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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44화 (44/1,826)

§ 나는 될놈이다 44화

그런 약한 마법 하나라도 태현은 충분히 잘 쓸 수 있었다.

태현이 판타지 온라인 1에서 대장장이로 랭커들을 썰고 다닌 건 대장장이가 강한 캐릭터여서가 아니었다.

태현이 대장장이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 * *

“응? 너 뭐 보냐? 판타지 온라인 1 영상이야?”

“네. 판타지 온라인 2랑은 다르지만 그래도 이때 랭커들도 꽤 많이 2로 왔잖아요?”

“그렇지. 이세연이 혼자서 100명 상대로 싸우는 건 봤어?”

“네. 진짜 대단하던데요.”

네크로맨서의 정수!

상대의 마법사나 사제 같은 위험한 적에게 먼저 저주를 걸고 공격을 한다.

동시에 시체를 일으켜서 전사들의 발목을 묶고, 어떻게든 한두 명을 죽인다.

싸우다 보면 한두 명은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즉시 그 시체를 되살린다. 이세연 정도 되는 네크로맨서는 강력한 데스 나이트를 바로 부를 수 있었다.

각종 아이템과 포션으로 마력을 회복하고 시체들을 되살리는 네크로맨서를 막기 위해서는 네크로맨서를 먼저 쳐야 했다.

그들도 그걸 알았기에 이세연을 노리기 위해 특공을 했다.

도적 같은 직업들로 구성된 특공.

그러나 이세연은 이미 읽고 있었다. 바로 마법 함정을 발동시켜서 도적들을 박살 내버렸다.

“그렇지? 괜히 랭킹 1위가 아니야. 그거 말고 다른 랭커들도 보다 보면 명장면 하나씩은 있으니까 챙겨 봐봐.”

“도적 랭커인 도동수 영상도…….”

“도동수? 김태현한테 발린 도적이잖아. 그런 놈 볼 시간에 김태현 영상을 봐라.”

냉정한 평가!

최명성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도동수 정도 되는 랭커가 저런 취급을 받다니.

윤주환은 갑자기 도동수가 안쓰러워졌다.

“김태현 영상이야 가장 먼저 봤죠.”

“그래? 어땠어? 쩔지? 대단하지? 응?”

1초도 안 되어서 나오는 질문들!

“…….”

윤주환은 최명성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니, 여기서 일하시는 분이 이렇게 팬인 걸 드러내도 되는 거야?

그러나 최명성은 그의 상사. 윤주환은 그런 말은 삼키고 말했다.

“네. 진짜 대단하더라고요. 컨트롤은 당연히 대단하고…….”

판타지 온라인 1에서의 태현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컨트롤이었다.

상대의 동작을 읽고, 공격을 하면 바로 피하고, 스킬을 쓰면 카운터를 치고…….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악마 같은 컨트롤이었다.

실제로 태현과 싸운 랭커 중 몇 명은 인터뷰를 했었다.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랭커들이었던 것이다.

-진짜 사람 XX 같지가 않더라고요. 무슨 마약이라도 한 거 같았어요. 그거 있잖아요. 집중제? 각성제? 저도 한 컨트롤 하는 사람인데…… 와, 무슨 내가 뭐만 하려고 하면 바로 읽어내더라고요.

-컷! 컷! 아니, 방송에서 욕을 하면 어떡해요!

“컨트롤은 당연히 대단하고?”

“어…… 주변 상황 읽는 눈도 대단하고요?”

태현이 일대일을 신청한 게 워낙 유명했지만, 그전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특히 PK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더더욱.

혼자 돌아다니는 태현은 다른 대장장이들이 거대 길드의 지원을 받는 동안 재료와 아이템을 혼자 모아야 했다.

당연히 노가다를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플레이어를 잡아서 얻어내면 됐다.

그러나 먼저 선공하면 판타지 온라인에서는 페널티가 있었다. 태현은 여기서 발상을 바꿨다.

‘PK 하고 다니는 놈들은 이미 붉은색이니까 내가 먼저 쳐도 페널티가 없잖아?’

게다가 PK 페널티는 아이템도 많이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태현은 PK 좀 한다고 악명이 높은 플레이어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준비가 되어서 랭커들과 상대로 일대일을 하기 전까지는, 태현은 일 대 다수로 싸워 온 사람이었다.

당연히 혼자서 집단과 싸울 때 필요한 모든 걸 갖고 있었다.

상황을 읽는 눈, 물러날 때 물러날 수 있는 판단력,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게 다야?”

“더 있어요?”

“쯧쯧. 이래서 뉴비란…….”

최명성이 혀를 차며 손을 흔들자 윤주환은 속으로 울컥했다.

지금 최명성의 태도는 마치…….

‘김태현 빠돌이인 건 알았지만 좀 심하지 않아!?’

원래 별로 안 유명했던 인디 밴드가 방송을 타고 유명해지자, 그 인디 밴드의 원래 팬이었던 사람이 ‘아 요즘 팬들은 뭘 모른다니까~’ 하는 느낌!

“김태현 볼 때 다들 화려한 겉모습에 집중하는데, 더 대단한 게 있어.”

“그게 뭡니까?”

“전략이지.”

“아. 판 만드는 거요?”

PK 플레이어들은 혼자 다니지 않았다. 태현이 그들을 상대할 때 그냥 정면돌격을 하지 않았다.

몬스터를 보내든, 이간질을 하든, 함정을 파든, 어떻게든 갈라놓고 빈틈을 만들고 혼란에 빠뜨렸다.

지금도 그 싸움 중 몇 개는 베스트 랭킹에 있을 정도로 대단한 장면이었다.

“아니. 판 만드는 것도 대단하긴 한데…… 내가 말한 건 캐릭터야.”

“캐릭터요?”

“캐릭터를 어떻게 키워야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전략을 잘 짠다고. 판타지 온라인 1의 랭커들 보면 다 강한 직업을 가진 놈들이었거든? 김태현 빼면 다 강캐였어.”

“그랬었죠.”

“김태현이 그냥 대장장이 들고 덤볐으면 아무리 컨트롤이 좋아도 졌을 거야. 김태현은 거기서 특별했다고. 대장장이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단 말이야. 너 판타지 온라인 1에서 폭탄 아냐?”

“네. 대장장이 밥줄이잖아요.”

대장장이가 제작할 수 있는 폭탄 계열 아이템.

데미지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스턴 효과가 있었다. 맞으면 마비되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쓰는 스킬 콤보는 거의 다 이 폭탄이 들어갔다.

폭탄으로 스턴 걸고 망치. 폭턴으로 스턴 걸고 대못 작렬 등등.

“판타지 온라인 1 끝날 때야 다들 폭탄 썼지만, 원래 그거 아무도 안 쓴 거 아냐?”

“네? 진짜요?”

“그거 데미지가 진짜 쥐꼬리만 했거든. 그런 주제에 기계공학 파고서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아무도 안 건드렸지. 스턴 효과 하나만 있으니까 무시한 거야. 그런데 그걸 파고든 게 김태현이야.”

태현은 대장장이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야 했다.

그게 약캐의 운명이었다.

강캐는 설렁설렁 스킬을 써도 약캐는 죽어라 스킬을 써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다 찾아봤다. 그런 도중 발견된 게 폭탄류 아이템이었다.

데미지는 낮지만 스턴 효과가 있었다. 태현은 거기에 주목했다.

폭탄 계열 아이템으로 상대에게 온갖 디버프를 걸고 어떻게든 개싸움으로 유도한다.

그것 말고도 태현이 만든 유행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전투형 대장장이로 가능한 모든 건 다 태현이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전략은 아무나 짜는 게 아니야. 머리가 있어야 가능한 거지. 타고난 센스도. 그리고 이런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화제를 만들어줘. 남이 다 짜놓은 길 따라가는 플레이어들은 랭커라고 해도 아무것도 못 만들거든? 그렇지만 김태현은 다르다고.”

“아. 예.”

윤주환은 한 귀로 흘렸다.

김태현이 대단하다는 건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명성이 김태현 이야기를 할 때는 대충 들어야 한다는 것도.

* * *

“펠마스. 네가 만든 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예?”

“어떤 사람들이냐고. 전사? 기사? 상인? 도적? 궁수? 마법사?”

“음…… 일단 왕국 근위기사가 있습니다.”

“……!”

왕국 근위기사. 기사 계열 직업으로 전직해서 온갖 공적을 쌓아야 올라갈 수 있는 자리였다.

그냥 기사가 아닌, 왕과 왕실 주변에서 일하는 기사 아닌가.

당연히 부릴 수 있는 부하들도 많고 왕이나 귀족과 인맥도 있는, 모두가 원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NPC도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태현은 갑자기 기대감이 들었다.

펠마스가 워낙 허접해서 기대를 버렸었는데, 설마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나?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정말로? 이름이 뭔데? 잠깐, 그런데 어디 왕국 근위기사지? 아탈리 왕국인가?”

“이름은 넥돈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닌데요.”

“뭐?”

“넥돈은 은퇴했거든요.”

“그걸 먼저 말해!”

태현은 펠마스의 멱살을 잡았다. 울컥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화낼 건 아니었다.

은퇴했다고 하더라도 능력치는 그대로일 것 아닌가.

“잠깐. 은퇴했어도 실력은 그대로겠지?”

“실력이요? 넥돈도 늙은 데다가 수련을 안 한 지 꽤 되어서 별로……?”

“아니, 근위기사 출신이라는 사람이 뭐 그리 허술하고 자기 관리를 안 해!?”

“그야 넥돈은 도박하다 걸려서 쫓겨났으니까요……?”

펠마스가 태현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제야 태현은 느낌이 왔다.

아, 다른 인간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한 인간들은 아니겠구나!

행운과 도박의 신을 찾아 헤매는 인간들이 멀쩡한 인간들일 리가 없었다.

막장 집합소!

‘도망칠까?’

갑자기 태현은 직업 퀘스트고 뭐고 도망치고 싶은 본능적인 충동이 들었다.

“태현 님. 그래도 넥돈이 실력은 있습니다.”

“늙고 수련도 안 한 지 꽤 됐다며?”

“그래도 기본 실력이 있잖습니까?”

펠마스는 태현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희 무리에 넥돈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 그래. 그렇겠지. 또 누가 있는데? 왕국이 쫓는 범죄자라도 있냐?”

있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뭐 XX?”

바로 튀어나오는 욕설! 태현은 결국 분노조절에 실패했다.

“이, 이제는 괜찮습니다. 예전 일이거든요. 신분도 다 세탁하고 얼굴도 바꿔서 아무도 모를 겁니다.”

“…….”

도적 에드안. 예전에 왕국의 보물을 훔쳐서 왕의 분노를 산, 나름 유명했던 도적이었다.

결국 잡혔지만 그는 양팔을 자르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 그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얼굴과 신분, 그 모든 것을 바꿨다.

“그리고 이제는 도박을 하고 있고?”

“팔 없는 도둑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 너는 어디서 그런 놈들만 모은 거냐?”

이제 슬슬 궁금해질 정도였다. 일부러 모으려고 해도 모으기 힘들 것 같았다.

“하하. 저희가 좀 궁한 사람들만 모으다 보니…… 저희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다른 신을 믿지 않겠습니까?”

신전도 사제도 없는 신을 믿는 괴짜들은 드물었다.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잘났다. 아주 종류별로 모아놨군…… 아. 마법사는 없냐?”

“마법사는 없습니다.”

“…….”

“그렇지만 마법사 비스무리한 건 있습니다.”

“마법사면 마법사지, 마법사 비스무리한 건 뭔데?”

“마탑의 마법사 밑에서 일하던 필사꾼입니다.”

“그게 어떻게 마법사 비스무리한 거냐? 왕궁 청소부면 왕 비스무리한 거냐? 응?”

필사꾼이라는 건 즉, 베껴 쓰는 사람. 마법사가 시키는 걸 쓰고 정리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당연히 마법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마법사의 마도서 있잖습니까.”

“그래. 스킬북.”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책. 직업마다 다 이름이 달랐지만 마법사가 만드는 책은 마도서로 불렸다.

“그걸 다 받아쓴 사람이 그 친구입니다.”

“……!”

태현은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도서를 다 받아썼다고?”

“자기 말대로 따르면 온갖 책을 다 베껴 썼다고 했으니, 어지간한 마법사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과연 비스무리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태현은 궁금해졌다.

마법사가 안 쓰고 저렇게 필사꾼이 대신 쓴 마도서도 효과가 있을까?

“좋아.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지. 제발 쓸모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하하. 태현 님. 저희는 이래 보여도 절대로 능력 없는 사람들이…….”

“그냥 조용히 잠이나 자지그래?”

“예. 태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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