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47화
그러나 펠마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태현 님. 이런 낡은 방 같은 것은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게 됐냐? 네가 말한 신도들은 다 어딘가 이상한 놈들인데. 모이는 곳까지 이상하잖아.”
태현은 팩트로 펠마스를 후려쳤다. 그렇지만 펠마스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것 같았다.
태현의 지적은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당당함!
“태현 님께서는 힘을 기르셔야 합니다. 신으로서의 힘을 말입니다.”
태현은 펠마스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신으로서의 힘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신성 스탯. 신성 스탯을 올리라는 뜻이었다.
“힘을 올리면?”
“태현 님께서는 화신이시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게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신으로서의 힘을 모으시고, 아키서스의 권능을 얻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신격으로서의 힘이 올라갈 겁니다.”
신성 스탯을 올리고, 아키서스의 권능이면…….
‘직업 전용 스킬인가?’
대충 알아들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펠마스가 진지하게 물었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지금 여기서 새로운 종교와 교단이 태어나는 것이다.
신의 화신과 함께하는 교단!
다른 교단 중에서도 신 자체인 화신을 갖고 있는 교단은 드물었다. 지금은 비록 미약하지만, 앞으로 크게 성장할 거라고 펠마스는 굳게 믿었다.
“태현 님. 제가 태현 님의 교단을 세우고 신도들을 이끌어도 되겠습니까?”
“어? 아니. 그건 아닌 듯.”
“…….”
태현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어째서입니까?!”
“아니, 그야…… 교단 세우고 교황을 뽑을 거면 좀 더 멀쩡하고 그럴듯한 놈을 뽑고 싶은데.”
태현은 돌려 말하지 않고 대놓고 말했다. 펠마스는 금방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
덥석!
“?!”
“아이고, 태현 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신도들을 모으느라 얼마나 노오오력을 했는데!”
펠마스는 엎드려서 태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리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일이 노오오력으로 되는 거라면 얼마나 쉬웠겠냐. 안 되니까 세상인 거지. 더 노오오오오오오오력을 했어야지! 저리 가, 인마!”
“아이고! 아이고! 태현 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태현은 펠마스를 흔들어서 떼어내려고 했지만 펠마스는 끝까지 달라붙었다.
“아니, 꼭 교황을 하고 싶어? 그냥 다른 거 하면 안 돼? 교황은 좀 그럴듯한 놈 시키자.”
“제가 그럴듯하지 않다는 겁니까?”
“응.”
“…….”
펠마스는 생각을 바꿨다. 태현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주면서 돌려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 말고 누구를 시키시려고요?!”
“몰라. 어쨌든 너보다는 나은 사람이 있겠지. 일단 사람 없다고 널 교황으로 앉히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얼마나 공헌을 했는데!”
“거지들 모아놓은 게 공헌이냐? 응?”
덜컥-
“……뭐 하시나?”
들어온 건 갑옷을 입고 무장한 늙은 남자였다. 제법 그럴듯한 갑옷이었다.
화려한 문양은 없었지만 은색 빛이 나는 중갑. 갑옷처럼 검집에 장식은 없었지만 검도 괜찮아 보였다.
“넥돈! 들어주게! 태현 님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교황으로 앉힌다고 하시지 않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넥돈!”
“그건 아키서스 님이 정하실 문제 아닌가? 아. 이분이 그 아키서스의 화신이신 건 맞지?”
“맞아.”
태현이 대신 대답했다.
그걸 들은 넥돈이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태현 님. 저는 넥돈이라고 합니다.”
“그…… 뭐시냐. 도박하다가 걸려서 쫓겨난 기사였나?”
넥돈은 고개를 돌려 펠마스를 쳐다보았다. 펠마스는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비밀이었던 것 같았다.
“크흠. 젊은 날의 실수였죠.”
“지금 나이를 보면 젊은 날 한 실수가 아닌 것 같지만…… 뭐. 좋아.”
젊어서 한 실수가 아니라 늙어서 한 실수 같았다.
넥돈은 다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태현 님께서 교황을 다른 사람으로 하고 싶다면 그건 태현 님의 자유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그저 따를 뿐입니다.”
“넥돈, 너 인마!”
“그렇지만 펠마스만큼 태현 님을 찾느라 노력한 사람도, 신도들을 모으느라 노력한 사람도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명예직 같은 거 주면 되잖아. 그 뭐냐, 신전 관리인? 같은 그런 거 하나 만들지.”
“…….”
“…….”
둘은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어. 교황은 좀 더 생각해 보지. 그보다 지금 교황 이야기할 때가 아니지 않나? 말이 종교지 지금 우리는 신전도 없고 교단도 없고 신도들도…… 몇 명이나 있냐? 열 명은 넘냐?”
“하하. 숫자는 중요하지 않…….”
태현은 펠마스의 다리를 걷어찼다.
“악!”
“맞는 말입니다. 태현 님. 지금으로는 종교라고 말하기도 우스울 정도니까요. 당장 저 데메르 교단만 봐도 수많은 성기사와 사제들을 이끌고 있고 각 나라에 교단 신전이 있으니 말입니다.”
땅의 여신으로 알려진 데메르는 그 특유의 치유 능력으로 인기가 좋은 신 중 하나였다.
저번에 요새에서 만난 최하준 최하영 콤비도 데메르를 믿는 성기사와 사제였다.
“그러니 저희는 차근차근 힘을 모아야 합니다.”
“흠. 어떻게?”
“태현 님의 신성력을 올리고, 힘을 올리고, 아키서스로서의 권능을 배우셔야죠. 태현 님.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나타난 사람이 예전에도 있었다는 걸 아십니까?”
“……?”
생각해 보니 그럴법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아키서스의 화신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이들이 아키서스의 화신을 기대하거나 찾아다니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주 먼 옛날에는 아키서스를 믿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교단도 있었고 화신도 있었었죠. 지금은 그 교단도 사라지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도 없지만, 저와 펠마스는 고문서에서 예언을 발견했습니다.”
“예언?”
“예. 아키서스의 화신이 돌아와 신도들을 이끌고 교단을 만들 것이라는 예언!”
“너희들 혹시 다단계 같은 것도 속아서 넘어간 적 없냐? 도박 중독인 거 보니 그럴 것 같은데…….”
“…….”
넥돈은 당황해서 펠마스를 쳐다봤지만 펠마스는 넥돈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그냥 무시하고 할 말 해!’
태현에게 휘둘리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저희는 그런 고문서들을 모으면서 아키서스 님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중에는 예전 아키서스의 화신이 썼던 권능에 대한 문서도 있었죠.”
“오호. 그래?”
태현은 솔깃했다. 전설 직업의 전용 스킬.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스킬일까?
“이제 태현 님도 오셨으니 그 문서들에 나온 권능을 얻으셔야 합니다. 물론 힘이 들고 어려운 길이겠지만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태현은 잠깐 멈칫했다. 이 인간들이 과연 도움이 될까?
“그래. 잘 부탁해.”
“방금 멈칫하신 것 같은데……?”
“네 착각이겠지.”
[직업 퀘스트–아키서스의 화신을 완료했습니다.]
[신성이 50 오릅니다.]
[아키서스의 신도들의 친밀도가 최고로 변합니다.]
[칭호: 교단의 창시자를 얻었습니다.]
[서버에서 처음 얻은 칭호입니다. 각 스탯이 10씩 증가합니다.]
[신성 때문에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남들은 하나 얻기도 힘든 최초 칭호를 태현은 벌써 몇 개씩 갖고 있었다.
‘레벨 업을 제대로 못 하니 이렇게라도 스탯을 받아야지…….’
창을 훑어보던 태현은 무언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성 때문에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다고?’
이건 뭔가…… 불길했다.
‘알아본다는 게 뭐지?’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친한 경우는 드물었다.
보통은 서로 욕하고 견제하는 게 대부분!
태현은 일단 생각을 멈추고 스탯을 확인했다.
이름 : 김태현
레벨 : 27
직업 : 아키서스의 화신
HP(체력) : 1325
MP(마력) : 1325
힘 : 145 (+20)
민첩 : 145
체력 : 145(+25)
지혜 : 160
행운 : 2585
보너스 스탯: 0
‘많이도 왔군.’
찍어서 사이트에 올리면 ‘가장 신기하게 키운 캐릭터’ 1위를 바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스탯창!
레벨만 이상하게 낮을 뿐이지 스탯만 보면 50~60레벨 플레이어하고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행운까지 합치면…….
태현도 사실 지금 그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했다.
레드존 길마를 봤을 때, 랭커 중에서 직업 상성만 잘 맞으면 몇 명은 지금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행운이라는 게 참…….’
상대방이 회피를 무시하고 데미지를 주는 스킬이 있거나, 회피를 막는 스킬이 있거나…… 이런 종류만 아니라면 태현에게 데미지를 주는 건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신성 권능까지 있으니…….
<신성 권능>
신성에 따라 데미지를 낮춥니다.
‘추가 스탯 확인.’
공포 : 60
명성 : 500
신성 : 50
신성이 50에, 명성이 500. 공포까지. 다른 사람들은 억지로 올리려고 해도 잘못 올리는 스탯들은 잘도 올렸다.
‘스킬은…….’
초급 검술 5 (95%)
초급 요리 9 (45%)
초급 기계공학 1(15%)
중급 대장장이 기술 6 (4%)
주르륵 나오는 스킬 창을 일단 멈추고,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검술 스킬은 일단 중급까지 올려야 해.’
지금 태현이 행운으로 공격력을 뻥튀기 시키고 있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그걸로 버틸 수는 없었다.
전사나 성기사 같은 근접전 직업들은 스킬들이 있었지만 태현은 그런 스킬을 기대할 수 없었다.
믿을 수 있는 건 기본 검술 스킬밖에 없었다.
올리고 올려야 했다.
‘역시 검술 스킬을 올리려면 노가다가 필수인데…….’
많이 휘두르고 많이 때려야 오를 것 아닌가.
‘요리, 기계공학도 일단 올려야 하고. 대장장이 기술도 올려야 하고…….’
태현이 원하는 건 만능 캐릭터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만능 캐릭터.
혼자서 플레이하려면 만능 캐릭터로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계가 오니까.
문제는 이 만능 캐릭터라는 게 보통 노가다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뭐, 하나씩 해볼까.’
태현은 일단 목표를 정하면 노가다를 얼마나 하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 넥돈. 펠마스. 그러면 그 고문서는 어디 있지?”
“흩어져 있습니다만…….”
“갖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게 하나 있긴 합니다.”
“……뭐지? 어디에 있는데?”
“저 옆 카지노에…….”
“……?”
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신과 관련된 고문서가 카지노에 있는데?”
“그야…….”
“……걸었다가 잃어서요?”
“…….”
태현은 망치를 들고 일어섰다.
* *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너희들이 그런 놈이라는 건 원래 알고 있었으니까.”
“태현 님! 저희는 원래 그런 놈들이 아닙니다!”
“닥쳐.”
태현은 창문으로 옆을 쳐다보았다. 아까 들어오면서 본 그 화려한 저택이 사실은 카지노였던 것이다.
“저 카지노에서 고문서 걸었다가 뺏겼다고?”
“네…….”
들어보니 저 카지노는 제노마 시의 귀족들과 대상인들이 들락날락하는, 이른바 잡상인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곳 같았다.
당연히 안에 있는 병력도 무시무시한 수준!
간단히 봐도 안에 있는 호위 기사들 레벨이 100은 넘긴 것 같았다.
“음. 그냥 돈 주고 사면 안 되나?”
“그게…….”
“저희도 해봤는데…….”
“해봤는데?”
“카지노 주인이 거절하더라고요. 그 고문서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너희는 도움이 되는 게 뭐냐? 대체?”
둘은 고개를 푹 숙였다. 태현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예? 어디로요?”
“카지노. 내가 도박을 어떻게 하는 건지 제대로 보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