨왔냐?”

“대장장이라면 기본이지. 너 거기 가서 재료 구하기가 쉬울 것 같아? 재료는 많이 갖고 다녀야 하는 거야.”

두 대장장이 플레이어는 서로 친구였다. 남자는 잔뜩 짐을 짊어진 친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 너 지금 느려졌잖아.”

최대 무게 한계를 넘겨서 느려진 친구였다.

“나중에 나한테 재료 달라고 하지 마라!”

“에이. 그런 게 어딨냐. 돈 줄 테니까 재료 필요하면 좀 나눠줘. 가서 뭐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흥. 비싸게 받을 거다.”

둘의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다투는 것처럼 보였지만 친한 사이니까 가능한 대화였다.

“무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난 중갑옷. 스킬 숙련도 올려야 해. 지금 제노마 시에서 중갑옷이 가장 인기 많은 거 알지? 스킬 숙련도 올리면 팍팍 나갈 수 있을 거야.”

“난 그래도 무기가 좋더라. 멋있잖아.”

“야. 멋있는 건 둘째 치고 일단 돈부터 모아야 뭘 할 거 아냐?”

루포는 지나가다가 둘의 대화를 듣고 작게 중얼거렸다.

“무기도 많고 중갑옷도 많을 거다.”

“……?”

“방금 저 NPC가 뭐라고 하지 않았어?”

“무기도 많고 중갑옷도 많다고? 했지?”

분명 제대로 들었다면 그렇게 말했었다. 둘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정말…….”

“여기 오기를 잘했어!”

* * *

루포는 차가운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래도 양심이 찔리지 않느냐?

그러나 태현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선장에게 물었다.

“얼마 정도 남았나?”

“삼십 분 정도 더 가면 나타날 겁니다.”

“미리 말은 해뒀지?”

“예. 제대로 된 교섭은 직접 만나서 해야겠지만…….”

태현은 선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다음 루포를 쳐다보았다.

“루포. 협상하러 가자고.”

“예?! 왜 접니까?!”

“네가 여기서 제일 강하지 않나?”

“……!”

루포는 살짝 놀랐다. 그 말이 맞긴 했다. 상단의 실력자 중에서 그가 제일 강했으니까.

그도 나름 그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태현이 어떻게 알아차렸단 말인가?

“무슨 일 생기면 나 도와줘야지.”

“…….”

태현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맥크레니한테 받은 명령이 있는데.

루포는 고개를 푹 숙이고 태현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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